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5,075자)

첫 문장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가르치겠다고 말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배우고 싶습니다.”

2023년 1월, 작업장 쉬는 시간에 안세중이 말했다. 쉬는 시간은 십 분이다.

“무엇을요?”

“글이요.”

나는 사포질하는 그의 손을 봤다. 넉 달 동안 나무를 문질러서 손끝이 다 닳아 있었다.

“왜요?”

“편지를 제가 쓰려고요.”

“제가 써 드립니다.”

“그게요.”

그가 사포를 놓았다.

“…어머니가 제 글씨를 아세요.”

작업대에 사포 가루가 얇게 앉아 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난번에 보낸 편지요. 답장이 왔는데요.”

“예.”

“누가 써 줬냐고 물으셨어요.”

“…글씨가 다르다고요?”

“아뇨.”

그가 고개를 저었다.

“맞춤법이 맞다고요.”

문제는 장소였다.

여기서 두 사람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은 승인 사항이다. 종교 활동, 교육 과정, 상담. 다 신청서가 있다.

문해 교육 과정이 있기는 하다. 일 년에 한 번 열리고 정원이 열둘이다. 그해 과정은 3월에 끝났고 다음은 이듬해 3월이다.

일 년을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나는 여덟 해 동안 기다리는 일을 너무 많이 했다.

“최 선생님.”

“예.”

“쉬는 시간에 저 친구한테 글 좀 가르쳐도 되겠습니까?”

최기범이 나를 봤다.

“…글이요.”

“예.”

“그거 승인 받으셔야 하는데요.”

“쉬는 시간에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도 승인을 받습니까?”

“이야기는 안 받죠.”

“그럼 이야기하겠습니다.”

최기범이 한참 나를 봤다.

“임 씨.”

“예.”

“그거 종이 쓰실 거죠.”

“…예.”

“종이를 쓰면 그건 이야기가 아니라 교육입니다.”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이 년 동안 대장을 같이 쓰면서 서류를 보는 눈이 생겼다.

“그럼 종이를 안 쓰겠습니다.”

“…어떻게요?”

나는 작업대 위에 있는 나무판을 짚었다. 사포질용 판이다. 표면이 하얗게 일어나 있다.

“여기 쓰겠습니다.”

“…나무에요?”

“연필로 쓰고 사포로 지우면 됩니다.”

최기범이 그 판을 봤다. 그러고는 웃었다. 그 사람이 웃는 것을 나는 그때 두 번째로 봤다.

“임 씨.”

“예.”

“그거 규정에 안 걸립니다.”

“예.”

“근데 규정 만든 사람이 알면 화낼 겁니다.”

“화내면 그때 그만두겠습니다.”

그해에 아무도 화내지 않았다.

우리는 하루 십 분씩 했다.

첫 두 주는 자음이었다.

ㄱ ㄴ ㄷ ㄹ

안세중은 ㄱ과 ㅋ을 구별했다. ㄷ과 ㄸ도 구별했다. 그러니까 그는 글자를 아예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 배우셨습니까?”

“초등학교 삼 학년까지요.”

“그다음에는요.”

“안 갔습니다.”

“왜요?”

그가 사포판을 문질렀다.

“…일했습니다.”

“열 살에요?”

“아버지가 하는 데서요.”

셋째 주에 받침을 했다.

받침이 어려웠다. 받침은 소리로는 아는데 자리로는 모른다. 「밥」을 쓰라고 하면 「바」까지 쓰고 멈춘다. 마지막 ㅂ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밑에 씁니다.”

“…왜 밑입니까?”

받침이 왜 밑에 있는지 나는 모른다. 스무 해 동안 활자를 짜면서 나는 받침 있는 글자와 없는 글자의 판이 다르다는 것만 알았다. 받침 있는 글자는 세로로 한 칸을 더 쓴다.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요.”

“누가 정했는데요.”

“오래전에 누가 정했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정했어요?”

“모르겠습니다.”

안세중이 사포판에 「바」를 쓰고 그 밑에 「ㅂ」을 썼다.

“이러면 밥이에요?”

“그렇습니다.”

“…이상하네요.”

“이상합니다.”

“근데 이상한 걸 왜 따라야 돼요?”

나는 그 질문을 오래 생각했다.

여덟 해 동안 나는 이상한 규칙을 따라 왔다. 화재 위험, 위생, 공간 용도 미지정. 이상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 같이 이상해야 서로 읽히니까요.”

안세중이 사포판을 봤다.

“…그럼 읽는 게 먼저네요.”

“예?”

“이상한 걸 따르는 이유가 읽히려고면요, 읽는 게 먼저잖아요.”

나는 그날 저녁에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이름을 쓰는 데 넉 달이 걸렸다.

안세중의 이름에는 받침이 둘 있다. 「안」의 ㄴ과 「중」의 ㅇ이다. 세중의 「세」에는 받침이 없다.

넉 달째 되는 5월 어느 날, 그가 사포판에 세 글자를 썼다.

안세중

획이 흔들렸다. 「중」의 ㅜ가 짧았다. 그런데 세 글자가 다 있었다.

그는 그것을 한참 봤다.

나도 한참 봤다.

“임 선생님.”

그가 나를 그렇게 부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전에는 형님이라고 했다.

“예.”

“이거 지워야 돼요?”

나는 사포를 들고 있었다.

“…예.”

“지금요?”

“여기 두면 걸립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사포를 받아 들었다.

“제가 지울게요.”

그는 자기 이름을 자기 손으로 지웠다. 사포로 열 번쯤 문지르니까 없어졌다. 나무 가루가 작업대에 쌓였다.

“임 선생님.”

“예.”

“이거 종이에 쓰면 안 지워지죠.”

“안 지워집니다.”

“…그럼 종이에 쓰고 싶습니다.”

그해 여름에 문제가 한 번 생겼다.

7월에 작업장 점검이 있었다. 정기 점검이 아니라 상부에서 나온 것이었다. 작업 진도와 안전을 본다고 했다.

점검관이 안세중의 작업대 앞에 섰다.

사포판이 거기 있었다.

그날 판에는 「나는 오늘 밥을 먹었다」가 쓰여 있었다. 아침에 쓰고 아직 안 지운 것이었다. 쉬는 시간에 지우기로 했는데 점검이 쉬는 시간 전에 왔다.

점검관이 그것을 봤다.

“이거 뭡니까?”

안세중이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세 걸음쯤 떨어진 데 있었다. 가면 안 된다. 여기서 남의 일에 끼어들면 그 일이 두 사람 일이 된다.

“누가 썼습니까?”

“…제가 썼습니다.” 안세중이 말했다.

“왜 씁니까?”

“…”

“작업판에 낙서를 왜 하느냐고 묻는 겁니다.”

그때 최기범이 왔다.

“제가 시켰습니다.”

점검관이 그를 봤다.

“…반장이요?”

“예. 사포 방향 연습을 시킵니다. 글씨를 쓰고 그걸 결 따라 지우게 하면 방향이 잡힙니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제가 만든 방법입니다.”

점검관이 사포판을 손으로 문질러 봤다.

“효과 있습니까?”

“이 친구가 넉 달 만에 사포를 제일 잘합니다.”

점검관은 고개를 끄덕이고 갔다.

그가 작업장을 나가고 나서 최기범이 사포판을 들고 우리 쪽으로 왔다.

그가 그것을 안세중에게 줬다.

“글씨 크게 쓰지 마세요.”

“…예.”

“작게 쓰면 멀리서 안 보입니다.”

최기범은 그러고 자기 자리로 갔다.

나는 그날 저녁에 그 사람에게 갔다.

“최 선생님.”

“예.”

“오늘 감사합니다.”

“뭐가요?”

“거짓말해 주셨습니다.”

최기범이 대패를 놓았다.

“임 씨.”

“예.”

“거짓말 아닙니다.”

“…”

“저 친구 사포 진짜 잘합니다.”

여덟 번째 달에 그가 편지를 썼다.

2023년 9월이었다. 종이 한 장에 볼펜으로 썼다. 나는 옆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안 알려 줬다. 물어보면 알려 주기로 했는데 안 물었다.

한 시간이 걸렸다.

다 쓰고 나서 그가 나에게 종이를 줬다.

어머니 저는 잘 있습니다 밥도 잘 먹습니다 글을 배웟습니다 이거는 제가 쓴 거임니다 안세중

여섯 줄이었다.

「배웟습니다」와 「거임니다」가 틀렸다.

나는 그것을 고칠지 말지 십 초쯤 생각했다.

“안세중 씨.”

“예.”

“두 군데 틀렸습니다.”

“…어디요?”

나는 짚어 줬다. 그가 그것을 봤다.

“고칠까요?”

그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아뇨.”

“왜요?”

“맞춤법이 맞으면 어머니가 또 물어보실 거예요.”

나는 그 종이를 돌려줬다.

그가 그것을 접었다.

세 번 접었다.

편지를 부치고 나서 그가 물었다.

“임 선생님.”

“예.”

“답장 오면 읽어 주실 거예요?”

“…읽으실 수 있습니다.”

“못 읽으면요.”

“그럼 그때 여쭤보십시오.”

답장은 삼 주 뒤에 왔다.

그는 그것을 들고 작업장에 왔다. 봉투를 뜯지 않고 왔다.

“여기서 뜯을게요.”

“왜요?”

“방에서 뜯으면 사람이 많아서요.”

우리는 쉬는 시간에 작업대 옆에 앉았다. 그가 봉투를 뜯었다.

종이 한 장이었다.

그가 그것을 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안 냈다. 한 줄 읽는 데 오래 걸렸다.

중간에 그가 멈췄다.

“…이거 뭐예요?”

그가 한 글자를 짚었다.

“「기특하다」입니다.”

“…무슨 뜻이에요?”

나는 그 단어의 뜻을 설명하려다가 멈췄다.

“…잘했다는 뜻입니다.”

“그럼 잘했다고 쓰시지 왜 이렇게 쓰셨어요?”

“어른들이 쓰는 말입니다.”

그가 다시 읽었다.

다 읽고 나서 그는 종이를 무릎에 놓고 한참 있었다.

“임 선생님.”

“예.”

“어머니가 저 열 살 때부터 이런 거 쓰셨을까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못 읽으니까 안 쓰셨겠죠.”

“열세 해 동안 안 쓰신 거잖아요.”

“…”

“제가 못 읽어서요.”

그날 나는 그 사람 얼굴을 안 봤다. 안 보는 것이 낫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의 편지를 대필하지 않았다.

커피 한 개도 안 받았다.

그 대신 그는 매달 나에게 하나씩 물었다. 처음에는 글자를 물었고, 나중에는 문장을 물었고, 그다음 해부터는 서류를 물었다.

그해 11월에 정상우의 다섯 번째 편지가 왔다.

형님 잘 계시죠. 저는 그대로입니다.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세 줄이었다. 제일 짧았다.

짧아지는 편지는 두 가지다. 쓸 것이 없어졌거나, 쓸 것을 줄였거나.

나는 그날 처음으로 답장을 썼다.

봉투는 안 샀다. 종이에만 썼다.

정 씨에게

열한 번째까지 갔습니다.

지금 글을 가르치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스물여섯입니다. 넉 달 만에 제 이름을 쓴 게 아니라 제 이름을 쓰는 데 넉 달이 걸렸습니다. 정 씨가 나가던 해에 그 사람은 아직 밖에 있었습니다.

임경식

나는 그것을 하루 두고 다시 읽었다.

읽고 나서 안 부쳤다.

둘째 줄 때문이다.

「열한 번째까지 갔습니다」

네 해 전에 부쳤어도 같은 줄이고, 네 해 뒤에 부쳐도 같은 줄이다.

같은 줄을 보내면 저쪽이 안 읽고 있다는 뜻이 된다.

나는 그 종이를 관물대 틈에 넣었다.

반려된 종이들 사이에 넣었다.

거기가 그 종이 자리 같았다.

서류를 묻기 시작한 것이 2024년이다.

건의자 칸에 그 사람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그로부터 이 년 뒤다.

1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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