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5,017자)

규정을 쓴다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열세 번째 건의서는 삼 주 만에 회신이 왔다.

회신이 삼 주 만에 온 것은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여덟 년 전 여덟 번째였다.

신청서 열두 번은 평균 아홉 주였다. 제일 오래 걸린 것이 스물두 주다.

건의서가 빠른 이유를 윤 교도관이 알려 줬다.

“신청은 결재선이 넷이고 건의는 둘이에요.”

“…그것뿐입니까?”

“그것뿐입니다.”

“여덟 해 동안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가 서류를 넘겼다. “결재선 둘이 줄면 두 주가 줄어듭니다.”

회신은 이랬다.

건의번호 2026-013 회 신: 검토 사 유: 관리 인력 확보 방안 불명확

반려가 아니라 검토다.

십일 년 만에 처음으로 사유가 붙은 검토였다.

앞의 네 번은 「검토 중」이었고 사유가 없었다. 사유가 없는 것은 안 읽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사유가 붙었다는 것은 읽었다.

“검토가 무슨 뜻입니까?” 내가 윤 교도관에게 물었다.

“안 된다는 뜻이죠.”

“…반려랑 같습니까?”

“다릅니다.”

윤 교도관이 서류를 넘겼다.

“반려는 끝이고 검토는 계속입니다.”

“그럼 뭘 더 내야 합니까?”

“관리 인력 확보 방안이요.”

나는 그것을 두 달 동안 생각했다.

관리 인력이란 사람이다.

사람은 여기서 안 정해진다. 사람이 바뀌니까.

내가 사 년 뒤에 나가고, 안세중도 언젠가 나간다. 형기가 십사 년이니까 나보다 오래 있지만 영원히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으로는 안 된다.

그러면 사람이 바뀌어도 남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인쇄소를 이십 년 했다.

인쇄소에는 사람이 자주 바뀐다. 급여가 적고 일이 힘들다. 삼 년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런데 인쇄소는 안 멈췄다.

바뀌어도 돌아가는 이유는 하나다.

순서가 문서로 있으니까.

우리 인쇄소 벽에는 종이가 여러 장 붙어 있었다. 기계 켜는 순서, 잉크 배합표, 마감 확인 목록. 내가 붙인 것도 있고 앞에 있던 사람이 붙인 것도 있었다.

새로 온 사람은 그것을 보고 일했다.

나는 그것을 이십 년 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것이 규정이라는 것을 나는 쉰한 살에 알았다.

3월부터 5월까지 나는 그것을 만들었다.

창고 도서 열람실 운영 규정(안)

제1조(목적) 이 규정은 유휴 창고를 도서 열람실로 운영하기 위한 절차를 정한다.

제2조(관리) 관리는 다음 세 사람이 나누어 맡는다. 1. 대출·반납 담당 1인 2. 청소·정리 담당 1인 3. 목록 담당 1인

제3조(인계) 담당자가 출소하거나 이감될 경우, 출소 30일 전까지 후임을 지정하고 인계한다.

제4조(인계 문서) 인계 시 다음을 넘긴다. 1. 도서 목록 2. 대출 대장 3. 이 규정

제2조를 셋으로 나눈 이유가 있다.

한 사람이 다 하면 그 사람이 없어지는 날 전부 없어진다. 셋이면 하나가 없어져도 둘이 남는다. 둘이 남으면 셋째를 뽑을 시간이 있다.

이것을 나는 열한 명을 만나면서 배웠다.

한 사람을 고르려고 두 달을 썼다. 그 두 달 동안 도서관은 하나도 안 움직였다.

제3조를 쓰는 데 삼 주가 걸렸다.

처음에는 「후임을 지정한다」였다. 그런데 지정만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지정하고 안 알려 주면 그 사람은 자기가 후임인 줄도 모른다.

그래서 「인계한다」를 붙였다.

인계는 물건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넘긴다.

제4조 3항을 쓰면서 나는 손이 좀 떨렸다.

3. 이 규정

이 규정 자체를 넘긴다.

그러면 규정이 사람보다 오래 산다.

제3조를 쓰면서 나는 한 사람을 생각했다.

정상우는 2018년 9월 12일에 나갔다.

나가는 날 아침에 관물대를 비웠고, 라면 넷과 커피 스물두 개를 남겼고, 주소를 적은 종이를 하나 갖고 나갔다.

인계는 없었다.

여기서 나가는 사람은 인계를 안 한다. 인계할 것이 없다.

그 사람이 나에게 남긴 것은 물건 말고 하나 더 있다.

일 년에 한 번 묻는 일이다.

그것은 인계가 아니다. 그 사람이 혼자 계속하는 일이다.

혼자 하는 일은 그 사람이 그만두면 끝난다.

여덟 해 동안 안 그만뒀다.

제3조(인계) 담당자가 출소하거나 이감될 경우, 출소 30일 전까지 후임을 지정하고 인계한다.

이 줄이 있으면 사람이 바뀌어도 일이 안 끊긴다.

그런데 이 줄은 안에 있는 사람 이야기다.

나간 사람이 계속하는 것에 대한 줄은 없다.

그런 줄은 못 만든다.

나간 사람에게는 규정이 안 걸린다. 걸릴 자리가 없다.

그러니까 정상우가 여덟 해 동안 한 것은 규정으로는 못 만드는 일이다.

규정으로 못 만드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알고 나서 그 줄을 안 넣었다.

넣을 자리가 없어서 안 넣은 것이 아니다.

넣으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의무가 되면 안 하면 위반이 된다.

여덟 해 동안 안 그만둔 일을 위반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규정은 사람보다 오래 산다.

그런데 규정보다 오래 가는 것이 하나 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계속하는 일이다.

그런 일은 규정에 안 들어간다.

안 들어가니까 아무도 안 세고, 아무도 안 세니까 그 사람만 센다.

세는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그 사람이 열두 해 전에 말했다.

그때 나는 그 말을 농담으로 들었다.

농담으로 들은 말이 열두 해를 갔다.

인쇄소를 할 때 나는 규정집을 여러 번 찍었다.

회사 규정집, 조합 규정집, 아파트 관리 규정집. 두꺼운 것은 삼백 쪽이 넘었다. 그런 것을 찍으면서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했다.

누가 이걸 다 읽나.

찍기만 했지 써 본 적은 없다. 남이 쓴 것을 활자로 옮기는 일이었다.

쉰한 살에 처음으로 내가 썼다.

써 보니까 알겠다. 규정은 읽으라고 쓰는 것이 아니다.

없어졌을 때 찾으라고 쓴다.

5월 중순에 나는 그것을 안세중에게 보여 줬다.

“읽어 보십시오.”

그가 읽었다. 네 조에 열 줄인데 십오 분이 걸렸다.

“임 선생님.”

“예.”

“제2조요.”

“예.”

“세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예.”

“지금 한 사람도 없는데요.”

“그래서 규정입니다.”

“…없는데 왜 씁니까?”

“있으면 안 써도 됩니다.”

그가 그 말을 한참 생각했다.

“그럼 이건 없는 걸 있다고 쓰는 거예요?”

“없는 걸 있게 하려고 쓰는 겁니다.”

“…그거 다릅니까?”

나는 종이를 짚었다.

“여기 제3조 보십시오.”

“예.”

“출소 삼십 일 전에 인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

“지금 인계할 사람이 없습니다.”

“…”

“그런데 이 줄이 있으면, 사 년 뒤에 제가 나갈 때 누군가는 저한테 이걸 들이밀 겁니다.”

안세중이 고개를 들었다.

“누가요?”

“규정을 아는 사람이요.”

“그게 누군데요.”

나는 그를 봤다.

그가 잠깐 있다가 웃었다.

“…아, 저요.”

규정을 쓰는 동안 나는 한 가지를 더 알았다.

규정을 쓰려면 그 일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

대출·반납 담당이 무엇을 하는지 나는 몰랐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여기에는 대출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만들어 봤다.

책이 여섯 권이다. 성경 여섯 권. 나는 그것으로 대출을 해 봤다.

빌려 갈 사람이 필요했다.

“조 씨.”

“예.”

“책 한 권 빌려 가시겠습니까?”

조태호가 인상을 썼다.

“…성경이요?”

“예.”

“저 안 믿는데요.”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왜 빌려요?”

“빌려 가시고 돌려주시면 됩니다.”

“…그게 뭐예요?”

“연습입니다.”

조태호는 그 주에 성경 한 권을 빌려 갔다. 삼 일 뒤에 돌려줬다.

나는 그 삼 일 동안 대장을 썼다.

대출 대장(시험)

번호 / 도서 / 대출일 / 반납 예정일 / 반납일 / 대출자 001 / 성경 / 5.6 / 5.13 / 5.9 / 조태호

한 줄이다.

한 줄을 쓰면서 나는 세 가지를 알았다.

첫째, 반납 예정일을 정해야 한다. 안 정하면 언제 돌려받는지 모른다.

둘째, 대출자 이름을 적으면 그것은 기록이 된다. 여기서 이름이 적히는 것을 사람들은 싫어한다.

셋째, 책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가 문제였다.

“조 씨, 이름 적히는 거 괜찮으십니까?”

“…어디에요?”

“대출 대장에요.”

조태호가 잠깐 있다가 물었다.

“그거 누가 봐요?”

“담당하고 저요.”

“그럼 됩니다.”

“왜요?”

“그 정도면 괜찮아요.”

나는 그날 규정에 한 줄을 더 넣었다.

제5조(기록) 대출 대장은 열람실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 열람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줄은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줄이 없으면 아무도 안 빌린다.

열네 번째 건의서에 이 규정안을 붙였다.

6월 2일이었다.

붙이면서 나는 첨부 칸을 다시 봤다.

십일 년 전 첫 신청서의 첨부 칸에는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번에는 이렇게 적었다.

6. 첨부 1) 창고 도서 열람실 운영 규정(안) 1부

한 줄이다.

앞의 것들처럼 다섯 개씩 붙이지 않았다. 소화기 위치도도, 청소 당번표도, 실측도도 안 붙였다.

이 규정 안에 그것이 다 들어 있다.

여섯 주 만에 회신이 왔다.

건의번호 2026-014 회 신: 검토 사 유: 담당자 3인의 자격 요건 불명확

또 검토다.

나는 그 종이를 들고 방으로 갔다.

관물대를 열고 안쪽을 봤다. 철판에 붙은 종이가 여섯 장이 됐다.

검토 / 검토 중 / 검토 중 / 검토 중 / 검토 / 검토

여섯 장이다.

접힌 일곱 장은 그 밑에 있다.

열세 장.

“임씨.”

박두식이 문가에서 물었다.

“왔어?”

“왔습니다.”

“뭐래?”

“또 검토랍니다.”

“몇 번째야?”

“열네 번째입니다.”

박두식이 벽에 등을 붙였다.

“임씨.”

“예.”

“전에는 반려였잖아.”

“예.”

“지금은 검토지.”

“예.”

“그럼 늘었네.”

나는 관물대 문을 닫았다.

“…그렇습니다.”

“뭐가 늘었는지 알아?”

“…”

“저쪽이 할 일이 늘었어.”

나는 그날 밤에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십일 년 동안 내가 늘린 것은 종이 열세 장이 아니었다.

저쪽이 나에게 답해야 할 횟수였다.

2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