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열두 번째 신청서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신청서는 A4 한 장이다. 제목: 유휴 공간 활용 신청(도서 열람실) 나는 이 제목을 열두 번 썼다. 첫 번째 신청서는 2015년이었다. 반려 사유: 화재 위험 종이가 많으면 불이 난다는 뜻이었다.
나는 두 번째 신청서에 소화기 위치도를 첨부했다. 반려 사유: 위생 세 번째에는 청소 당번표를 붙였다. 반려 사유: 공간 용도 미지정 네 번째에는 창고가 십 년째 비어 있다는 것을 적었다.
반려 사유: 예산 다섯 번째에는 예산이 들지 않는다고 적었다. 책은 면회객이 기증하고, 서가는 폐목재로 만들고, 관리는 내가 한다고. 반려 사유: 관리 인력 부재 여섯 번째에는 내가 관리 인력이라고 적었다.
반려 사유: 수용자 단독 관리 불가 일곱 번째에는 교도관 입회를 조건으로 적었다. 반려 사유: 근무 편성상 곤란 여덟 번째부터는 문구가 조금 바뀌었다. 내가 쓴 문구가 아니었다.
윤 교도관이 고쳐 줬다.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어떻게 씁니까.”
“’요청’이라고 쓰지 말고 ‘건의’라고 쓰세요.”
“차이가 있습니까.”
“요청은 반려하면 되고, 건의는 검토해야 됩니다.”
여덟 번째 반려 사유는 이랬다.
검토 중
검토 중은 반려가 아니다. 나는 그 종이를 지금도 갖고 있다. 아홉 번째, 열 번째, 열한 번째. 전부 검토 중이었다. 오늘 열두 번째를 냈다. 윤 교도관이 서류를 받으면서 말했다.
“이번엔 예산으로 반려될 겁니다.”
나는 손을 멈췄다.
“예산은 사 년 전에 끝난 사유입니다.”
“돌아왔어요.”
“...왜요.”
“위에서 바뀌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십일 년 동안 다섯 개의 사유를 하나씩 지웠다. 지운 것이 돌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임경식 씨.”
“네.”
“열세 번째를 쓰실 겁니까.”
나는 그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십일 년이면 충분히 오래 했다. 그리고 나는 사 년 뒤에 나간다. 내가 나가면 이 서류를 이어 쓸 사람이 없다.
“윤 선생님.”
“네.”
“열세 번째는 제가 안 씁니다.”
윤 교도관이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다른 사람이 씁니다.”
“누가요.”
나는 창고 쪽을 봤다. 거기 오후 두 시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 들어온 지 두 달 된 애가 있습니다.”
“글을 못 씁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윤 교도관은 서류를 내려놓았다.
“두 달 됐다는 그 친구요.”
“예.”
“이름이.”
“안 알려 드리겠습니다.”
윤 교도관이 나를 봤다.
“왜요.”
“제가 가르치는 게 문제가 되면 그만두라고 하실 테니까요.”
“안 그럽니다.”
“그럼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름을 말했다. 윤 교도관은 그 이름을 적지 않았다.
“임경식 씨.”
“예.”
“열두 번째 신청서, 제가 안 올렸습니다.”
나는 손을 멈췄다.
“...예?”
“어제 접수만 받고 결재는 안 올렸어요.”
“왜요.”
“예산으로 반려될 거니까요.”
“그건 아까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러니까 안 올린 겁니다.”
그는 서류를 접어서 서랍에 넣었다.
“올리면 반려 기록이 남습니다. 반려가 여섯 번 넘으면 같은 안건은 삼 년 동안 못 냅니다.”
“...그런 규정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나는 앉았다. 십일 년 동안 열한 번 냈다. 검토 중이 네 번, 반려가 일곱 번.
“일곱 번입니다.”
“예.”
“그럼 이미.”
“그래서 여덟 번째부터 ‘건의’로 바꾸시라고 한 겁니다.”
나는 그를 봤다.
“건의는 반려 횟수에 안 들어갑니다.”
윤 교도관은 자리에 앉았다.
“사 년 있으면 나가시죠.”
“예.”
“나가시기 전에 열세 번째를 그 친구 이름으로 내세요.”
“제 이름으로는 안 됩니까.”
“안 됩니다.”
그가 컴퓨터를 켰다.
“출소자 명의 안건은 종결 처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