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1,942자)
열세 번째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건의서 양식은 신청서와 다르다.
나는 인쇄소를 이십 년 했다.
양식을 만드는 일도 했다. 회사 서식, 관공서 서식, 학교 서식.
양식을 이십 년 만들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칸이 적은 양식일수록 통과가 쉽다.
칸이 많으면 그중 하나가 걸린다. 걸리면 반려다.
건의서는 칸이 셋이다.
신청서는 A4 한 장이고 항목이 여섯이다. 건의서는 반 장이고 항목이 셋이다.
1. 건의 내용 2. 건의 사유 3. 건의자
세 번째 칸이 문제였다.
윤 교도관이 말했다. 출소자 명의 안건은 종결 처리됩니다.
나는 사 년 뒤에 나간다. 그러니까 내 이름으로 내면 사 년 뒤에 종결된다.
다른 사람 이름이 필요하다.
조건이 셋이다.
하나. 사 년 뒤에도 여기 있어야 한다. 둘.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셋. 이 일을 맡고 싶어 해야 한다.
세 번째가 제일 어렵다.
여기서 십일 년을 하면 사람이 보인다. 삼백여든 명 중에 셋째 조건에 맞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기서 무언가를 오래 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오래 있을 사람일수록 그렇다. 오래 있을 것을 아는 사람은 시작을 안 한다.
나는 두 달 동안 열한 명을 봤다.
첫 번째는 작업장에서 만난 서른두 살이었다. 형기가 팔 년 남았다. 글씨가 좋았다.
“도서관 만드는 거 도와줄래요?”
“도서관이요?”
“창고에요.”
그가 웃었다.
“여기 책 있잖아요.”
있다. 서른두 권이다. 그중 스무 권은 법전이고 여섯 권은 종교 서적이다.
“그거 말고요.”
“그거 말고 뭐가 있는데요.”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물러났다. 이 사람은 책을 안 읽는다.
다섯 번째는 마흔 살이었다. 형기가 십이 년 남았다. 책을 읽는다.
“신청서 열두 번 반려됐다면서요.”
“예.”
“열세 번째도 반려될 텐데요.”
“그럴 겁니다.”
“그럼 왜 하세요?”
나는 그 질문에 답을 준비해 뒀다. 십일 년 동안 준비했다.
“열두 번 하면서 반려 사유가 다섯 개에서 하나로 줄었습니다.”
“…네?”
“화재 위험, 위생, 공간 용도, 예산, 관리 인력. 다섯 개였습니다.”
나는 손가락을 폈다.
“화재는 소화기 위치도로 없앴고, 위생은 청소 당번표로 없앴고, 용도는 십 년 비어 있는 창고라는 걸로 없앴고, 예산은 기증받는 걸로 없앴습니다.”
“그럼 하나 남았네요.”
“관리 인력입니다.”
그가 나를 봤다.
“…그게 저예요?”
“그렇게 됐으면 합니다.”
그 사람은 사흘 뒤에 거절했다.
이유는 말 안 했다. 나는 안 물었다.
여덟 번째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형기가 십사 년 남았다. 여기 온 지 넉 달이다.
작업장에서 그가 종이에 뭘 적고 있었다.
“뭐 쓰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가 종이를 접었다.
나는 그 접는 방식을 봤다. 두 번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일주일 뒤에 나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글 쓰세요?”
“…아닙니다.”
“매일 쓰시던데요.”
그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저는 인쇄소를 했습니다.” 내가 말했다. “종이 접는 걸 보면 뭘 쓰는지 대충 압니다.”
“…뭘 쓰는데요.”
“편지는 세 번 접고, 일기는 두 번 접습니다.”
그가 나를 봤다.
“그거 어디서 배우셨어요?”
“이십 년 봤습니다.”
그가 종이를 꺼냈다. 두 번 접힌 종이다.
“이거 뭔지 아세요?”
“일기죠.”
“아닙니다.”
그가 폈다.
목록이었다.
읽고 싶은 책
1. 이름 모름. 표지가 파란색. 2. 아버지가 갖고 있던 것. 두꺼움. 3.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못 읽음.
스물세 줄이었다.
제목을 아는 것이 넷뿐이었다.
“…이거 몇 년 쓰셨습니까?”
“넉 달이요.”
나는 그 종이를 오래 봤다.
“제 이름을 빌려 드릴까요?” 그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건의서요. 이름 필요하시다면서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가 목록을 접었다. 두 번 접었다.
“여기 소문 빨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