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17자) · 웃는 차
육교에서
오늘은 여덟 정거장을 걸었다 · 도경
퇴사 열이틀째.
육교는 6구간에 있다. 왕복 팔 차로 위에 걸쳐 있고, 계단이 양쪽에 스물여덟 단씩이다. 스물여덟 단을 오르면 숨이 조금 찬다. 열이틀 걸었더니 스물여덟 단이 스무 단쯤으로 느껴진다. 무릎이 길을 외운 것이다.
여기까지 오려면 앞의 다섯 구간을 지나야 한다. 시장에서 오순자 사장님에게 오늘의 반 통을 사고, 큰길 사거리에서 버스를 세고, 극장 매표소 창구에 앉은 문 영감에게 인사하고, 다리를 건너고, 학교 앞을 지난다. 오늘의 반 통은 멸치볶음이었다. 사장님이 멸치를 봉지에 담으며 말했다. 「재우 총각, 요새 부동산 사람들이 우리 시장 사람들한테 하나씩 따로 찾아와. 따로따로. 같이 찾아오면 우리가 같이 버티니까.」
매표소 창구 너머에서 문 영감이 물었다.
“오늘은 어디까지 가오?”
“육교까지요.”
“거기 사람 하나 서 있소.”
“아세요?”
“삼 년 됐지. 퇴근 시간마다. 처음 몇 달은 가방 들고 넥타이 매고 왔어. 그다음엔 넥타이가 없어지고, 그다음엔 가방이 없어지더군. 사람이 뭘 하나씩 내려놓는 걸 보면 알아. 어디서 떨어져 나왔는지.”
문 영감은 창구 위를 손바닥으로 닦았다.
“그 사람한테 말 걸면, 너무 많이 묻지 마쇼. 삼 년 서 있는 사람은 대답이 하나밖에 없어. 그 하나를 기다려야 돼.”
육교 한가운데에서 오른쪽으로 세 걸음. 그 사람이 서 있었다. 열이틀 동안 열한 번 지나갔고, 열한 번 중 아홉 번 서 있었다. 사십 대 남자. 회색 점퍼. 소매 끝이 닳아 실밥이 나와 있다. 난간에 팔을 얹고 차를 본다. 난간의 페인트가 그의 팔 닿는 자리만 벗겨져 있다. 삼 년 치 팔꿈치 자국.
열두 번째에 나는 그 옆에 섰다. 서기까지 열한 번 걸렸다. 다리에서 문 영감에게 말을 걸 때는 엿새 걸렸다. 여기는 열이틀 걸렸다. 한 번 해 봤으면 다음이 쉬워야 하는 것 아닌가. 안 쉬웠다.
같이 차를 봤다. 이 분쯤 아무 말도 안 했다. 육교가 차가 지나갈 때마다 아주 조금씩 떨렸다.
“매일 오시네요.”
그가 먼저 말했다. 나는 좀 놀랐다.
“보셨어요?”
“열한 번 봤어요.”
“저도 열한 번 지나갔습니다. 두 번은 안 계셨고요.”
“어느 날이요?”
“나흘째하고 여드레째요.”
그가 나를 봤다.
“그것도 세셨어요?”
“네.”
“왜요.”
“할 게 없어서요.”
그가 웃었다. 「저도요.」
그의 이름은 한석이었다. 마흔여섯. 이름을 말하고 나서 그는 조금 멋쩍어했다. 삼 년 동안 이 육교에서 자기 이름을 말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 번 있었어요. 어떤 아저씨가 여기서 뛰어내리려는 줄 알고 경찰을 불렀어요. 경찰이 이름을 묻길래 말했죠. 경찰이 저를 한참 보더니 그러더라고요. 선생님, 차 세시는 거면 저기 교통 조사 알바 구하던데요.”
그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고 나서 둘 다 조금 조용해졌다.
우리는 차를 봤다. 퇴근 시간이라 막혔다. 여섯 시부터 일곱 시 반까지 이 팔 차로는 움직이는데 걷는 것보다 느리다. 십일 년 동안 나는 저 차 가운데 하나에 있었다. 창밖을 안 보고 휴대폰을 봤다. 위에서 나를 보던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다.
“여기서 뭐 보세요?”
“막히는 거요. 저기 흰 차 보이세요? 오 분 전에도 저기 있었어요. 오 분에 십 미터.”
“시속 백이십 미터네요.”
한석이 나를 다시 봤다. 이번에는 오래.
“계산이 빠르시네요.”
“그게 일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요.”
“원가 분석. 대성개발.”
한석의 팔이 난간에서 미끄러졌다. 그는 팔을 다시 올려놓지 않았다.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성하1구역.”
그가 말했다. 질문이 아니었다.
“아세요?”
“저 그 교통영향평가 조사원이었어요. 삼 년 전에. 용역 회사 하청의 하청. 성하보행교 보행량 조사. 이천이십삼 년 십일월 십사일 화요일 오후 두 시부터 네 시. 비 왔어요.”
나는 난간을 잡았다. 차가웠다. 육교 아래로 버스 세 대가 줄지어 기어갔다.
“사십일 명.”
“네. 제가 셌어요. 비 오는 두 시간에 사십일 명. 그건 거짓말 아니에요. 진짜 사십일 명 건넜어요. 우산 쓰고.”
한석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았다.
“조사표 양식에는 원래 칸이 있어요. 조사 시간대, 날씨, 요일. 그리고 하루 환산 계수. 평일 오후 두 시간을 하루로 늘리려면 여섯 배쯤 곱해야 돼요. 비 오는 날 보정도 해야 되고. 저는 그 칸에 여섯 점 이를 적었어요. 그럼 이백오십쯤 나와요.”
“이백오십.”
문 영감이 불러 준 숫자와 같았다. 이십일 년 동안 다리에 앉아 있던 사람과, 비 오는 화요일에 우산 쓰고 두 시간 센 사람이 같은 숫자에 닿았다.
“다음 날 팀장이 불렀어요. 환산 계수 칸 비우라고. 발주처 요청이라고. 이 조사는 첨두시 조사로 한다, 하루 환산 안 한다, 그러면 그 두 시간 숫자가 그냥 일평균 칸으로 간다고. 저는 싫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럼 다른 조사원 이름으로 다시 낸다고 했어요. 그 사람은 거기 안 서 있었는데. 그래서 제 이름으로 냈어요. 계수 칸 비우고. 서명했어요.”
“그리고 그만두셨어요?”
“삼 개월 뒤에요. 그 삼 개월 동안 조사를 네 개 더 했어요. 네 개 다 계수 칸 비웠어요. 한 번 하니까 쉽더라고요. 그게 무서워서 그만뒀어요.”
그는 아래 차들을 봤다.
“그 뒤로 여기 와서 서 있어요. 퇴근 시간마다. 다들 어디 가는 걸 보려고요. 저는 갈 데가 없으니까.”
“그거 우울하지 않으세요?”
“처음엔 우울했죠. 지금은 세요.”
“뭘요.”
“저 차들 중에 몇 대가 웃고 있나.”
그는 손가락으로 창을 짚어 가며 셌다. 조수석에 사람이 있고 둘이 말하고 있으면 센다고 했다. 그게 웃는 거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모르는데 센다고. 세는 게 안 세는 것보다 낫다고.
“오늘은 아홉 대요.”
나는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한석 씨. 구청에 민원을 넣었습니다. 사십일로는 그 다리를 없앨 수 없다고. 그 조사표 원래 계수를 말해 주시면.”
“싫어요.”
바로 나온 대답이었다.
“저 그거 말하면 허위 조사 공범이에요. 제 이름으로 서명했으니까. 용역 회사는 제가 멋대로 비웠다고 할 거고요. 팀장은 벌써 딴 데 갔고. 저는 지금 대리운전해요. 밤에. 조사원 경력 날아가면 그것도 못 해요.”
“그 숫자로 다리가 없어집니다. 매일 애들 오십 명이 난간에 매달려서 물 보는 다리가.”
한석이 나를 돌아봤다. 처음으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숫자로 편익 계산한 사람이 누군데요. 저는 두 시간 셌어요. 우산 쓰고. 당신은 그 숫자를 받아서 곱하기를 했잖아요. 에어컨 나오는 데서. 그 숫자가 이상하다는 거 안 보였어요? 하루에 사십일 명 건너는 다리를 누가 세금 들여서 만들어요. 한 번이라도 걸어 봤으면 알았을 거잖아요.”
그 말에 틀린 데가 없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있었지만 그 말은 변명이었다.
한석은 난간에서 떨어졌다. 계단 쪽으로 몇 걸음 가다가 멈췄다.
“당신은 열이틀째죠. 저는 삼 년째예요. 삼 년 동안 여기 서 있으면서 매일 생각했어요. 누가 한 번이라도 그 다리를 세러 오면 좋겠다고. 근데 그게 그 숫자를 곱한 사람일 줄은 몰랐네요.”
그는 계단을 내려갔다. 스물여덟 단. 한 단 한 단 무겁게. 내려가는 발소리가 차 소리에 묻혔다.
한석이 한 말을 나는 머릿속에서 다시 들었다. 한 번이라도 걸어 봤으면 알았을 거잖아요. 성하1구역 폴더를 연 날부터 사표를 낸 날까지 일곱 달. 그 일곱 달 동안 이 동네에 와 볼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다. 와 볼 생각을 안 했다. 필지 번호와 단가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걸으면 숫자가 흔들릴까 봐 안 걸었던 건지도 몰랐다.
나는 그 자리에 한 시간을 더 서 있었다. 한석이 서던 자리, 가운데에서 오른쪽으로 세 걸음. 퇴근 차들을 봤다. 조수석에 사람이 있고 둘이 말하는 차를 셌다. 일곱 대. 한석보다 둘이 적었다. 세는 눈이 아직 서툴렀다.
육교를 내려가려는데 계단 아래 편의점 앞에 검은 조끼 하나가 서 있었다. 성하1구역 현장 안전 관리. 탁 반장 옆에 있던 둘 중 하나. 그는 휴대폰을 들어 육교 위를 찍고 있었다. 나를. 그리고 방금 계단을 내려간 한석이 걸어간 쪽을. 내가 계단을 내려가자 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음료수 냉장고 앞에 서서 아무것도 고르지 않았다.
나는 편의점 유리문 앞에 섰다. 들어가지 않았다. 그가 유리 너머로 나를 봤다. 나도 그를 봤다. 그가 먼저 눈을 돌렸다. 나는 공원 쪽으로 걸었다. 7구간. 공원은 이십육 분. 산책로 벤치마다 노인들이 앉아 있고, 운동기구 앞에서 아주머니들이 허리를 돌린다. 8구간 종점까지 사십사 분. 버스 차고지 옆 국숫집에서 잔치국수를 먹었다. 기사님들이 교대하며 들르는 집이라 국물이 진하고 빨리 나온다. 주인 할머니는 내 얼굴을 벌써 안다. 열이틀 중 여섯 번 왔으니까. 여덟 정거장의 끝은 늘 국수였다. 국수를 먹는 동안 한석이 찍혔다는 생각을 했다. 한석은 모른다. 알려야 했다. 번호를 몰랐다.
아홉 시, 종점 국숫집을 나설 무렵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조사표 원본 사진은 제 서랍에 있어요. 계수 칸 비우기 전 거. 드린다는 말은 아니에요. 있다는 말이에요. 한석.」
나는 국숫집 문 앞에 선 채로 답장을 보냈다. 손가락이 국물 기름에 미끄러져 두 번 지우고 다시 썼다. 「방금 육교 밑에서 용역 한 명이 우리 둘을 찍었습니다. 조심하세요.」 한참 뒤에 답이 왔다. 「그럼 이제 저도 찍힌 사람이네요. 삼 년 만에 처음 누가 저를 보네요.」
나는 그 문자를 오래 봤다. 있다는 말. 삼 년 동안 서랍에 넣어 두고 매일 퇴근 시간에 이 육교에 선 사람의 말.
집에 와서 노트를 폈다.
9월 12일 · 네 시간 오십 분 · 육교 한 시간 사십칠 분 한석 · 삼 년 · 조사원 · 사십일을 센 사람 사십일을 곱한 사람 · 나 웃는 차 · 한석 아홉 · 나 일곱
그리고 한 줄을 더 적었다.
저 사람은 삼 년째 여기 서 있고 나는 열이틀째다. 삼 년 뒤에 나는 어디 서 있나.
그 질문을 나는 그날 처음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답을 적기 전에 노트를 덮지 않았다. 빈 줄을 오래 봤다. 빈 줄 옆에 한석의 문자를 옮겨 적었다. 있다는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