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20자)
예비 심문
악녀와 성녀가 손을 잡았다 · 백해원
대신전 심문정은 본당 지하 한 층 아래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촛농 냄새가 습기에 섞여 무거워졌다. 돌벽은 손바닥을 대면 물기가 묻어났고, 천장이 낮아서 키 큰 루카스는 문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방 가운데에 심문받는 자가 서는 둥근 돌판이 있었다. 사람 발에 닳아 가운데가 오목했다.
이사벨라는 그 오목한 자리에 섰다. 발바닥이 그 모양을 따라 조금 안쪽으로 기울었다.
정면 높은 단에 대신관 오르텐이 앉았고, 양옆으로 사제 넷이 앉았다. 오른쪽 벽 아래 긴 의자에는 증인들이 있었다. 부사제 그레고르, 마탑 시연회에 왔던 감찰관 하나, 그리고 엘로이즈. 왼쪽 의자에는 크레센트 공작이 앉아 있었다. 공작은 딸을 보지 않았다. 그 옆에 엘리스가 있었고, 엘리스 뒤에 베티가 섰다. 맨 뒷줄에는 방청을 허락받은 귀족 몇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깃털 모자 하나가 유난히 높았다.
“크레센트 공작 영애 이사벨라.”
오르텐이 입을 열었다. 지하에서도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이 자리는 재판이 아니라 예비 심문입니다. 성년식 시즌 마지막 날 성녀의 날에, 교단이 마녀를 지목해 재판에 세울지 말지 정하기 전에 묻는 자리지요. 영애께서는 묻는 말에 답하시면 됩니다.”
“네, 대신관님.”
“영애께서 성녀를 홀렸다는 말이 수도에 돕니다. 성녀께서 영애를 위해 끓는 성수에 손을 넣으셨고, 영애와 첫 춤을 추셨고, 영애의 집에서 밤을 보내셨지요. 성녀가 되신 지 한 달 남짓 된 분께서 공작 영애에게 이토록 마음을 쓰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성녀님께 여쭤 보시지요.”
“여쭈었습니다. 성녀께서는 영애가 좋은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뒷줄에서 웃음 같은 숨소리가 났다. 오르텐이 그쪽을 보자 그쳤다.
“이 나라에서 크레센트 영애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녀 한 분뿐입니다. 그것이 홀렸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채령은 대답할 말을 골랐다. 원작 이사벨라가 재판정에서 한 말이 셋 떠올랐는데, 셋 다 그녀를 화형대에 더 가까이 보냈다. 채령은 그 셋을 버렸다.
“대신관님. 좋은 사람이라는 말 한마디로 마녀를 정하신다면, 대신관님을 좋은 사람이라 부르는 수도 사람들은 다 홀린 겁니까?”
사제 하나가 기침을 했다. 오르텐은 웃었다.
“영애는 말을 잘하시는군요. 그럼 증거를 보지요.”
*
오르텐이 종이 한 장을 들어 올렸다. 사제 하나가 그것을 받아 이사벨라 앞 돌판 위에 펼쳤다. 서툰 한글이었다. 받침이 엉뚱한 데 붙은 글씨. 엘로이즈가 처음 베껴서 그레고르에게 넘긴 종이였다.
“이 문양은 영애의 방에서 나왔습니다. 동그라미와 막대와 갈고리. 대신전 서고의 어느 경전에도 이런 글씨는 없습니다. 루카스 경.”
루카스가 문 옆에서 한 걸음 나왔다. 다리를 조금 절었다.
“경의 모친은 대신전 경전 필사가였지요. 신성어 글자를 경만큼 아는 성기사는 없습니다. 이것이 신성어입니까?”
루카스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이사벨라는 루카스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루카스는 오르텐에게 매일 밤 거짓말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대신관 앞에서 경전을 두고 하는 거짓말이었다.
“신성어가 아닙니다.”
루카스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고르게 나왔다.
“읽을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글자와도 닮지 않았습니다.”
“고맙소.”
오르텐이 단 위에서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신성어가 아닌데 영애와 성녀가 그것으로 기도를 하신다. 이 나라에 없는 글자, 경전에 없는 글자, 성기사가 읽지 못하는 글자. 교단은 그런 글자를 마녀의 문자라고 부릅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촛불 하나가 습기에 지직거렸다.
엘리스가 일어났다.
“그거 제가 썼습니다, 대신관님.”
베티가 엘리스의 소매를 잡았다. 엘리스가 그 손을 가만히 떼어 냈다.
“꽃바구니에 꽂아 보낸 거요. 제 손으로 썼습니다. 오른손이 데어서 왼손으로요. 그래서 글씨가 삐뚤어요.”
“그렇다면 더 중대합니다, 성녀님.”
오르텐의 목소리는 한 톨도 높아지지 않았다.
“성녀께서 마녀의 문자를 쓰신다면, 영애가 성녀께 그 문자를 가르쳤다는 말이 됩니다. 그것이 곧 홀렸다는 증거지요. 아니면 성녀께서 처음부터 그 문자를 아셨거나. 그렇다면 교단은 성녀의 기적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야 합니다.”
엘리스가 입을 다물었다. 채령은 원작 외전의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성녀가 가짜 기적을 일으켰다고 교단이 거는 장면. 오르텐은 지금 두 갈래 길을 동시에 열어 두고 있었다. 이사벨라가 마녀이거나, 엘리스가 가짜 성녀이거나.
“대신관님.”
이사벨라가 말했다. 돌판 위의 종이를 집어 들었다.
“이게 마녀의 문자라면, 배우기 어렵겠지요? 마녀가 아니면 못 쓰겠지요?”
“그렇겠지요.”
“그럼 하웰 영애. 이리 와 주시겠어요?”
*
깃털 모자가 뒷줄에서 벌떡 일어났다. 프리실라는 허락도 기다리지 않고 계단처럼 놓인 의자 사이를 내려왔다. 사제 하나가 막으려다가, 백작 영애의 치맛자락에 걸려 손을 거뒀다.
“네, 영애! 여기요!”
이사벨라가 돌판 옆의 증인 탁자에서 깃펜을 집었다. 종이 뒷면에 천천히 썼다. 프, 리, 실, 라.
“이게 영애 이름이에요. 이 동그라미는 소리가 없고, 막대 옆에 붙으면 이 소리가 나요. 이건 ‘리’, 이건 ‘실’. 써 보세요.”
프리실라가 깃펜을 받았다. 혀끝을 입술 사이로 내밀고 썼다. 첫 글자의 막대가 너무 길었고, 둘째 글자는 동그라미가 찌그러졌다. 셋째 글자를 쓸 때는 프리실라가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넷째 글자를 쓰고 나서 프리실라가 종이를 번쩍 들었다.
“됐다! 대신관님, 보세요! 제 이름이에요!”
뒷줄 귀족들이 일어섰다.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한 사람이었고, 금세 서너 사람이 되었다. 프리실라는 종이를 흔들며 사제들 쪽으로 걸어가서, 맨 끝의 젊은 사제 앞에 그것을 내밀었다.
“사제님도 해 보세요. 일 분이면 돼요. 마녀 아니어도 돼요.”
“영애, 여기는 심문정이…”
“그러니까요. 심문정에서 일 분 만에 마녀가 되다니, 이거 이번 시즌 최고의 소문이에요.”
젊은 사제는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프리실라가 돌아서자, 그는 소매 안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무릎 위에 무언가를 따라 그렸다. 동그라미 하나, 막대 하나. 옆자리 늙은 사제가 그 손가락을 보고 헛기침을 했고, 젊은 사제는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웠다.
이사벨라는 오르텐을 보았다.
“장난 글씨입니다, 대신관님. 성녀님과 제가 남들 몰래 쪽지 주고받으려고 만든 거예요. 영애들은 다 그런 거 하나씩 있잖아요. 하웰 영애도 방금 배우셨고요. 이제 하웰 영애도 마녀입니까?”
오르텐이 웃었다. 이번 웃음은 짧았다.
“좋습니다. 글씨는 접어 두지요. 엘로이즈.”
*
엘로이즈가 증인 의자에서 일어났다. 앞치마 끝을 손에 쥐고 있었다. 오르텐이 물었다.
“그대는 영애가 밤마다 이 문양을 그리며 성녀를 저주했다고 부사제에게 말했소. 맞소?”
엘로이즈가 그레고르를 보았다. 그레고르가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원작 180화라면 엘로이즈는 여기서 맞다고 답했다. 그리고 울었다.
엘로이즈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무명 주머니를 꺼냈다. 매듭을 풀어 증인 탁자 위에 쏟았다. 은화 여섯 닢이 돌 탁자 위에서 굴렀다. 찌그러진 한 닢이 오르텐 쪽으로 굴러가다 탁자 끝에서 멈췄다.
“저주라는 말은 부사제님이 하셨습니다. 저는 아가씨가 무엇을 드시는지, 누구를 만나시는지 말했고, 목요일마다 한 닢씩 받았습니다. 대신전 주조소 표시가 있습니다. 문양을 베껴 오라고 하신 것도 부사제님이고, 아가씨 찻잔에 약초 가루를 타라고 주신 것도 부사제님입니다.”
그레고르가 일어섰다. 배가 탁자 끝에 부딪혀 은화가 한 번 더 굴렀다.
“이 계집이 거짓말을…”
“그레고르.”
오르텐이 이름만 불렀다. 그레고르가 앉았다. 오르텐은 찌그러진 은화를 손끝으로 집어 들어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사제 하나에게 건넸다.
“부사제 그레고르는 오늘부로 남쪽 수도원으로 갑니다. 교단의 은화를 교단 뜻과 다르게 썼으니까요. 엘로이즈라 했소? 정직하게 말해 주어 고맙소.”
엘로이즈는 비어 버린 무명 주머니를 접어 앞치마에 도로 넣었다. 그 손은 떨리지 않았다. 그레고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오르텐은 그를 한 번도 더 보지 않았다. 채령은 그것이 이긴 것인지 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오르텐은 제 사람 하나를 그 자리에서 버렸고, 버리는 데 숨 한 번도 들이쉬지 않았다.
“그런데 영애.”
오르텐이 감찰관 쪽으로 손을 들었다. 감찰관이 일어섰다.
“마탑 시연회 날, 감찰을 받아야 했던 견습 노엘이 사라졌습니다. 소란 직후 성녀께서 그 견습의 팔을 잡으시는 것을 이 감찰관이 보았고, 크레센트 공작가 마차 쪽으로 가는 것까지 보았습니다. 그 견습의 손에서 검은 불이 일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등록되지 않은 불입니다.”
“제 마차에는 제 시녀가 탔습니다.”
“그 시녀의 손이 얼음장 같더군요. 제가 직접 잡아 보았지요.”
오르텐이 장갑 낀 손을 들어 보였다. 장갑 손가락 끝이 아주 조금 검었다. 그는 그 장갑을 그날 이후 한 번도 빨지 않은 모양이었다.
“영애는 오늘부터 열흘 동안 공작저 밖으로 나오시지 못합니다. 목요일 정화 기도도 쉬십시오. 그리고 열흘째 되는 날, 성기사단이 공작저를 수색합니다. 견습이 거기 없다면, 예비 심문은 거기서 닫겠습니다. 견습이 거기 있다면.”
그는 말끝을 맺지 않았다. 대신 엘리스를 보았다.
“성녀께서는 서약식까지 대신전 안에서 묵상하십시오. 루카스 경, 수색은 그대가 지휘하시오.”
*
공작가 마차 안에서 공작은 한 마디만 했다.
“그 견습이 우리 집에 있느냐?”
이사벨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작이 창밖을 보았다. 마차가 대신전 앞 광장을 돌았다. 광장 한가운데 해마다 성녀의 날에 화형대를 세우는 자리가 있었다. 지금은 돌바닥뿐이었다. 돌 하나가 다른 돌보다 검었다.
“있다면, 열흘 안에 내보내라. 내보내지 못하면, 수색 날 내가 직접 그 아이를 성기사단에 넘긴다. 너와 함께라도.”
마차 바퀴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채령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깍지 꼈다. 프리실라가 쓴 「프리실라」 넉 자가 적힌 종이가 아직 그녀의 소매 안에 있었다. 그 종이 귀퉁이가 손목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