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5,008자)

열두 번째 신청서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2026년 2월 9일. 나는 열두 번째를 냈다.

십일 년이 됐다.

제목은 열두 번 다 똑같았다.

유휴 공간 활용 신청(도서 열람실)

앞의 일곱 번은 신청서였고 뒤의 네 번은 건의서였는데, 제목은 안 바꿨다. 바꾸면 다른 안건이 된다. 다른 안건이 되면 앞의 것들이 없던 일이 된다.

십일 년 동안 받은 답은 이렇다.

반려 사유: 화재 위험 반려 사유: 위생 반려 사유: 공간 용도 미지정 반려 사유: 예산 반려 사유: 관리 인력 부재 반려 사유: 수용자 단독 관리 불가 반려 사유: 근무 편성상 곤란 결 과: 검토 결 과: 검토 중 결 과: 검토 중 결 과: 검토 중

일곱 장은 관물대 문짝 틈에 접혀 있고 네 장은 안쪽 철판에 붙어 있다.

열두 번째를 내기 전에 보안과장이 바뀌었다.

정광호라는 사람이 왔다. 1월이었다.

여기서 보안과장은 얼굴을 볼 일이 거의 없는 자리다. 우리가 만나는 것은 근무자와 담당이고, 과장은 서류에만 있다. 결과 칸 밑에 찍히는 도장이 그 사람이다.

그런데 정광호는 사동을 돌았다.

부임하고 첫 주에 사동 넷을 다 돌았다고 했다. 근무자들이 그것 때문에 바빴다.

우리 사동에 온 날 나는 배식 중이었다.

그가 복도 끝까지 걸어갔다.

여든두 걸음이다. 나는 그것을 세면서 봤다. 그 사람은 예순여덟 걸음째 세면장 앞에서 한 번 멈췄고, 여든두 걸음째 창고 문 앞에서 또 멈췄다.

그리고 근무자에게 뭔가 물었다.

근무자가 대답했다. 내용은 안 들렸다.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날 저녁에 나는 윤재호에게 물었다.

“과장님이 창고 앞에서 뭘 물으셨습니까?”

“…들으셨습니까?”

“보기만 했습니다.”

윤재호가 잠깐 있다가 말했다.

“저 방이 뭐냐고 물으셨습니다.”

“뭐라고 답하셨습니까?”

“창고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십일 년 전에 나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했다. 그때도 답은 창고였다.

“임경식 씨.”

“예.”

“열두 번째 언제 내십니까?”

“다음 주에 냅니다.”

윤재호가 나를 봤다.

“…미루시는 게 어떻습니까?”

“왜요?”

“새로 오신 분이 아직 파악이 안 됐습니다.”

“파악되면 좋아집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럼 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미뤘어야 했다.

미뤘으면 예산이 안 돌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미뤘으면 그 뒤에 일어난 일도 안 일어났을 것이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지금도 모른다.

열두 번째를 내고 사흘째 되는 날, 윤 교도관이 나를 불렀다.

교무과 옆 작은 방이었다. 그 방은 면담실이라고 부르는데 면담을 하는 방은 아니다. 서류를 놓고 이야기하는 방이다.

“임경식 씨.”

“예.”

“이번엔 예산으로 반려될 겁니다.”

“예산은 십 년 전에 끝난 사유입니다.”

“돌아왔어요.”

“…왜요?”

“위에서 바뀌었습니다.”

나는 반려 도장을 봤다.

십일 년 동안 다섯 개의 사유를 하나씩 지웠다.

지운 것이 돌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위에서 바뀌면 사유도 바뀝니까?”

“바뀝니다.”

“왜요?”

윤재호가 서류를 정리하면서 말했다.

“새로 오신 분은 앞의 기록을 안 봅니다.”

“…”

“기록을 다 보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 시간에 결재할 게 쌓입니다.”

“그럼 저는 그분한테 처음 신청하는 사람입니까?”

“그렇게 됩니다.”

나는 십일 년 동안 처음으로 화를 냈다.

화를 냈다는 것은 소리를 질렀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소리를 안 질렀다. 다만 손이 떨렸고, 그 떨리는 손을 상대가 봤다.

“…선생님.”

“예.”

“저는 열한 번을 냈습니다.”

“압니다.”

“열한 번 다 다른 이유로 안 됐습니다.”

“…”

“하나씩 지웠습니다. 소화기 위치도를 그렸고 당번표를 만들었고 실측을 했고 규정을 찾았습니다.”

윤재호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런데 지운 게 돌아오면,”

나는 거기서 멈췄다. 다음 문장이 안 나왔다.

“…그럼 제가 십일 년 동안 한 게 뭡니까?”

윤재호가 볼펜을 놓았다.

“임경식 씨.”

“예.”

“열세 번째를 쓰실 겁니까?”

나는 그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십일 년이면 충분히 오래 했다. 그리고 나는 사 년 뒤에 나간다. 내가 나가면 이 서류를 이어 쓸 사람이 없다.

“윤 선생님.”

“예.”

“열세 번째는 제가 안 씁니다.”

윤재호가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다른 사람이 씁니다.”

“누가요?”

나는 창고 쪽을 봤다. 벽 너머라 안 보이는데도 그쪽을 봤다. 거기 오후 두 시의 빛이 들어오고 있을 시간이었다.

“사 년 전에 들어온 사람이 있습니다.”

“…”

“형기가 십사 년입니다.”

윤재호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글은 씁니까?”

“씁니다.”

“원래 쓸 줄 알았습니까?”

나는 잠깐 대답을 골랐다.

“…배웠습니다.”

“누구한테요?”

“…”

윤재호가 나를 봤다.

“임경식 씨.”

“예.”

“그거 승인받은 교육입니까?”

“아닙니다.”

“…”

“쉬는 시간에 이야기한 겁니다.”

“종이 쓰셨습니까?”

“안 썼습니다.”

“그럼 뭐에 쓰셨습니까?”

“사포판에요.”

윤재호는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고는 볼펜을 다시 들었다. 아무것도 안 적었다. 들기만 했다.

“이름이.”

“안 알려 드리겠습니다.”

“왜요?”

“제가 가르치는 게 문제가 되면 그만두라고 하실 테니까요.”

“안 그럽니다.”

“그럼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름을 말했다.

윤재호는 그 이름을 적지 않았다.

“임경식 씨.”

“예.”

“열두 번째 신청서, 제가 안 올렸습니다.”

나는 도장을 내려놓았다.

“…예?”

“그저께 접수만 받고 결재는 안 올렸어요.”

“왜요?”

“예산으로 반려될 거니까요.”

“그건 아까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러니까 안 올린 겁니다.”

그는 서류를 접어서 서랍에 넣었다.

“올리면 반려 기록이 남습니다. 반려가 여섯 번 넘으면 같은 안건은 삼 년 동안 못 냅니다.”

“…그런 규정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나는 앉았다.

앉으면서 세었다. 십일 년 동안 열한 번 냈다. 검토 중이 네 번, 반려가 일곱 번.

“일곱 번입니다.”

“예.”

“그럼 이미.”

“그래서 여덟 번째부터 「건의」로 바꾸시라고 한 겁니다.”

나는 그를 봤다.

“건의는 반려 횟수에 안 들어갑니다.”

윤재호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때 여덟 해 전 복도를 생각했다. 소등 삼 분 전이었고 그 사람은 창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요청은 반려하면 되고 건의는 검토해야 됩니다.

그 말이 그때는 서류 쓰는 요령으로 들렸다.

“선생님.”

“예.”

“그때 이미 일곱 번이었습니까?”

“…예.”

“그럼 여덟 번째를 신청서로 냈으면.”

“여섯 번을 넘습니다.”

“삼 년 동안 못 냈겠네요.”

“예.”

“그럼 지금 제가 여기 앉아 있지도 않았겠습니다.”

윤재호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그날 그 사람이 왜 나를 도와주는지 다시 물으려다가 안 물었다.

여덟 해 동안 안 물은 것을 그날 물으면, 그것은 답을 요구하는 것이 된다.

그날 밤에 나는 관물대를 열었다.

철판에 붙은 것이 여섯 장이다. 검토 중 넷과 편지 둘이다.

틈에는 반려 일곱 장과 편지 넷과 안 부친 답장 한 장이 들어 있다.

나는 편지 여섯 통을 다 꺼내서 바닥에 늘어놓았다.

2018.12 2020.09 2021.10 2022.08 2023.11 2025.06

여섯 통 다 같은 줄이 들어 있다.

여섯째는 작년 것이다.

형님 잘 계시죠. 저는 올해 서른여섯입니다. 전에 형님이 마흔에 시작하셨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때 형님보다 네 살 적습니다.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세 번째 줄을 나는 그날 밤에 여섯 번 읽었다.

여섯 번 읽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낮에 나는 십일 년 동안 한 게 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안 했다.

지금 그 답이 바닥에 여섯 장 있었다.

십일 년 동안 한 것은 종이 열세 장이 아니다.

밖에 있는 사람 하나가 일 년에 한 번씩 안을 들여다보게 만든 것이다.

그 사람은 나간 지 여덟 해가 됐다. 여덟 해면 여기를 잊을 만하다.

여기 있던 사람이 여기를 잊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나는 나가는 사람마다 잊으라고 했다.

그 사람만 안 잊었다.

안 잊은 까닭이 나 때문이라면 나는 그것을 갚을 방법이 없다.

갚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끝내는 것이다.

나는 그날 밤에 열세 번째를 쓰기로 정했다.

정한 것은 낮에 면담실에서가 아니라 그 밤에 바닥에서였다.

바닥에서 정한 것은 잘 안 바뀐다.

앉아서 정한 것은 서면 바뀌는데, 엎드려서 정한 것은 안 바뀐다.

그날 밤에 나는 종이를 안 치우고 잤다.

“사 년 있으면 나가시죠.”

“예.”

“나가시기 전에 열세 번째를 그 친구 이름으로 내세요.”

“제 이름으로는 안 됩니까?”

“안 됩니다.”

그가 컴퓨터를 켰다.

“출소자 명의 안건은 종결 처리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앉아 있었다.

종결.

십일 년 동안 나는 반려와 검토만 봤다. 종결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반려는 다시 낼 수 있다. 검토는 기다리면 된다.

종결은 없어진다.

“선생님.”

“예.”

“종결되면 앞의 열두 번도 없어집니까?”

윤재호가 화면에서 눈을 떼고 나를 봤다.

“…기록은 남습니다.”

“그럼 남는 게 뭡니까?”

“기록만요.”

나는 일어섰다.

방을 나오면서 나는 복도를 걸었다. 여든두 걸음이다. 열한 해 동안 하루 세 번씩 걸은 거리다.

예순여덟 걸음째에 세면장이 있고 일흔네 걸음째에 계단이 있다.

여든두 걸음째에 문이 있다.

그 문에는 이제 자물쇠에 먼지가 없다. 내가 일주일에 두 번 여닫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앞에 섰다.

십일 년 전에 나는 이 문 앞에서 배식차를 밀고 있었고, 자물쇠 옆면에 앉은 먼지를 보고 이 방이 십 년 동안 안 열렸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그 자물쇠는 매주 열린다.

방 안에는 서가 다섯 칸이 있고 책이 여섯 권 있다.

십일 년에 여섯 권이다.

나는 그 앞에서 한 가지를 정했다.

열세 번째부터는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니면 내가 나가도 안 끝난다.

1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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