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5,045자)

열여덟 권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기증 절차는 이렇다.

1. 기증 의사 접수 2. 도서 내용 검토 3. 반입 승인 4. 등록

이 중에 2번이 오래 걸린다.

책 한 권을 검토하는 데 평균 넉 달이라고 윤 교도관이 말했다. 나는 그 숫자를 십 년 전에 창구에서 들었다.

십 년이 지나도 넉 달이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검토할 사람이 없어서요.”

“몇 분이십니까?”

“한 분이요.”

“몇 권을 보십니까?”

“일 년에 삼백 권쯤이요.”

삼백 권이면 하루에 한 권이다. 검토라기보다 훑는다.

나는 그것을 알고 나서 방법을 바꿨다.

검토가 오래 걸리는 것은 무엇을 봐야 할지 정해져 있지 않아서다.

기준이 없으면 사람은 매번 처음부터 생각한다. 매번 처음부터 생각하면 지친다. 지치면 미룬다.

이것을 나는 인쇄소에서 알았다.

교정을 볼 때 무엇을 볼지 정해 놓지 않으면 한 장에 삼십 분이 걸린다. 정해 놓으면 오 분이다. 오탈자, 숫자, 날짜, 이름. 넷만 보기로 하면 눈이 그 넷만 찾는다.

도서 검토 기준(안)

다음에 해당하지 않으면 반입한다. 1. 시설 보안에 관한 내용 2. 범죄 수법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내용 3.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내용

※ 위 3항에 해당하지 않는 도서는 검토 없이 반입한다.

세 줄이다.

이 세 줄을 만드는 데 두 달이 걸렸다.

처음에는 아홉 줄이었다. 폭력, 선정성, 도박, 약물, 종교 편향, 정치 편향까지 다 넣었다. 넣고 나서 보니까 그 아홉 줄로는 세상 책의 절반이 걸린다.

그리고 아홉 줄을 다 보려면 결국 한 권에 넉 달이 걸린다.

나는 그것을 셋으로 줄였다.

셋으로 줄이면서 나는 무엇을 버리는지 알고 버렸다.

셋 다 「여기서 사고가 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나머지는 「밖에서 안 좋다고 하는 것」이다.

밖에서 안 좋다고 하는 것을 여기서까지 막으면, 여기 있는 사람은 밖보다 더 좁은 데서 산다.

그것을 서류에는 안 썼다.

썼으면 반려됐을 것이다.

대신 마지막 줄을 이렇게 썼다.

※ 위 3항에 해당하지 않는 도서는 검토 없이 반입한다.

이 줄이 전부다.

앞의 셋은 안 되는 것을 적은 것이고, 이 줄은 되는 것을 적은 것이다.

십일 년 동안 나는 안 되는 것만 적힌 종이를 받았다.

열여섯 번째 건의서로 이것을 냈다.

10월 6일이었다.

사 주 만에 회신이 왔다.

회 신: 승인

이번에는 조건도 없었다.

승인 이유가 적혀 있었다.

※ 검토 업무 경감 효과 인정

나는 그 한 줄을 오래 봤다.

십일 년 동안 나는 이것이 필요하다고 썼다.

책이 필요합니다. 읽을 데가 필요합니다. 여기 사람들도 읽어야 합니다.

열여섯 번째에 처음으로 저쪽이 편해진다고 썼다.

그게 통했다.

나는 그날 밤에 그것을 오래 생각했다.

십일 년이 아까웠다. 처음부터 이렇게 썼으면 됐을 텐데 싶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렇게 쓸 수는 없었다.

저쪽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알아야 그것을 덜어 줄 수 있다. 검토 담당이 한 명이고 일 년에 삼백 권을 본다는 것을 나는 십 년째에 알았다.

아는 데 십 년이 걸린 것이다.

책은 그다음부터 빨리 왔다.

첫 상자는 12월 4일에 왔다.

조성희가 보낸 것이다. 편지를 여섯 번 주고받은 지 사 년 만이었다.

상자는 교무과에서 열었다. 나는 옆에 서 있었다.

네 권이었다.

2026.12 — 4권 (기증: 시립도서관 폐기 도서)

책 상태는 나빴다. 표지가 떨어진 것이 둘, 밑줄이 그어진 것이 하나, 물에 젖었다 마른 것이 하나였다.

젖었다 마른 책은 종이가 울어 있었다. 페이지가 서로 붙었다가 떨어진 자국이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손에 들었다.

인쇄소를 하면 종이를 만지는 버릇이 든다. 두께를 손끝으로 재고, 결을 본다.

폐기 도서는 종이가 삭아 있다. 십 년 넘은 책은 넘길 때 소리가 다르다.

그 소리를 나는 십사 년 만에 다시 들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아니다. 종이가 서로 스치면서 나는 소리인데, 새 종이는 「사」에 가깝고 오래된 종이는 「스」에 가깝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넘겼다.

읽지는 않았다. 넘기기만 했다.

“임경식 씨.”

윤재호가 말했다.

“예.”

“안 읽으십니까?”

“…나중에 읽겠습니다.”

“왜요?”

나는 책을 닫았다.

“먼저 등록해야 합니다.”

상자 안에 편지가 한 장 있었다.

임경식 님께

네 권 보냅니다. 상태가 나빠서 죄송합니다. 저희 서고에 비워 둔 칸이 있다고 말씀드렸었지요. 사 년 동안 거기 있던 것들입니다.

그동안 이 책들을 볼 때마다 갈 데가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이제 정말 가게 되어서 조금 서운합니다.

다음에는 더 보내겠습니다.

조성희 드림

나는 그 편지를 접지 않았다.

그해 4월에 정상우의 일곱 번째 편지가 왔다.

형님 잘 계시죠. 저는 작년에 반장이 됐습니다. 사람 열둘을 봅니다. 아침에 연장 세고 저녁에 또 셉니다. 그건 형님 얘기 듣고 배운 겁니다.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그리고 이번엔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아직 하고 계십니까?

마지막 줄은 처음이었다.

아홉 해 동안 그 사람은 한 가지만 물었다. 몇 번째까지 갔느냐다.

그 물음의 답은 수다. 수는 안 보내도 되는 답이다. 안 보내면 아직인 것이고, 아직인 것은 그 사람도 안다.

그런데 아직 하고 계십니까는 다르다.

그것은 예나 아니오다.

예라고 하면 한 자면 되고, 아니오라고 하면 그 사람은 그다음부터 안 묻는다.

그때 나는 열여섯 번째 건의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열람실은 석 달 전에 문을 열었고 책이 열 권이었다.

한 자를 보내면 됐다.

나는 안 보냈다.

안 보낸 까닭을 그날 밤에 적어 뒀다.

보내면 그 사람이 다음 편지에 무엇을 물을지 나는 모른다. 안 보내면 그 사람은 같은 것을 또 묻는다. 나는 그 사람이 같은 것을 또 묻기를 바란다.

적어 놓고 보니까 그것은 까닭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아홉 해 동안 나에게 일 년에 한 번씩 오는 것이 그것뿐이었다.

열람실은 2027년 1월 12일에 문을 열었다.

첫날 열람 시간은 오후 두 시부터 네 시까지였다.

우리 셋이 먼저 들어갔다. 안세중, 조태호, 그리고 대출 담당인 쉰다섯 살. 나는 담당이 아니다. 나는 규정에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는 이유는 하나다. 담당자 자격 제1항이 잔여 형기 이 년 이상인데, 나는 삼 년 반이 남았다. 자격은 된다.

그런데 내가 셋 중 하나가 되면, 내가 나갈 때 셋 중 하나가 빈다.

그래서 나는 안 들어갔다.

“임 선생님도 하셔야죠.” 안세중이 말했다.

“저는 안 합니다.”

“왜요?”

“제가 하면 삼 년 반 뒤에 자리가 빕니다.”

“그때 다른 사람 뽑으면 되잖아요.”

“그때 뽑으면 인계할 사람이 없습니다.”

“…”

“지금 셋이 시작하면, 제가 나갈 때 셋이 그대로 있습니다.”

첫날 온 사람은 넷이었다.

삼백여든 명 중에 넷이다.

넷 중 하나는 조태호였고 하나는 우리 방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밖에서 온 사람은 둘이다.

둘 중 하나는 십 분 있다가 나갔다. 나머지 하나는 두 시간을 다 있었다.

그 사람은 책을 안 읽었다.

앉아 있기만 했다.

나는 복도에서 그것을 봤다. 열람 시간에는 나도 못 들어간다. 담당이 아니다.

문이 열려 있어서 안이 보였다.

의자 둘이 있다. 십오 년 전에 그 방에서 나왔다가 「방 안 잔류」로 남은 의자다.

그 사람은 그중 하나에 앉아 있었다.

두 시간 동안 창을 봤다.

“왜 안 읽었을까요?” 안세중이 나중에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책이 여섯 권밖에 없어서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요?”

나는 그날 밤에 그 답을 찾았다.

여기서 혼자 앉아 있을 수 있는 데가 없다.

방에는 여덟이 있고 작업장에는 스무 명이 있고 운동장에는 다 있다. 화장실도 문이 반쯤이다.

혼자 두 시간 앉아 있을 수 있는 데는 그 방뿐이었다.

책은 그다음부터 왔다.

2027.03 — 7권 2027.06 — 3권 2027.09 — 6권 2027.12 — 9권

넉 달에 대여섯 권씩이다.

한 해에 스물다섯 권쯤 된다.

2028년 여름에 오십 권 한도를 넘었다.

“한도를 넘었는데요.” 내가 윤 교도관에게 말했다.

“그럼 스물두 권을 빼셔야죠.”

“빼면 어디 둡니까?”

“원래대로 창고에 두시면 되죠.”

“…창고가 열람실인데요.”

윤재호가 잠깐 멈췄다.

“…그러네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열일곱 번째 건의서를 준비했다.

한도 상향이다.

건의번호 2028-017 건의 내용: 도서 한도 50권 → 200권 건의 사유: 현재 72권. 초과분 22권은 창고 보관 중. ※ 창고 보관은 열람이 불가하므로, 사실상 폐기와 같음.

윤 교도관이 그 초안을 봤다.

“마지막 줄 빼세요.”

“…왜요?”

“폐기라는 말이 들어가면 감정적이라고 반려됩니다.”

나는 그 줄을 지웠다. 대신 이렇게 썼다.

※ 초과분 22권은 열람 불가 상태로 보관 중.

윤 교도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통합니다.”

“차이가 뭡니까?”

“앞의 건 저쪽 잘못이고, 뒤의 건 그냥 상태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수첩에 적었다.

십삼 년 동안 배운 것 중에 제일 쓸모 있는 것이었다.

열일곱 번째는 육 주 만에 승인됐다.

한도가 이백 권이 됐다.

그해 십이월에 책이 백열네 권이 됐다.

서가 다섯 칸에 백열다섯 권이 들어간다.

한 권 자리가 남았다.

나는 그 한 자리를 비워 뒀다.

비워 둔 이유는 그때 없었다. 지금은 있다.

빈 칸이 있어야 뭐가 들어온다.

한 자리가 남은 서가를 나는 그해 겨울에 자주 봤다.

열람 시간에는 못 들어가니까 청소 시간에 봤다. 청소는 조태호 담당인데, 나는 그 사람을 따라 들어가서 옆에 서 있었다.

“형님, 뭐 보세요?”

“…빈 자리요.”

“한 권짜리요?”

“예.”

“그거 채우면 되잖아요.”

“채울 겁니다.”

“그럼 왜 보고 계세요?”

십일 년 동안 나는 빈 서가를 닦았다. 일흔여덟 번을 셌던 해도 있었다.

이제 백열네 권이 있고 빈 자리가 하나다.

그 하나를 보는 것이 예전에 다섯 칸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

2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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