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46자)
탄 치맛단으로 법정에
악녀는 결혼 첫날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 서지오
야경꾼 초소의 의자는 참나무 통판이었다. 엉덩이를 대면 차갑고, 오래 앉아 있으면 나뭇결이 살에 새겨졌다. 나는 그 의자에서 밤을 새웠다. 치맛단 탄 자리에서 밤새 매캐한 냄새가 올라왔고, 초소 화로에서는 누가 말린 생선 껍질을 굽고 있었다. 두 냄새가 섞이니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새벽에 한나가 빵을 들고 왔다. 빵은 아직 따뜻했고, 한나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아가씨가 불을 지르셨다고 하숙집 아주머니가 그래요. 아니죠? 아니죠?”
“불을 껐어.”
“그럼 왜 여기 계세요?”
“불 끄는 사람이 기름통을 들고 있으면 이렇게 돼.”
한나가 빵을 반으로 갈라 큰 쪽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초소장은 책상에 앉아 깃펜으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혐의자 비올렛 아르덴. 아르덴 공작 부인. 그는 ‘부인’ 자를 쓰다가 펜을 멈추고 나를 한 번 보더니, 그 옆에 작게 덧붙였다. 이혼 중.
초소 문이 거칠게 열렸다. 베르였다. 잠옷 위에 외투만 걸쳤고, 머리에는 수면모를 쓴 채였다. 그녀는 나를 보지도 않고 초소장 책상 앞으로 가서 손바닥을 내리쳤다.
“이 여자가 불을 질렀다고?”
“현장에 기름통을 들고 있었소.”
“그럼 이건 뭐요?”
베르가 목에서 매듭 끈을 풀어 책상에 던졌다.
“이 여자가 어젯밤 이걸 찾으러 왔소. 계산대 위에 두고 갔더라고. 내 가게 태울 사람이 내 끈 잃어버릴까 봐 밤 열한 시에 뛰어와?”
초소장이 끈을 집었다가 무슨 물건인지 몰라 도로 내려놓았다. 베르가 그제야 나를 보았다. 위아래로 훑고, 탄 치맛단에서 눈을 멈췄다.
“발로 밟았냐?”
“네.”
“구두 버렸겠네.”
“네.”
“바보.”
그 말을 하는 베르의 목소리가 조금 낮았다. 초소장은 헛기침을 하고 서류를 접었다.
“이 건은 황궁 경비청으로 넘어갑니다. 황궁에서 직접 내려온 지시입니다. 혐의자는 오늘 귀족 법정에 출석해야 하니, 그쪽에서 데려가시오.”
그쪽이 누구냐고 묻기 전에 초소 밖에서 말 울음소리가 났다.
*
카일 아르덴은 마차 문을 열고 내리지 않았다. 문간에 한 손을 걸치고 초소를 올려다보았다. 아침 햇빛이 그의 회색 외투 어깨에 얹혀 있었고, 말 두 마리가 콧김을 뿜을 때마다 흰 김이 피어올랐다.
“타시오. 열 시에 심리요.”
나는 마차에 올랐다. 맞은편 자리에 앉자 카일의 눈이 내 치맛단으로 내려갔다.
“법정에 그 옷으로 갈 거요?”
“드레스가 없어서요.”
“서른 벌이 있지 않았소?”
“열 벌은 황태자 전하가 증거로 가져가셨고, 세 벌은 성녀님이 사 가셨고, 여덟 벌은 뜯어서 단추가 됐어요. 하나 남은 건 못 입는 옷이에요.”
카일은 말없이 창밖을 보았다. 원작에서 이 남자가 창밖을 볼 때는 화가 났을 때다. 그런데 창밖을 보는 그의 어깨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웃는 건지 마차가 흔들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젯밤 일은 들었소.”
“제가 안 했어요.”
“알고 있소.”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부인이 불을 지를 사람이었으면, 기름통을 들고 서 있지 않았을 거요. 로웬가 따님은 늘 남을 시켰으니까.”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이었다. 둘 다였다.
“그런데 그 일 때문에 내 집안 이름이 방화 서류에 올라갔소. 아르덴 공작 부인, 혐의자.”
“죄송합니다.”
“사과는 판결 나고 받겠소.”
*
법정 앞 대기실은 복도 끝의 좁은 방이었다. 한나가 무릎을 꿇고 앉아 베르에게서 빌린 핀으로 내 치맛단의 탄 자리를 안쪽으로 접어 올렸다. 핀을 하나 꽂을 때마다 그을린 실크가 바스러져 바닥에 검은 가루가 떨어졌다. 베르는 대기실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수면모는 벗었지만, 외투 아래로 잠옷 자락이 보였다.
“핀은 돌려받는다.”
“네.”
“한 개도 빠짐없이.”
“네.”
대기실 문이 열렸다. 하얀 제복이 먼저 들어오고, 그 뒤로 금발이 들어왔다. 레오니스는 대기실을 지나 법정으로 가는 길이었고, 굳이 이 방을 지나갈 이유는 없었다. 그는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불 냄새가 나는군, 공작 부인.”
“전하 시종관께서 성녀님 예복을 맡기러 오신 바로 그 가게였어요. 그 주에 불이 날 뻔했네요.”
“우연이군.”
“네. 원작에서도 그랬어요.”
“원작?”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너무 졸려서 입이 먼저 나갔다. 레오니스가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부인은 가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군. 혼인 첫날에도 마감이 어쩌고 하더니.”
“제 고향 말이에요. 로웬 영지 사투리.”
한나가 핀을 든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로웬 영지 출신인 한나는 그런 사투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레오니스는 한나를 한 번 보고, 다시 나를 보고, 웃으며 법정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나간 뒤에도 대기실에는 그의 옷에서 묻어난 백단향 냄새가 오래 남았다.
“아가씨.”
“응.”
“로웬 영지에 그런 사투리 없어요.”
“알아.”
*
귀족 법정은 황궁 서쪽 날개의 원로원 건물 안에 있었다. 문을 지나자 천장이 사람 키의 다섯 배쯤 높아졌다. 대리석 바닥이 걸음 소리를 두 번씩 돌려주었고, 벽을 따라 늘어선 촛대에서 밀랍 냄새와 오래된 양피지 냄새가 섞여 내려왔다. 반원으로 놓인 열두 자리에 원로 귀족들이 앉아 있었다. 다들 예순은 넘어 보였다. 그 반원 가운데, 한 단 높은 자리에 레오니스가 앉아 있었다. 황제를 대리해 이혼 심리를 주재하는 자리였다.
원작에서 이 방은 5권에 딱 한 번 나온다. 비올렛의 사형을 확정하는 날이었다. 그때 비올렛은 쇠사슬을 차고 이 대리석 위를 걸었다. 나는 탄 치맛단을 끌고 걸었다. 그나마 나았다.
전령이 청원서를 읽었다. 아르덴 공작 카일 아르덴과 그 부인 비올렛은 혼인 첫날 서로의 뜻으로 이혼을 청한다. 위자료는 부인의 혼수 드레스 서른 벌로 한다.
원로석 오른쪽 끝에 앉은 노인이 귀에 손을 댔다.
“누가 이혼을 한다고?”
옆자리 원로가 몸을 기울여 말해 주었다.
“신혼 첫날? 허, 우리 때는 적어도 일 년은 참았는데.”
원로석 몇 곳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레오니스가 의자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한 번 두드리자 웃음이 그쳤다.
“아르덴 공작. 이혼을 원하는 이유를 말하시오.”
카일이 일어났다.
“아내가 원하오. 나도 원하오.”
그리고 앉았다. 이유는 그게 전부였다. 원로 하나가 수염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 사람은 말이 짧다고 누가 중얼거렸다.
“하루 만에 아내를 내놓는 것이 북부의 예법이오, 공작?”
레오니스가 물었다. 카일이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일어났다.
“북부에서는 하루면 눈이 한 자 쌓입니다, 전하. 하루는 짧지 않습니다.”
그는 또 앉았다. 원로석 오른쪽 끝의 노인이 이번에는 알아들었는지 무릎을 쳤다. 나는 고개를 숙여 웃음을 감추었다. 원작에서 이 남자의 대사는 대부분 “…그렇소”였다. 이렇게 말을 잘하는 줄은 몰랐다.
“공작 부인.”
나는 일어났다. 무릎이 조금 떨렸지만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신입 시절 첫 품평회에서 바이어 스무 명 앞에 섰던 날보다는 나았다.
“저도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 청이 있습니다. 위자료로 받기로 한 드레스 열 벌을 전하께서 증거로 가져가셨습니다. 돌려주십시오.”
레오니스가 웃었다.
“부인은 어젯밤 방화 현장에서 잡혔소.”
“불을 껐습니다.”
“기름통을 들고.”
“기름통을 치우려고 들었습니다. 불 붙은 데 옆에 두면 더 크게 타니까요.”
“그걸 본 사람은?”
“의상실 주인이 제가 그 가게에 무엇을 두고 갔는지 압니다. 지금 방청석에 있습니다.”
레오니스가 눈썹을 올렸다. 방청석 뒷줄에서 베르가 일어났다. 외투 앞섶을 여몄는데도 잠옷 레이스가 목덜미로 비어져 나와 있었다. 원로 몇이 그 레이스를 보았다.
“베르 의상실 주인 오델 베르요. 이 여자는 어젯밤 내 줄자를 찾으러 왔소. 내 가게 태울 사람은 내 줄자 걱정을 안 하오.”
“줄자라.”
“매듭 끈이오. 우리 어머니 거요.”
원로석 오른쪽 끝의 노인이 다시 귀에 손을 댔다. 이번에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레오니스가 베르를 내려다보았다.
“주인은 이 여자에게 일당을 주고 있지?”
“은화 둘이오.”
“그리고 이 여자의 드레스를 뜯어 옷을 지어 팔았고.”
베르의 입이 다물렸다. 레오니스는 원로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인은 일당을 주는 일꾼을 감싸고, 그 일꾼의 드레스로 돈을 벌었소. 두 사람 말은 한 사람 말이오.”
베르가 자리에 앉았다. 앉으면서 나를 보았는데, 미안하다는 얼굴은 아니었다. 다음엔 더 크게 말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레오니스의 목소리는 끝까지 부드러웠다. 그는 원로석을 향해 손을 펼쳤다.
“여러분. 부인은 혼인 첫날 이혼을 청했고, 이튿날 혼수를 시장에 팔았고, 열흘도 안 되어 불난 가게 뒤에서 기름통을 들고 서 있었소. 이런 여자를 지금 놓아주면, 그 뒤로 이 여자가 저지르는 일은 누가 책임지겠소? 혼인은 집안끼리 맺은 약속이오. 아르덴은 아내를 맞았으니 아내를 책임져야 하오.”
원로석이 술렁였다. 반원 왼쪽의 원로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제야 그의 셈을 알았다. 레오니스는 나를 아르덴 안에 묶어 두려고 했다. 내가 아르덴 공작 부인으로 죄를 지어야, 그 죄로 아르덴을 칠 수 있었다.
“전하.”
내가 말했다. 대리석이 내 목소리를 두 번 돌려주었다.
“책임을 지라고 하시면 제가 지겠습니다. 공작님이 지실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제 이름을 공작님 이름에서 떼어 주십시오.”
“부인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이 법정이 정하오.”
“그럼 정해 주십시오. 오늘.”
레오니스가 처음으로 웃음을 거두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웃었다. 이번 웃음은 아까보다 얇았다.
“좋소. 정하지. 다만 위자료를 정하려면 부인의 품행부터 따져야 하오. 혼인 전 로웬가에서 부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 법정이 들어 봐야겠소.”
등 뒤에서 카일이 몸을 곧게 세우는 기척이 났다. 레오니스가 전령에게 손짓했다. 전령이 두루마리를 펴고 목청을 높였다.
“증인. 로웬 백작가의 하녀였던 메이, 앞으로.”
법정 뒷문이 열렸다. 대리석 위로 지팡이 끝이 닿는 소리가 났다. 한 번, 그리고 질질 끌리는 발소리,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오른손을 치마 주름 속으로 밀어 넣었다. 주먹을 쥐어도 손바닥이 그 소리를 알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