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013자)
박두식의 손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합판은 7월 6일에 나왔다.
열두 장이다. 두께 십이 밀리미터, 구백 곱하기 천팔백. 한 장이 어른 하나가 겨우 드는 무게다.
목재 대장에 출고를 적고, 받는 사람 칸에 내 이름을 적었다.
2020.07.06 / 합판 12mm / 900×1800 / — / 12 / 0 / 최기범
잔량이 영이다.
그 영이라는 숫자를 나는 한참 봤다. 넉 달 동안 대장을 쓰면서 잔량 칸에 영을 적은 것은 처음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는 나무를 다룰 줄 모른다.
종이는 안다. 종이는 결이 있고 접는 방향이 있고 물을 먹으면 어느 쪽으로 휘는지 안다. 나무도 결이 있다는 것은 아는데, 그것을 손으로 아는 것과 머리로 아는 것은 다르다.
게다가 못을 못 쓴다.
못은 반입 금지 품목이다. 목공 작업장 안에서는 쓰지만 밖으로는 하나도 못 나간다. 창고는 작업장 밖이다.
그러니까 서가는 못 하나 없이 서 있어야 한다.
“홈으로 짜면 됩니다.” 최기범이 말했다.
“홈이요?”
“세로판에 홈을 파고 가로판을 끼우는 겁니다. 짜맞춤이라고 합니다.”
“그거 어렵습니까?”
“쉬우면 못을 왜 만들었겠습니까?”
그가 종이에 그림을 그려 줬다. 세로판 안쪽에 홈이 파여 있고 거기 가로판이 들어가는 그림이다.
“홈 깊이가 판 두께의 삼분의 일입니다. 십이 밀리면 사 밀리요. 깊으면 세로판이 부러지고 얕으면 가로판이 빠집니다.”
“오차는 얼마나 됩니까?”
“0.5밀리요.”
나는 그 숫자를 듣고 손을 봤다.
내 손은 오 밀리는 맞출 수 있다. 활자를 앉히던 손이다. 그런데 활자는 눌러서 맞추는 것이고 나무는 깎아서 맞춘다. 깎은 것은 되돌릴 수 없다.
“해 보십시오.” 최기범이 말했다. “한 칸 짜는 데 보통 열 번쯤 실패합니다.”
나는 아홉 번 실패했다.
여덟 번은 홈이 얕았고 한 번은 깊었다. 깊은 것은 세로판이 그 자리에서 쪼개졌다. 쪼개지는 소리가 작업장에서 유난히 컸다.
합판 열두 장 중에 석 장이 그렇게 없어졌다.
쪼개진 세로판 석 장을 나는 폐기함에 넣으려고 들고 나왔다.
작업장 문 앞에서 박두식과 마주쳤다. 그 사람이 구경하러 온 날이다.
“그거 뭐야.”
“쪼개진 겁니다.”
“버리게?”
“예.”
“놔둬.”
“…쓸 데가 없습니다.”
박두식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한 장을 줬다.
그가 그것을 만졌다. 보지 않고 만졌다. 쪼개진 자리를 손끝으로 따라갔다.
“여기 결이 돌았어.”
“…예?”
“여기서 결이 돌아서 쪼개진 거야. 임씨 손이 잘못한 게 아니고.”
“…”
“이런 건 처음부터 안 쪼개지는 데가 없어.”
그가 그것을 돌려줬다.
“쪼개진 데 말고 성한 데가 더 많잖아.”
“…예.”
“그럼 성한 데를 써.”
나는 그 석 장을 작업대 밑에 뒀다.
그해 겨울에 그중 한 조각을 깎아서 책 옆에 세우는 받침을 만들었다.
성경 여섯 권이 안 쓰러지게 하는 나무 조각이다.
열람실이 문을 열고 나서도 그것은 거기 있었다.
책이 백 권이 넘고 서가가 여덟 칸이 된 뒤에도 안 치웠다.
치울 까닭이 없어서 안 치웠다.
쪼개진 자리는 지금도 만져진다. 결이 돌아간 데다.
거기가 제일 단단하다. 나중에 알았다.
쪼개진 것을 안 버리는 사람이 방에 하나 있었다.
그 사람은 버리는 것을 안 배웠다고 했다.
아홉 장 남았을 때 나는 손을 놓았다.
그날 저녁 방에 돌아와서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저녁을 안 먹었다. 관식을 안 먹으면 방에서 티가 난다. 다들 봤을 텐데 아무도 안 물었다.
소등 뒤에 박두식이 말했다.
“임씨.”
“예.”
“몇 장 남았어?”
나는 어두운 데서 눈을 떴다.
“…아홉 장입니다.”
“열두 장이었잖아.”
“석 장 버렸습니다.”
“홈이지.”
나는 몸을 돌렸다. 문가 쪽은 캄캄했다.
“…어떻게 아십니까?”
“홈은 다 거기서 버려.”
박두식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다가 일어나는 소리가 났다. 소등 뒤에 일어나면 안 된다. 순찰이 지나가면 걸린다.
관물대 여는 소리가 났다. 아주 천천히 열었다. 쇳소리가 안 나게 여는 방법이 있다. 문을 들어 올리면서 연다.
그가 내 자리로 왔다.
“손 내.”
나는 손을 내밀었다.
무언가가 손바닥에 놓였다. 나무였다. 길고 납작했다.
“…이게 뭡니까?”
“자야.”
나는 어둠 속에서 그것을 만졌다. 길이가 한 뼘 반쯤이고 한쪽 면에 홈이 파여 있었다. 홈은 아주 얕고 일정한 간격으로 있었다.
눈금이다.
손끝으로 세어 보니 서른 개쯤이었다.
“…이거 직접 만드셨습니까?”
“응.”
“언제요?”
“한 이십 년 전에.”
“무엇으로요?”
“숟가락.”
나는 그 자를 두 손으로 잡았다.
“눈금은 어떻게 맞추셨습니까?”
“성냥갑.”
“…예?”
“그때는 성냥갑이 있었어. 가로가 오 센티야. 그거 대고 그었어.”
이십 년 전에 성냥갑 하나로 눈금을 그은 자가 내 손에 있었다.
“박 선생님.”
“응.”
“이거 왜 만드셨습니까?”
박두식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잴 게 있었어.”
다음 날 오후 작업 시간에 그가 작업장에 왔다.
박두식은 목공 배정이 아니다. 그 사람은 배정이 아예 없다. 나이와 형기 때문에 작업 면제를 받은 지 오래됐다.
면제받은 사람이 작업장에 오는 것은 규정 위반은 아니다. 다만 아무도 안 온다. 안 와도 되는 데를 오는 사람은 없다.
최기범이 그를 봤다.
“…박 선생님?”
“구경 좀 하려고.”
그는 내 작업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했다. 한 시간 동안 내가 홈 파는 것을 봤다.
한 시간이 끝날 때쯤 그가 말했다.
“임씨.”
“예.”
“끌을 세우지 마.”
“…예?”
“눕혀.”
“눕히면 안 파지는데요.”
“세우면 깊어져. 눕혀서 여러 번 긁어.”
나는 그날 그렇게 해 봤다.
열 번을 긁으니까 사 밀리가 됐다. 한 번에 사 밀리를 파는 것과 열 번에 사 밀리를 파는 것은 결과가 같은데, 열 번에 판 것은 바닥이 평평했다.
가로판이 들어갔다.
빡빡하게 들어갔다. 손으로 밀어 넣는데 뻑뻑해서 두 손으로 밀었다.
들어가고 나서 흔들어 봤다.
안 흔들렸다.
나는 그것을 들고 한참 있었다. 세로판 둘에 가로판 하나가 끼워진 것이다. 서가라고 부를 수도 없는 물건이다.
그런데 서 있었다.
“최 선생님.”
“예.”
“이거 봐 주십시오.”
최기범이 와서 봤다. 손으로 눌러 보고 흔들어 봤다.
“…이거 처음 짜신 겁니까?”
“열 번째입니다.”
“열 번째에 이 정도면 잘하시는 겁니다.”
“박 선생님이 알려 주셨습니다.”
최기범이 박두식을 봤다.
박두식은 이미 일어나서 문 쪽으로 가고 있었다.
“박 선생님.” 내가 불렀다.
그가 멈췄다.
“고맙습니다.”
박두식이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안 읽어.”
“…예.”
“그런데 만드는 건 해.”
그는 그러고 나갔다.
서가 다섯 칸을 짜는 데 넉 달이 걸렸다.
작업 시간은 하루 두 시간이고, 그중 대장 쓰는 데 삼십 분이 간다. 남는 한 시간 반으로 홈을 팠다. 한 칸에 홈이 네 개고, 홈 하나에 삼십 분씩 걸렸다.
10월 마지막 주에 다섯 칸이 다 됐다.
세워 놓으니 높이가 내 어깨쯤이었다. 폭은 팔을 벌린 것보다 조금 좁았다.
칸마다 스물세 권쯤 들어간다.
나는 그것을 세면서 웃었다. 아직 책이 서른두 권밖에 없다. 그중 스무 권이 법전이고 여섯 권이 성경이다.
여섯 권을 넣으면 한 칸의 사분의 일이 찬다.
빈 칸 네 칸 하고도 사분의 삼이 남는다.
서가를 창고로 옮기는 데 또 삼 주가 걸렸다.
작업장에서 만든 물건을 밖으로 내려면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는 두 가지를 본다. 안에 뭘 숨겼는가, 그리고 그것이 무기가 될 수 있는가?
서가는 크다. 큰 것은 오히려 검사가 쉽다. 숨길 데가 없다.
문제는 두 번째였다.
“이거 판이 넓어서 안 됩니다.” 검사 담당이 말했다.
“…넓으면 왜 안 됩니까?”
“들어서 치면 사람 하나 넘어갑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서가를 봤다. 어깨높이에 폭이 팔을 벌린 것보다 좁다. 무게가 이십 킬로쯤 된다.
“이거 혼자 못 듭니다.”
“둘이 들면 되죠.”
“둘이 들어서 치면 서로 걸립니다.”
담당이 나를 봤다.
“…그건 그렇네요.”
“그리고 이건 바닥에 고정할 겁니다.”
“어떻게요?”
나는 준비해 간 종이를 냈다.
서가 고정 방법(안) 1. 벽면 접촉 설치. 벽과의 간격 0. 2. 하단에 폐목재 받침을 대어 앞으로 넘어지지 않게 함. 3. 이동이 필요할 경우 근무 직원 입회 하에서만 함.
세 줄이다.
담당이 그것을 읽었다.
“이거 누가 만들었습니까?”
“제가요.”
“이런 걸 왜 만드십니까?”
“안 만들면 안 된다고 하실 테니까요.”
그는 잠깐 나를 보다가 도장을 찍었다.
11월 19일 목요일 오후 두 시에 서가가 그 방에 들어갔다.
윤재호와 최기범과 내가 옮겼다. 셋이 한 번에 한 칸씩 옮겼다. 복도 여든두 걸음을 다섯 번 왕복했다.
마지막 칸을 놓고 나서 우리는 셋 다 숨이 찼다.
방 안에 서가 다섯 칸이 벽을 따라 서 있었다.
창에서 비스듬히 들어온 빛이 바닥에 사각형을 그렸다. 다섯 해 전에 내가 삼십 분 동안 닦았던 그 자리다. 그 사각형이 이제 서가 두 번째 칸까지 닿았다.
아무것도 안 들어 있는 서가에 빛이 닿는 것을 나는 처음 봤다.
“임경식 씨.”
윤재호가 말했다.
“예.”
“이제 책만 있으면 되겠습니다.”
“…예.”
“몇 권 있습니까?”
“여섯 권입니다.”
“서른두 권 아니었습니까?”
“스무 권은 법전이고 여섯 권은 성경입니다.”
윤재호가 서가를 봤다. 다섯 칸이다. 칸마다 스물세 권이 들어간다.
“백열다섯 권 자립니다.”
“…예.”
“여섯 권이면.”
“한 칸의 사분의 일입니다.”
그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최기범이 옆에서 말했다.
“그럼 백아홉 권 모으면 되겠네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때는 백아홉 권이 얼마나 먼 숫자인지 몰라서 웃었다.
박두식은 그 서가를 한 번도 안 보러 왔다.
작업장에 온 것은 그날 한 번뿐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왜 자를 이십 년 전에 만들었는지, 무엇을 재려고 했는지 그때 안 물었다.
여섯 해 뒤에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