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5,013자)
조건부 승인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담당자 3인의 자격 요건 불명확.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화가 났다.
자격이라는 말 때문이다.
여기 있는 사람에게 자격을 따지는 것은 이상하다. 우리는 자격이 없어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어서 여기 있다. 그 둘은 다르다.
이틀 뒤에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자격 요건을 적으라는 것은 아무나 시키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누구를 시킬지 미리 정해 놓으라는 뜻이다.
미리 정해 놓으면 나중에 싸울 일이 없다.
여기서 제일 자주 싸우는 것이 그것이다. 소지 자리, 작업장 배정, 텔레비전 채널. 누가 하느냐를 그때그때 정하면 매번 싸운다.
그래서 나는 자격을 만들었다.
제6조(자격) 담당자는 다음을 충족한다. 1. 잔여 형기 2년 이상 2. 문자 해득 3. 본인 지원
세 줄인데 각각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잔여 형기 이 년.
일 년으로 하면 인계할 시간이 모자란다. 삼 년으로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줄어든다. 이 년이면 일 년 하고 나머지 일 년에 다음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두 번째. 문자 해득.
이 줄을 쓰면서 나는 오래 멈췄다.
안세중은 사 년 전에 이 줄에 걸렸다. 지금은 안 걸린다. 그런데 지금 이 안에는 사 년 전의 안세중 같은 사람이 여럿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줄 밑에 한 줄을 더 붙였다.
※ 문자 해득이 어려운 사람은 이용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담당자 요건에만 적용한다.
이 줄이 나중에 열람실에서 제일 중요한 줄이 된다.
세 번째. 본인 지원.
세 번째 항목에서 나는 제일 오래 멈췄다.
본인 지원.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 한다.
여기서 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 것이 십일 년 동안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열한 명을 만나고 한 사람도 못 골랐다. 결국 그 사람이 먼저 왔다.
먼저 오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나는 아직 모른다. 지금도 모른다.
다만 적어 두면 언젠가 온다는 것은 안다.
열다섯 번째 건의서를 내기 전에 나는 그 규정안을 안세중에게 보여 줬다.
건의자 칸에 그의 이름이 들어가니까 보여 주는 것이 맞다.
그가 규정안을 읽었다. 다 읽는 데 십 분 걸렸다.
“제6조 3항이요.”
“예.”
“본인 지원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예.”
“저 지원한 적 없는데요.”
나는 그 자리에서 대답을 못 했다.
그가 웃었다.
“지금 할게요.”
“…어떻게 하십니까?”
“지원한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됩니다.”
“지원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종이에 적었다.
※ 건의자 본인 지원 의사 확인함. 2026.7.14.
날짜를 적으면서 나는 손이 좀 떨렸다.
여기서 날짜가 적힌다는 것은 그 일이 있었다. 십일 년 동안 나는 반려 통지에 적힌 날짜만 봤다. 내가 적은 날짜가 서류에 들어간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열다섯 번째는 7월 15일에 냈다.
여덟 주 뒤에 회신이 왔다.
9월 9일 아침이었다. 배식 전이다.
근무자가 편지를 나눠 주는 시간에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배식차를 밀고 있었다.
윤재호가 복도에서 나를 불렀다.
“임경식 씨.”
나는 배식차를 세웠다.
“예.”
그가 종이를 들고 있었다. 접히지 않은 채로 들고 있었다.
여덟 해 동안 나는 그 사람이 회신을 손에 들고 서 있는 것을 여러 번 봤다. 늘 접혀 있었다.
“…선생님.”
“받으십시오.”
나는 배식차 손잡이를 놓았다. 손을 앞치마에 닦았다. 닦을 것이 없는데 닦았다.
종이를 받았다.
건의번호 2026-015 회 신: 조건부 승인 조 건: 시범 운영 6개월. 도서 50권 이내. 열람 시간 1일 2시간. 담당자 3인 지정 후 시행. 근무 직원 입회.
나는 그 종이를 읽었다.
읽고 나서 다시 읽었다.
열 번쯤 읽었다.
승인이라는 두 글자를 나는 육 년 전에 한 번 받았다. 청소 승인이었다.
이번 것은 조건부 승인이다. 조건부라는 말이 앞에 붙어 있다.
그런데 그 두 글자는 그 안에 있다.
“임경식 씨.”
“예.”
“복도에서 우시면 안 됩니다.”
나는 얼굴을 만졌다.
“…안 웁니다.”
“예.”
“…”
“배식 마저 하십시오.”
나는 배식차를 밀었다.
여든두 걸음이다. 열한 해 동안 하루 세 번씩 걸었으니까 만 이천 번쯤 걸었다.
그날은 그 여든두 걸음이 제일 길었다.
작업장에서 안세중을 찾았다.
그는 사포질을 하고 있었다. 사 년째 사포를 하는데, 이제는 사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무리 전체를 맡는다.
“됐습니다.”
그가 하던 일을 멈췄다.
“…뭐가요?”
“조건부 승인이요.”
그가 종이를 받았다. 읽었다. 두 번 읽었다.
“도서 오십 권 이내요.”
“예.”
“지금 몇 권 있습니까?”
“여섯 권이요.”
“…여섯 권이요?”
“예.”
“한도가 오십인데 여섯 권이요.”
“예.”
그가 웃었다. 웃다가 멈췄다.
“그럼 마흔네 권 모자라네요.”
“예.”
“제 목록은 예순한 줄인데요.”
“그것도 압니다.”
그가 종이를 접었다.
이번에는 세 번 접었다.
나는 그 접는 방식을 봤다.
세 번 접었다.
편지다.
담당자 셋을 지정하는 데 이 주가 걸렸다.
승인 조건에 「담당자 3인 지정 후 시행」이 있었다. 셋이 없으면 문을 못 연다.
한 사람은 안세중이다. 목록 담당이다.
두 번째는 조태호가 하겠다고 했다. 청소·정리다.
“조 씨, 형기가 얼마 남으셨습니까?”
“사 년이요.”
“자격 요건에 맞습니다.”
“근데 저 책 안 읽어요.”
“읽으실 필요 없습니다.”
“그럼 뭐 해요?”
“치우시면 됩니다.”
“그거 지금도 하잖아요.”
“이제는 적으면서 하시는 겁니다.”
조태호가 인상을 썼다.
“…적는 거 싫은데.”
“한 줄입니다.”
“무슨 줄이요.”
“몇 시에 청소했는지요.”
“그게 왜 필요해요?”
“나중에 누가 물으면 그 줄이 대답합니다.”
세 번째가 안 채워졌다.
대출·반납 담당이다. 책을 내주고 받는 자리다. 자격 요건에는 다 맞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아무도 안 하겠다고 했다.
이유를 나는 나중에 알았다.
“임 형님.”
작업장에서 누가 말했다.
“그거 책 빌려주는 거잖아요.”
“예.”
“안 돌려주면 어떻게 돼요?”
“…”
“그거 제가 책임져요?”
여기서 물건이 없어지면 누군가 책임을 진다. 그 누군가는 대개 제일 가까이 있던 사람이다.
책 한 권이 없어지면 대출 담당이 책임진다.
그 자리는 아무도 안 한다.
나는 규정에 한 줄을 더 넣었다.
제5조(기록) ② 도서 분실 시 담당자는 분실 사실을 기록하고 보고한다. 변상 책임은 지지 않는다.
이 줄을 넣고 나서 이틀 만에 사람이 왔다.
쉰다섯 살이었다. 형기가 육 년 남았다.
“저 하겠습니다.”
“왜 하시겠습니까?”
“밑에 줄 때문에요.”
“…”
“변상 책임 안 진다고 되어 있잖아요.”
“예.”
“그럼 하겠습니다.”
나는 그 사람 이름을 세 번째 칸에 적었다.
적고 나서 나는 한 가지를 물었다.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예.”
“변상 책임이 왜 그렇게 걸리셨습니까?”
그 사람이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팔 년 전에요.”
“예.”
“작업장에서 기계 하나가 고장 났습니다.”
“…”
“제가 마지막으로 만졌어요.”
“…고장 내신 겁니까?”
“모릅니다.”
그가 자기 손을 봤다.
“그게 제일 나쁩니다. 제가 했는지 안 했는지를 제가 모릅니다.”
“…”
“변상액이 백사십만 원이었습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영치금에서 나갔습니다.”
“…”
“그때 영치금이 사십만 원이었습니다.”
나는 그 수를 들었다.
“나머지는요?”
“집에서 넣었습니다.”
그 사람이 관물대에 등을 붙였다.
“…그해에 어머니가 백만 원을 넣으셨어요. 넣으시고 두 달 있다가 오셨는데, 그다음부터 안 오십니다.”
“…”
“안 오시는 게 그것 때문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모르는 게 또 하나 늘었습니다.”
멀리서 작업장 소리가 났다.
“임 선생님.”
“예.”
“그 줄 누가 넣으셨습니까?”
“제가 넣었습니다.”
“…왜요?”
“사람이 안 와서요.”
“…”
“왜 안 오는지를 두 달 생각했습니다. 하기 싫어서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죠.”
“…예.”
“무서워서예요.”
나는 그날 밤에 규정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여섯 조 가운데 두 조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로 끝난다.
쓰기 전에 나는 규정이 시키는 글인 줄 알았다.
써 보니까 절반은 안 시키는 글이었다.
시키는 절반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안 시키는 절반은 사람을 오게 한다.
오게 하는 쪽이 어렵다.
안 시키는 절반을 쓰는 데 나는 십일 년을 썼다.
시키는 절반은 하루면 쓴다.
적으면서 나는 알았다.
사람들이 안 한 이유는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무서워서였다.
무서운 것을 없애 주면 하겠다는 사람이 나온다.
그 줄 하나 쓰는 데 십일 년이 걸렸다.
그날 저녁 방에서는 그 이야기가 오래 갔다.
9월이라 야구가 한창이었다. 그해에는 우리 방 사람 중 셋이 응원하는 팀이 이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도 야구를 안 봤다.
“그래서 몇 권 있어야 되는데?” 조태호가 물었다.
“한도가 오십입니다.”
“지금 여섯이고?”
“예.”
“마흔넷이네.”
“예.”
방에서 여덟 명이 그 숫자를 놓고 한 시간쯤 이야기했다.
마흔네 권을 어디서 구하나. 도서관에 또 편지를 쓰면 되나. 몇 년 걸리나. 기증 절차가 넉 달이면 마흔네 권이면 몇 달인가.
누가 계산했다.
“백칠십육 개월인데요.”
“그게 몇 년이야?”
“…십사 년이요.”
“임 형님 사 년 뒤에 나가시잖아요.”
“예.”
“그럼 못 보시겠네요.”
나는 그 말에 대답을 안 했다.
그날 밤 소등 뒤에 박두식이 문가에서 말했다.
“임씨.”
“예.”
“오늘 좋았지.”
“…예.”
“근데 표정은 안 좋더라.”
나는 어두운 천장을 봤다.
“…책이 여섯 권입니다.”
“그래.”
“한도가 오십인데 여섯 권입니다.”
“그래.”
“한도가 없는 것보다 더 아픕니다.”
박두식이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임씨.”
“예.”
“그래도 칸이 생겼잖아.”
“…”
“빈 칸이 있어야 뭐가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