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72자)
소금 먹은 무명
악녀는 결혼 첫날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 서지오
첫날 밤, 나는 무명 다섯 필을 강가로 끌고 갔다.
강물은 차가웠다. 초봄 밤의 강물은 손을 넣으면 처음에는 아프고, 조금 지나면 아무 느낌이 없다가, 꺼내면 다시 아팠다. 한나와 둘이 무명 한 필을 양쪽에서 붙잡고 물에 담갔다 건졌다. 천이 물을 먹을수록 무거워져서 나중에는 둘이 매달려도 강 쪽으로 끌려 들어갈 것 같았다. 소금기는 세 번 헹궈도 다 빠지지 않았다. 마른 자리마다 물결 같은 하얀 테두리가 남았다.
“아가씨, 이거 못 쓰겠죠?”
“옷으로는 못 써.”
“그럼 뭐로 써요?”
나는 젖은 천을 짜면서 생선 골목 여자들의 갈라진 가죽 앞치마를 떠올렸다. 그리고 결혼 이튿날 아침 로더릭이 내밀던 방수포. 북부산 기름 먹인 천이라 손에 닿으면 미끈했고, 생선 기름 냄새가 났다. 카일이 보낸 이혼 선물이었다.
“앞치마.”
“네?”
“물이 안 스미는 앞치마. 가죽처럼 안 갈라지고, 가죽보다 싼 거.”
한나가 천을 놓쳤다. 무명 한 필이 강물에 둥둥 떠내려갔고, 우리는 그걸 건지느라 무릎까지 강에 들어갔다. 그날 밤 나는 서울에서 칠 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을 했다. 원단을 직접 빨았다.
*
이튿날 새벽, 도라에게 생선 기름 찌꺼기를 얻었다. 생선 골목에서 날마다 통으로 내다 버리는 찌꺼기였다. 도라는 그걸 왜 달라는지 묻지 않고 두 통을 굴려다 주었다. 대신 다 쓰고 나면 통은 돌려 달라고 했다.
밀랍은 신전 촛농을 샀다. 루시아가 신전 뒷문에서 자루째 넘겨주며 값을 받지 않으려 했고, 나는 동화 열 닢을 억지로 쥐여 주었다. 성녀에게 빚을 지면 그 빚을 누가 받으러 올지 알 수 없었다.
사흘째까지 점포 안은 지옥이었다. 화로에 생선 기름과 밀랍을 녹이면 연기가 천장에 붙어 내려오지 않았다. 눈이 따갑고 머리카락에 비린내가 배었다. 한나는 코를 빨래집게로 집고 일했다. 무명에 기름을 먹여 말리고, 다시 먹이고, 마르기를 기다렸다. 마른 천은 손바닥으로 두드리면 북 같은 소리가 났다. 물을 부으면 물방울이 굴러떨어졌다.
사흘째 오후, 첫 앞치마가 나왔다. 허리끈은 두 겹으로 박았고, 앞자락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가게 길게 잘랐다. 도라의 스물아홉 매듭에 맞췄다.
도라는 그걸 두르고 좌판 앞에 섰다. 옆 좌판 여자가 일부러 생선 씻은 물을 한 바가지 끼얹었다. 물이 앞치마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려 돌바닥에 떨어졌다. 앞치마 밑 치마는 말라 있었다.
골목이 조용해졌다가,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다. 도라가 앞치마 자락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겨울에 사각 소리 안 나겠네.”
그녀가 은화 셋을 내 손에 올려놓았다. 그 은화는 생선 비늘 하나가 붙은 채로 내 손에 왔다. 나는 비늘을 떼지 않았다.
*
나흘째부터 줄이 섰다. 생선 골목 여자들이 먼저 샀고, 그다음엔 그 여자들의 딸들이, 그다음엔 옆 골목 정육점 여자들이 왔다. 무명이 모자라 베르의 가게에서 자투리를 얻어 왔다.
닷새째 밤, 점포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베르였다. 그녀는 가위와 재단 분필을 든 채 문간에 서서 말했다.
“우리 견습생들이 할 일이 없어서.”
“견습생은 안 데려오셨는데요.”
“걔들 대신 내가 왔다.”
베르는 그날 밤 앞치마 서른 장을 재단했다. 가위가 기름 먹인 무명을 지날 때마다 둔한 소리가 났다. 새벽녘에 그녀가 작은 접시를 내밀었다. 접시에는 진주 단추가 담겨 있었다. 한나가 내 혼수에서 떼어 낸 그 단추였다.
“이거 그냥 둘 거냐?”
나는 단추를 보고, 앞치마를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생선 골목 앞치마에 진주 단추라니, 우스꽝스러웠다. 그런데 중앙가 상인 부인들은 우스꽝스러운 것을 좋아했다. 서울의 이십 대가 작업복 바지를 사 입던 것처럼.
진주 단추 앞치마는 열 장만 만들었다. 한 장에 금화 하나를 받았다. 열 장이 이틀 만에 다 나갔다. 사 간 사람은 곡물상의 아내, 포목상의 아내, 향신료상의 아내였다. 그중 하나는 길드 회관에서 내가 사흘을 못 버틴다는 쪽에 은화를 건 포목상의 아내였다.
*
엿새째 정오에 골목 입구가 갈라졌다.
생선 골목에 하얀 제복이 들어선 것은 이 골목이 생기고 처음이었다. 근위병 넷이 앞장섰고, 그 뒤에서 레오니스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젖은 갈대를 밟지 않으려고 돌을 골라 디뎠다. 생선 장수들이 칼을 든 채 그를 쳐다보았다. 좌판 위의 숭어 한 마리가 마지막으로 꼬리를 쳐서 바닥에 떨어졌다. 숭어가 그의 장화 앞에서 퍼덕였다.
레오니스는 숭어를 내려다보고, 한 걸음 옆으로 비켜 걸었다. 그의 흰 제복 소매에 비늘 하나가 붙어 반짝였다.
“공작 부인. 장사가 잘된다더군.”
“로웬이에요. 앞치마 하나 사시겠어요? 전하 제복은 비린내가 잘 배는 천이라서요.”
근위병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어깨가 떨렸다.
레오니스는 점포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화로, 기름통, 걸린 앞치마들. 그는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
“거래를 하러 왔소.”
“말씀하세요.”
“방화 조사를 거두겠소. 메이에게 줄 삼백도 황실이 대신 내지. 자비라는 이름으로. 부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오. 그저 아르덴 공작 부인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면 되오.”
“언제까지요?”
“가을까지.”
“건국제까지요?”
“건국제까지.”
나는 걸린 앞치마 하나를 내려 손으로 접었다. 기름 먹인 무명이 손바닥 아래에서 뻣뻣하게 꺾였다.
“전하. 원작에서, 아니 제가 들은 이야기에서, 아무것도 안 한 악녀가 건국제 날 단두대에 올라가요.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요. 그다음 날 그 악녀를 숨겼다는 집안이 북부 군권을 잃고요.”
레오니스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었다.
“제가 아무것도 안 해도 전하는 저를 거기로 데려가실 거잖아요. 그럼 저는 뭐라도 할래요. 앞치마라도 팔래요.”
“부인은 셈을 잘못하고 있소.”
“저 셈은 잘해요. 칠 년 했어요.”
“칠 년?”
“로웬 영지 사투리예요.”
그가 웃었다. 이번 웃음은 얇지 않았다. 처음으로 재미있다는 웃음이었고, 그래서 더 무서웠다.
“그럼 길드장이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하나 더. 베르 의상실은 불이 잘 붙는 가게라 들었소. 성녀의 예복을 그런 곳에 맡길 수는 없지. 주문은 거두겠소. 선금도.”
그가 돌아섰다. 근위병들이 길을 열었다. 그가 골목을 반쯤 빠져나갔을 때, 도라가 좌판에서 굵은 소금을 한 움큼 쥐어 그의 등 뒤로 뿌렸다. 생선 골목에서 재수 없는 손님이 가고 나면 하는 일이라고 했다. 소금 알갱이가 돌바닥에 튀는 소리가 났다. 레오니스는 돌아보지 않았다.
*
이레째 아침, 베르가 점포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손에 황실 인장이 찍힌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주문 취소 통지였다.
“금화 서른 닢이 날아갔다.”
“알아요.”
“너 때문에.”
“알아요.”
“그 주문 끝내고 고향 가려고 했다.”
베르가 두루마리를 내 작업대에 내리쳤다. 기름 먹인 무명 위에서 종이가 미끄러졌다. 나는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하면 그녀가 화를 낼 데가 없어졌다. 베르는 한참 나를 노려보다가 작업대 위의 앞치마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진주 단추를 단 앞치마였다. 단추 하나가 비뚤게 달려 있었다.
“이걸 누가 달았냐?”
“한나요.”
“바보 같은 년.”
베르는 가위를 꺼내 실을 끊고 단추를 다시 달았다. 바늘이 무명을 지나는 소리가 일정했다. 다 달고 나서 그녀가 말했다.
“성녀 예복은 날아갔다. 그래도 내 가게는 안 탄다. 그게 낫다.”
그 말을 하는 동안 그녀는 나를 보지 않았다.
*
아흐레째 오후에는 뜻밖의 손님이 왔다. 장갑 끝까지 다림질된 손이 점포 문을 두 번 두드렸다. 로더릭 집사였다. 그는 생선 골목 한가운데서도 허리를 45도로 숙였다.
“마님. 공작가 부엌에서 앞치마 열두 장을 주문하라는 분부가 계셨습니다.”
“누구 분부요?”
“부엌장의 분부입니다.”
“부엌장이 생선 골목 앞치마를 어떻게 알아요?”
로더릭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부엌장은 소식지를 읽지 않습니다. 공작 전하께서 요즘 아침마다 소식지를 가져오라 하십니다. 읽지는 않으십니다. 접어서 서랍에 넣으십니다. 그 서랍을 제가 정리합니다.”
한나가 앞치마를 개다가 손을 멈췄다. 나는 열두 장을 셌다. 세다가 두 번 틀렸다.
“전하께서 읽지도 않으시는데 왜 가져오라 하신대요?”
“그건 여쭙지 않았습니다. 여쭈면 대답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로더릭은 은화 서른여섯 닢을 세어 놓고 앞치마 꾸러미를 받아 들었다. 문을 나서다가 그가 돌아섰다.
“그리고 마님. 공작 전하께서 고맙다는 말은 전하지 말라 하셨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방수포요.”
“네. 이번에는 아무 말도 전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전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생선 비늘 하나 묻히지 않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한나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나는 앞치마 다음 장을 개면서, 그게 무슨 말인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
열흘째 해 질 녘, 매상표를 덮었다. 앞치마 아흔한 장, 진주 단추 앞치마 열 장. 무명값과 기름값과 점포 세를 빼고 금화 스물셋이 남았다. 길드 평균은 스물이었다.
한나가 매상표를 끌어안고 점포 안을 빙빙 돌았다. 도라와 생선 골목 여자들이 문간에 몰려와 박수를 쳤다. 비린내 나는 박수였다. 도라가 손바닥에 붙은 비늘을 털며 소리쳤다.
“회관에서 사흘 만에 그만둔다고 건 놈들 다 잃었지? 그 은화 누가 먹어?”
“제가 한 닢 걸었어요. 열흘 쪽에.”
“혼자?”
“혼자요.”
“그럼 그거 다 아가씨 거네!”
골목 여자들이 다시 박수를 쳤다. 나는 그 은화 더미가 회관 탁자 위에 아직 있을지, 아니면 이미 누군가의 주머니로 사라졌을지 셈해 보다가 그만두었다.
박수가 끝나기 전에 골목 입구에 마차가 섰다. 그레고르 바스티안이 내렸다. 그는 생선 골목 바닥을 밟지 않으려고 마부가 깔아 준 널빤지 위로 걸어왔다. 수염 끝이 비린내에 찡그린 것처럼 내려가 있었다.
“스물셋이라고?”
“매상표 보시겠어요?”
“볼 필요 없소.”
그가 문간에 서서 골목 여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숫자는 매상표가 하지만, 판정은 사람이 하오. 길드 원로 다섯이 부인의 장사를 심사할 것이오. 정직하게 벌었는지, 길드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았는지. 사흘 뒤 회관으로 오시오.”
도라가 내 옆에서 소금 단지에 손을 넣었다. 나는 그 손목을 붙잡았다. 아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