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051자)
화재 훈련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2019년 12월에 소방 점검이 있었다.
정기 점검은 일 년에 두 번이고 그중 한 번은 외부 소방서와 합동으로 한다. 합동 점검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직원들이 평소보다 말이 적고 걸음이 빠르다.
우리는 그날 대피 훈련을 했다.
훈련은 이렇게 한다. 사이렌이 울리면 방에서 나와 복도에 두 줄로 선다. 근무자가 인원을 센다. 세고 나서 계단으로 내려가 운동장에 사동별로 선다. 운동장에서 다시 센다.
두 번 세는 이유는 한 번 세면 틀리기 때문이다.
그날 세 번 셌다.
첫 번째에 하나가 남았다. 두 번째에 하나가 모자랐다. 세 번째에 맞았다.
남고 모자란 이유는 나중에 알았다. 사동 사이를 옮겨 다니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첫 번째 셀 때는 우리 쪽에 서 있었고 두 번째 셀 때는 저쪽으로 갔다. 그 사람은 자기가 어디 서야 하는지 몰랐다.
세 번을 세는 동안 우리는 운동장에 이십오 분을 서 있었다.
12월이다.
영하 6도쯤이었고 바람이 있었다. 다들 실내복 차림이다. 훈련은 갑자기 나오는 것이 원칙이라 외투를 못 입는다.
“이거 훈련 맞아?”
앞줄에서 누가 말했다.
“훈련이지.”
“불나면 이십오 분 동안 세고 있을 거야?”
“불나면 안 세지.”
“왜?”
“타 버려서 셀 게 없어.”
앞줄 몇이 웃었다. 뒤에서 근무자가 조용히 하라고 했다.
박두식은 웃지 않았다. 그 사람은 팔짱을 끼고 담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 안 추우십니까?”
“추워.”
“팔짱 끼시면 걸립니다.”
“걸려도 추운 게 나아.”
점검관 셋이 사동으로 들어간 것은 우리가 운동장에 있는 동안이었다.
소방서에서 둘, 시설에서 하나. 소방서 쪽은 제복을 입었다. 그 제복이 파란색이라 멀리서도 보였다.
그 셋이 사동 일층 복도 끝까지 갔다.
나는 운동장에서 그것을 봤다. 창을 통해 보인 것이 아니라, 복도 끝 창고에 창이 하나 있고 그 창에 불이 켜지는 것을 봤다.
십사 년 만에 그 방에 불이 켜졌다.
정확히는 십사 년이 아니라 십일 년이다. 마지막으로 쓴 것이 2005년이니까.
나는 그 노란 사각형을 이십 분쯤 봤다.
“임씨.”
“예.”
“뭐 봐.”
“…불이 켜졌습니다.”
박두식이 내 눈길을 따라갔다.
“그러네.”
“무슨 뜻일까요?”
“열었다는 뜻이지.”
방으로 돌아온 것은 열두 시가 다 돼서였다. 점심 배식이 삼십 분 늦어졌다. 소지인 나는 배식차를 밀고 가면서 복도 끝을 봤다.
창고 문이 열려 있었다.
문 앞에 물건이 나와 있었다.
부서진 책상 셋, 다리 없는 의자 여섯, 합판 열두 장, 신문지 뭉치 넷. 십오 년 전에 들어간 것들이 그날 복도로 나왔다.
그 옆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가연물 적치 — 정리 요망
나는 배식차를 밀면서 그 종이를 읽었다.
읽고 나서 손이 좀 떨렸다. 배식차 손잡이를 잡고 있어서 티는 안 났을 것이다.
가연물 적치.
불에 탈 것을 쌓아 뒀다.
네 해 전에 나는 그 방을 도서관으로 쓰게 해 달라고 했고, 안 된다는 답을 받았다. 사유는 화재 위험이었다.
그때 그 방에는 이미 신문지 뭉치 넷과 합판 열두 장이 있었다.
책은 없었다.
나는 그날 저녁에 그 계산을 했다. 신문지 뭉치 하나가 대략 오백 장이면 넷이면 이천 장이다. 합판 열두 장은 종이가 아니지만 더 잘 탄다. 책 오십 권은 종이로 치면 만 장쯤 되는데, 묶여 있는 만 장은 흩어진 이천 장보다 안 탄다.
계산을 마치고 나는 그 종이를 안 썼다.
쓰면 이유가 하나 더 생긴다. 그것은 네 해 전에 배운 것이다.
대신 나는 다른 것을 냈다.
건의 내용 사동 1층 복도 끝 유휴 공간의 정리 작업에 신청인을 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건의 사유 현재 해당 공간은 정리 요망 지적을 받은 상태입니다. 신청인은 소지로서 해당 복도를 1일 3회 통행하며, 별도 인력 배정 없이 작업이 가능합니다. 작업은 근무 직원 입회 하에 이루어집니다.
도서관 이야기는 한 줄도 안 썼다.
이 건의서를 쓰는 데 삼십 분이 걸렸다. 앞의 것들은 몇 주씩 걸렸는데 이것은 삼십 분이었다.
빠른 이유는 하나다. 이번에는 저쪽이 이미 하고 싶어 하는 일이었다.
회신은 나흘 만에 왔다.
결 과: 승인 조 건: 주 2회, 회당 1시간. 근무 직원 입회. 반출 물품은 목록 작성.
나는 그 종이를 세 번 읽었다.
승인이라는 두 글자를 나는 그때 처음 받았다.
도서관 승인이 아니다. 청소 승인이다. 그런데 그 두 글자는 같은 글자다.
“박 선생님.”
“응.”
“승인 받았습니다.”
박두식이 고개를 들었다.
“뭘?”
“청소요.”
“…청소를 승인받았다고?”
“예.”
그 사람이 나를 좀 오래 봤다.
“임씨.”
“예.”
“그거 좋은 거야?”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준비하는 데 삼 초쯤 걸렸다.
“그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청소하러.”
“예.”
“청소만 하고 나올 건데.”
“예.”
박두식이 벽에 등을 붙였다.
“그럼 좋은 거네.”
첫 작업은 12월 19일 목요일 오후 두 시였다.
윤재호가 입회했다.
그 사람은 문 옆에 서서 손목시계를 봤다.
“한 시간입니다.”
“예.”
“반출 물품은 적어야 합니다.”
“적을 종이가 있습니까?”
그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줬다. 접혀 있지 않은 A4였다.
나는 그 종이 위쪽에 제목을 썼다.
반출 물품 목록(1차)
그리고 밑에 표를 그렸다. 항목, 수량, 상태. 세 칸이다.
윤재호가 그것을 봤다.
“…표를 그리십니까?”
“목록은 표가 편합니다.”
“그냥 적으셔도 됩니다.”
“나중에 세야 하니까요.”
그가 아무 말도 안 했다.
한 시간 동안 나는 신문지 뭉치 둘을 냈다. 뭉치 하나를 옮기는 데 삼 분이면 되는데, 목록에 적으니까 십 분이 걸렸다.
1. 신문지 뭉치 2 — 2005년 이전. 습기로 삭음. 폐기 가능 2. 합판 12 — 두께 12mm. 곰팡이 없음. 재사용 가능 3. 의자 6 — 다리 파손 4, 온전 2
세 번째 줄을 쓰다가 나는 손을 멈췄다.
온전 둘.
의자 여섯 중에 둘은 멀쩡했다.
십오 년 동안 그 방에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둘 있었다.
“임경식 씨.”
“예.”
“시간 다 됐습니다.”
나는 목록을 접어서 그에게 줬다.
그가 받아서 봤다. 보면서 문을 잠갔다.
“다음 주에도 하십니까?”
“예.”
“몇 주 걸리겠습니까?”
나는 방 안을 한 번 봤다. 아직 반이 남아 있었다.
“여섯 주로 봅니다.”
여섯 주가 아니라 열한 주가 걸렸다.
그 열한 주 동안 나는 그 방에 열한 번 들어갔다. 한 번에 한 시간씩, 열한 시간이다.
십일 년 동안 아무도 안 들어간 방에 열한 시간을 들어갔다.
그해 점검 결과가 사동 게시판에 붙었다.
한 줄이 있었다.
소화기 총 18기. 이상 없음.
나는 그 앞에 서서 그 수를 봤다.
열여덟이다.
네 해 전에 방에서 커피 셋이 걸린 내기가 있었다. 내가 열여덟이라고 했고 둘이 아니라고 했다.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안 끝난 내기다.
나는 그날 저녁에 그 이야기를 안 했다.
내기를 건 둘 중 하나는 이감을 갔고 하나는 정상우인데 그 사람은 나갔다.
이길 사람이 없는 내기는 안 끝난다.
지금도 안 끝났다.
세 번째 주에 바닥이 나왔다.
먼지를 걷어 내면 바닥이 나온다. 그 바닥이 녹색이라는 것을 나는 네 해 전 삼십 분 동안 사각형 하나만큼 알았다. 열한 주 동안 나는 그 사각형을 방 전체로 넓혔다.
바닥은 장판이 아니라 도료를 칠한 콘크리트였다. 녹색 도료다. 학교나 관공서에서 쓰던 색이다. 밖에서는 이제 안 쓴다.
가운데쯤에 도료가 벗겨진 자리가 있었다.
동그랗지 않고 길쭉했다. 길이가 한 뼘 반쯤이고 폭이 손가락 넷쯤이다. 그런 자리가 넷 있었다. 넷이 사각형으로 놓여 있었다.
책상 다리 자리다.
책상 하나가 아주 오래 같은 자리에 있으면 그 밑의 도료가 눌려서 벗겨진다. 밖에서 나는 그런 것을 인쇄기 밑에서 봤다.
그 자리를 재 보니 폭이 백이십 센티미터쯤이었다.
교탁이다.
앞에 교탁이 있고 그 앞에 의자 스무 개가 한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자리를 걸레로 닦으면서 한참 앉아 있었다.
“임경식 씨.”
윤재호가 문 옆에서 말했다.
“예.”
“뭐 보십니까?”
“…자국이 있습니다.”
“무슨 자국이요.”
“책상 다리 자국입니다. 여기 오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안으로 두 걸음 들어왔다. 그 사람이 그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늘 문 옆에 서 있었다.
그가 그 자국을 봤다.
“…이거 얼마나 있어야 이렇게 됩니까?”
“몇 년은 있어야 합니다.”
“몇 년이요?”
“도료 두께에 따라 다른데, 오 년은 넘습니다.”
윤재호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선생님.”
“예.”
“여기서 뭘 가르쳤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기록이 있습니까?”
“…찾아보겠습니다.”
그는 그러고 문 옆으로 돌아갔다.
일곱 번째 주에 의자 문제가 생겼다.
목록에 「온전 2」라고 적어 둔 의자 둘이다. 반출 물품은 전부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이건 멀쩡한데요.”
“멀쩡해도 반출 목록에 올라갔습니다.”
“다시 내리면 안 됩니까?”
“내리는 절차가 없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잠깐 생각했다.
“그럼 안 올리면 되겠습니다.”
“…이미 올라갔는데요.”
“1차 목록에 올라갔습니다. 2차 목록에는 「방 안 잔류」로 적겠습니다.”
윤재호가 나를 봤다.
“그게 됩니까?”
“1차는 제가 썼습니다. 2차도 제가 씁니다.”
그가 처음으로 웃었다. 소리 없이 웃었다.
“임경식 씨.”
“예.”
“밖에서 뭐 하셨습니까?”
“인쇄소 했습니다.”
“…인쇄소요.”
“예.”
“그럼 서류는 왜 그렇게 잘 아십니까?”
“서류를 이십 년 찍었습니다.”
“찍는 거랑 쓰는 건 다르지 않습니까?”
나는 걸레를 짰다.
“이십 년 찍으면 뭐가 통과되고 뭐가 안 되는지 보입니다. 반려돼서 다시 찍으러 오는 서류가 있거든요.”
그날 의자 둘은 방에 남았다.
열한 주 뒤에 그 방에는 의자 둘과 바닥과 창 하나가 남았다.
들어갈 수 있게 해 준 것은 내 건의서 열한 장이 아니었다.
화재 위험이었다.
첫 번째 반려 사유가 그 문을 열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