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58자)

열두 계단

악녀는 결혼 첫날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 서지오

메이는 키가 작았다. 머릿수건 밑으로 빠져나온 머리카락은 볏짚 색이었고, 지팡이를 쥔 손등은 잿물에 오래 담근 사람의 손처럼 붉게 터 있었다. 왼쪽 다리가 바깥으로 조금 휘어 있어서, 걸을 때마다 몸 전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가 지팡이에 기대 돌아왔다. 증인석까지 스무 걸음쯤 되는 거리를 그녀는 오래 걸었다. 법정 안에서 그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은 없었다.

스물이라고 했다. 일 년 전에는 열아홉이었다. 그 나이를 알고 있는 것도 비올렛의 기억이었다.

“증인. 이름과 하던 일을 말하라.”

“메이입니다. 로웬 백작 댁 이층 시중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대신전 세탁장에서 일합니다.”

목소리가 작았는데 대리석이 그 소리를 키웠다. 레오니스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묻는 목소리는 오늘 들은 것 가운데 가장 다정했다.

“지난봄 로웬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보거라. 겁낼 것 없다.”

메이가 지팡이를 두 손으로 쥐었다.

“차를 나르고 있었습니다. 이층 계단참에서 아가씨, 아니 비올렛 아가씨와 마주쳤습니다. 아가씨가 갑자기 돌아서셔서 쟁반이 기울었고, 찻물이 아가씨 옷에 튀었습니다. 연보라색 옷이었습니다.”

나는 숨을 쉬지 않았다.

“아가씨가 이게 얼마짜린 줄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대답을 못 했습니다. 그다음에 아가씨 손이 제 어깨에 닿았습니다. 계단이 열두 칸이었습니다. 저는 세 번째 칸에서 정신을 놓았습니다. 깨어 보니 다리가 이렇게 돼 있었습니다.”

원로석이 조용했다. 오른쪽 끝의 노인도 귀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 뒤로는?”

“백작님이 은화 세 닢을 주시고 집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집에서는 다리 못 쓰는 딸을 먹일 수가 없었습니다. 신전에서 받아 주셨습니다.”

레오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나를 보았다.

“공작 부인. 증인의 말이 사실이오?”

비올렛의 기억은 선명했다. 쟁반이 기울던 각도, 찻물이 실크에 스미던 온기, 그리고 손바닥에 닿던 면 옷의 감촉. 얇은 천 밑으로 만져지던 어깨뼈가 생각보다 작았다는 것까지. 원작 4권에서 비올렛은 이 일을 두고 하녀가 발을 헛디뎠다고 말했다. 메이의 아버지에게 은화를 더 보내 입을 막았다. 독자들은 그 장면에서 비올렛을 욕했고, 나도 욕했다.

부인하면 증인은 메이 하나였다. 계단참에는 둘밖에 없었다.

“사실입니다.”

내 목소리가 대리석에 부딪혀 두 번 돌아왔다.

“제가 밀었습니다.”

법정이 한꺼번에 숨을 들이쉬었다. 원로 하나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가 도로 앉았다. 레오니스의 손가락이 팔걸이 위에서 멈췄다. 그는 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내가 부인하고, 메이가 울고, 원로들이 분노하는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나와 증인석 앞으로 걸어갔다. 스무 걸음이었다. 메이가 오래 걸어온 거리를 나는 금방 걸었고, 그게 부끄러웠다. 메이 앞에 서서 무릎을 꿇었다.

대리석은 차가웠다. 얇은 실크 너머로 냉기가 무릎뼈에 곧장 닿았고, 탄 치맛단을 접어 올린 핀 하나가 무릎 밑에서 살을 찔렀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메이의 지팡이 끝이 눈앞에 있었다. 물푸레나무였고, 끝이 닳아 둥글었다. 일 년 동안 하루에 몇 번이나 바닥을 짚으면 나무가 저렇게 닳는지 나는 몰랐다.

“미안합니다.”

머리 위에서 아무 소리도 없었다. 한참 뒤 지팡이 끝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일어나세요.”

메이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작았다.

“당신 무릎 보러 온 거 아니에요.”

*

카일 아르덴은 아내가 무릎 꿇는 것을 원로석 아래 공작 자리에서 보았다.

보고서에서 읽은 여자와 달랐다. 혼담이 정해지던 지난겨울, 그는 로웬 백작가의 장녀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을 전부 알아 오게 했다. 집사 로더릭이 가져온 보고서는 석 장이었고, 그중 한 장이 계단 이야기였다. 그는 그 장을 두 번 읽고 혼담을 물리려 했다. 물릴 수 없었다. 황태자가 직접 고른 신부였다.

황태자는 혼담을 꺼내던 날 북부 군량 통행 허가를 함께 꺼냈다. 해마다 봄에 황궁이 내주는 허가였다. 그 허가가 없으면 남부 곡물이 북부 국경 요새로 올라가지 못했다. 황태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신부 이야기를 하고, 허가 이야기를 하고, 차를 마셨다. 카일은 그날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서명할 곳을 알았다.

그렇게 맞은 아내가 혼인 첫날 밤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그리고 지금 법정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보고서의 여자는 하녀가 헛디뎠다고 말했을 사람이었다. 남을 시켜 불을 지르고, 남을 시켜 입을 막았을 사람이었다. 그는 그 여자를 미워할 준비를 해 두었는데, 준비해 둔 것이 쓸 데가 없었다.

“공작 전하.”

로더릭이 뒤에서 허리를 굽혀 속삭였다.

“점심은 원로원 식당에 일러 두었습니다. 북부식 순무 수프로.”

“지금 그 말을 해야겠나.”

“지금이 아니면 수프가 식습니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로더릭은 대답이 없는 것을 허락으로 알아듣고, 수프에 빵을 몇 조각 띄울지 식당 하인에게 이르러 나가려다가, 황태자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소리 없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황태자가 일어섰다. 원로석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러분, 들으셨소. 공작 부인이 자기 입으로 사람을 해친 죄를 털어놓았소. 이런 아내를 맞은 집안이 하루 만에 손을 떼겠다고 하오. 나는 아르덴 공작에게 묻고 싶소. 아내의 죄를 아내 혼자 지게 하는 것이 공작가의 도리요? 이혼을 논하기 전에, 이 죄는 아르덴이 함께 짊어져야 하오.”

카일은 그 말의 끝을 알았다. 아르덴이 함께 짊어진 죄는 나중에 아르덴을 치는 몽둥이가 된다. 그 몽둥이를 쥔 손은 지금 단상 위에 있었다.

그는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로더릭의 손이 소매를 붙잡는 것을 느꼈다. 그 손을 떼어 냈다.

“전하. 계단 일은 지난봄의 일입니다.”

“그래서?”

“혼인은 열흘 전입니다. 그 일이 있었을 때 저 사람은 비올렛 로웬이었습니다. 아르덴의 이름이 붙기 전입니다. 로웬가의 계단에서 일어난 일을 아르덴이 지라 하시면, 앞으로 이 제국의 모든 신랑은 신부의 어린 시절까지 사서 와야 합니다.”

원로석 왼쪽에서 누군가 웃었다가 멈췄다. 오른쪽 끝의 노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옳은 말이오! 나도 우리 집사람 어릴 적 일까지 지라면 못 살았소!”

황태자의 웃음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 웃음은 원로석이 아니라 카일을 향했다. 카일은 그 눈을 받았다. 다음 봄 군량 허가 문서에 무엇이 적힐지 그 눈에 다 쓰여 있었다.

“공작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 법정은 사흘 뒤 다시 열겠소. 그때 이혼의 허부와 위자료, 그리고 증인에게 무엇을 갚을지 함께 정하겠소.”

망치가 내려쳐졌다. 카일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바닥에 꿇어앉아 있던 아내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펴다가 한 번 휘청했고,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는 한 걸음 나섰다가 멈추었다. 그 한 걸음을 원로석이 다 보았다.

법정 옆문으로 나가는 복도에서 황태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는 좁았고, 창이 하나뿐이라 한낮인데도 마도 등불이 켜져 있었다. 근위병들은 복도 끝에 서 있었다. 둘만 남게 하려고 세워 둔 거리였다.

“공작. 법정에서 말을 많이 하더군.”

“평소보다 조금 많았습니다.”

“북부 사람은 말이 짧은 줄 알았는데.”

“눈이 많이 오는 해에는 길어집니다.”

황태자가 웃었다. 그는 손을 뒷짐 지고 창밖을 보았다. 창밖으로 황궁 곡물 창고의 지붕들이 보였다. 우연히 그 창을 고른 사람은 아니었다.

“올봄 군량 허가 문서는 아직 내 책상 위에 있소. 서명만 남았지. 요즘 내가 손목이 좀 아파서, 서명이 늦어지고 있소.”

“의원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북부에는 손목에 좋은 고약이 있습니다.”

“고맙군. 그런데 고약보다는 좋은 소식이 낫더군. 예를 들면, 아르덴 공작이 아내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소식 같은 것.”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황태자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 번 두드리고 근위병들 쪽으로 걸어갔다. 두드린 자리가 이상하게 무거웠다. 카일은 북부 국경 요새의 창고를 떠올렸다. 지난겨울을 나고 남은 곡물은 넉 달 치였다.

*

순무 수프는 식어 있었다. 로더릭의 말이 맞았다.

나는 원로원 식당에 가지 않고 법정 앞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 무릎에 핀 자국이 빨갛게 나 있었고, 계단 돌은 대리석보다는 덜 차가웠다. 한나가 옆에서 내 무릎에 손수건을 대고 있었다. 베르는 계단 아래에서 원로원 마부들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잠옷 레이스 이야기가 들렸다.

“법정에 잠옷 입고 온 여자는 처음 본다고? 이건 잠옷이 아니라 실내복이야!”

“레이스가 달렸잖소.”

“레이스 달리면 다 잠옷이야? 그럼 너네 원로님들 소맷부리도 다 잠옷이다!”

마부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그중 하나가 자기 소맷부리를 내려다보고 슬그머니 팔을 등 뒤로 감췄다. 베르는 이긴 사람의 얼굴로 외투 앞섶을 여몄는데, 여미는 바람에 레이스가 더 삐져나왔다. 한나가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떨었다. 나도 웃었다. 법정 안에서 굳어 있던 얼굴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

“아가씨, 왜 그러셨어요?”

“뭘?”

“그냥 아니라고 하시지. 아무도 못 봤잖아요.”

“메이가 봤잖아.”

한나가 손수건을 접었다 폈다. 그러고는 아주 작게 말했다. 자기 손등 흉터도 아가씨가 그랬다고. 그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 나는 한나의 손등을 보았다. 반달 둘.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과는 아까 썼다. 같은 말을 하루에 두 번 하면 두 번째는 값이 없었다.

계단 위에서 지팡이 소리가 났다.

메이가 내려오고 있었다. 한 칸씩, 지팡이를 먼저 내리고 오른발을 내리고 왼발을 끌어 내렸다. 나는 일어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녀가 내 옆 칸에 멈추었다. 열두 칸짜리 법정 계단의 여섯 번째 칸이었다.

“아까 무릎 꿇은 거요.”

“네.”

“그거 당신 편하자고 한 거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사흘 뒤에 또 와요. 판사님들 앞에서. 그때 내가 원하는 걸 말할 거예요. 당신이 듣고 싶은 거 말고, 내가 원하는 거.”

메이는 남은 여섯 칸을 내려갔다. 아무도 부축하지 않았다. 부축하려고 일어선 한나를 그녀가 손짓 하나로 앉혔다.

계단 아래에서 마부와 다투던 베르가 메이를 보더니 입을 다물고 길을 비켜 주었다. 메이가 광장을 가로질러 신전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그녀가 몇 걸음마다 지팡이를 고쳐 쥐는지 세었다. 일곱 걸음마다였다.

5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열두 계단 · 악녀는 결혼 첫날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