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02자) · 지게차
밤의 매표소
오늘은 여덟 정거장을 걸었다 · 도경
퇴사 스무사흘째 밤, 잠이 안 왔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으니 계수기 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딸깍, 딸깍.
구청 재조사가 시작된 지 사흘째였다. 성하보행교 양쪽 끝에 조사원 둘이 파란 조끼를 입고 앉아 계수기를 눌렀다. 딸깍, 딸깍. 문 영감은 그 옆에 방석을 깔고 앉아 조사원들에게 보리차를 따라 줬다. 조사원 하나가 첫날 문 영감에게 물었다. 「어르신, 매일 여기 계세요?」 문 영감이 대답했다. 「당신들 계수기보다 오래 눌렀소.」
그 사흘 동안 극장 쪽은 조용하지 않았다. 극장 건물 셔터 앞에 가림막이 둘러쳐졌다. 석면 조사 중이라는 표지판. 극장은 회사 땅이다. 회사가 제 땅에 가림막을 치는 건 아무도 못 막는다. 가림막은 매표소 한 평을 빼고 둘러쳐졌다. 인도 한가운데 매표소만 가림막 밖에 남았다. 섬처럼.
문 영감은 공청회 다음 날부터 밤에도 매표소에 있었다. 창구 안 의자에서 잤다. 담요 한 장, 보온병 하나. 오순자 사장님이 저녁마다 반찬 반 통을 가져다줬다. 내가 말리자 문 영감이 말했다. 「극장 망하던 해 겨울에도 여기서 잤소. 주인 할머니 몰래. 표 팔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안 되지.」
그 밤 열두 시 사십 분, 나는 운동화를 신었다. 여덟 정거장을 밤에 걸어 본 적은 없었다. 시장 셔터는 다 내려가 있었다. 순자네 반찬 셔터에 누가 분필로 적어 놓았다. 코피 총각 파이팅. 큰길 사거리는 신호만 혼자 바뀌고 있었다. 팔십 초. 건너는 사람이 없어도.
한 시 오 분, 극장 앞에 닿았을 때 소리가 먼저 들렸다. 엔진 소리. 유압 소리. 가림막 뒤에서 지게차 한 대가 나오고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매표소를 비췄다. 지게차 뒤로 검은 조끼 넷. 맨 앞에 탁 반장. 다른 구역으로 돌렸다던 사람.
지게차 포크가 매표소 밑동으로 들어갔다. 매표소가 삐걱거렸다. 창구 유리가 흔들렸다. 안에서 문 영감이 일어서는 게 보였다. 창구 너머로.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내리쇼! 사람 있소!”
탁 반장이 매표소 문을 두드렸다.
“영감님, 나오세요. 이거 인도 불법 점유 시설물이에요. 구청 계고 나갔어요. 우리가 대신 치워 드리는 거예요. 나오세요.”
“계고장 본 적 없소!”
“붙였는데 비에 떨어졌나 보죠.”
나는 뛰었다. 지게차 앞으로. 헤드라이트가 눈을 찔렀다. 운전석의 남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포크가 매표소를 반쯤 들어 올린 채로 멈췄다. 매표소가 기울었다. 안에서 뭔가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표 뭉치, 돈통, 보온병.
“내리세요. 안에 사람 있습니다.”
탁 반장이 나를 봤다. 웃었다. 이가 누렜다.
“코피 총각. 밤 산책 나오셨네.”
“매표소는 문기춘 씨 사유지 위에 있습니다. 등기부에 있습니다. 인도 점유가 아닙니다. 계고 대상이 아닙니다. 지금 하시는 건 특수손괴입니다.”
“말 많네.”
탁 반장이 조끼 하나에게 턱짓했다. 조끼 둘이 내 양팔을 잡았다. 나는 끌려 나갔다. 운동화 뒤축이 아스팔트에 끌렸다. 탁 반장이 지게차 운전석에 손짓했다. 포크가 다시 올라갔다.
매표소 문이 열렸다. 문 영감이 기울어진 문틀을 짚고 나왔다. 담요가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문 영감은 지게차 포크 앞에 섰다. 등을 세우고. 헤드라이트 정면으로.
“내 한 평이오. 이십일 년.”
탁 반장이 문 영감 앞으로 갔다.
“영감님. 비키세요.”
“탁씨네. 당신 어머니가 당신 업고 이 매표소 앞에 서 있었소. 기저귀 갈아 달라고. 이 창구에서 내가 갈았소.”
“그러니까요. 그 창구, 이제 치웁시다.”
탁 반장이 문 영감의 어깨를 밀었다. 가볍게. 그런데 일흔여덟 살 몸에는 가볍지 않았다. 문 영감이 뒤로 넘어졌다. 손을 짚었다. 아스팔트에. 뚝 소리가 났다. 작고 분명한 소리. 문 영감이 신음도 내지 않고 손목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나는 팔을 비틀어 조끼 하나의 손을 뿌리쳤다. 다른 조끼가 내 목을 감았다. 그때 헤드라이트가 하나 더 들어왔다. 큰길 쪽에서. 흰 승용차 한 대가 인도 턱까지 올라와 섰다. 운전석 문이 열렸다. 회색 점퍼. 한석이었다. 대리운전 중이었다. 뒷좌석에 손님이 타고 있었다. 한석은 손님에게 뭐라고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휴대폰을 들고. 카메라 불이 켜져 있었다.
“지금 찍고 있습니다. 한 시 십이 분. 성하동 중앙극장 앞. 노인 폭행, 사유 시설물 무단 철거. 112 신고 이미 했습니다.”
한석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조사원의 목소리였다. 시각, 장소, 대상. 칸을 채우는 목소리.
탁 반장이 한석을 봤다.
“당신 뭐야.”
“셉니다. 지게차 한 대, 조끼 넷, 반장 하나. 넘어진 노인 하나.”
한석은 지게차 앞으로 걸어가 포크와 매표소 사이에 섰다. 포크가 그의 무릎 높이에 있었다.
“이거 내리세요. 삼 년 전에 저는 칸을 비웠어요. 오늘은 안 비워요.”
운전석의 남자가 탁 반장을 봤다. 탁 반장이 한석을 봤다. 한석의 휴대폰 카메라를 봤다. 뒷좌석의 대리 손님까지 창문을 내리고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탁 반장은 한참 서 있다가 운전석에 손짓했다. 포크가 천천히 내려갔다. 매표소가 땅에 닿았다. 기울어진 채로. 창구 유리에 금이 갔다. 한 줄, 대각선으로.
순찰차 사이렌이 큰길에서 들어왔다.
문 영감은 구급차에 실려 갔다. 손목 골절. 구급대원이 들것에 눕히려 하자 문 영감이 거절하고 앉아서 탔다. 등을 세우고. 다친 손을 가슴에 안고, 성한 손에 매표소 열쇠를 쥐고. 구급차 문이 닫히기 전에 나를 불렀다.
“재우 씨. 표 뭉치. 안에 쏟아졌소. 주워 주쇼. 순서대로.”
탁 반장은 순찰차 뒷좌석에 탔다. 수갑은 없었다. 경찰이 현행범이니 서까지 같이 가자고 했다. 탁 반장이 차에 타기 전에 경찰에게 말했다. 「회사 지시예요. 저는 시킨 대로 했어요.」 경찰이 물었다. 누가 시켰느냐고. 탁 반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석은 대리 손님을 마저 모셔다드려야 한다고 했다. 운전석에 오르기 전에 나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영상 파일을 전송하는 중이었다.
“원본은 제가 갖고 있을게요. 이번엔 서랍에 안 넣어요.”
그가 떠난 뒤 나는 기울어진 매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표 뭉치가 쏟아져 있었다. 누렇게 바랜 입장권 수백 장. 날짜 도장이 다 같았다. 2005년 3월 14일. 팔리지 않은 표들. 나는 휴대폰 불빛을 켜고 쪼그려 앉아 한 장씩 주웠다. 순서대로. 일련번호가 찍혀 있었다. 오백 번대부터 시작했다. 내가 산 다섯 번째 표 다음 번호부터.
다 주웠을 때 새벽 세 시였다. 창구 유리의 금 사이로 가림막이 보였다. 가림막 너머 극장 지붕. 기울어진 매표소 안에 앉으니 지붕이 보였다. 문 영감이 다리에서만 보인다고 했던 그 지붕이, 여기서는 앉아도 보였다. 기울어져서.
노트를 펴지 않았다. 대신 표 뭉치 맨 위 한 장 뒷면에 볼펜으로 적었다.
9월 24일 새벽 · 한 시 오 분부터 세 시까지 · 극장 앞 매표소 · 기울었음 · 유리에 금 한 줄 문 영감 · 손목 · 앉아서 구급차 한석 · 칸을 안 비움
그 표를 표 뭉치 맨 위에 올려놓았다. 팔리지 않은 표들 위에, 오늘 쓴 표 한 장.
아침 아홉 시, 성하병원 정형외과 병실. 문 영감은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등을 세우고. 오순자 사장님이 먼저 와 있었다. 보온 도시락에 흰죽. 도라지무침 반 통. 사장님이 죽을 떠서 문 영감 입에 넣으려 하자 문 영감이 왼손으로 숟가락을 빼앗았다.
“왼손도 손이오.”
“영감님 왼손으로 밥 먹는 거 처음 보네. 흘리기만 해 봐.”
문 영감은 흘렸다. 사장님이 앞치마로 닦았다. 둘 다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표 뭉치를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았다. 순서대로. 맨 위에 내가 새벽에 적은 한 장. 문 영감이 왼손으로 그 표를 집어 뒷면을 읽었다. 한참.
“기울어진 매표소에서 지붕이 보입디다. 앉아서도.”
내가 말했다. 문 영감이 나를 봤다.
“그래? 이십일 년 동안 반듯해서 안 보였구먼.”
그는 웃었다. 웃다가 손목이 울렸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열 시에 병실 문이 열렸다. 윤 상무였다. 혼자. 넥타이가 없었다. 손에 과일 바구니. 그는 문 앞에 서서 들어오지 않았다. 사장님이 주걱 대신 숟가락을 쥐고 일어섰다.
“뭐 하러 왔어.”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윤 상무는 문 영감에게 허리를 숙였다. 오래. 문 영감은 대답하지 않았다. 왼손으로 죽을 떠먹었다.
나는 복도로 나갔다. 윤 상무가 따라 나왔다.
“시키셨습니까?”
“안 시켰다.”
“탁 반장은 회사 지시라고 했습니다.”
“회사는 나만 있는 게 아니야.”
윤 상무는 복도 창에 등을 기댔다. 처음 보는 자세였다. 그는 늘 등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문 영감처럼.
“공청회 끝나고 대표님이 불렀다. 다리 한 주 밀린 거, 매표소 석 달 밀린 거, 합치면 이자가 얼마냐고. 나는 협의 보상 두 배로 가자고 했어. 대표님은 알았다고 했고. 나는 그걸 믿었다. 어젯밤 탁이 대표님 비서실 번호로 전화 받은 건 오늘 아침에 알았다.”
그는 과일 바구니를 복도 의자에 내려놓았다.
“재우야. 나 오늘 사표 쓸까 생각했다. 근데 안 쓸 거다. 내가 나가면 이 사업은 대표님 비서실이 맡아. 그러면 탁이 같은 사람이 열 명 더 와. 내가 있어야 그나마 두 배라도 줘.”
“칠십은요.”
“오십으로 올린다. 그건 내가 할 수 있어.”
“다리는요.”
윤 상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마디를 했다.
“그 조사원 영상, 경찰에 갔지. 우리 법무팀이 벌써 알아. 그 조사원 삼 년 전 서명 건으로 먼저 치려고 할 거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
그는 복도를 걸어갔다. 과일 바구니는 의자에 남았다. 사장님이 병실 문틈으로 그걸 보다가, 한참 뒤에 들고 들어갔다. 「과일은 죄가 없지.」
병원을 나오는데 누나가 전화했다. 동네 단톡방 영상을 봤다고. 지게차 앞에 선 회색 점퍼. 넘어지는 노인. 끌려가는 남자. 「그 끌려가는 게 너지.」 「응.」 누나는 한참 말이 없다가 말했다. 「형부가 오늘 회사에 휴가 냈어. 조경 공사 보류돼서 어차피 할 일 없대. 형부가 그 매표소 세워 주러 가도 되냐고 물어보래. 형부 조경 하잖아. 기운 거 세우는 거 잘해.」 나는 병원 앞 계단에 주저앉았다. 누나가 덧붙였다. 「우리 이자는 우리가 알아서 해. 네가 계산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