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5,031자)

스물세 줄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조성희와 나는 2022년에 편지를 여섯 번 주고받았다.

한 번 오가는 데 두 주가 걸린다. 검열이 양쪽에 다 있는 것은 아닌데, 이쪽에서 나가는 데 사흘, 저쪽에서 답을 쓰는 데 며칠, 들어오는 데 또 사흘이다.

여섯 번이면 여덟 달이다.

그 여덟 달 동안 우리가 한 일은 절차를 맞추는 것이었다.

조성희 → 임경식 (4월) 폐기 도서 목록을 보내 드립니다. 서른두 권입니다. 이 중에서 골라 주시면 됩니다.

임경식 → 조성희 (5월) 고르는 것은 저희가 할 수 없습니다. 반입 여부는 이쪽 심의에서 정합니다. 저는 신청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목록을 그대로 신청하겠습니다. 서른두 권 중에 몇 권이 될지는 모릅니다.

조성희 → 임경식 (6월) 몇 권이 될지 모른다면 저희는 서른두 권을 다 보내면 되겠습니까? 보냈다가 안 되면 어떻게 됩니까?

임경식 → 조성희 (7월) 반송됩니다. 반송 비용은 보내신 쪽에서 냅니다. 그러니 보내지 마십시오. 먼저 심의를 받겠습니다.

이 편지를 쓰면서 나는 좀 부끄러웠다.

밖에서 온 사람이 책을 주겠다는데 나는 절차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절차 이야기를 안 하면 그 사람이 손해를 본다.

7월에 나는 도서 반입 신청서를 냈다.

서른두 권 목록을 첨부했다.

회신은 9월에 왔다.

결 과: 보류 사 유: 심의 담당 부재

부재라는 말을 나는 오래 봤다.

없다. 사람이 없다. 2020년에 다른 업무로 갔던 담당은 2022년에도 안 돌아왔다.

나는 그것을 조성희에게 어떻게 쓸지 몰라서 한 달을 미뤘다.

10월에 이렇게 썼다.

보류되었습니다. 심의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동안 책을 다른 데로 보내셔도 됩니다. 저희 때문에 그 책들이 창고에 있는 것은 저희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답장은 이랬다.

그럼 저희 서고 한 칸을 비워 두겠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저희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두 줄을 읽고 한참 있었다.

밖에서도 칸을 비워 두는 사람이 있었다.

정상우의 네 번째 편지는 그해 8월에 왔다.

형님 잘 계시죠. 엄마가 여름에 좀 편찮으셨습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제가 저녁에 들어가서 밥을 합니다. 라면은 삼 분 다 채웁니다.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마지막 줄이 늘 같다.

나는 그 줄을 네 번 받았다.

네 번 다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밑에 있던 줄이 없었다.

「답장은 안 하셔도 됩니다」가 없다.

없는 것을 나는 또 봤다.

그날 밤에 관물대를 열었다.

철판에는 검토 중 셋과 첫 편지가 붙어 있다. 나머지 편지는 틈에 넣어 뒀다.

나는 넷째 편지를 첫 편지 옆에 붙였다.

붙이고 나서 둘을 나란히 봤다.

2018.12 —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2022.08 —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네 해가 지났다.

그 네 해 동안 나는 건의서를 석 장 냈고 다 검토 중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네 해 전에 물은 것과 지금 물은 것의 답이 같다.

같은 답을 네 해 동안 안 보냈다.

나는 그것을 그날 처음으로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라면 삼 분을 다 채운다는 줄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 사람은 이 분짜리였다.

이 분짜리가 삼 분을 채우게 되는 데 네 해가 걸렸다.

안세중이 들어온 것은 그해 9월이었다.

스물두 살이다. 형기는 십사 년.

여기서 스물둘은 어리다. 어린 사람이 들어오면 방에서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나이를 묻고, 형기를 묻고, 그다음에는 묻지 않는다.

그 사람은 우리 방이 아니라 옆방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작업장에서다. 목공에 배정됐다. 최기범이 그를 사포질에 붙였다.

사포질은 여기서 제일 시시한 일이다. 하루 종일 나무를 문지른다. 새로 온 사람은 다 그것부터 한다.

안세중은 사포질을 아주 오래 했다.

보통은 두 주면 다른 일로 옮겨 간다. 그 사람은 석 달을 사포질만 했다.

“최 선생님.”

“예.”

“저 친구는 왜 계속 사포입니까?”

최기범이 대패질을 하면서 말했다.

“치수를 못 읽습니다.”

“…예?”

“숫자를 못 읽어요.”

“글을 모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본인이 그럽니까?”

“아뇨.” 최기범이 대패를 놓았다. “그런 건 본인이 안 말합니다.”

11월 어느 날 저녁에 그가 나를 찾아왔다.

작업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였다. 옆방 사람이 우리 방 쪽으로 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저기요.”

나는 돌아섰다.

“예.”

“글씨 잘 쓰신다고 들었는데요.”

여기서 그 말은 뜻이 정해져 있다. 대필을 부탁한다.

글씨 좋은 사람에게 커피 두 개를 주고 편지를 맡기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다. 나는 여덟 해 동안 그것을 안 했다. 안 한 이유는 잘해서가 아니라, 남의 편지에 내 문장이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였다.

“편지입니까?”

“…예.”

“누구한테요?”

“어머니요.”

나는 그를 봤다. 복도 등이 어두워서 얼굴이 잘 안 보였다.

“직접 쓰시는 게 좋습니다.”

“그게요.”

그가 말을 멈췄다.

“…제가 못 씁니다.”

우리는 복도에 서 있었다. 저녁 점호까지 십 분쯤 남아 있었다.

“얼마나 못 쓰십니까?”

“…이름은 씁니다.”

“그 외에는요.”

“…”

“내일 작업장에서 뵙겠습니다.”

“커피는 두 개면 됩니까?”

“안 받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요.”

“왜요?”

“그럼 제가 부탁하는 게 되잖아요.”

나는 그 말에 잠깐 멈췄다.

여기서 그 구분은 중요하다. 값을 치르면 거래고, 안 치르면 신세다. 신세는 갚아야 하고 갚을 방법이 없으면 사람이 작아진다.

“그럼 하나만 주십시오.”

“두 개가 시세인데요.”

“저는 한 개 받습니다.”

다음 날 작업장 쉬는 시간에 나는 그의 편지를 썼다.

“뭐라고 쓸까요?”

“…잘 있다고요.”

“그리고요.”

“밥 잘 먹는다고요.”

“그리고요.”

그가 한참 대답을 안 했다.

“…그거면 됩니다.”

나는 두 줄을 썼다. 두 줄을 쓰고 종이를 봤다. A4 한 장에 두 줄이 있으면 그것은 편지가 아니다.

“몇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예.”

“어머니가 뭘 걱정하실 것 같습니까?”

그가 나를 봤다.

“…제가 맞고 다니는 거요.”

“맞습니까?”

“아뇨.”

“그럼 그걸 쓰겠습니다.”

나는 세 번째 줄을 썼다.

아무도 저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이거 사실입니까?”

“…예.”

“그럼 됩니다.”

나는 그날 여섯 줄을 썼다. 다 쓰고 나서 그에게 읽어 줬다. 읽어 주는데 그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예.”

“고칠 데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없습니다.”

그가 종이를 받았다. 받아서 접었다.

세 번 접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말했다.

“편지는 세 번 접습니다.”

“…예?”

“일기는 두 번 접고요.”

그가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뭔가 꺼내려다 말았다. 두 번쯤 그랬다.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그가 갔다.

일주일 뒤에 그가 다시 왔다.

이번에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두 번 접힌 종이였다.

나는 그것을 폈다.

목록이었다.

읽고 싶은 책

1. 이름 모름. 표지가 파란색. 2. 아버지가 갖고 있던 것. 두꺼움. 3.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못 읽음. 4. 텔레비전에 나온 거. 사람이 바다에 나감. 5. 형이 읽던 거.

스물세 줄이었다.

제목이 적힌 것은 넷뿐이었다. 나머지 열아홉 줄은 표지 색이나 두께나 누가 읽던 것인지로 적혀 있었다.

글씨는 삐뚤었다. 자음과 모음의 크기가 안 맞았다. 받침이 빠진 데가 여럿이었다.

읽을 수는 있었다.

“이거 몇 년 쓰셨습니까?”

“두 달이요.”

“두 달이요?”

“여기 와서요.”

나는 그 종이를 오래 봤다.

“안세중 씨.”

“예.”

“글을 못 쓰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고개를 숙였다.

“…이건 글이 아니잖아요.”

스물세 줄을 쓴 사람이 자기가 쓴 것을 글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스물세 줄을 다시 읽었다.

읽으면서 나는 그 목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책을 안 읽었다. 그런데 책을 본 적은 있다. 남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봤고, 집 어딘가에 있는 것을 봤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못 읽고 돌려줬다.

그러니까 이 목록은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지나간 책이다.

지나간 책을 스물세 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11. 노란 표지. 학교 앞 문방구에 있던 것. 12. 아버지 차 뒷자리에 오래 있던 것. 13. 만화인데 만화가 아니라고 함.

열세 번째 줄에서 나는 멈췄다.

“이건 뭡니까?”

“…만화 같은데 글이 많은 거요.”

“누가 그럽니까?”

“형이요.”

“형님이 읽으셨습니까?”

“…예.”

“지금 뭐 하십니까?”

나는 더 안 물었다. 여기서는 가족 이야기가 나오다가 멈추면 거기서 그만두는 것이 예의다.

“안세중 씨.”

“예.”

“이거 제가 하루만 갖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왜요?”

“보고 싶어서요.”

“그거 볼 게 없는데요.”

“있습니다.”

그는 잠깐 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에 나는 그 목록을 관물대 안쪽 등불에 대고 봤다. 문 위의 작은 등은 글씨를 읽기에 나쁜 빛이다. 그 빛으로 스물세 줄을 다 읽는 데 삼십 분이 걸렸다.

삼십 분 동안 나는 여덟 해 만에 처음으로 다른 셈을 했다.

지금까지 나는 반려 사유를 셌다. 종이 장수를 셌다. 서가 칸을 셌다. 다 내 쪽의 숫자다.

그날 밤에 센 것은 스물셋이었다.

한 사람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의 수다.

이 시설에 삼백여든 명이 있다. 한 사람이 스물세 권이면 팔천칠백사십 권이다.

말도 안 되는 계산이다. 삼백여든 명이 다 목록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나는 그 계산을 지우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덟 해 동안 내가 낸 서류에는 사람 수가 한 번도 안 들어갔다.

공간, 예산, 인력, 절차. 전부 물건과 제도였다.

“이거 왜 저한테 보여 주십니까?”

그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그거 어디 가면 있는지 아세요?”

“…”

“복도 끝에 방 하나 있다면서요.”

1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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