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47자)

계단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양현오

“⁠제안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명후가 수화기 너머에서 말했다⁠. 뒤에서 빈집의 숨소리가 계속 들렸다⁠. “⁠연기탁 씨 본몸은 지금 오십삼 층에 편히 누워 있습니다⁠. 마흔⁠, 허리 디스크⁠, 엄지 결손⁠. 시세로 치면 팔백쯤 되겠지요⁠. 저한테는 값이 없는 몸입니다⁠.⁠”

“⁠그럼 돌려줘⁠.⁠”

“⁠값이 없으니까 바꾸자는 겁니다⁠. 값 없는 것과 값 있는 것을⁠. 서노을 씨를 보내 주시면 이 몸을 돌려 드립니다⁠. 기한은 그대로 수요일 자정⁠.⁠” 한명후가 잠깐 말을 쉬었다⁠. 손톱이 살을 긁는 소리가 수화기에 실려 왔다⁠. “⁠그리고 지금 입으신 HS-2는 회사 물건입니다⁠. 그것도 수요일 자정까지 돌려주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그 몸 번호를 따라 회수팀이 갑니다⁠. 그때는 연기탁 씨가 그 몸의 앞방에 앉아 계시겠지요⁠.⁠”

“⁠회수하면 날 어디 넣을 건데⁠?⁠”

“⁠빈 뒷방이 많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기탁은 휴대폰을 HS-2의 주머니에 넣었다⁠. 이 몸의 오른손이 허리춤에서 탐지기를 찾았다⁠. 거기에는 송도 지하에서 들고 나온 탐지기가 걸려 있었다⁠.

*

화요일 아침 아홉 시⁠, 상인회장이 땜방에 왔다⁠. 이번에는 사무장과 둘이었다⁠. 찢어진 셔터 아래로 고개를 숙여 들어온 바닥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허물 의체 일곱이 땜방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남의 팔다리 부품 사이로⁠, 신발 신은 발과 맨발이 나란히 놓였다⁠. 심은 꺼져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송도 보관소 지하에서 꺼내 온 거요⁠.⁠” 기탁이 말했다⁠. HS-2의 맑은 목소리에 낮고 느린 말투였다⁠. 상인회장은 처음 보는 젊은 얼굴이 기탁처럼 말하는 것에 눈을 가늘게 떴다⁠. “⁠서른 있었는데 일곱 꺼냈어⁠. 나머지 스물셋은 어젯밤에 비워졌고⁠.⁠”

“⁠너 연기탁이야⁠?⁠”

“⁠몸만 회사 거요⁠.⁠”

상인회장은 사무장에게서 종이 한 장을 받아 들었다⁠. 땜방 임대 경고장이었다⁠. 이것을 내밀려다가 바닥의 몸들을 다시 보았다⁠.

“⁠회사가 그러더라⁠. 땜방까지 비워야 경매를 연다고⁠. 그래서 온 거야⁠. 나도 이러고 싶은 거 아니야⁠.⁠”

“⁠한 사람 말 들어 보고 가시오⁠.⁠”

기탁은 일곱 가운데 남자형 HM-4 하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탐지기를 대자 맥이 울렸다⁠. 이 몸의 목덜미 심을 켰다⁠. 켜는 순간 경보가 회사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 꽝수가 뜯긴 어깨를 감싼 채 고개를 저었지만 말리지 않았다⁠.

HM-4의 눈꺼풀이 올라갔다⁠. 입술이 움직였다⁠.

“⁠어⁠… 여기 어디야⁠? 부산이야⁠?⁠”

상인회장의 손에서 경고장이 흔들렸다⁠.

목소리는 HM-4의 목소리였다⁠. 굵고 평범한 남자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 목소리가 다음에 한 말은 이랬다⁠.

“⁠누나는⁠? 누나한테 나 부산 잘 갔다고 전화해야 되는데⁠. 매형한테 말하면 또 털조끼 입고 잔소리할 거고⁠.⁠”

상인회장이 한 걸음 다가갔다⁠. 털조끼 차림이었다⁠. 무릎이 나쁜 생몸으로 바닥에 주저앉듯 꿇었다⁠.

“⁠너⁠… 너 처남이야⁠? 이 년 전에 부산 지사 간다던⁠?⁠”

눈알이 굴렀다⁠. 흐린 눈이었다⁠. 초점이 상인회장의 얼굴에 맞지 않았다⁠.

“⁠매형⁠? 매형 목소리 맞지⁠? 아직도 털조끼 입어⁠? 그거 누나가 싫어하는데⁠.⁠”

상인회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HM-4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 끝만 움직이는 손이 상인회장의 손을 긁었다⁠. 이 년 동안 처남이 부산에서 잘 산다고 믿었다⁠. 처남이 보낸 영상 편지를 아내와 같이 보았다⁠. 이 영상에서 처남은 한 번도 상인회장을 매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 몸⁠, 우리 상가에 서 있었어⁠?⁠” 상인회장이 기탁에게 물었다⁠.

“⁠송도 지하에 있었소⁠. 다음 경매에 나올 차례였고⁠.⁠”

상인회장은 처남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사무장을 돌아보았다⁠.

“⁠가서 사람들 불러⁠. 창고에 국산 몸 있는 집은 다 들고 오라고 해⁠. 번호 없는 걸로⁠.⁠”

삼십 분 뒤 땜방 앞 복도가 몸으로 찼다⁠. 상가 주인들이 제 창고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옛 국산 몸들을 운반대에 싣고 왔다⁠. 빌딩 청소용 청소 2형⁠, 개인택시 기사들이 쓰던 택시 1형⁠, 백화점 진열창에서 옷을 걸고 서 있던 진열 0형⁠. 진열 0형은 얼굴이 없었다⁠. 매끈한 달걀 같은 머리였다⁠.

“⁠이걸 누구한테 입혀⁠?⁠” 꽝수가 한 팔로 진열 0형의 머리를 두드렸다⁠. “⁠얼굴이 없잖아⁠.⁠”

“⁠눈은 있어⁠.⁠” 갈매가 말했다⁠. “⁠안쪽에⁠. 밖에서 안 보이게 만든 거야⁠. 손님들이 마네킹 눈 마주치는 거 싫어해서⁠.⁠”

“⁠그럼 표정은⁠?⁠”

“⁠표정은 없지⁠. 대신 옷태가 좋아⁠.⁠”

구 호 주인이 첫 번째로 택시 1형을 내놓았다⁠. 오십팔 호 주인은 진열 0형을 내놓았다⁠. 말없이 이것을 땜방 안에 세워 두고 나갔다⁠. 옮김틀은 하나였다⁠. 일곱이면 사십 분씩 네 시간 사십 분이었다⁠. 꽝수가 한 팔로 선을 꽂았고⁠, 갈매가 옆에서 상자를 보았다⁠. 기사 시절의 손이 돌아와 있었다⁠.

첫 번째는 처남이었다⁠. 상인회장이 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사십 분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

오후 한 시⁠, 경보를 따라 치훈이 팀원 여섯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들은 사층 계단에서 멈췄다⁠. 계단참에 상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맨 앞에 상인회장⁠, 이 옆에 구 호 주인⁠, 뒤에 오십팔 호 주인⁠. 털조끼와 앞치마와 납땜 장갑이 계단 폭을 꽉 메웠다⁠. 뒤쪽 복도의 진열창에서 옷 벗은 몸들이 눈을 감고 서 있었다⁠.

“⁠회장님⁠.⁠” 치훈이 계단 아래서 고개를 숙였다⁠. “⁠회사 물건 회수하러 왔습니다⁠. 경매를 열어 드리기로 한 약속은 그대로입니다⁠.⁠”

“⁠그 안에 있던 사람⁠, 내 처남이야⁠.⁠” 상인회장이 말했다⁠. “⁠이 년 전에 부산 간다고 했던 놈이 송도 지하에 서 있었어⁠. 다음 경매에 나와서 우리 상가 진열창에 섰을 거야⁠. 내가 그걸 팔았겠지⁠. 잠꼬대 한다고 오만 원 깎아 주고⁠.⁠”

치훈은 계단을 한 칸 올랐다⁠. 상인들이 움찔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회사가 사 년 전에 저한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치훈이 말했다⁠. 보고를 올릴 때와 같은 말투였다⁠. “⁠제 본몸은 송도에 잘 누워 있다고⁠. 어젯밤에 가 봤더니 다른 사람이 누워 있었습니다⁠.⁠”

계단참이 조용해졌다⁠. 치훈 뒤의 팀원 여섯이 서로를 보았다⁠. 이들도 다 HS형이었다⁠. 이들의 본몸도 다 어딘가에 맡겨져 있었다⁠.

“⁠빈 몸만 가져가겠습니다⁠.⁠” 치훈이 말했다⁠. “⁠안에 사람이 있는 건 놔두겠습니다⁠. 회사에는 다 비어 있었다고 하지요⁠. 사십 분마다 하나씩⁠,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상인회장이 치훈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옆으로 반걸음 비켰다⁠. 계단은 열리지 않았다⁠. 사람 하나가 서서 기다릴 만큼만 비었다⁠.

이날 오후 사층 계단에서는 이상한 일이 되풀이되었다⁠. 사십 분마다 땜방 쪽에서 운반대가 나왔다⁠. 이 위에 빈 허물 몸 하나가 실려 있었다⁠. 상인들이 이것을 계단참까지 밀고 오면 치훈이 받아서 아래의 팀원에게 넘겼다⁠. 몸을 넘기고 받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운반대가 나왔을 때 오십팔 호 주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깬 사람은 진열 0형에 들었는데⁠, 얼굴이 없는 머리로 땜방 형광등을 올려다보며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었다고 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이에 꽝수가 한 팔로 순대 접시를 들고 계단참에 나타났다⁠. 뜯긴 어깨에는 할머니가 감아 준 손수건이 아직 감겨 있었다⁠.

“⁠회수팀 아저씨들도 드실래요⁠? 한 접시 오천 원⁠.⁠”

팀원 여섯이 팀장을 보았다⁠. 치훈은 계단 아래를 보았다⁠.

“⁠그 몸들도 맛은 알잖아⁠. 회사가 맛까지는 안 뺏었더만⁠.⁠” 꽝수가 접시를 내밀었다⁠. “⁠대신 외상은 안 돼⁠. 회사 몸은 도망가면 못 찾아⁠.⁠”

팀원 하나가 지갑을 꺼냈다⁠. 다음 하나가 꺼냈다⁠. 회수팀 여섯이 사층 계단에 서서 이쑤시개로 순대를 먹었다⁠. 치훈만 먹지 않았다⁠. 치훈은 순대 냄새가 계단에 고이는 동안 계단참 위의 땜방 쪽을 보고 서 있었다⁠.

여섯 번째 운반대를 넘기고 나서 치훈은 기탁을 계단참 구석으로 불렀다⁠.

“⁠회장님이 선배 본몸을 오십삼 층 옮김실에 눕혀 놨습니다⁠. 서노을 몸 옆에⁠.⁠” 치훈이 말했다⁠. “⁠그리고 서노을 몸에 들어가는 옮김 날짜가 잡혔습니다⁠. 목요일 새벽입니다⁠. 선배가 그 여자를 넘기든 안 넘기든⁠.⁠”

“⁠그럼 왜 바꾸자는 거야⁠?⁠”

“⁠목요일 새벽에 서노을 씨가 어디 있는지 회장님이 알고 싶은 겁니다⁠. 뒷방에 있으면 비우면 되고⁠, 회사 손에 있으면 안심이고⁠, 선배 손에 있으면 계속 신경이 쓰이니까요⁠.⁠” 치훈은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회장님은 일을 깨끗하게 끝내는 걸 좋아합니다⁠.⁠”

“⁠너는⁠?⁠”

치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곱 번째 운반대가 계단참으로 나오고 있었다⁠.

*

수요일 밤 열한 시⁠, 사흘째였다⁠.

땜방에는 상인회장 말고도 사람이 열셋이었다⁠. 원래 땜방 식구 여섯에 송도에서 깨어난 일곱⁠. 일곱은 청소 2형과 택시 1형과 진열 0형과 몇 가지 옛 국산 몸을 입고 땜방 바닥과 복도에 앉아 있었다⁠. 다들 키와 목소리가 바뀌어서⁠, 저마다 문틀에 이마를 박거나 엉뚱한 높이에서 손을 휘저었다⁠. 처남은 택시 1형을 입었는데⁠, 몸이 핸들을 잡으려고 자꾸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상인회장이 이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노을은 보이지 않았다⁠.

기탁은 HS-2의 몸으로 땜방을 한 바퀴 돌았다⁠. 할머니 몸이 앉던 낮은 의자가 비어 있었다⁠. 의자 위에 손수건 열두 장이 개어져 있었다⁠. 땜방에 있는 사람 수만큼이었다⁠. 제 몫은 없었다⁠.

해송이 휴대폰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누나가 주차장으로 갔어요⁠. 팀장님 차가 와 있대요⁠.⁠”

기탁은 뛰었다⁠. 몸이 뛰는 법을 알았다⁠. 계단을 세 칸씩 내려갔고⁠, 문틀마다 오른발이 저절로 걸렸다가 떨어졌다⁠. 상가 지하 주차장은 형광등이 반만 켜져 있었다⁠. 기둥 사이에 회색 회수 차 한 대가 시동을 걸고 서 있었다⁠. 운전석에 치훈이 앉아 있었다⁠.

차 뒷문 앞에 할머니가 서 있었다⁠. 백사십짜리 몸으로⁠, 허리를 조금 굽히고⁠. 차 문손잡이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가⁠, 손이 저절로 이 손잡이를 손수건처럼 쓰다듬는 것을 보고 멈추었다⁠.

“⁠가지 마⁠.⁠” 기탁이 말했다⁠. HS-2의 맑은 목소리가 주차장 기둥에 울렸다⁠.

노을이 돌아섰다⁠.

“⁠아저씨 몸 찾자는 거였잖아요⁠.⁠”

“⁠네 몸 찾자는 거였지⁠.⁠”

“⁠찾았잖아요⁠. 오십삼 층에 있대요⁠. 아저씨 몸도 거기 있고⁠.⁠”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빠르게 말했다⁠. “⁠목요일 새벽엔 내가 어디 있든 그 사람이 내 몸에 들어간대요⁠. 그럼 나는 내 몸이 들어가는 걸 옆에서라도 볼래요⁠. 그리고 아저씨는 아저씨 몸 찾고⁠.⁠”

“⁠그건 셈이 안 맞아⁠.⁠”

“⁠아저씨 셈은 원래 안 맞아요⁠. 마흔 명 태웠다면서 마흔하나라면서요⁠.⁠” 노을은 차 문손잡이를 잡았다⁠. 이번에는 손이 이것을 쓰다듬지 않고 쥐었다⁠. “⁠삼백 갚는다고 했잖아요⁠. 이게 그 값이에요⁠. 아저씨 몸 하나⁠.⁠”

“⁠그건 네가 갚는 거잖아⁠.⁠”

“⁠그러니까요⁠.⁠” 할머니 얼굴이 웃었다⁠. 주름이 깊게 잡혔다⁠. “⁠이 년 전에는 아저씨가 차를 골랐잖아요⁠. 비 오는 날⁠,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노을은 문을 열었다⁠. 백사십짜리 몸이 차 안으로 들어가는 데 한참 걸렸다⁠. 무릎을 먼저 올리고⁠, 손으로 시트를 짚고⁠, 허리를 굽혔다⁠. 이 느린 동작 내내 기탁은 차 문을 붙잡고 서 있었다⁠. 엄지가 있는 손이 문짝 위에 펴져 있었다⁠.

“⁠이번엔 내가 차를 골라요⁠.⁠”

운전석의 치훈이 백미러로 기탁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을이 안에서 문을 당겼다⁠. 기탁의 손이 문짝 위에 남은 채로⁠,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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