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207자)
최기범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방이 비고 나니까 방이 넓어 보였다.
열한 주 전에는 물건이 차 있어서 좁아 보였는데, 비우고 나니까 열 평이 열 평으로 보였다. 창 하나, 의자 둘, 녹색 바닥, 그리고 책상 다리 자국 넷.
그런데 그 넓이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빈 방은 오래 못 간다. 여기서 빈 자리는 반드시 채워진다. 창고를 비워 놓으면 다시 창고가 된다. 다음에 어디선가 부서진 물건이 나오면 그 방으로 간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채워야 한다.
채울 것은 서가다.
합판 열두 장은 이미 나가 있었다.
내가 1차 목록에 「재사용 가능」이라고 적어 둔 것이 화근이었다. 재사용 가능한 목재는 폐기하지 않고 목공 작업장으로 보낸다. 절차상 맞다. 내가 그 절차를 만든 것도 아니고 몰랐을 뿐이다.
목록을 잘 쓴 것이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온 첫 번째 경우다.
2020년 2월에 나는 목공 작업장에 다시 갔다.
네 해 만이다.
최기범은 그대로 있었다. 머리가 더 셌고 살이 좀 빠졌다. 여기서 사 년이면 사람이 그만큼 변한다.
“오랜만입니다.”
그가 대패질을 하다가 나를 봤다.
“…임 씨.”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죠. 나무 달라던 사람.”
“오늘도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최기범이 대패를 놓았다. 그리고 팔짱을 꼈다.
“여기 합판 열두 장 들어왔죠.”
“들어왔습니다.”
“복도 끝 창고에서 나온 겁니다.”
“압니다. 목록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거 제가 쓰면 안 됩니까?”
최기범이 나를 한참 봤다.
작업장은 시끄럽다. 톱 소리와 사포 소리가 계속 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보는 동안에는 그 소리가 안 들렸다. 실제로는 들렸을 텐데 기억에는 안 들린다.
“임 씨.”
“예.”
“내가 왜 안 된다고 하는지 아세요?”
“나무가 몽둥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건 절반이고요.”
그가 작업대 위를 손으로 쓸었다. 톱밥이 밀렸다.
“나머지 절반은 나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 팔 년 있으면서 반장을 육 년 했습니다. 반장이 뭘 하는 자리인지 아세요?”
“관리 아닙니까?”
“세는 자립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아침에 연장을 세고 저녁에 연장을 셉니다. 톱 넷, 대패 여섯, 끌 여덟, 망치 다섯. 스물세 갭니다. 스물세 개가 스물세 개여야 작업장 문이 닫힙니다.”
“하나가 비면요.”
“전체가 섭니다.”
“얼마나요?”
“나올 때까지요.”
최기범이 나를 봤다.
“육 년 동안 두 번 있었습니다.”
“…”
“한 번은 끌이었고 한 번은 각목이었습니다. 끌은 세 시간 만에 나왔습니다. 어떤 놈이 자기 관물대에 넣어 뒀어요? 팔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갖고 싶었대요.”
“각목은요.”
최기범이 대답을 안 했다.
“…”
“각목은 사흘 걸렸습니다.”
“어디서 나왔습니까?”
“사람 몸에서요.”
작업장 소리가 그때 다시 들어왔다.
“죽지는 않았습니다.” 최기범이 말했다. “한쪽 눈이 안 보이게 됐고요.”
그 소리가 다시 멀어졌다.
“그때 반장이 저 아니었습니다. 그다음부터 제가 됐습니다.”
“…”
“임 씨, 내가 나무 아까워서 안 주는 게 아닙니다.”
“압니다.”
“모르실 겁니다.” 그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나는 여기 나무 하나하나가 어디 있는지 다 압니다. 저 선반 두 번째 칸에 뭐가 몇 개 있는지 지금 말할 수 있어요. 그게 내 일입니다. 그거 하나 못 하면 나 때문에 누가 또 눈이 안 보이게 됩니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십 초쯤 서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서 있었다.
그러다 나는 그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았다.
그 사람은 나를 막은 것이 아니다. 자기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말한 것이다.
“최 선생님.”
“예.”
“지금 그거 어디 적혀 있습니까?”
“…뭐가요?”
“선반 두 번째 칸에 뭐가 몇 개 있는지요.”
최기범이 자기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두 번 쳤다.
“여기요.”
“종이에는요.”
“종이에는 연장만 적습니다. 목재는 안 적습니다.”
“왜요?”
“목재는 소모품이라 안 셉니다. 규정이 그렇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눈을 감았다.
연장은 스물세 개를 매일 두 번 세는데, 사람을 다치게 한 각목은 세지 않는 물건이었다.
“최 선생님.”
“예.”
“제가 목재 대장을 만들어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최기범이 인상을 썼다.
“대장이요?”
“들어온 것, 나간 것, 남은 것을 적는 겁니다. 연장처럼요.”
“그거 규정에 없습니다.”
“없어도 됩니다. 규정에 없는 걸 하는 건 안 막습니다. 규정에 있는 걸 안 하는 게 막히는 겁니다.”
그가 나를 봤다.
“…그거 누가 씁니까?”
“제가 씁니다.”
“매일이요?”
“작업장 오는 날마다요.”
“임 씨는 봉투 작업장이잖아요.”
“배정을 바꿔 달라고 하겠습니다.”
최기범이 팔짱을 풀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나는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대답이 나왔다.
“합판 열두 장이 필요합니다.”
“…”
“그런데 그 열두 장을 그냥 받으면 최 선생님이 위험해집니다. 그러면 저는 그 서가를 못 씁니다.”
“왜요?”
“누가 다쳐서 만들어진 서가는 아무도 안 옵니다.”
작업장이 조용해진 것 같았다. 실제로는 안 조용했을 것이다.
최기범이 작업대에 손을 짚었다.
“…대장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오는 길에 그려 온 것이다.
목재 수불 대장(안)
일자 / 품명 / 규격 / 입고 / 출고 / 잔량 / 확인
일곱 칸이다.
“일곱 칸이면 많은데요.”
“연장 대장은 몇 칸입니까?”
“…셋이요.”
“그럼 넷으로 줄이겠습니다.”
“왜 줄이십니까?”
“칸이 많으면 안 씁니다.”
최기범이 그 종이를 받아서 봤다. 한참 봤다.
“임 씨.”
“예.”
“이거 오늘 그린 겁니까?”
“오는 길에요.”
“…오는 길에 이걸 그리셨다고요.”
“복도가 여든두 걸음입니다. 그동안 머리로 그리고 여기서 옮겼습니다.”
그는 종이를 접었다. 세 번 접었다.
“다음 주에 오세요.”
“합판은요.”
“대장부터 씁시다.”
나는 그날 작업장을 나오면서 뒤를 한 번 봤다.
최기범은 다시 대패질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 옆 선반 두 번째 칸에 무엇이 몇 개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 사람은 안다.
그것을 육 년 동안 아무도 안 적어 줬다.
작업장을 나오기 전에 나는 하나를 더 물었다.
“최 선생님.”
“예.”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최기범이 손을 멈췄다.
“…누구요?”
“눈이 안 보이게 된 사람이요.”
그는 한참 대답을 안 했다.
“…아직 여기 있습니다.”
“…”
“일 사동에요.”
“만나신 적 있습니까?”
“매년 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최기범이 대패를 집었다.
“아무 말도 안 합니다.”
“…”
“그쪽도 안 하고 나도 안 합니다.”
그가 대패질을 시작했다.
“그 사람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내가 반장이 아니었을 때 일입니다.”
“…압니다.”
“아는데 매년 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왔다.
목재 대장 첫 장 맨 위에 그날 한 줄을 적었다.
본 대장은 목재의 소재를 기록한다.
소재라는 말을 고르는 데 십 분이 걸렸다.
수량이라고 적으면 세는 이야기가 되고, 소재라고 적으면 어디 있는지 아는 이야기가 된다.
세는 것은 없어졌을 때 알아차리는 일이고, 아는 것은 없어지기 전에 아는 일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서류라는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을 했다.
서류는 나를 막는 것이라고 나는 오 년 동안 생각했다.
그날 처음으로 서류가 누군가를 지켜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작업장 배정을 바꾸는 데 삼 주가 걸렸다.
배정 변경은 신청서가 있다. 있는데 사유 칸이 좁다. 두 줄이다.
두 줄에 나는 이렇게 썼다.
목공 작업장 목재 관리 대장 작성을 보조하고자 합니다. 현 작업장(봉투)에서의 작업량은 전월 대비 감소 추세입니다.
두 번째 줄은 사실이었다. 그해 봄에 봉투 물량이 줄었다. 밖에서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우리는 몰랐고, 다만 접을 봉투가 줄었다.
나중에 보니 그것이 첫 신호였다.
3월에 배정이 바뀌었다.
봉투 작업장을 떠나는 날, 같이 접던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임 형님, 목공 가시면 톱 만져요?”
“아닙니다. 종이만 만집니다.”
“목공 가서 종이를 만져요?”
“대장을 씁니다.”
“…그게 뭔데요.”
“나무가 몇 개인지 적는 겁니다.”
한 사람이 웃었다.
“형님은 여기서도 종이 만지시네.”
나는 그 말이 그날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다.
밖에서 이십 년, 안에서 팔 년. 이십팔 년 동안 나는 종이만 만졌다.
목재 대장은 3월 2일부터 썼다.
첫 달에 숫자가 두 번 안 맞았다.
첫 번째는 3월 11일이었다. 각재 열다섯 개가 들어왔는데 저녁에 세니까 열넷이었다.
최기범의 얼굴이 하얘졌다.
“임 씨.”
“예.”
“다시 세십시오.”
나는 다시 셌다. 열넷이었다.
세 번 셌다. 열넷이었다.
작업장 문을 못 닫는다. 문을 못 닫으면 저녁 점호가 늦어지고, 점호가 늦어지면 사동 전체가 안다.
“…전부 서십시오.” 최기범이 말했다.
작업장 열아홉 명이 자기 자리에 섰다. 아무도 말을 안 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끝나는지 다들 알고 있었다.
나는 대장을 폈다.
“최 선생님.”
“나중에 하세요.”
“아침 입고가 열다섯입니다.”
“압니다.”
“그런데 오전에 출고가 하나 있습니다.”
최기범이 나를 봤다.
“…출고요?”
나는 대장 세 번째 줄을 짚었다.
3.11 / 각재 30×30 / 1,200mm / 15 / 1 / 14 / 최기범
“오전 열 시에 선생님이 하나 가져가셨습니다. 견본으로요.”
“…”
“제가 적었습니다.”
최기범이 대장을 들여다봤다. 자기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자기 작업대 밑에서 각재 하나를 꺼냈다. 오전에 자기가 놓아둔 것이었다.
“…있네요.”
작업장이 조용했다가 누가 먼저 웃었다. 그다음에 다 웃었다. 열아홉이 웃었다.
최기범은 안 웃었다.
그날 저녁에 그가 나에게 왔다.
“임 씨.”
“예.”
“그거 없었으면 오늘 어떻게 됐을까요?”
“…”
“전에는 이런 날 사람을 셌습니다. 나무가 아니라 사람을요.”
그가 대장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이거 계속 쓰세요.”
넉 달 뒤에 그 대장의 다섯 번째 장에 이런 줄이 적힌다.
2020.07.06 / 합판 12mm / 900×1800 / — / 12 / 0 / 최기범
출고 열두 장.
받는 사람 칸에는 내 이름이 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