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17자) · 다섯 번째 표
매표소 한 평
오늘은 여덟 정거장을 걸었다 · 도경
퇴사 이레째. 알람 없이 여덟 시에 일어났다. 이유가 있었다. 극장 마지막 영화를 알아보기로 했다. 이유가 형편없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아홉 시가 애매하지 않았다.
반찬가게 앞에서 사장님이 오이지를 썰다가 나를 봤다. 어제 셔터 앞에서 한 말을 잊은 얼굴이었다. 아니면 잊은 척하는 얼굴이었다.
“오늘도 지나가시네. 콩자반은 다 먹었어?”
“한 통 먹었어요. 세 통 남았어요.”
“그럼 오늘은 오이지 사. 반 통.”
“반 통도 파세요?”
“혼자 사는 사람은 반 통이 맞지. 콩자반을 한 통씩 팔아 준 건 내 실수야.”
오이지 반 통은 삼천 원이었다. 사장님이 비닐을 두 번 묶으며 물었다. 어제 어디 다녔냐고 물은 걸 사과하는 투였다.
“총각, 이름이 뭐야.”
“재우요.”
“재우. 나는 오순자. 순자네 반찬의 순자. 이 시장에서 삼십일 년.”
큰길 사거리에서 신호를 한 번 놓쳤다. 일부러는 아니었다. 오이지 봉지가 새지 않나 들여다보다가. 신호 주기는 팔십 초였다. 그 팔십 초 동안 같은 번호 버스가 세 대 줄지어 지나갔다. 나는 그걸 노트 귀퉁이에 적었다. 이유는 몰랐다. 세는 손이 먼저 적었다.
극장 앞에 열 시 이십 분에 도착했다. 매표소 창구 앞에 노인이 서 있었다. 다리 위의 그 노인. 새 자물쇠를 열쇠로 열고 있었다. 매표소 문이 열리자 노인은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등받이가 반쯤 부러진 나무 의자였다. 창구 너머로 얼굴이 보였다. 창구 높이가 딱 앉은 사람 얼굴 높이였다. 노인이 창구를 손바닥으로 한 번 닦았다. 그리고 거기 앉아 있었다. 표를 팔 것처럼. 팔 표가 없었다.
나는 창구 앞에 섰다.
“한 장 주세요.”
노인이 창구 너머로 나를 봤다. 어제의 그 눈.
“뭐 보려고.”
“마지막에 걸렸던 거요.”
노인이 웃었다. 이가 고르지 않았다.
“가을 버스. 천구백구십삼 년. 흥행은 망했고.”
“그걸 마지막에 거셨어요?”
“마지막인 줄 몰랐으니까.”
노인은 창구 안쪽 선반에서 뭔가를 꺼냈다. 종이 표 뭉치였다. 누렇게 바랜. 맨 위 한 장을 뜯어 창구로 내밀었다. 중앙극장 입장권, 일반. 날짜 칸에 도장. 2005년 3월 14일.
“무슨 영화예요.”
“버스 기사가 주인공이오. 시골 막차 기사. 가을 한철 동안 매일 같은 정류장에서 같은 여자를 태우고 내려 주는 얘기. 둘이 말을 한마디도 안 해. 마지막 날에 여자가 안 나와. 기사는 정류장에 버스를 세워 놓고 한참 기다리다가 그냥 가. 그걸로 끝이오.”
“그게 끝이에요?”
“그러니까 망했지.”
문 영감이 웃었다.
“그날 넷 왔소. 첫째는 대학생. 둘째는 우리 극장 앞 세탁소 영감. 매주 왔지. 셋째하고 넷째는 부부였어. 이 영화를 신혼 때 여기서 봤대. 십이 년 전에. 마지막 날이라니까 다시 보러 왔대. 영화 끝나고 나오면서 부인이 그러대. 이번에도 여자가 안 나오네. 남편이 그러대. 그러니까 기다리는 거지.”
문 영감은 표 뭉치를 쓰다듬었다.
“그날 넷 왔소. 이게 다섯 번째 표야. 이십일 년 동안 못 팔았지. 가져가쇼.”
“돈은요.”
“삼천 원.”
나는 오이지 반 통 거스름돈으로 받은 천 원짜리 두 장과 동전을 긁어모았다. 노인은 그걸 창구 안 돈통에 넣었다. 돈통이 가벼운 소리를 냈다. 이십일 년 만의 매상이었다.
노인의 이름은 문기춘이었다. 일흔여덟. 중앙극장 매표원 삼십이 년. 주인은 아니었다. 주인 할머니가 폐관하면서 퇴직금 대신 뭘 갖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문 영감은 매표소를 달라고 했다. 극장 건물은 은행 빚에 넘어갔지만, 매표소가 선 한 평은 따로 떼어 문 영감 이름으로 등기해 줬다. 인도 한가운데 한 평. 그 한 평이 지금 성하1구역 한가운데에 있다.
“극장은 시행사가 샀소. 작년에. 이 한 평만 남았지. 지난달부터 매일 사람이 와. 얼마면 팔겠느냐고. 알박기라고 하대. 내가 이 한 평을 이십일 년 전에 박았는데, 알을 박은 건 저쪽이 나중이지.”
나는 그 한 평의 값을 안다. 보상 산정표 두 번째 시트, 필지 번호 끝자리 칠. 나는 그 칸에 공시지가에 보정률 영점팔을 곱했다. 협상이 안 되면 수용 재결로 넘긴다는 주석을 달았다. 그 주석을 쓴 날 나는 이 창구 너머에 사람이 앉아 있다는 걸 몰랐다.
“어르신, 왜 매일 다리에 앉아 계세요.”
“여기서는 극장이 너무 가까워. 다리에서는 지붕만 보이지.”
“앉으시면 안 보인다던데요.”
문 영감이 나를 봤다. 누가 그 말을 했느냐고 묻는 눈이었다. 아무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어제 서서 보고 알았다.
“보려고 가는 게 아니오. 보이는 데 있으려고 가는 거지.”
열한 시에 문 영감은 매표소 문을 잠그고 다리로 갔다. 나는 따라갔다. 다리 중간, 난간 옆에 방석을 폈다. 문 영감이 앉고, 나는 그 옆에 섰다. 앉아도 되냐고 묻지 않고 앉았다. 나중에 생각하니 실례였다.
열한 시 반에 다리 건너편에서 남자 셋이 걸어왔다. 검은 조끼, 작업화. 맨 앞 사람은 쉰쯤. 목이 굵고, 손등에 문신 자국을 지운 흉터가 있었다. 조끼 가슴에 글씨가 박혀 있었다. 성하1구역 현장 안전 관리.
“어르신, 또 나오셨네.”
맨 앞 남자가 문 영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웃었다. 이가 누렜다.
“여기 다리 곧 막아요. 안전 진단에서 위험 판정 나왔어요. 앉아 계시면 안 돼요. 떨어지시면 우리가 책임져야 돼.”
“이 다리 멀쩡하오. 내가 매일 앉아 봐서 알아.”
“어르신이 뭘 알아요.”
남자는 문 영감의 방석 끝을 손가락으로 집었다. 그리고 당겼다. 문 영감의 몸이 기울었다. 나는 문 영감의 어깨를 잡았다. 남자가 방석을 마저 잡아당겨 난간 너머로 던졌다. 방석이 공중에서 한 번 펴졌다가 성하천에 떨어졌다. 모서리의 솜이 물을 먹고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이고, 떨어졌네. 바람이 세서.”
뒤에 선 둘이 웃었다. 문 영감은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일어섰다. 등을 세웠다. 기대지 않았다.
“탁 반장이라고 했지. 당신 어머니도 이 극장 왔었소. 칠십팔 년에. 당신 업고. 창구에서 내가 봤지.”
탁 반장의 웃음이 멈췄다. 아주 잠깐. 그리고 다시 웃었다.
“영감님 기억력 좋으시네. 그러니까 매표소 도장도 좀 찍으시지.”
나는 탁 반장과 문 영감 사이에 섰다.
“방석, 건져 오세요.”
“누구신데.”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여덟 정거장 걸어서.”
탁 반장이 일어섰다. 나보다 한 뼘 작았다. 어깨는 두 배였다. 조끼에서 먼지와 담배 냄새가 났다. 철거 현장을 오래 다닌 사람의 냄새. 그가 내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가볍게. 나는 난간에 등을 부딪쳤다. 난간이 울렸다. 백사십 걸음짜리 다리 전체가 한 번 떨었다.
“지나가시면 지나가세요. 여기 공사 구역이에요.”
“아직 아닙니다. 사업 시행 인가는 났어도 관리처분 인가 전입니다. 철거 착수는 십일월이고요. 지금은 구청 다리입니다. 여기서 사람을 밀면 그냥 폭행입니다.”
탁 반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한 말은 내 공정표에 적힌 날짜였다. 그는 그 날짜를 모를 것이다. 그는 그냥 매일 오라는 곳에 와서 밀라는 사람을 미는 사람이었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했던 사람입니다.”
탁 반장은 한참 나를 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내 얼굴을 찍었다. 그리고 둘을 데리고 다리를 건너갔다. 건너가면서 전화를 걸었다. 「상무님, 다리에 이상한 놈이 하나 있는데요.」
나는 다리 난간 밑 둑으로 내려갔다. 둑에는 개망초가 허리까지 자라 있었다. 운동화가 젖었다. 양말까지 금방 차가워졌다. 방석은 둑 가까운 수초에 걸려 있었다. 건져서 짜니 흙탕물이 줄줄 흘렀다. 다리 위로 들고 올라가자 문 영감이 받아 들었다. 젖은 방석을 난간에 걸었다. 햇볕이 드는 쪽으로.
“마르면 또 앉지.”
탁 반장 무리가 사라지고 나서 문 영감이 말했다.
“저 사람 어머니는 우리 극장에서 청소하던 양반이오. 애를 업고 와서 객석 사이를 쓸었지. 애가 울면 매표소에 맡겼어. 나한테. 내가 저 사람 기저귀도 갈았소.”
“그런데 저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렇게 하는 거지. 기억하는 사람 앞에서 더 세게 해야 자기가 덜 창피하니까.”
문 영감은 젖은 방석을 뒤집었다. 반대쪽도 햇볕에 대려고.
“알박기라고들 하는데, 나는 여기 박힌 게 알이 아니라 나라고 생각해. 이 한 평 없으면 나는 어디 앉아서 이 동네를 보겠소.”
그날 오후 나는 다리 위에 한 시간 서 있었다. 문 영감 옆에. 방석이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셌다. 한 시간에 쉰일곱. 유모차 넷, 자전거 끌고 가는 사람 여섯, 학교 끝난 아이들 한 무리. 이 다리는 사람이 다니는 다리였다. 차가 못 다녀서 사람이 다니는 다리.
집에 와서 노트를 폈다.
9월 7일 · 극장까지 · 두 시간 삼십 분 매표소 · 문기춘 · 가을 버스 · 다섯 번째 표 삼천 원 다리 · 방석이 강에 떨어짐 · 탁 반장 다리 · 한 시간에 쉰일곱 명
그리고 서랍에서 표를 꺼내 노트 사이에 끼웠다. 2005년 3월 14일 도장. 이십일 년 동안 아무도 사지 않은 표. 오늘 내가 산 표. 입장은 아직 못 했다.
밤 열 시에 전화가 왔다. 윤 상무였다. 사표를 낸 뒤로 처음 걸려 온 전화였다.
“재우야. 탁 반장이 네 사진 보냈더라. 다리에서 폼 잡았다며.”
“방석이 강에 빠졌습니다.”
“방석은 내가 새로 사 드리라고 할게. 좋은 걸로. 재우야, 그 영감 한 평 때문에 착공이 석 달 밀려. 석 달이면 금융 이자만 사십억이야. 그 사십억은 누가 내냐. 우리 회사 삼백 명이 내. 협력사 천 명이 내. 그 사람들도 다 누군가의 문 영감이야.”
“그럼 방석은 왜 강에 던집니까?”
윤 상무는 잠깐 조용했다.
“그건 탁 반장이 잘못했다. 주의 줄게. 근데 재우야, 너 거기 서 있지 마. 네가 거기 서 있으면 영감이 버텨. 영감이 버틸수록 탁 반장이 더 세게 가. 네가 영감을 다치게 하는 거야. 알지. 너 원래 계산 잘하잖아.”
전화가 끊겼다.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틀린 계산이 아니었다. 틀린 데가 없어서 더 싫었다.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누나, 매표소 한 평은 얼마쯤 할까.」 답이 금방 왔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알았다. 그 칸에 영점팔을 곱한 사람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