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21자) · 내 이름 여섯 번
공청회
오늘은 여덟 정거장을 걸었다 · 도경
퇴사 스무날째. 아침에 극장 매표소 앞을 지나는데 문 영감이 양복을 입고 있었다. 짙은 감색. 어깨가 조금 컸다. 소매 끝이 반들반들 닳아 있었다. 극장 개관 삼십 주년 때 주인 할머니가 맞춰 준 양복이라고 했다. 입은 건 그날 이후 처음이라고.
“공청회는 극장 개관식 같은 거요. 차려입고 가야지.”
“어르신, 개관식이 아니라 철거 공청회예요.”
“그러니까 더 차려입어야지. 마지막 날도 나는 넥타이 맸소.”
문 영감은 넥타이를 한 번 고쳐 맸다. 매듭이 옛날 모양이었다. 두껍고 짧은.
성하구민회관 대강당. 오후 세 시.
강당에는 접이식 의자가 이백 개 깔려 있었다. 반쯤 찼다. 천장 선풍기가 느리게 돌았고, 무대 뒤 현수막에는 성하1구역 재정비촉진계획 주민 공청회라고 적혀 있었다. 촉진이라는 글자만 유난히 컸다. 앞쪽은 양복들이었다. 대성개발 직원, 설계 용역사, 구청 도시정비과. 뒤쪽은 동네 사람들이었다. 시장 상인들이 가운데 줄에 모여 앉았다. 떡집 사장님, 건어물 사장님, 신발 가게 사장님. 오순자 사장님은 그 가운데에 앉아 무릎에 비닐봉지를 올려놓고 있었다. 봉지 안에서 반찬 통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문 영감은 맨 앞줄 끝, 통로 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 등을 세우고. 무릎에 옛 방석을 올려놓고.
단상에 윤 상무가 올라갔다. 화면에 조감도가 떴다. 유리 아파트, 왕복 사 차로 다리, 넓은 공원. 윤 상무는 원고를 보지 않고 말했다. 이십 분. 주거 환경 개선, 교통 편익 연간 삼십이억, 공공 기여, 일자리.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끝에 한마디를 붙였다.
“이 사업에는 우리 회사 직원 삼백 명과 협력사 천 명의 생계가 걸려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분의 재산 가치가 걸려 있습니다. 둘 다 지키는 게 저희 일입니다.”
박수가 조금 나왔다. 앞쪽에서.
주민 발언 순서. 사회를 보던 남기선 주무관이 명단을 읽었다. 세 번째에 내 이름이 있었다. 앞의 둘은 조합 쪽 사람이었다. 빨리 해 달라고. 집값 떨어진다고.
내 이름이 불리자 앞쪽 양복들이 몇 명 돌아봤다. 대성 원가팀 후배 둘이 거기 있었다. 한 명은 입사 이 년 차. 내가 엑셀 단축키를 가르쳐 준 애였다. 그 애가 고개를 숙였다. 볼펜을 쥔 손이 무릎 위에서 멈춰 있었다.
나는 단상으로 가지 않고 통로 마이크 앞에 섰다. 신발 가게 사장님이 준 깔창 덕에 발바닥이 조금 높았다. 노트를 폈다. 첫 장부터.
“재우입니다. 성하동 주민은 아닙니다. 옆 동네 삽니다. 매일 성하동을 걸어서 지나갑니다. 스무 날째입니다.”
강당이 조용했다. 천장 선풍기 도는 소리만 났다.
“그리고 대성개발에서 십일 년 일했습니다. 원가 분석. 성하1구역 사업성 분석을 제가 했습니다. 먼저 제가 쓴 걸 읽겠습니다.”
나는 휴대폰 사진을 보면서 읽었다. 윤 상무가 한정식집에서 내민 출력물을 찍어 둔 것.
“보상 산정표. 영업손실 보상 가정 칠십 퍼센트 제외. 메모, 업계 평균 수준, 재검토 불요. 작성자 재우. 업계 평균은 사십입니다. 제가 틀리게 썼습니다. 알면서.”
가운데 줄에서 누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떡집 사장님이었다.
“보행교 철거 편익. 일평균 이용자 사십일 명 적용. 메모, 공식 수치, 현장 확인 불요. 작성자 재우. 저는 현장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달에 처음 걸었습니다.”
“조기 이주 인센티브. 결속도 높은 상가군 우선 제안, 이탈 효과 기대. 작성자 재우. 이탈 효과는 이웃끼리 서로 의심하게 만드는 걸 말합니다. 지난 월요일 시장에서 그걸 봤습니다. 제가 쓴 한 줄이 셔터 여섯 개를 내리게 했습니다.”
오순자 사장님이 봉지를 꼭 쥐었다.
“이제 제가 걸으면서 센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노트를 넘겼다. 바를 정 자가 빼곡한 쪽.
“성하보행교. 평일 두 시간 백열넷. 한 시간 쉰일곱. 유모차, 휠체어, 자전거 끌고 가는 사람, 학교 끝나는 아이들 서른 명. 그리고 이십일 년 동안 그 다리에 앉아 계신 분이 불러 준 하루치. 아침 여덟 시 반 오십, 열한 시 서른, 두 시 스물, 네 시 오십, 여섯 시 백. 이백오십. 비 오는 날 백이십오. 교통영향평가의 사십일은 비 오는 화요일 오후 두 시간 숫자입니다. 그걸 하루치 칸에 넣었습니다. 그 사십일에 곱하기를 한 사람이 저입니다.”
앞쪽에서 윤 상무가 손을 들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넘겼다. 윤 상무는 일어서서 뒤를 돌아 강당 전체를 봤다.
“방금 들으신 대로입니다. 이분이 이 사업의 숫자를 만든 분입니다. 저희 회사는 이분 판단을 믿고 결재했습니다. 그런데 퇴사하고 스무 날 만에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바뀐 근거가 본인이 이틀 동안 다리에서 센 바를 정 자 몇 줄이고요. 여러분, 이틀 걸은 사람 말과 전문 기관 조사 중에 어느 쪽을 믿으시겠습니까. 게다가 이분은 회사 기밀을 이 자리에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법적 조치를 하겠습니다.”
강당이 웅성거렸다. 앞쪽에서 누군가 말했다. 「자기가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뭐야.」 뒤쪽에서도 누군가 말했다. 「그러게. 칠십 넣은 게 자기라며.」 조합 쪽 사람이 일어섰다. 「대성 사람이 대성 싸움을 왜 여기서 해!」 시장 상인 줄에서도 목소리가 섞였다. 「그 칠십 때문에 우리가 반값 받는 거잖아!」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마이크 앞에 서 있었다. 할 말을 준비해 왔다. 준비한 말 가운데 지금 맞는 게 하나도 없었다. 윤 상무 말에 틀린 데가 없었다. 이틀 걸은 사람. 칠십 넣은 사람. 둘 다 나였다.
그때 맨 앞줄 끝에서 문 영감이 일어섰다. 방석을 의자에 내려놓고. 지팡이 없이. 등을 세우고. 통로 마이크 쪽으로 걸어왔다. 사회자가 순서가 아니라고 말하려다 멈췄다. 문 영감이 내 옆에 서서 마이크를 손으로 끌어내렸다. 자기 입 높이로.
“문기춘이오. 중앙극장 매표원 삼십이 년. 그 다리에 이십일 년 앉아 있었소.”
강당이 조용해졌다. 동네 사람 절반은 그 얼굴을 알았다.
“저 상무 양반 말이 맞소. 이 젊은 사람은 이틀 셌소. 나는 이십일 년 셌소. 안 적었을 뿐이지. 이백오십이오. 내가 말한 거요. 이 사람이 받아 적은 거고.”
문 영감은 윤 상무 쪽을 봤다.
“그리고 숫자 만든 사람이 자기 숫자가 틀렸다고 하는 걸 나는 처음 봤소. 칠십팔 년 동안. 보통은 틀린 걸 안 사람이 입을 다물지. 극장 망할 때도 그랬소. 관객이 줄어드는 걸 다 알았는데 아무도 말을 안 했소. 매표원인 나만 알았지, 표가 안 팔리니까. 나도 말 안 했소. 그래서 극장이 하루아침에 망한 것처럼 됐지.”
문 영감은 마이크에서 손을 뗐다가 다시 잡았다.
“이 사람이 칠십을 넣었으면 이 사람이 칠십을 빼야지. 빼겠다는 사람을 왜 못 빼게 하오. 그 칠십 안에 순자가 있고, 저기 떡집이 있고, 내 한 평이 있소.”
가운데 줄에서 오순자 사장님이 일어섰다. 봉지를 들고. 봉지에서 반찬 통을 하나 꺼냈다. 도라지무침.
“문 영감님, 이거. 오늘 드시라고.”
누가 웃었다. 강당 몇 군데서 웃음이 번졌다. 사장님은 웃음 속에서 강당을 향해 말했다.
“나 도장 찍었어. 먼저. 다들 알지. 근데 이 총각이 우리 가게 반찬 통 트럭에 실리는 거 막았어. 코피 흘리면서. 칠십 넣은 거 이 총각 맞아. 근데 칠십 빼겠다고 코피 흘린 것도 이 총각이야. 나는 둘 다 봤어.”
떡집 사장님이 일어섰다. 건어물도. 신발 가게도. 박수는 없었다. 그냥 섰다. 셔터를 올리던 사람들처럼.
남기선 주무관이 사회자 마이크를 잡았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성하보행교 보행량은 구청이 직접 재조사하겠습니다. 평일과 주말, 맑은 날과 비 오는 날. 한 주 동안. 결과 나올 때까지 보행교 관련 계획은 보류로 정리하겠습니다.”
윤 상무가 뭔가 말하려고 일어섰다. 남 주무관이 그쪽을 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다른 건 관리처분 일정대로 갑니다.”
절반이었다. 다리는 한 주 벌었다. 시장과 극장은 그대로 달렸다.
공청회가 끝나고 강당 뒷문으로 나가는데 벽에 기대선 사람이 있었다. 회색 점퍼. 소매 끝 실밥. 한석이었다. 대리 콜이 제일 많은 시간이라고 했었다. 그는 나를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말은 없었다. 그러고는 먼저 나갔다.
저녁에 누나에게서 문자가 왔다. 「매형 회사에서 오늘 연락 왔대. 성하 조경 공사 착공 무기한 보류.」 한 줄이 더 왔다. 「공청회 영상 봤어. 네 이름 네가 읽더라. 아빠 닮았어.」
아빠는 장부를 틀리면 그 장부를 들고 거래처에 먼저 찾아가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게가 크지 못했다고 엄마가 말하곤 했다.
구민회관 주차장에서 윤 상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 문을 열어 놓은 채로.
“재우야. 오늘 네가 이긴 줄 알지.”
“아니요.”
“다리 한 주 번 거야. 한 주 재조사해서 이백오십 나와도, 교통 편익 계산은 우리가 다시 할 거야. 차량 수요를 올리면 편익은 또 나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숫자는 곱하는 쪽이 이겨.”
“그럼 다시 곱하실 때 이백오십을 넣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한 번 걸어 보시면 됩니다. 다리를. 아침 여덟 시 반에.”
윤 상무는 차 문 손잡이를 쥔 채로 나를 봤다. 한참.
“너 오늘 네 이름 읽을 때, 나는 네가 우는 줄 알았다.”
“안 울었습니다.”
“알아. 그래서 무서웠어. 십일 년 동안 네가 뭘 안 할 때가 제일 무서웠거든. 칠십 넣을 때도 넌 안 울었어.”
그는 차에 탔다. 창문을 내렸다.
“내용증명 갈 거다. 법무팀이 벌써 써 놨어. 내가 막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차가 떠났다. 주차장 출구에서 차가 한 번 멈췄다. 브레이크 등이 두 번 깜빡였다. 그리고 나갔다. 그게 무슨 신호였는지 나는 모른다. 운전을 오래 한 사람의 버릇일 수도 있었다.
밤 열 시, 대성개발 법무팀 명의의 내용증명이 이메일로 왔다. 영업비밀 누설 및 명예훼손. 법적 조치 예고. 나는 그것을 노트 사이에 끼웠다. 문 영감이 판 다섯 번째 표 옆에.
노트에 적었다.
9월 20일 · 구민회관 · 걷지 않음 내 이름 · 소리 내어 여섯 번 문 영감 · 양복 · 이십일 년 순자 · 도라지 · 둘 다 봤어 다리 · 한 주 보류 한석 · 뒷문 · 끄덕
마지막 줄에 누나의 문자를 옮겨 적었다. 아빠 닮았어. 적고 나서 그 줄을 오래 봤다. 누나가 그 말을 문자로 보낸 건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