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55자)

창고

무기수가 교도소에 도서관을 세우기까지 십일 년 · 정이한

2015년 3월에 나는 소지가 됐다.

소지는 사동의 청소와 배식을 맡는 수용자다. 복도를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사동에 소지 하나뿐이라, 그 자리가 나면 방마다 누가 갈지를 두고 한동안 말이 많다. 내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글씨가 반듯했고, 싸운 기록이 없었고, 배식 국자를 떨지 않을 나이였다.

앞의 소지는 한영수였다. 출소가 열흘 남은 사람이었고, 그 열흘 동안 나를 데리고 다니며 일을 넘겼다.

“국자는 바닥까지 넣지 마.”

첫날 아침 배식차 앞에서 그가 말했다.

“왜요?”

“바닥까지 넣으면 건더기가 다 딸려 올라와. 앞 방에서 건더기가 다 나가면 끝 방은 국물만 먹어. 끝 방이 국물만 먹으면 그날 저녁에 나를 찾아와.”

“그럼 어떻게 뜹니까?”

“중간에서 한 번 휘젓고, 반만 넣어.”

그가 국자를 들고 시늉을 했다. 손목만 돌리고 팔꿈치는 안 움직였다. 사 년을 그렇게 뜬 손이었다.

“이게 사 년 걸려서 배운 거야. 너는 열흘에 배워.”

나는 열흘 동안 국자를 반만 넣는 법을 배웠고, 온수통이 몇 시에 제일 뜨거운지 배웠다. 아침 배식이 끝난 일곱 시 사십 분이다. 그때 라면 봉지를 온수통 꼭지 밑에 대고 있으면 삼 분은 못 채워도 이 분 반은 채운다. 여기서는 그 삼십 초 차이로 라면의 서열이 갈린다.

그리고 나는 복도를 셌다.

세려고 센 것이 아니다. 배식차를 밀면서 걸으니까 걸음이 저절로 세어졌다. 인쇄소를 스무 해 하면 종이를 세는 버릇이 생기고, 그 버릇은 종이가 없는 데서도 무언가를 찾아 센다.

예순여덟 걸음째에 세면장이 있었다. 일흔네 걸음째에 계단이 있었다.

여든두 걸음째에 문이 있었다.

복도 끝에 있는 철문이다. 회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들떠 있었고, 손잡이 밑에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자물쇠 위에는 먼지가 앉아 있었는데, 손가락으로 쓸면 자국이 날 만큼 두꺼웠다.

“저 문은 뭡니까?”

내가 물었다. 한영수가 고개도 안 돌렸다.

“몰라.”

“사 년 계셨다면서요.”

“사 년 동안 한 번도 안 열렸어.”

그는 배식차를 돌렸다. 끝 방에 밥을 넣고 나면 배식차는 그 문 앞에서 돌아선다. 바퀴 하나가 늘 삐걱거려서, 돌아설 때마다 문 앞에서 쇠 긁히는 소리가 났다.

“신경 쓰지 마. 안 열리는 문은 벽이야.”

나흘째에 걸레가 떨어졌다.

소지가 쓰는 걸레는 한 달에 넷이 나온다. 그달에는 셋이 나왔고, 셋째 것은 나흘 만에 찢어졌다. 다음 보급은 열하루 뒤였다. 걸레가 없으면 복도를 못 닦고, 복도를 못 닦으면 점검에서 사동 전체가 걸린다.

한영수가 근무자에게 말했다. 안경을 쓴 젊은 근무자였다. 그 사람은 말이 적었고, 듣는 동안 상대 얼굴이 아니라 손을 봤다.

“예전에 쓰던 대걸레가 저 안에 있을 겁니다.”

한영수가 복도 끝을 가리켰다.

“어떻게 압니까?”

“제 앞 소지가 그랬습니다. 거기 넣었다고요.”

“언제요?”

“…한 칠 년 됐을 겁니다.”

근무자가 허리춤의 열쇠 꾸러미를 뒤졌다. 열쇠가 스무 개쯤 달려 있었고, 하나하나에 종이테이프가 감겨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가 한참 만에 하나를 골랐다. 테이프 글씨가 바래서 「창」 자만 남아 있었다.

열쇠 꾸러미가 흔들릴 때마다 쇳소리가 복도 끝까지 울렸고, 끝 방 철창 너머로 얼굴 몇 개가 내다봤다. 자물쇠는 두 번 만에 열렸다. 문은 안 열렸다. 경첩이 굳어 있었다. 근무자가 어깨로 밀자 문이 한 뼘쯤 밀려나다가, 바닥을 긁으면서 마저 열렸다.

먼지가 먼저 나왔다.

안은 어두웠다. 근무자가 문 옆 스위치를 눌렀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두 번 더 눌렀다. 딸깍 소리만 났다.

빛은 위에서 왔다. 천장 가까이에 창이 하나 있었다. 사람 머리 두 개쯤 되는 크기였고 바깥에 철망이 쳐져 있어서, 그 철망을 지나온 빛이 바닥에 비스듬한 사각형을 하나 그리고 있었다.

바닥은 회색이었다. 회색이 바닥의 색이 아니라 먼지의 색이라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 알았다.

그 먼지 위에 발자국이 없었다.

하나도 없었다. 문에서 안쪽까지 먼지가 고르게 덮여 있었고, 거기 처음 찍힌 것이 한영수의 운동화였다. 그다음이 내 것이었다.

안쪽에는 물건이 쌓여 있었다. 다리가 하나 없는 의자가 거꾸로 엎어져 있었고, 그 위에 다른 의자가 또 엎어져 있었다. 그 뒤로 종이 상자가 사람 키만큼 쌓여 있었다. 상자 옆구리마다 누런 포장지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냄새가 났다.

먼지 냄새 밑에 다른 냄새가 깔려 있었다. 눅눅하고 시큼한데 끝이 조금 달았다. 나는 그 냄새를 안다. 갱지 냄새다.

갱지는 누런 종이다. 펄프를 덜 바래서 싸고, 오래 두면 산이 올라와 시큼해진다. 학교 시험지가 전부 그 종이이던 때가 있었다. 우리 인쇄소의 마지막 갱지 주문은 2001년 봄 어느 중학교의 기말고사였다. 그해 여름부터 학교들이 흰 종이로 바꿨고, 갱지는 지업사 창고에서 반값에도 안 나갔다.

종이 냄새를 십사 년 만에 맡았다.

나는 상자 하나에 다가가 포장지를 봤다. 인쇄소 납품 꼬리표였다. 업체 이름은 번져서 안 보였고 날짜만 남아 있었다.

2005. 6. 납품

상자 틈으로 묶음 하나가 보였다. 끈으로 열십자를 묶은 백 장짜리였다. 맨 위 장에 「접견 신청서」라고 찍혀 있었다. 지금 쓰는 것과 칸이 달랐다. 옛날 양식이다.

나는 버릇대로 그 종이를 읽지 않고 봤다. 글자 크기가 칸마다 달랐고, 「접견인과의 관계」 칸이 다른 칸의 절반밖에 안 됐다. 그 칸에는 「배우자」나 「모」쯤은 들어가도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은 안 들어간다. 이 양식을 짠 사람은 그런 관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거나, 생각하고 일부러 좁혔다. 인쇄소에서 나는 그런 양식을 수백 가지 찍었고, 칸이 좁으면 사람들이 칸 밖에 쓴다는 것도 알았다. 칸 밖에 쓴 글씨는 대개 안 읽힌다.

“찾았다.”

구석에서 한영수가 말했다. 대걸레 두 자루를 들고 있었다.

걸레 부분이 말라서 굳어 있었다. 실 가닥이 한 덩어리로 엉겨 붙어 꼭 말린 오징어처럼 뻣뻣했다. 한영수가 그것을 바닥에 한 번 쳤다. 걸레가 휘지 않고 통째로 튀어 올랐다.

“이거 걸레 맞습니까?”

“걸레였지.”

“지금은요?”

“화석이지.”

근무자도 웃었다. 소리는 안 내고 입꼬리만 올라갔다. 그때 그의 무전기가 울렸다. 그는 무전기를 귀에 대고 몇 마디 듣더니 우리를 봤다.

“여기 계십시오. 금방 옵니다.”

그가 계단 쪽으로 뛰어갔다. 금방은 삼십 분이 됐다.

한영수는 화석 두 자루를 들고 세면장에 가서 물에 담갔다. 불려 보겠다고 했다. 나는 창고에 혼자 남았다.

나는 내 걸레를 꺼냈다. 아침에 찢어진 셋째 것이다. 반으로 접으면 아직 손바닥만큼은 썼다.

나는 창에서 떨어진 빛의 사각형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사각형만 닦았다. 다른 데는 손대지 않았다. 먼지는 물기 없이 닦으면 날리기만 해서, 걸레 끝에 침을 묻혀 한 줄씩 밀었다. 한 줄을 밀면 걸레가 회색이 됐고, 걸레를 털면 그 줄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열 줄쯤 밀었을 때 바닥이 나왔다.

녹색이었다.

진한 녹색 도료였다. 군데군데 벗겨진 데로 시멘트가 보였다. 빛이 그 녹색 위에 떨어지니까 사각형이 갑자기 다른 방의 바닥처럼 보였다. 사방은 회색인데 그 한 칸만 색이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앉아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빛의 사각형은 아주 천천히 문 쪽으로 기어갔고, 내가 닦은 녹색 칸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근무자는 삼십 분 만에 돌아왔다. 숨이 차 있었다. 그가 바닥의 녹색 칸을 봤다. 그리고 나를 봤다.

나는 일어서면서 물었다.

“여기가 뭡니까?”

“창고입니다.”

“무엇을 넣어 두는 창고입니까?”

그가 잠깐 말을 멈췄다. 상자들을 한 번 보고, 엎어진 의자들을 한 번 봤다.

“…창고입니다.”

그는 문을 닫았다. 문이 다시 바닥을 긁었다. 자물쇠가 걸렸다. 열쇠는 「창」 자 하나만 남은 테이프와 함께 꾸러미로 돌아갔다.

대걸레는 저녁까지 물에 담가 놨는데도 안 풀렸다. 한영수는 그것을 쓰레기통 옆에 세워 두고 말했다.

“화석은 물에 안 녹아.”

방에 돌아가자 조태호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 사람은 우리 방의 장사꾼이다. 커피믹스를 제일 많이 갖고 있고, 무엇이든 커피 몇 개로 값을 매긴다.

“임씨, 어디 갔다 왔어?”

“복도 끝에요.”

“거기 뭐 있어?”

“종이요.”

“종이는 커피 몇 개야?”

나는 대답을 못 했다. 그 상자들을 커피로 세면 몇 개가 될지 몰랐다. 조태호는 내 대답을 기다리다가 값이 안 나오는 물건이라고 정하고 텔레비전 쪽으로 돌아앉았다. 여기서 값이 안 나오는 물건은 없는 물건이다.

그날 밤에 나는 오래 못 잤다.

우리 방은 여섯이 쓴다. 소등이 되면 문 위의 작은 등 하나만 남는다. 그 빛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고 거기 있다는 것만 알린다. 나는 문가에 누워서 천장을 봤다. 손가락 끝에서 아직 그 냄새가 났다.

창가 쪽에서 누가 뒤척였다. 박두식이었다. 그 사람은 이 방에서 제일 오래된 사람이고, 말을 거의 안 했다.

“임씨.”

어둠 속에서 그가 불렀다.

“예.”

“종이 냄새 났지.”

나는 대답을 바로 못 했다. 그 문이 열린 것을 그가 어떻게 아는지 몰랐다. 소지가 창고에 들어갔다는 말은 저녁 배식 때쯤 사동 한 바퀴를 다 돌았을 것이다. 여기서 말은 배식차보다 빠르다.

“…예.”

“나도 났어.”

“들어가 보셨습니까?”

“한 번. 한 오 년 전에.”

그는 그 말만 하고 돌아누웠다. 더 묻고 싶었는데 그 사람 등이 대답을 안 하겠다고 하고 있었다.

엿새 뒤에 한영수가 나갔다.

나가기 전날 그가 종이 한 장을 줬다. 소지가 알아야 할 것을 적은 목록이었다. 국자 깊이, 온수통 시간, 삐걱거리는 바퀴에 비누를 바르는 법, 끝 방 사람 중 누가 국물만 받으면 화를 내는지. 열한 줄이었다.

열두 번째 줄은 이랬다.

12. 복도 끝 문은 신경 쓰지 말 것.

나는 그 종이를 관물대에 넣었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혼자 배식차를 밀었다. 국자를 반만 넣었다. 여든두 걸음을 걸었고, 끝에서 배식차를 돌렸다. 바퀴는 비누를 발라도 돌아설 때마다 삐걱거렸다.

돌아서기 전에 나는 매번 그 문을 봤다.

자물쇠 위의 먼지에 손가락 자국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근무자가 열쇠를 꽂을 때 생긴 자국이다. 그 자국은 한 달이 지나도 안 지워졌다. 그 위에 새 먼지가 앉았지만, 자국의 테두리는 그대로였다.

삼 년 뒤에 그 근무자는 같은 문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게 된다. 그날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고, 그 문 안에 무엇을 넣을 수 있는지도 몰랐다.

녹색 칸 하나만 알았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정이한작가2026.10.09· 1화

    작가 정이한입니다. 반려 사유를 하나씩 지워 가며 열한 해 동안 서가를 세운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1화의 열두 번째 신청서를 읽고, 여러분이라면 그 벽에 어떤 책을 가장 먼저 꽂으시겠어요?

  • 조용한책상2026.05.29· 1화

    조용한데 계속 긴장돼요. 이런 톤 좋아합니다.

    • 정이한작가2026.05.30

      같은 출발점 작품들 저도 다 읽었습니다. 정말 다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