25화(5,496자)

요리책 마흔한 번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2030년 1월에 안세중이 반기 집계를 냈다.

제8조를 만들기 전이라 그때는 의무가 아니었다. 그가 그냥 했다.

2029년 하반기 대출 집계

1. 요리책 41건 2. 지도·여행 34건 3. 소설 29건 4. 역사 18건 5. 종교 11건 6. 그 밖 27건

나는 그 표를 보고 한참 있었다.

“임 선생님.”

“예.”

“이거 이상하죠.”

“…예.”

“여기서 요리를 못 하는데요.”

우리 열람실에 요리책은 아홉 권이다. 백열네 권 중 아홉 권이다.

아홉 권이 마흔한 번 나갔다.

한 권이 평균 네 번 반이다.

소설은 마흔여섯 권인데 스물아홉 번 나갔다. 한 권에 한 번이 안 된다.

“왜 그럴까요?” 안세중이 물었다.

그날부터 나는 요리책을 빌려 가는 사람을 봤다.

첫 번째는 예순한 살이었다. 형기가 십칠 년째다.

“어르신, 그거 요리책인데요.”

“알아.”

“…”

“그러니까 빌리지.”

“여기서 못 하시잖습니까?”

그가 나를 봤다.

“임 선생, 자네 여기 몇 년 됐나?”

“열여덟 해입니다.”

“그럼 알겠네.”

“…무엇을요?”

“여기 밥이 몇 가지야?”

나는 세어 봤다.

관식은 주 단위로 돈다. 국이 일곱 가지, 반찬이 열두 가지쯤이다. 조합이 바뀌지만 재료는 같다.

“…열몇 가지입니다.”

“열여덟 해 동안 열몇 가지야?”

“…”

“그거 먹으면서 다른 걸 생각 안 하면 못 살아.”

그가 책을 폈다.

거기 사진이 있었다. 나물 무침이었다.

“이건 우리 어머니가 하던 거하고 달라.”

“어떻게 다릅니까?”

“어머니는 참기름을 나중에 넣었어. 여기는 먼저 넣으라고 되어 있고.”

“어느 쪽이 맞습니까?”

“어머니가 맞지.”

그가 책을 덮었다.

“이 책 틀렸어.”

“…그런데 왜 빌리십니까?”

“틀린 걸 알려면 봐야 하잖아.”

두 번째는 서른셋이었다.

그 사람은 요리책을 빌려서 베껴 적었다.

종이 조각에 적는다. 한 달에 이백 장 들어오는 그 종이다.

“뭐 적으십니까?”

“조리법이요.”

“외우시게요?”

“아니요.”

“그럼요?”

“나가서 하려고요.”

“…언제 나가십니까?”

“육 년 뒤에요.”

나는 그 종이를 봤다. 글씨가 빽빽했다. 종이 한 장에 조리법 셋이 들어가 있었다.

“몇 장이나 모으셨습니까?”

“…스물두 장이요.”

“그럼 예순 가지쯤이네요.”

“예.”

“육 년 뒤에 다 하실 겁니까?”

그가 웃었다.

“못 하죠.”

“…”

“그런데 적으면 육 년이 좀 빨리 가요.”

세 번째가 그 사람이다.

마흔둘. 작년 여름에 책을 들었다가 놓은 사람이다.

그 사람은 요리책을 두 번 빌렸다. 두 번 다 같은 책이었다.

“왜 같은 걸 두 번 빌리십니까?”

“한 장 때문에요.”

“…한 장이요?”

그가 책을 폈다. 백서른일곱 쪽이었다.

김치찌개였다.

“이거 우리 어머니 거랑 똑같아요.”

“…”

“돼지고기를 나중에 넣는 거요. 다들 먼저 넣는데 우리 어머니는 나중에 넣었어요.”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나는 안 물었어야 했다.

“…팔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

“그때 저 여기 있었고요.”

방이 조용했다. 정확히는 열람실이었고, 그 시간에 안에 다섯 명이 있었다.

“그래서 이 한 장을 두 번 봤어요.”

“…베껴 적으시지 그러셨습니까?”

“종이에 적으면요.”

그가 책을 덮었다.

“제 글씨가 되잖아요.”

베껴 적으면 자기 글씨가 된다. 인쇄된 글자는 남의 글씨다. 남의 글씨로 남아 있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더 어머니 것 같았다.

“임 선생님.”

“예.”

“이 책 제가 계속 빌려도 돼요?”

“됩니다.”

“다른 사람이 빌리려고 하면요.”

“그럼 기다리셔야 합니다.”

“…”

“그런데 요리책 아홉 권 중에 이건 두 번밖에 안 나갔습니다.”

“…그래요?”

“두 번 다 그쪽이십니다.”

그 사람이 웃었다.

“그럼 제 거네요.”

“아닙니다.”

“…”

“그런데 제일 많이 읽으신 분이십니다.”

지도책은 서른네 번 나갔다.

지도책은 세 권이다. 한 권이 열한 번씩 나간 셈이다.

지도책을 빌리는 사람들은 요리책 사람들과 좀 달랐다.

요리책은 오래 빌린다. 반납 예정일을 넘기는 일이 잦다.

지도책은 빨리 돌아온다. 하루나 이틀 만에 돌아온다.

나는 그 이유를 세 달 동안 몰랐다.

3월에 알았다.

지도책 한 권을 정리하다가 나는 그것을 봤다.

책이 저절로 펴지는 자리가 있었다.

오래 펴 놓은 책은 그 자리 제본이 늘어난다. 인쇄소를 하면 그것을 안다. 손을 놓으면 그 페이지가 나온다.

그 책은 이백스무 쪽이 나왔다.

전라남도 남해안이었다.

나는 다른 지도책을 폈다.

그 책은 백사십팔 쪽이 나왔다. 경상북도 북부였다.

세 번째 책은 서른두 쪽이 나왔다. 서울 서남부였다.

나는 그 세 페이지를 놓고 한참 앉아 있었다.

지도책을 빌려 간 사람들은 지도를 보지 않았다.

자기 동네를 봤다.

“임 선생님, 뭐 보세요?”

안세중이 물었다.

“…페이지가 늘어난 자리요.”

“그게 뭐예요?”

“오래 펴 놓으면 제본이 늘어납니다.”

그가 책을 받아서 손을 놓았다.

이백스무 쪽이 나왔다.

“…여기가 어디예요?”

“남해안입니다.”

“왜 여기만 이래요?”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여기 집이 있는 사람이 봤을 겁니다.”

안세중이 그 페이지를 봤다. 한참 봤다.

“임 선생님.”

“예.”

“저는 어디 볼까요?”

나는 그를 봤다.

그 사람은 여덟 해 전에 스물둘로 들어왔다. 지금 서른이다. 형기가 여섯 해 남았다.

“…댁이 어디십니까?”

“없어요.”

“…”

“어머니 계신 데는 있어요.”

“거기 보십시오.”

그가 지도책을 넘겼다. 넘기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지도책은 목차 보는 법이 따로 있는데 그 사람은 아직 모른다.

나는 안 알려 줬다.

십 분쯤 걸려서 그가 찾았다.

“…여기예요.”

“그럼 그 자리를 펴 두십시오.”

“왜요?”

“오래 펴 두면 제본이 늘어납니다.”

“그럼요?”

“그러면 다음에 펼 때 저절로 나옵니다.”

안세중이 그 페이지를 펴 놓았다.

그리고 손을 놓았다.

책이 안 닫혔다.

그해 여름에 실습생이 왔다.

교정 관련 학과 사 학년이라고 했다. 두 달 있다 간다. 스물셋이었다.

이름이 이한슬이다.

실습생은 교무과에서 서류 일을 한다. 열람실에 온 것은 목록 때문이었다.

우리 목록은 손으로 쓴 것이다. 백서른두 권이 대학 노트 세 권에 들어 있다. 삼 년 동안 세 번 옮겨 적었다. 옮겨 적을 때마다 틀린 데가 생겼다.

“이거 제가 쳐 드릴까요?”

안세중이 나를 봤다. 나는 대답을 안 했다.

“…무엇으로요?” 내가 물었다.

“교무과에 컴퓨터 있어요.”

여기서 컴퓨터는 직원 것이다. 수용자는 못 만진다.

“그건 저희 목록입니다.”

“…그런데요?”

“저희가 못 고치는 데 들어가면 저희 것이 아니게 됩니다.”

이한슬이 좀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치면 편한데요.”

“편합니다.”

“…”

“편한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그날 그냥 갔다.

사흘 뒤에 다시 왔다.

“제가 쳐서 종이로 뽑아 드릴게요. 파일은 안 남기고요.”

“…”

“치고 나서 지울게요.”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이한슬이 노트를 봤다.

“세 권을 손으로 쓰셨잖아요.”

두 주 동안 그 사람은 목록을 쳤다. 백서른두 권이다.

다 치고 나서 종이 여섯 장을 갖고 왔다.

여섯 장을 안세중이 받아서 봤다.

한참 봤다.

“…임 선생님.”

“예.”

“이거 제 글씨가 아니에요.”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목록을 삼 년 동안 쓴 것은 그 사람이다. 손으로 썼다. 삐뚤던 것이 반듯해지는 동안 그 목록이 같이 늘었다.

인쇄된 목록은 누가 썼는지 안 보인다.

“이한슬 씨.”

“예.”

“이건 저희가 못 씁니다.”

그 사람이 서운한 얼굴을 했다.

“…왜요?”

“여기 담당이 이걸 보고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

“그런데 한 가지는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하세요.”

“그 여섯 장을 교무과에 두고 가십시오.”

“…저희가 쓰라고요?”

“예.”

“그럼 저희가 쓰는 목록하고 여기 목록이 두 개가 되는데요.”

“두 개가 맞습니다.”

이한슬이 나를 좀 오래 봤다.

“…왜요?”

“밖에서 보는 목록하고 여기서 쓰는 목록은 다릅니다.”

“…”

“밖에서는 몇 권인지가 중요하고, 여기서는 누가 썼는지가 중요합니다.”

두 달이 끝나는 날에 그 사람이 열람실에 왔다.

“선생님.”

“예.”

“여쭤볼 게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여기 왜 이름이 없어요?”

“…무슨 이름이요?”

“이 방 이름이요. 다들 열람실이라고만 하시던데요.”

나는 그 질문에 그때 대답을 못 했다.

“…규정에 이름 짓는 항목이 없습니다.”

“그럼 지으면 안 돼요?”

“…”

“지으면 누가 뭐라고 해요?”

나는 그 물음을 그 뒤로 한 해 동안 갖고 있었다.

4월에 나는 그 집계를 건의서에 붙였다.

열아홉 번째다. 내용은 한도 상향이 아니라 분류 조정이었다.

건의 내용 도서 기증 요청 시 분야별 비중을 아래와 같이 조정할 것을 건의합니다.

건의 사유 2029년 하반기 대출 집계 결과, 실제 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요리 41건(보유 9권) — 권당 4.6회 지도·여행 34건(보유 3권) — 권당 11.3회 소설 29건(보유 46권) — 권당 0.6회

보유 비중과 이용 비중이 크게 다릅니다.

윤 교도관이 그 초안을 봤다.

“임경식 씨.”

“예.”

“이거 소설을 줄이자는 겁니까?”

“아닙니다.”

“…”

“지도책을 늘리자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만 쓰시죠.”

“소설 숫자를 빼면 왜 늘려야 하는지가 안 보입니다.”

“…”

“권당 열한 번은 그 자체로는 큰 수가 아닙니다. 권당 영 점 육 옆에 있어야 큽니다.”

그가 종이를 돌려줬다.

“그 줄은 두십시오.”

“…예.”

“그런데 마지막 줄을 하나 더 넣으십시오.”

“무슨 줄이요.”

“소설도 계속 받겠다는 줄이요.”

“왜요?”

“안 그러면 소설 보내던 데가 안 보냅니다.”

나는 그 줄을 넣었다.

※ 기존 분야의 기증도 계속 받습니다. 이용이 적은 분야는 배치를 조정하겠습니다.

이 줄을 쓰면서 나는 십오 년 동안 배운 것을 다시 확인했다.

무엇을 늘려 달라고 할 때는, 무엇을 줄이겠다고 말하면 안 된다.

줄이겠다고 하면 줄어드는 쪽이 반대한다.

배치를 조정하겠다고 하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열아홉 번째는 오 주 만에 승인됐다.

그해 여름에 지도책이 아홉 권이 됐다.

조성희가 보낸 상자에 지도책이 여섯 권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도책을 여섯 권 넣었습니다. 폐기 도서 중에 지도책이 제일 빨리 폐기됩니다. 지명이 바뀌면 못 쓰거든요.

그런데 보내면서 생각했습니다. 지명이 바뀌어도 집 자리는 안 바뀌지요.

나는 그 두 줄을 오래 봤다.

그 사람은 우리가 지도책으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내가 편지에 안 썼다.

그런데 알고 보냈다.

2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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