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15자)

은화 세 닢

악녀는 결혼 첫날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 서지오

수도 소식지는 한 장짜리 종이였다. 아침마다 광장 게시판에 붙고, 빵집과 술집 계산대에도 한 장씩 놓였다. 그날 아침 빵집 계산대에 놓인 소식지 맨 위에는 큰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악녀, 법정에서 자백」.

빵집 주인은 소식지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호밀빵 값을 두 배로 불렀다.

“어제는 동화 넷이었잖아요.”

“어제는 악녀가 아니었잖소.”

“어제도 악녀였어요. 소식지에 안 났을 뿐이지.”

주인이 입을 벌렸다. 한나가 내 뒤에서 주먹을 쥐고 앞으로 나섰다.

“우리 아가씨가 악녀면 아저씨 빵은 돌덩이예요! 어제 산 거 아직도 안 씹혀요!”

빵집 안에 있던 손님 둘이 웃음을 터뜨렸다. 주인은 얼굴이 빨개져서 원래 값을 받고 빵을 하나 더 얹어 주었다. 빵집을 나오면서 한나가 내게 속삭였다. 어제 빵이 사실은 맛있었다고. 나는 덤으로 받은 빵을 한나 품에 안겨 주었다.

*

대신전 세탁장은 신전 본당 뒤편 언덕 아래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기도 전에 김이 올라왔다. 지붕만 덮인 긴 헛간 안에 돌 빨래통이 두 줄로 놓여 있었고, 여자들이 소매를 어깨까지 걷고 빨래 방망이를 내리치고 있었다. 방망이 소리가 일정하지 않아서 비 오는 날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잿물 냄새가 목구멍을 긁었다. 한 번 들이쉬면 혀끝이 쓴맛으로 저렸다.

나는 보자기를 안고 들어갔다. 보자기 안에는 연보라 드레스가 들어 있었다.

방망이 소리가 하나씩 멎었다. 여자들이 나를 알아보았다. 소식지는 세탁장에도 돌았다. 맨 안쪽 빨래통 앞에서 메이가 방망이를 든 채 나를 보았다. 방망이를 놓치지는 않았다.

“여긴 왜 왔어요?”

“드릴 게 있어서요.”

나는 메이의 빨래통 옆에 보자기를 내려놓고 풀었다. 연보라 실크가 젖은 돌 위로 흘렀다. 앞섶의 얼룩이 위로 오게 놓였다. 일 년 동안 아무도 빨지 않은 얼룩이었다. 메이가 그걸 내려다보았다. 방망이를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그 옷을 왜 나한테 줘요?”

“동방 실크고, 진주 단추가 열여섯 개예요. 얼룩이 있어도 팔면 금화 몇 닢은 받아요.”

“그러니까 왜 나한테 주냐고요. 이 옷 때문에 내가 굴렀는데.”

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서울에서 나는 불량 상품이 나오면 고객에게 사과 편지와 함께 같은 상품을 하나 더 보냈다. 그게 내가 아는 사과의 방식이었다. 여기서는 맞지 않았다.

메이가 방망이를 내려놓았다. 젖은 손으로 드레스를 집어 들어 도로 보자기 위에 올렸다. 얼룩이 다시 위로 왔다.

“가져가요. 당신이 가져요. 볼 때마다 생각하라고.”

“…네.”

“팔지 마요.”

“안 팔아요.”

“뜯어서 단추로 만들지도 말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메이는 내 표정을 보고 아주 조금 입꼬리를 올렸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짧았다.

“세탁장에도 소문 다 와요. 악녀가 혼수 뜯어서 단추 만든다고.”

옆 빨래통의 덩치 큰 여자가 방망이를 어깨에 걸치고 끼어들었다.

“그 단추 옷, 우리 딸이 샀어. 스물다섯 매듭짜리.”

“어떠시대요?”

“빨아도 깃이 안 줄었대. 그래서 내가 빨아 봤지. 진짜 안 줄더라.”

세탁장 여자들이 웃었다. 방망이 소리가 다시 하나둘 살아났다. 웃음이 잦아들 때쯤 그 여자가 나를 보며 덧붙였다. 그래도 악녀는 악녀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산 옷이 안 줄어든 것과 내가 악녀인 것은 둘 다 맞는 말이었다.

*

루시아는 세탁장 뒷문 밖 빨랫줄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젖은 홑청이 바람에 부풀었다 가라앉을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가려졌다가 드러났다.

“메이가 옷을 안 받았죠?”

“네.”

“그럴 줄 알았어요.”

루시아는 빨래집게를 하나 빼서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돌렸다.

“법정 열리기 전날, 전하가 메이를 찾아왔어요. 금화 열 닢을 주면서 말했대요. 아가씨가 그냥 민 게 아니라 죽이려고 밀었다고 말하라고. 계단 위에서 웃었다고.”

나는 빨랫줄을 붙잡았다. 젖은 줄이 손바닥을 차갑게 적셨다.

“메이는 뭐라고 했어요?”

“금화를 돌려줬어요. 본 대로만 말하겠다고. 그래서 법정에서 그렇게 말한 거예요. 아가씨 손이 어깨에 닿았다고. 웃었다는 말은 안 했죠.”

“비올렛은 웃었어요?”

입에서 나온 질문이 이상했다. 루시아가 나를 오래 보았다. 홑청이 부풀어 그녀의 얼굴을 한 번 가렸다가 지나갔다.

“아가씨가 그걸 저한테 물어요?”

“…기억이 잘 안 나서요.”

거짓말이었다. 비올렛의 기억에 웃음은 없었다.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며 굳어 있던 얼굴만 있었다. 그 얼굴이 무슨 얼굴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루시아가 빨래집게를 도로 줄에 꽂았다.

“전하는 웃는 악녀가 필요해요. 그래야 저를 구하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그 말을 하는 성녀의 얼굴에는 원작 표지의 빛이 하나도 없었다.

*

사흘 뒤 법정은 처음보다 사람이 많았다. 방청석이 꽉 찼고, 문밖 복도까지 사람이 서 있었다. 원로석 오른쪽 끝의 노인은 이번에는 귀에 나팔 같은 놋쇠 통을 대고 앉아 있었다.

메이가 증인석에 섰다. 레오니스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증인.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 보거라. 이 법정이 들어 주겠다.”

“다친 뒤로 일 년 동안 일을 못 해서 못 받은 품삯이요. 세탁장 품삯으로 쳐서 금화 열 닢입니다. 그리고 다리를 다시 맞춰 볼 수 있는지 의원한테 보이는 값이요. 의원이 금화 스무 닢이라고 했습니다. 합해서 서른입니다.”

그리고 메이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은화 세 닢이었다.

“이건 로웬 백작님께 돌려드리고 싶어요. 다친 날 받은 거예요. 일 년 동안 안 썼어요.”

메이가 은화를 증인석 난간 위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은화가 나무에 닿는 소리가 세 번 났다. 방청석 어딘가에 앉아 있을 로웬 백작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 은화 세 닢을 보았다. 비올렛의 아버지가 딸의 일을 덮으려고 낸 값이었다. 메이는 일 년 동안 그 값을 쥐고만 있었다.

레오니스가 손을 들었다.

“서른이라니, 너무 적군. 증인은 제국의 귀족에게 다리를 잃었소. 제국의 체면이 서른 닢이어서는 안 되지.”

“저는 서른이라고 했어요.”

메이가 말했다. 목소리가 처음으로 컸다. 레오니스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

“법정은 배상을 금화 삼백으로 정하겠소. 원로 여러분의 뜻은?”

원로들이 서로를 보았다. 삼백 금화는 공작가 영지의 한 해 세금 가운데 적지 않은 몫이었다. 그러나 황태자가 피해자 편을 들겠다는데 반대할 원로는 없었다. 손이 하나씩 올라갔다.

“그리고 판결하오. 이혼은 허락한다. 다만 공작이 사십 일 안에 서류를 황궁 문서청에 내야 이혼이 선다. 증거로 보관한 드레스 열 벌은 돌려준다. 부인은 이번 사교 철 동안 귀족 연회에 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배상금 삼백은 서른 날 안에 갚는다. 못 갚으면 부인의 빚은 남편의 빚이 되고, 이혼은 없던 일로 하오.”

망치가 내려왔다. 나는 그제야 그의 셈을 다 읽었다. 메이의 다리를 핑계로 나를 다시 아르덴에 묶는 셈이었다. 서른 날 안에 삼백을 못 구하면 나는 공작 부인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가을 건국제까지 원작의 길이 그대로 열린다.

메이가 증인석에서 내려오며 나를 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서른이라고 했는데.

원로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이 카일이 내 옆으로 왔다. 그는 앞을 본 채 말했다. 피로연 날 왈츠를 출 때와 같은 자세였다.

“삼백은 내가 내겠소.”

“안 돼요.”

“아르덴 금고에 그 돈은 있소.”

“있으니까 안 돼요. 공작님이 내시면 그 돈은 공작님 빚이 되고, 저는 공작님한테 빚진 여자가 돼요. 그럼 전하가 원하시는 대로 저는 아르덴에 묶이고요.”

카일이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회색 눈이었다. 북부 하늘이 이런 색이라고 원작에 적혀 있었는데, 작가님 말이 맞았다.

“빚을 지는 게 그렇게 싫소?”

“빚이 싫은 게 아니라, 제 빚을 남이 갚는 게 싫어요. 메이 다리 값이잖아요. 제가 갚아야죠.”

“부인 손으로 서른 날에 삼백을.”

“네.”

“드레스 열 벌로.”

“오늘 그 말 두 번째 들어요.”

그가 입을 다물었다. 원작에서 이 남자는 화가 나면 창밖을 본다. 법정에는 창이 없었다. 그는 창 대신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로더릭이 뒤에서 작게 기침을 했다.

“공작 전하,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카일은 대꾸하지 않고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주머니 속에서 쇠붙이 같은 것이 작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

복도에서 레오니스가 걸음을 늦췄다. 나는 그를 지나치지 않았다. 그의 앞에 섰다.

“전하. 메이는 서른이라고 했어요.”

“부인은 피해자에게 깎아 주자고 하는 거요?”

“아니요. 전하가 메이 다리로 셈을 하시는 게 싫다고 하는 거예요.”

그의 웃음이 얇아졌다. 근위병들이 몇 걸음 떨어져 섰다.

“부인. 가을까지 부인은 아르덴 공작 부인이오. 사십 일은 길고, 서른 날은 짧지.”

“서른 날 안에 갚을게요.”

“드레스 열 벌로?”

“드레스 열 벌로 시작해서요.”

그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처음 만난 피로연 날 그는 나를 처형대에 오를 이름으로 보았다. 지금은 조금 달랐다. 셈이 틀어진 매상표를 보는 눈이었다. 그 눈 앞에서 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겁이 아니라 빵값이었다. 서른 날 동안은 호밀빵 하나도 셈해서 사야 했다.

*

법정 계단 아래에서 베르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잠옷이 아니라 검은 외출복을 입었고, 목에는 매듭 끈이 걸려 있었다.

“삼백이라며.”

“네.”

“바보.”

베르는 계단 난간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무언가를 재는 손짓이었다.

“내 가게, 사겠냐?”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성녀 예복 주문이 들어온 주에 내 가게 뒤에 기름이 부어졌다. 다음엔 안 꺼질 수도 있지. 나는 그 주문 끝내고 고향에 갈 거다. 가게는 누구한테 넘기고. 이왕이면 안 태울 사람한테.”

“저 돈 없어요. 빚이 삼백이에요.”

“값은 이익에서 나눠 내. 그 대신 조건이 있다.”

“뭔데요?”

“상업 길드 인장을 받아 와. 중앙가에서 가게를 하려면 길드 인장이 있어야 한다. 근데 길드는 귀족 여자를 안 받아. 이혼 중인 여자는 더 안 받고.”

베르가 매듭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받아 오면 판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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