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여섯째 날
오늘은 여덟 정거장을 걸었다 · 도경
아침 아홉 시에 일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일어날 이유가 없으면 아홉 시는 아주 애매한 시각이다. 여덟 시는 이르고 열 시는 늦었다는 기분이 든다. 이 기분에는 근거가 없다. 근거가 없는 기분이 하루를 좌우한다는 것을 나는 엿새 만에 배웠다.
퇴사 엿새째. 첫날에는 잤다. 둘째 날에는 청소를 했다. 셋째 날에는 청소할 것이 없었다. 넷째 날에 나는 걷기 시작했다. 집에서 여덟 정거장. 지하철로 열여섯 분이다. 걸으면 두 시간 십 분.
이 차이가 하루를 채운다. 시장을 지날 때 반찬가게 앞에서 잠깐 선다.
“오늘도 지나가시네.”
“네.”
“안 사고?”
“...한 통 주세요.”
그래서 나는 엿새 동안 콩자반을 네 통 샀다. 아직 첫 통도 다 못 먹었다. 시장을 지나면 큰길이 나오고, 큰길을 이백 미터쯤 가면 폐업한 극장이 있다. 간판은 아직 붙어 있다.
중앙극장
‘앙’ 자의 아래 획이 떨어져서 ‘중어극장’처럼 보인다.
나는 이 극장을 엿새 동안 여섯 번 봤다. 여섯 번 다 같은 생각을 했다. 저기 마지막으로 걸린 영화가 뭐였을까. 극장을 지나면 다리다. 다리는 길지 않다. 백사십 걸음.
다리 중간에 노인이 앉아 있다. 엿새 동안 여섯 번 다 있었다. 같은 자리, 같은 자세. 난간 쪽을 보고 앉아 있다. 손에는 늘 아무것도 없다. 낚싯대도, 신문도, 휴대폰도.
나는 그게 조금 부러웠다. 오늘은 열한 시 사십 분에 다리에 닿았다. 어제는 열한 시 십 분이었다.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좀 늦으셨네.”
나는 멈췄다. 엿새 동안 이 사람은 나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 네.”
“어제는 열한 시였는데.”
“십 분이요.”
“어.”
노인은 다시 난간 쪽을 봤다. 나는 그 옆에 서 있었다.
서 있으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십일 년 동안 회의에서 할 말을 준비하는 일을 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매일 여기 계세요?”
“어.”
“뭐 보세요?”
“물.”
“...네.”
노인은 그러고 나서 한참 말이 없었다. 나는 갈까 하다가 안 갔다.
“젊은 양반.”
“네.”
“회사 그만뒀지.”
나는 그 말에 좀 놀랐다.
“어떻게 아세요.”
“평일 낮에 여기 걸어가는 사람은 셋 중 하나야.”
“뭔데요.”
“그만뒀거나, 그만두려고 하거나.”
“셋 중 하나라면서요.”
“셋째는 나 같은 사람이고.”
나는 웃었다. 엿새 만에 처음 웃은 것 같았다.
“몇 정거장 걸어.”
“여덟이요.”
“많이 걷네.”
“할 게 없어서요.”
“할 게 없는 게 아니라.”
노인이 말했다.
“할 걸 안 정했겠지.”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준비한 열두 개 중에 맞는 게 하나도 없어서였다. 다리를 건너서 나는 뒤를 돌아봤다.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집에 돌아온 것은 두 시 사십 분이었다.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해.”
“걸었어.”
“또?”
“응.”
“재우야.”
“응.”
“너 언제까지 걸을 거야.”
나는 창밖을 봤다.
“모르겠어.”
“모르겠다는 건.”
“진짜 모르겠다는 거야.”
전화를 끊고 나는 콩자반 통을 열었다. 네 통 중에 첫 번째 것. 여섯 밤이 지났는데 아직 반이 남아 있었다. 저녁에 나는 콩자반 통을 닫고 노트를 폈다. 십일 년 동안 회의록을 썼으니까 노트는 아직 여덟 권 남아 있다. 회사 것이 아니라 내가 산 것이다.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9월 6일 · 여덟 정거장 · 두 시간 십 분
그 아래에 오늘 본 것을 적었다.
반찬가게 · 콩자반 네 통째 중앙극장 · ‘앙’의 아래 획 떨어짐 다리 · 노인 · 열한 시 사십 분
세 줄이었다. 세 줄을 적고 나서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일기는 아니다. 일기에는 기분이 들어간다. 업무일지도 아니다. 업무가 없다. 그러면 뭔가. 나는 네 번째 줄을 적었다.
노인 : 할 게 없는 게 아니라 할 걸 안 정했다
적고 나서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 누나 말이 옳았다. 나는 언제까지 걸을지 정하지 않았다. 정하지 않는 것을 자유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엿새 만에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정하지 않으면 매일 아홉 시가 애매해진다. 다음 날 나는 여덟 시에 일어났다. 이유를 만들었다. 극장에 마지막으로 걸린 영화가 뭐였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이유가 형편없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아홉 시가 애매하지 않았다. 극장 앞에 열 시 이십 분에 도착했다. 셔터는 내려 있었다. 옆에 부동산이 있었다. 들어가서 물었다.
“저 극장 언제 문 닫았어요?”
“이십일 년 됐어요.”
“마지막에 뭐 걸렸는지 아세요?”
부동산 사장이 나를 봤다.
“그건 왜요.”
나는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냥요.”
사장은 잠깐 있다가 말했다.
“주인 아저씨한테 물어봐요.”
“살아 계세요?”
“매일 다리에 나와 앉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