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11자)
세 번의 검토 중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아홉 번째 건의서는 6월에 냈다.
여덟 번째와 다른 점은 한 줄이었다. 건의 내용에 「1일 2시간」이라고 썼던 것을 「1일 1시간(시범)」으로 줄였다.
줄인 이유는 하나다. 검토라는 말은 저쪽이 아직 안 정했다는 뜻이고, 안 정한 사람에게는 작은 것을 내밀어야 한다. 두 시간을 한 시간으로 줄이면 결재하는 사람이 절반만 책임진다.
회신은 사 주 만에 왔다.
결 과: 검토 중
두 번째 검토 중이다.
정상우는 9월 12일에 나갔다.
나가는 날 아침에 그는 관물대를 비웠다. 여기서 나가는 사람은 물건을 대부분 두고 간다. 밖에 가져가 봐야 쓸 데가 없는 것들이다. 플라스틱 대야, 수건 세 장, 반쯤 쓴 치약.
두고 가는 물건에는 순서가 있다. 좋은 것은 오래 있은 사람에게 가고, 나머지는 방에 남긴다.
정상우는 라면 네 개와 커피 스물두 개를 남겼다.
“형님.”
그가 나에게 왔다.
“예.”
“이거요.”
커피 스물두 개를 다 내밀었다.
“이건 안 됩니다.”
“왜요?”
“정 씨 것입니다.”
“저 나가면 이거 못 써요.”
“그래도 방에 나누십시오.”
정상우가 웃었다.
“형님, 이거 돈이에요.”
“압니다.”
“볼펜심 스물두 개예요.”
정상우는 커피를 세면서 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그 셈을 하고 있는 줄 몰랐다.
“…감사합니다.”
“그리고요.”
그가 주머니에서 종이를 하나 꺼냈다. 접혀 있었다. 두 번 접혀 있었다.
“이건 나가서 부칠게요.”
“뭡니까?”
“형님 주소요.”
“…제 주소요?”
“여기 주소요. 사동이랑 방 번호까지 적었어요.”
나는 그를 봤다.
“왜요?”
“편지 부치려고요.”
“…”
“일 년에 한 번씩 물어볼 거예요. 몇 번째까지 갔냐고.”
정상우는 그 뒤로 편지를 여덟 번 부친다. 여덟 번 다 같은 질문이 들어 있다.
첫 편지는 그해 12월에 왔다. 세 줄이었다.
형님 잘 계시죠. 저는 물류센터 다닙니다.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답장은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다음에 또 물어볼 거니까요.
나는 그 편지를 읽고 답장을 안 썼다.
쓰려고 종이를 폈다가 접었다.
접은 이유는 그날 밤에 정리가 안 됐고 지금은 정리가 된다.
그때 내가 쓸 수 있는 답은 하나였다.
「아직입니다.」
그것을 여덟 번 쓰면 여덟 번 다 같은 답이다.
나는 그해에 아홉 번째 건의서를 내고 회신을 받았다. 검토 중이었다. 그다음에도 검토 중이었다.
같은 서류에 같은 답이 오면 저쪽은 읽지 않고 있다.
나는 그것을 그해에 배웠다.
그러면 같은 답을 여덟 번 부치는 사람도 읽지 않고 있는 사람이 된다.
정상우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나는 못 했다.
「아직입니다」를 안 보내면 그 사람은 계속 묻는다.
계속 묻는 동안은 아직 안 끝난 것이 된다.
그것이 내가 답장을 안 한 이유다.
나는 그 이유를 아무한테도 말 안 했다.
말하면 변명이 된다.
말 안 하면 그냥 답장을 안 한 사람이 된다.
둘 중에 나는 뒤쪽을 골랐다.
편지는 관물대 문짝 틈에 안 넣었다.
거기는 반려 통지 자리다. 접어서 숨기는 자리다.
편지는 숨길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반듯하게 펴서 안쪽 철판에 붙였다. 밥풀 네 개로 붙였다.
검토 중 옆이었다.
붙여 놓고 보니까 이상했다.
한쪽은 아직이라고 하는 종이고 한쪽은 몇 번째냐고 묻는 종이다.
둘 다 답이 없는 종이다.
다른 것은 하나다.
검토 중은 저쪽이 나에게 보내는 것이고, 정상우 편지는 나간 사람이 안으로 보내는 것이다.
나가는 것은 쉽고 들어오는 것은 어렵다.
여기로 들어오는 종이는 다 검열을 거친다. 봉투가 뜯긴 채로 온다.
그 사람은 그것을 알면서 부친다.
검열하는 사람도 같은 줄을 여덟 번 읽는다.
여덟 번 읽고 여덟 번 다 통과시킨다.
그 사람도 답이 안 가는 것을 여덟 번 봤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 이름을 모른다.
이 이야기에 이름 없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이름 없는 사람은 대개 일하는 사람이다.
열 번째 건의서는 2019년 2월에 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바꿨다. 아홉 번째와 똑같이 냈다.
바꿀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같은 것을 내면 저쪽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었다. 같은 서류에 같은 답이 오면 저쪽은 읽지 않고 있다. 다른 답이 오면 읽고 있다.
결 과: 검토 중
같은 답이었다.
5월에 방이 바뀌었다.
방 이동은 통보로 온다. 아침 점호 때 번호를 부르고 오후까지 옮기라고 한다. 이유는 안 알려 준다. 대개 인원 조정이다.
나와 박두식이 같이 옮겼다. 그것은 드문 일이다. 대개 한 사람씩 흩어 놓는다.
새 방은 여덟 명이었다.
여덟이면 좁다. 여섯 방과 여덟 방은 넓이가 같다. 사람만 둘 더 들어간다.
나는 그 방에서 창가 자리를 받았다.
들어온 날짜로 정하는 규칙 때문이다. 그 방 여덟 중에 나보다 오래 있은 사람은 박두식뿐이었다. 그 사람은 문가를 골랐다.
“선생님이 창가 쓰셔야죠.”
“나는 문가가 좋아.”
“여름에 좋고 겨울에 나쁩니다.”
“겨울은 짧아.”
나는 그 말을 네 해 만에 다시 들었다.
창가에 처음 앉았을 때 나는 한참 창을 봤다.
창은 이중이고 바깥쪽에 철망이 있다. 유리가 뿌옇다. 뿌연 이유는 오래돼서가 아니라 안쪽에 사람 손자국이 쌓여서다. 손자국은 닦아도 안 지워진다. 유리에 손기름이 스며든 것이라 표면이 아니라 안쪽에 있다.
그 유리로 담이 보인다. 담 위로 하늘이 보인다.
하늘의 폭이 손바닥 세 개쯤이었다.
나는 그것을 재 봤다. 팔을 뻗어 손바닥을 세워서 셋을 채웠다.
박두식이 문가에서 그걸 봤다.
“임씨.”
“예.”
“그것도 세?”
“…예.”
“몇 개야?”
“세 개입니다.”
박두식이 웃었다.
“나는 두 개 반이었는데.”
“…선생님이 재 보셨습니까?”
“이십 년 전에.”
“왜 다릅니까?”
“팔 길이가 다르잖아.”
새 방에서는 여름 내내 야구 때문에 싸웠다.
여덟 중에 넷이 한 팀을 응원하고 셋이 다른 팀을 응원했다. 박두식은 야구를 안 본다.
문제는 두 팀이 같은 날 다른 채널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이다.
여기 텔레비전은 한 대고 채널은 다수결로 정한다. 다수결이면 넷이 이긴다. 넷이 매번 이기니까 셋은 매번 진다. 매번 지면 사람이 이상해진다.
7월에 셋이 규칙을 만들자고 했다.
“홀숫날은 우리 거 봅시다.”
“그럼 짝숫날은 우리 거고?”
“예.”
“7월은 홀숫날이 열여섯 개고 짝숫날이 열다섯 개인데.”
방이 조용해졌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나다. 나는 그냥 사실을 말했는데 그것이 불을 붙였다.
“그럼 우리가 하루 손해잖아.”
“8월도 홀수가 많아.”
“그럼 9월에 우리가 먼저 하면 되지.”
“9월은 정규 시즌 끝나가는데?”
“그러니까 9월이 더 중요하지!”
그날 밤 야간 점호까지 그 이야기가 갔다. 점호가 끝나고 소등이 됐는데 어두운 데서도 계속했다.
“임 형님.”
누가 나를 불렀다.
“예.”
“형님이 정해 주세요.”
“…제가요?”
“형님 서류 잘 쓰시잖아요.”
나는 어두운 천장을 보고 누워 있다가 일어나 앉았다.
“그럼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예.”
“두 분 다 우승 못 하면 어떻게 됩니까?”
“…”
“그때는 누가 채널을 갖습니까?”
한참 뒤에 문가에서 박두식이 말했다.
“그때는 뉴스나 봐.”
그해 두 팀은 다 우승을 못 했다.
9월 말에 두 팀이 다 떨어지고 나서, 방에서는 아무도 채널 이야기를 안 했다. 저녁마다 뉴스를 봤다. 뉴스를 보면서 다들 조용했다.
그 조용한 것이 나쁘지 않았다.
열한 번째 건의서는 9월에 냈다.
이번에는 한 줄을 더 넣었다.
※ 앞선 건의(2018-08, 2018-09, 2019-02)의 검토 결과를 함께 회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줄을 넣으면서 나는 조금 세게 나가는 것 같아 두 번 고쳤다. 처음에는 「회신해 주십시오」였다. 그다음에는 「회신 부탁드립니다」였다. 마지막이 「회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다.
같은 뜻인데 세 번 고쳐야 안심이 됐다.
회신은 11월에 왔다.
결 과: 검토 중
세 번째다.
나는 그 종이를 들고 방으로 갔다. 앞의 두 장은 관물대 안쪽 철판에 붙어 있었다. 밥풀로 붙여 놓은 것이 말라서 종이가 반쯤 떠 있었다.
세 번째 장을 그 옆에 붙였다.
붙이고 나서 문을 닫지 않고 봤다.
결 과: 검토 결 과: 검토 중 결 과: 검토 중 결 과: 검토 중
네 장이다. 넉 장 다 같은 말이다.
나는 그것을 보다가 이상한 것을 알았다.
글씨가 흐렸다.
관물대 문은 팔을 뻗으면 닿는 거리다. 그 거리에서 네 줄이 다 안 읽혔다. 첫 장은 읽히는데 옆의 것들이 흐렸다.
나는 얼굴을 뒤로 뺐다.
한 뼘쯤 뺐더니 읽혔다.
나는 그 자세로 잠깐 있었다. 종이에서 얼굴을 한 뼘 떼고 보는 자세다.
박두식이 그 자세로 내 도면을 봤다. 2015년이었다. 나는 그때 저 사람이 노안이구나 하고 생각했고,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임씨.”
박두식이 문가에서 말했다.
“예.”
“왔어?”
“왔습니다.”
“뭐래?”
“검토 중이랍니다.”
“몇 번째야?”
나는 관물대 문을 닫았다.
“세 번째입니다.”
“그럼 열한 번째네.”
“…예.”
“임씨.”
“예.”
“몇 년 됐지?”
나는 세었다. 셀 것도 없었다. 2015년 3월에 시작했고 지금은 2019년 11월이다.
“네 해 여덟 달입니다.”
박두식이 벽에 등을 붙였다.
“그동안 뭐가 늘었어?”
“종이가 늘었습니다.”
“그거 말고.”
그날 밤에 그 질문을 생각하면서 나는 손바닥을 폈다 접었다 했다. 관절이 아침에 뻣뻣하다. 봉투를 접으면 오후에 엄지가 아프다.
늘어난 것이 있었다.
나이가 늘었다.
마흔에 시작해서 마흔넷이 됐다. 그것 말고는 종이 열한 장이 전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이 일에 끝이 있는지 생각했다.
끝이 있는지 없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그날 밤에 나는 이런 결론을 냈고, 그 결론으로 그 뒤 일곱 해를 더 갔다.
끝이 없으면 끝을 만들면 된다.
끝을 만든다는 것은 내가 없어도 계속되게 만든다.
그 생각이 제3조가 된다. 그때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