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050자)
편지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2021년 5월에 나는 여덟 달 묵힌 봉투를 꺼냈다.
봉투는 관물대 안쪽에 세워 뒀다. 세워 두면 구겨지지 않는다. 눕혀 두면 위에 뭐가 올라가고, 올라가면 접힌 자국이 생긴다. 접힌 자국이 있는 봉투는 받는 쪽에서 성의 없어 보인다.
인쇄소를 하면 그런 것을 신경 쓰게 된다.
문제는 보낼 데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기증을 받으려면 기증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는 없다. 그런데 기관은 있다. 도서관은 책을 버린다. 버리는 책이 있으면 그 책이 갈 데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 추측이었다. 추측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주소를 몰랐다.
여기서는 인터넷이 없다. 전화번호부도 없다. 신문은 들어오는데 지역 신문이 아니라 전국 신문이라 근처 도서관 이름이 안 나온다.
나는 두 달 동안 헌 신문을 봤다.
작업장에서 나오는 신문이다. 포장에 쓰려고 들어온 것들인데 날짜가 지난 것들이다. 그 안에서 도서관이라는 글자를 찾았다.
두 달 동안 세 번 나왔다. 셋 다 서울이었다.
여기는 서울이 아니다.
6월에 나는 윤재호에게 물었다.
“선생님.”
“예.”
“이 근처에 도서관이 몇 개 있습니까?”
그가 서류를 넘기다 말고 나를 봤다.
“…도서관이요.”
“예.”
“왜 물으십니까?”
“편지를 쓰려고요.”
“도서관에요?”
“예.”
그가 볼펜을 놓았다.
“임경식 씨.”
“예.”
“그거 안 될 겁니다.”
“압니다.”
“…”
“그런데 주소가 있어야 안 되는 것도 확인이 됩니다.”
윤재호는 사흘 뒤에 종이 한 장을 줬다.
접히지 않은 A4였다. 거기에 다섯 개가 적혀 있었다. 도서관 이름과 주소와 우편번호였다.
손으로 쓴 것이었다.
“출력은 못 해 드립니다.”
“…예.”
“이건 제가 적은 겁니다.”
나는 그 종이를 받았다.
그 사람 글씨를 나는 그때 처음 봤다. 반듯한 글씨였다. 획을 끝까지 긋는 사람의 글씨다.
편지는 다섯 통을 썼다.
한 통을 쓰는 데 이틀이 걸렸다. 다섯 통을 쓰는 데 열흘이 아니라 삼 주가 걸렸다. 뒤로 갈수록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앞의 두 통은 같은 내용으로 썼다. 세 번째를 쓰다가 나는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같은 편지 다섯 통은 다섯 통이 아니라 한 통이다. 받는 사람이 다르면 다른 편지를 써야 한다.
첫 번째 도서관은 시립이고 규모가 크다. 두 번째는 구립이다. 세 번째는 작은 마을 도서관이다. 네 번째는 학교 도서관이고 다섯 번째는 종교 시설에 딸린 데였다.
큰 데는 버리는 책이 많고 절차가 복잡하다. 작은 데는 버리는 책이 적고 절차가 간단하다.
나는 다섯 통을 다르게 썼다.
시립 도서관에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폐기 예정 도서의 처리 절차에 대해 여쭙고자 편지를 드립니다.
이 첫 두 줄을 고르는 데 하루가 걸렸다.
「기증받고 싶습니다」로 시작하면 안 된다. 그것은 부탁이다. 부탁으로 시작하는 편지는 읽는 사람이 거절할 준비를 하면서 읽는다.
「처리 절차를 여쭙는다」로 시작하면 그것은 질문이다. 질문에는 답이 온다. 답이 오면 그다음이 있다.
여덟 해 동안 서류를 쓰면서 배운 것이 그것이다.
봉투가 다섯 개 필요했다.
봉투 하나가 커피 하나다. 우표도 사야 한다. 우표는 값이 정해져 있고 구매 신청서로 산다. 다섯 통이면 봉투 다섯에 우표 다섯이다.
나에게 남은 커피는 아홉 개였다.
모자랐다.
“임 형님.”
작업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조태호가 나를 불렀다. 그 사람은 그해 봄에 우리 방으로 다시 왔다. 방 이동은 그런 식으로 돌고 돈다.
“예.”
“커피 필요하시다면서요.”
“…누가 그럽니까?”
“소문 났어요.”
“얼마나요?”
“사동에요.”
나는 걸음을 멈췄다.
“몇 개 필요하세요?”
“…여섯 개입니다.”
조태호가 주머니에서 커피 두 개를 꺼냈다.
“이거 두 개요.”
“조 씨.”
“왜요?”
“이거 받으면 제가 갚아야 합니다.”
“갚으세요.”
“언제 갚을지 모릅니다.”
“그럼 안 갚으세요.”
“그건 안 됩니다.”
조태호가 인상을 썼다.
“형님, 여기서 커피 두 개는 그냥 커피 두 개예요.”
“…”
“밖에서 천 원짜리 두 장이에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커피를 받았다.
그날 저녁까지 커피가 열한 개 더 들어왔다.
우리 방에서 넷, 옆방에서 셋, 그리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넷이었다. 모르는 사람 넷은 누가 줬는지 지금도 모른다. 관물대 앞에 놓여 있었다.
“이거 누가 두고 갔습니까?”
“몰라요.”
“…”
“형님, 여기 사람들이 형님을 좀 알아요.”
“무엇으로요?”
조태호가 웃었다.
“빈 서가 닦는 사람으로요.”
그해 10월에 정상우의 세 번째 편지가 왔다.
세 해에 세 통이다. 일 년에 한 통씩이다.
형님 잘 계시죠. 저는 지게차 자격증을 땄습니다. 시험을 세 번 봤습니다. 이제 물건 드는 게 아니라 옮기는 걸 합니다. 몸이 덜 아픕니다.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답장은 안 하셔도 됩니다.
네 줄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두 번 읽었다.
두 번째에 나는 없는 줄을 찾고 있었다.
첫 편지와 둘째 편지에는 어머니 이야기가 있었다. 셋째에는 없다.
그것을 그날 저녁까지 생각했다.
없는 것을 서류에서 찾는 것은 내 버릇이다. 첨부 칸이 비어 있으면 그 자리를 본다.
편지는 서류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편지도 그렇게 읽었다.
안 쓴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쓸 것이 없어서 안 쓴 것과 쓰기 싫어서 안 쓴 것이다.
어느 쪽인지 알려면 물어야 한다.
물으려면 답장을 써야 한다.
나는 안 썼다.
그해에 나는 편지 여섯 통을 밖으로 부쳤다. 도서관 다섯 곳과 시립 한 곳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여섯 통을 쓰고, 아는 사람 하나에게 한 통도 안 썼다.
그때는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 안 했다.
편지 다섯 통은 7월 12일에 부쳤다.
부치는 것도 절차가 있다. 검열을 거친다. 내용에 문제가 없으면 나간다. 다섯 통 다 문제가 없었다.
나는 그날 여든두 걸음을 걸으면서 그 다섯 통이 어디로 가는지 생각했다.
편지는 사흘이면 도착한다고 했다.
넉 달 동안 아무 답장도 안 왔다.
8월에 안 왔고 9월에 안 왔다. 10월에 나는 기대를 접었다. 접는 것도 요령이 생겼다. 여덟 해 동안 열한 번 접어 봤다.
11월에 조태호가 물었다.
“형님, 답장 왔어요?”
“안 왔습니다.”
“다섯 군데 다요?”
“예.”
“그럼 여섯 번째 보내세요.”
“주소가 다섯 개뿐입니다.”
“그럼 같은 데 또 보내세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는데, 사흘 뒤에 정말 그렇게 했다. 시립 도서관 한 곳에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두 번째 편지에는 이렇게 썼다.
7월에 보낸 편지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답이 오지 않는 것도 답이라는 것을 압니다. 다만 절차상 어느 단계에서 막히는지 알 수 있다면, 다음에 다르게 여쭙겠습니다.
이 편지를 쓰면서 나는 반려 통지 열한 장을 생각했다.
반려 사유가 적혀 있어서 나는 열한 번을 갈 수 있었다. 사유가 없으면 아무 데도 못 간다.
12월에 박두식이 물었다.
“임씨.”
“예.”
“편지 몇 통 보냈지?”
“여섯 통입니다.”
“답은.”
“없습니다.”
박두식이 자기 무릎을 두 번 쳤다. 그 사람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그런다.
“임씨는 답이 왜 안 온다고 생각해.”
“…모르겠습니다.”
“생각을 해 봐.”
나는 그때까지 그 생각을 안 했다. 안 오는 이유를 생각하는 것은 안 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라 피하고 있었다.
“…버렸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답할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겠지요.”
박두식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무슨 말이야.”
“도서관에 편지가 오면 누가 뜯습니까?”
“…모르지.”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압니다. 여기로 오는 편지는 담당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누가 읽습니다.”
“밖에는 담당이 없어?”
“있는데 다를 겁니다. 우리 같은 데서 온 편지를 받는 담당은 없을 겁니다.”
박두식이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임씨.”
“예.”
“그럼 그 편지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날 밤에 나는 그 질문을 오래 생각했다.
내가 쓴 종이 여섯 장이 지금 어딘가에 있다. 쓰레기통일 수도 있고 서랍일 수도 있고 누구 책상 위 서류 더미 밑일 수도 있다.
밑에 깔려 있으면 언젠가 나온다.
서류 더미는 언젠가 정리하게 되어 있다. 인쇄소를 하면서 나는 그것을 봤다. 사람들은 반년에 한 번씩 책상을 치우고, 치우다가 밑에서 나온 종이를 그때 처음 읽는다.
나는 그 생각을 하고 잠이 들었다.
답장은 2022년 3월 4일에 왔다.
여덟 달 만이었다.
나는 그것을 배식 전에 받았다. 근무자가 편지를 나눠 주는 시간은 아침이다.
봉투에 도서관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방에 들어가서 나는 그것을 안 뜯고 한참 들고 있었다.
“형님, 왜 안 뜯으세요?” 조태호가 물었다.
“…뜯겠습니다.”
봉투는 이미 검열로 한 번 열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조심해서 폈다.
안에 종이가 한 장 있었다.
손으로 쓴 편지였다.
임경식 님께
두 번 보내신 편지를 다 읽었습니다. 답이 늦어 죄송합니다. 첫 편지는 제 앞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지난달에 서고 정리를 하다가 찾았습니다.
폐기 예정 도서는 매년 나옵니다. 상태가 나쁜 것들입니다. 표지가 떨어지거나 밑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저희도 처음 하는 일이라 절차를 모릅니다. 그쪽에서 받으실 수 있는 절차를 알려 주시면 그대로 맞추겠습니다.
조성희 드림
나는 그 편지를 세 번 읽었다.
세 번째에 나는 손끝으로 글자를 만졌다.
볼펜으로 쓴 글씨였다. 눌러 쓴 자리가 뒷면에 도드라져 있었다. 인쇄소를 한 사람은 그런 것을 손끝으로 안다.
여덟 해 만에 밖에서 온 첫 글씨였다.
정확히는 정상우의 편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안에 있던 사람이 밖에 나가서 쓴 것이다.
이 편지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쓴 것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답을 했다.
“형님.”
조태호가 나를 봤다.
“왜 우세요?”
“…안 웁니다.”
“우시는데요.”
나는 편지를 접었다.
세 번 접으려다가 안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