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57자)

생선 골목 끝 점포

악녀는 결혼 첫날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 서지오

넝마왕 바르톨은 돌려받은 드레스 열 벌을 하나씩 들어 볕에 비춰 보았다. 금실 넣은 것, 진주 단추가 많은 것, 벨벳으로 안을 댄 것. 황태자의 근위병들이 고른 옷이라 하나같이 좋았다. 그는 마지막 한 벌을 내려놓고 놋쇠 반지를 낀 손가락으로 수염을 쓸었다.

“금화 일흔.”

“여든이요.”

“일흔다섯.”

“여든이요. 이 옷들이 황태자 전하가 직접 고르신 옷이라는 소문은 제가 내 드릴게요. 사장님 손님들 중에 전하 안목을 믿는 분이 많잖아요.”

바르톨이 눈을 가늘게 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반지가 짤랑거렸다.

“아가씨는 황태자한테 옷 뺏기고 그걸로 장사를 하네.”

“뺏긴 게 아니라 맡긴 거였어요. 보관료를 안 받으셨을 뿐이고요.”

금화 여든 닢이 가죽 주머니에 담겼다. 손바닥에 올리니 묵직했다. 삼백까지는 이백이십이 남았다. 서른 날 가운데 이틀이 지나 있었다.

*

상업 길드 회관은 강가에 있었다. 회색 돌로 지은 삼층 건물이었고, 문 위에는 저울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저울 한쪽 접시에는 금화가, 다른 쪽에는 밀 이삭이 올라가 있었는데, 금화 쪽이 아주 조금 내려가 있었다. 조각한 사람이 정직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파이프 담배 연기와 봉랍 녹이는 냄새, 강에서 올라오는 비린내가 천장 아래 한데 엉겨 있었다. 긴 탁자마다 상인들이 앉아 매상표를 펴 놓고 언성을 높였다. 곡물상, 포목상, 향신료상, 선주. 귀족 법정이 제국의 이름을 정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제국의 값을 정하는 곳이었다. 원작에서는 한 줄도 안 나온 건물이었다. 원작의 비올렛은 값을 물어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내가 들어서자 가까운 탁자부터 말소리가 끊겼다. 그 침묵이 물결처럼 안쪽으로 번져 갔다. 맨 안쪽 높은 의자에 앉은 남자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레고르 바스티안은 머리가 벗어진 대신 수염이 풍성했다. 수염 끝을 밀랍으로 말아 올려서, 웃을 때마다 수염이 먼저 웃었다. 여우 털 깃을 단 외투를 입었고, 열 손가락 가운데 반지가 없는 손가락은 엄지 하나였다.

“공작 부인께서 길을 잃으셨나. 연회장은 강 건너요.”

“연회는 이번 철에 못 가요. 판결로 막혔어요.”

“아, 그 판결.”

그가 수염을 쓸었다. 탁자 몇 곳에서 낮은 웃음이 났다.

“길드 인장을 받으러 왔어요. 중앙가 베르 의상실을 인수하려고요.”

이번에는 웃음이 크게 터졌다. 그레고르는 웃지 않고 나를 오래 보았다. 장사꾼의 눈이었다. 물건을 볼 때 흠부터 찾는 눈.

“길드는 귀족 여자를 받지 않소.”

“왜요?”

“귀족 여자는 장사를 안 하오. 장사하는 척하다가 시집을 가지. 그럼 가게는 남편 것이 되고, 남편은 귀족이라 길드 규칙을 안 따르고. 우리는 그런 꼴을 여러 번 봤소.”

“저는 시집은 이미 갔다 왔는데요.”

탁자들이 다시 웃었다. 이번 웃음은 아까와 결이 달랐다. 그레고르의 수염이 조금 내려갔다.

“그리고 이혼 중인 여자는 더 안 받소. 이혼이 엎어지면 그 가게가 아르덴 공작가 것이 되니까.”

“엎어지지 않으면요?”

그레고르가 의자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회관 전체가 들리게 말했다.

“좋소. 시험을 내지. 생선 골목 끝에 빈 점포가 하나 있소. 소금 창고로 쓰던 자리요. 그 점포를 열흘 맡아 보시오. 열흘 동안 길드 점포 평균 이익을 넘기면 인장을 주겠소.”

“평균이 얼마예요?”

“열흘에 금화 스무 닢.”

“무엇을 팔아도 돼요?”

“길드가 허락한 물건이면.”

“옷이요.”

“생선 골목에서?”

회관이 떠나가게 웃었다. 생선 골목은 수도에서 가장 비린 거리였다. 옷을 사러 그 골목에 갈 사람은 없었다. 나는 웃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할게요.”

“못 넘기면 부인은 다시는 이 회관 문턱을 넘지 못하오. 수도 어디에서도 길드 인장 붙은 가게를 열 수 없고.”

“넘기면요?”

“넘기면 인장. 말했잖소.”

가까운 탁자에서 곡물상 하나가 은화를 꺼내 탁자에 탁 놓았다. 악녀가 사흘 만에 그만둔다는 쪽에 걸겠다고 했다. 맞은편 포목상이 닷새에 걸었다. 금세 탁자마다 은화가 쌓였다. 열흘을 버틴다는 쪽에 거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은화 한 닢을 꺼내 그 비어 있는 쪽에 올려놓았다. 회관이 또 한 번 웃었다.

*

한나가 화장실을 찾는 바람에 우리는 회관을 나와 뒤뜰로 돌아갔다. 뒤뜰은 마차 대는 곳이었고, 담쟁이가 덮인 벽 아래로 말 두 마리가 여물을 먹고 있었다.

검은 마차 한 대가 담 그늘에 서 있었다. 문장은 가려져 있었지만 마부의 장갑 끝에 금실로 작은 태양이 수놓여 있었다. 마차 옆에 하얀 제복이 서 있었다. 베르의 가게에 성녀의 예복을 주문하러 왔던 그 시종관이었다. 그는 그레고르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있었다. 자주색 벨벳 주머니였고, 주머니 옆구리에 금실 태양이 있었다.

그레고르가 주머니를 받아 외투 안쪽에 넣다가 나를 보았다. 손이 멈추지 않았다. 주머니는 끝까지 외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걸어갔다. 한나가 소매를 잡아당겼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길드장님. 그거 황실 선금이에요?”

“그렇소. 황실 혼례 비단 주문이오.”

“길드장님 외투 안으로 바로 들어가는 선금도 있네요. 저는 선금은 매상표에 먼저 들어가는 줄 알았어요.”

시종관이 미소를 지은 채 마차에 올랐다. 문이 닫히고 마차가 뒤뜰을 빠져나갔다. 그레고르는 외투 앞섶을 여몄다.

“부인은 아직 길드 사람이 아니오. 길드 매상표를 볼 일이 없지.”

“열흘 뒤엔 볼 수도 있죠.”

“열흘 뒤에 봅시다, 부인. 생선 냄새가 옷에 배지 않게 조심하시오.”

그가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본 것은 있는데 쥔 것이 없었다. 시종관의 주머니는 마차를 타고 떠났고, 그레고르의 외투는 닫혔다. 서울 회사였으면 감사팀에 메일 한 통이면 끝났을 일이었다. 여기에는 감사팀이 없었다. 감사팀 위에 앉은 사람이 주머니를 보낸 사람이었다.

*

생선 골목은 해 뜨기 전에 가장 시끄러웠다. 강에서 들어온 배가 상자를 부리고, 여자들이 그 상자를 받아 좌판에 생선을 깔았다. 얼음이 귀해서 생선 위에 젖은 갈대를 덮었는데, 갈대에서 떨어진 물이 돌바닥을 타고 골목 끝까지 흘렀다. 그 끝에 내 점포가 있었다. 문짝 하나가 경첩에서 빠져 있었고, 바닥에는 굵은 소금이 서걱거렸다. 숨을 들이쉬면 코 안쪽이 따가웠다.

나는 그 점포 앞에 서서 골목을 보았다. 생선 파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가죽은 소금물에 절어 하얗게 갈라졌고, 앞치마 밑의 치마는 무릎까지 젖어 있었다. 한 여자가 허리를 펴다가 앞치마 끈이 끊어져 욕을 했다. 다른 여자가 웃으며 자기 끈을 풀어 매 주었다.

“악녀가 생선 팔러 왔나?”

끈을 매 준 여자가 나를 보고 소리쳤다. 좌판들에서 웃음이 일었다.

“아니요. 옷 팔러 왔어요.”

“여기서? 우리가 비단 입고 생선 배 따리?”

“비단 말고요.”

나는 그녀의 갈라진 가죽 앞치마를 보았다. 무겁고, 뻣뻣하고, 한 번 젖으면 하루 종일 마르지 않는 앞치마였다. 그리고 그 밑의 치마. 이 골목 여자들은 하루에 몇 번이나 젖은 치마를 짜는지 나는 몰랐다. 알아내야 했다.

나는 끈을 매 준 여자의 좌판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녀는 칼로 숭어 배를 가르고 있었다. 칼날이 비늘을 거슬러 올라갈 때마다 은빛 비늘이 튀어 내 소매에 붙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도라. 왜, 소식지에 내게?”

“앞치마 한 장에 얼마 주고 사세요?”

“이거? 무두장이한테 은화 여섯. 반년 가.”

“반년 지나면요?”

“이렇게 되지.”

도라가 칼끝으로 앞치마의 갈라진 자리를 가리켰다. 갈라진 틈으로 젖은 치마가 보였다.

“가죽은 소금 먹으면 갈라져. 안 갈라지는 건 비싸고. 그래서 그냥 젖어. 겨울엔 치마가 얼어서 걸을 때 사각사각 소리가 나.”

옆 좌판 여자가 거들었다. 자기 치마는 지난겨울에 얼어서 무릎 뒤가 찢어졌다고. 그 옆 여자는 그건 네가 뚱뚱해서 그렇다고 했고, 두 사람은 생선을 든 채 한참 말다툼을 했다. 도라는 말리지 않았다. 늘 있는 일이라는 얼굴이었다.

“재 봐도 돼요?”

“뭘?”

나는 베르에게서 빌려 온 매듭 끈을 꺼냈다. 도라가 칼을 내려놓고 끈을 쳐다보았다.

“그거 세탁장 여자들이 쓰던 거 아냐? 우리 어머니가 그걸로 치수 쟀는데.”

“베르 의상실 사장님 어머님 거예요.”

“아, 오델네.”

도라는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벌렸다. 비린내가 확 끼쳤다. 나는 그녀의 허리에 끈을 둘렀다. 스물여덟 매듭에서 한 매듭이 더 갔다.

“스물아홉이요.”

“세탁장 여자들보다 하나 많네. 생선 장수는 힘을 쓰니까.”

도라가 자랑스럽게 배를 두드렸다. 좌판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고, 아까 말다툼하던 두 여자가 저도 재 달라며 생선을 든 채 줄을 섰다.

*

그날 밤 하숙집에서 나는 한나에게 은화 다섯 닢을 내밀었다.

“로웬가로 돌아가. 아버지께는 내가 편지 써 줄게. 거기 있으면 품삯은 나와.”

한나는 은화를 보지도 않았다. 침대 끝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싫어요.”

“한나. 나 지금 빚이 이백이십이야. 너한테 품삯 못 줘.”

“알아요.”

“그리고 내일부터는 생선 골목이야.”

“알아요.”

한나가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반달 흉터 둘이 촛불 아래 하얗게 떠 있었다.

“아가씨가 저를 안 때리신 지 오늘로 보름째예요. 저 그거 세고 있어요.”

나는 은화를 쥔 손을 내렸다.

“로웬가로 가면 그거 다시 하나부터 세야 돼요. 거기엔 아가씨 아버님이 계시잖아요. 저는 보름 센 게 아까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나는 은화를 내 손에서 빼서 탁자 위에 도로 올려놓고, 촛불을 불어 껐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이불을 끌어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참 뒤에 조그맣게 말했다.

“내일은 열엿새째예요.”

*

이튿날 새벽, 점포 문을 열자 냄새가 먼저 덮쳤다.

어제 금화 열 닢을 주고 들여놓은 무명 다섯 필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천이 전부 축축했다. 손으로 짚자 손가락 끝에서 짠맛이 올라왔다. 천장의 홈통 한쪽이 뜯겨 있었고, 그 아래 벽에 소금물 자국이 굵게 흘러내렸다. 골목 바닥에서 주워 온 소금물이 아니었다. 생선 절이는 통에서나 나오는 진한 소금물, 간수였다.

무명 다섯 필이 하얗게 얼룩진 채 소금기를 머금고 무거워져 있었다. 첫날이었다. 열흘 가운데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문간에서 한나가 숨을 들이켰다. 나는 젖은 천 한 자락을 들어 올렸다. 소금이 마르면서 천 위에 물결 모양 테두리가 생기고 있었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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