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27자)

빈집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양현오

치훈은 침대 줄 끝에 서 있었다⁠. 회색 작업복⁠, 백구십이 넘는 HS-1⁠. 치훈과 기탁이 입은 HS-2는 한 공장에서 나온 몸이라⁠, 마주 선 둘은 나이 차 나는 형제처럼 닮았다⁠. 형이 동생보다 젊어 보였다⁠.

“⁠예비 몸이 사물함에서 나가면 팀장한테 알림이 옵니다⁠.⁠” 치훈이 말했다⁠. “⁠구로에서 나가 용산 땜방에서 한 시간을 서 있다가 송도로 왔더군요⁠. 몸 번호가 그렇게 말해 줬습니다⁠.⁠”

“⁠회장한테는⁠?⁠”

“⁠아직 안 했습니다⁠.⁠”

“⁠왜⁠?⁠”

치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치훈의 눈이 빈 침대로 갔다가⁠, 이 앞에 선 할머니에게 갔다가⁠, 해송에게 갔다⁠. 해송은 출입증 끈을 쥐고 있었다⁠.

관리인이 손전등을 내렸다⁠. 회수팀장과 회수팀 몸을 입은 낯선 사람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네 본몸은 어디 누워 있냐⁠?⁠” 기탁이 물었다⁠.

“⁠동쪽 두 번째 줄입니다⁠. 회사랑 약속한 날까지 사 년 남았습니다⁠.⁠”

“⁠가 보자⁠.⁠”

“⁠볼 필요 없습니다⁠.⁠”

“⁠네가 안 보면 내가 보지⁠.⁠”

기탁은 동쪽으로 걸었다⁠. HS-2의 걸음이 빨라서 침대 사이를 소리 없이 지났다⁠. 치훈이 뒤따라왔다⁠. 따라오지 않으려던 걸음이 따라왔다⁠.

동쪽 두 번째 줄 끝에서 세 번째 침대⁠. 관리인이 손전등을 비추었다⁠. 남자 하나가 누워 있었다⁠. 스무 살 남짓⁠, 머리를 짧게 민 몸이었다⁠. 숨을 쉬었고 눈을 감았다⁠. 치훈은 이 얼굴을 보았다⁠. 한참 보고 나서 손전등을 관리인에게서 받아 들고 침대 끝에 걸린 작은 화면을 비추었다⁠. 몸값과 날짜가 떠 있었다⁠. 지난달에 들어온 몸이었다⁠.

“⁠강 팀장 몸은 작년 가을에 나갔어⁠.⁠” 관리인이 작게 말했다⁠. “⁠부산 손님한테⁠. 회장님이 말 안 하셨나⁠?⁠”

치훈은 손전등을 내렸다⁠. HS-1의 얼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몸은 표정을 잘 짓지 않게 만들어진 몸이었다⁠. 대신 손이 움직였다⁠. 장갑 낀 손을 뻗어 처음 보는 스무 살의 이마에 댔다⁠. 체온을 재는 것 같은 손짓이었다⁠. 다음 이 손으로 제 이마를 만졌다⁠. 제 이마는 회사 이마였다⁠.

“⁠사 년 남았다고 했습니다⁠.⁠” 치훈이 말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사 년 남았다고⁠.⁠”

“⁠내가 너 매입 차 운전석에 앉힐 때도 회사는 다 해 준다고 했어⁠.⁠” 기탁이 말했다⁠. “⁠나도 그 말 믿었고⁠, 너한테 그대로 했지⁠.⁠”

*

치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치훈은 받기 전에 기탁을 보았다⁠. 그리고 받았다⁠. 보관소가 조용해서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다 들렸다⁠. 회장의 목소리였다⁠.

“⁠강 팀장⁠, 송도에 있지요⁠.⁠”

“⁠네⁠, 회장님⁠.⁠”

“⁠지하 처분 대기 의체 서른⁠, 오늘 밤 다 비우세요⁠. 아침에 감사가 들어옵니다⁠. 뒷방 찬 몸이 서른이나 서 있으면 설명할 게 많아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거기 우리 예비 몸 하나가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그건 내일 보지요⁠. 오늘은 지하가 먼저입니다⁠.⁠”

전화가 끊겼다⁠. 치훈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치훈의 손이 허리춤의 흰 판을 꺼냈다⁠. 판은 이 손에 익어 있었다⁠. 손보다 몸이 먼저 익힌 물건이었다⁠.

“⁠판 하나로 하나 비우는 데 십 초 걸립니다⁠.⁠” 치훈이 말했다⁠. 평소의 목소리였다⁠. “⁠서른이면 오 분입니다⁠. 저는 지하 동쪽 끝부터 순서대로 비웁니다⁠.⁠” 치훈은 기탁을 보지 않고 해송을 보았다⁠. “⁠해송 씨⁠, 서쪽 화물문은 이십 분 뒤에 자동으로 잠깁니다⁠. 야간 근무자는 그것도 알아야 합니다⁠.⁠”

치훈은 지하 계단으로 걸어갔다⁠. 판을 쥔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오 분이라면서요⁠.⁠”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근데 이십 분은 왜 말해 줘요⁠?⁠”

“⁠동쪽 끝부터 걸어가는 데 십오 분⁠.⁠” 기탁이 말했다⁠. “⁠저놈 원래 셈이 느려⁠.⁠”

*

지하는 위층보다 추웠다⁠. 천장의 형광등이 띄엄띄엄 켜져 있었고⁠, 이 아래 쇠 받침대에 허물 의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HM-7⁠, HM-5⁠, HM-4⁠. 다들 눈을 감고 팔을 내렸다⁠. 심이 꺼진 몸들이었다⁠. 심이 꺼지면 뒷방도 깨지 못한다⁠. 앞방은 비었고⁠, 뒷방에는 사람이 잠들어 있었다⁠. 매입소에서 부산 대신 이리로 온 사람들이었다⁠.

기탁의 오른손이 저절로 벽으로 갔다⁠. 계단 옆 걸이에 회수팀 탐지기가 하나 걸려 있었다⁠. HS-2의 손은 이것이 어디 걸려 있는지 알았고⁠, 어떻게 쥐는지 알았다⁠. 기탁은 처음으로 이 몸버릇이 고마웠다⁠. 탐지기를 첫 번째 HM-7에 댔다⁠. 약하고 느린 맥이 울렸다⁠.

“⁠찬 거야⁠. 해송아⁠, 들어⁠.⁠”

해송이 HM-7의 다리를 안고 기탁이 어깨를 받쳤다⁠. 칠십 킬로였다⁠. HS-2는 이것을 무게로 느끼지 않았다⁠. 몸이 들 줄 알았다⁠. 둘은 서쪽 화물문까지 뛰었고⁠, 문밖에 대 놓은 해송의 회수 트럭 짐칸에 이것을 눕혔다⁠. 돌아와서 두 번째⁠. 세 번째부터는 기탁이 혼자 하나를 어깨에 메고 해송이 하나를 끌었다⁠.

할머니는 들 수 없었다⁠. 대신 탐지기를 받아 들었다⁠. 백사십짜리 몸으로 받침대 사이를 종종걸음 쳤다⁠. 다리가 느렸다⁠. 맥이 울리는 몸마다 이 발치에 손수건을 하나씩 놓았다⁠. 주머니에 넣어 온 손수건이었다⁠. 손이 저절로 이것을 네 번 접어 반듯하게 놓았다⁠. 이 손수건이 놓인 몸을 기탁이 메고 뛰었다⁠.

지하 동쪽 끝에서 소리가 났다⁠. 아주 작은 딸깍 소리였다⁠. 십 초 뒤에 또 한 번⁠. 다시 십 초⁠. 소리는 규칙적이었고 조금씩 가까워졌다⁠.

할머니가 탐지기를 든 채 멈췄다⁠. 동쪽 끝 받침대 쪽으로 탐지기를 돌리자⁠, 맥이 하나씩 꺼지고 있었다⁠. 딸깍⁠, 그리고 맥 하나가 사라졌다⁠. 딸깍⁠, 또 하나⁠.

“⁠빨리⁠.⁠” 기탁이 말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트럭 짐칸이 찼다⁠. 기탁은 일곱 번째를 메고 화물문으로 뛰었다⁠. 문 위의 등이 붉게 바뀌어 있었다⁠. 잠기기 일 분 전이었다⁠.

기탁이 일곱 번째를 짐칸에 밀어 넣고 돌아섰을 때⁠, 지하 통로 저쪽에 치훈이 서 있었다⁠. 치훈의 뒤로 받침대 줄이 이어졌고⁠, 이 위의 몸들은 아까와 똑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달라진 것은 탐지기뿐이었다⁠. 할머니가 든 탐지기가 그쪽을 향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몇이 남았는지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알았다⁠. 들고 내려온 손수건은 서른 장이었고⁠, 손에 스물석 장이 남아 있었다⁠.

“⁠나머지⁠.⁠” 기탁이 말했다⁠.

치훈은 흰 판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나머지는 제 일입니다⁠.⁠”

화물문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치훈은 돌아서서 받침대 줄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문이 바닥에 닿기 전에 딸깍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

트럭은 인천대교 대신 옛 고속도로로 돌아갔다⁠. 해송이 운전했고⁠, 기탁은 조수석에⁠, 할머니는 이 사이에 끼어 앉았다⁠. 짐칸과 운전석 사이의 작은 창으로 누운 몸들의 발이 보였다⁠. 신발을 신은 발도 있었고 맨발도 있었다⁠.

“⁠마흔 명이라고 했죠⁠.⁠” 노을이 말했다⁠. “⁠아저씨가 태운 사람⁠.⁠”

“⁠마흔하나⁠.⁠”

“⁠저 일곱 중에 있어요⁠?⁠”

“⁠얼굴은 다 봤어⁠. 모르겠어⁠.⁠” 기탁은 엄지가 있는 손을 무릎 위에서 쥐었다 폈다⁠. “⁠저 사람들 몸에 든 게 아니라 뒷방에 든 거라⁠, 얼굴이 원래 얼굴이 아니잖아⁠. 말을 해 봐야 알지⁠.⁠”

시흥 근처에서 트럭이 과속 방지턱을 넘었다⁠. 짐칸에서 무언가 툭 튀는 소리가 났고⁠, 작은 창 너머에서 불빛 하나가 켜졌다⁠. HM-5 하나의 목덜미 심이 흔들리다 켜진 것이었다⁠. 앞방이 빈 채로 심이 켜지면 뒷방이 깬다⁠. 뒷방이 깨면 경보가 간다⁠.

작은 창으로 목소리가 들어왔다⁠. 여자 목소리⁠, 낯선 말투였다⁠.

“⁠여기⁠… 부산이에요⁠?⁠”

해송이 갓길로 차를 꺾었다⁠. 노을이 먼저 움직였다⁠. 백사십짜리 몸이 작은 창에 얼굴을 바짝 댔다⁠.

“⁠아니요⁠. 용산 가요⁠.⁠” 노을이 말했다⁠. 할머니 목소리로⁠, 아주 다정하게⁠. “⁠조금만 더 자요⁠. 깨면 다 얘기해 줄게요⁠. 나도 거기 있었어요⁠.⁠”

해송이 짐칸으로 뛰어올라 심을 껐다⁠. 불빛이 꺼지고 목소리도 꺼졌다⁠. 십 초도 안 걸렸다⁠. 회수팀 막내가 일 년 반 동안 하던 일이 몸을 끄는 일이었고⁠, 이 손은 이 일을 빨리 했다⁠. 경보가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운전석으로 돌아와 한참 운전대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누나⁠, 그 말 왜 했어⁠?⁠”

“⁠내가 처음 깼을 때 아무도 그 말 안 해 줬어⁠.⁠” 노을은 작은 창에서 얼굴을 뗐다⁠. “⁠이 아저씨가 컵라면 먹으면서 오늘 며칠인지 알려 줬지⁠.⁠”

기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트럭이 다시 출발했다⁠.

*

새벽 다섯 시⁠, 땜차 대신 해송의 회수 트럭이 상가 뒷골목에 섰다⁠. 짐칸에는 일곱이 누워 있었다⁠. 할머니 몸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이 몸은 다섯 시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눈을 떴다⁠.

땜방 셔터가 반쯤 찢어져 있었다⁠.

기탁이 먼저 뛰었다⁠. HS-2가 뛰는 법을 알았다⁠. 셔터 밑으로 몸을 숙여 들어가자 땜방 바닥에 남의 팔다리가 흩어져 있었다⁠. 수리하던 부품들이었다⁠. 이 사이에 꽝수가 앉아 있었다⁠. 얼굴이 부어 있었고⁠, 왼쪽 어깨에서 의체 팔이 뜯겨 나가 전선이 늘어져 있었다⁠. 분홍 매니큐어를 칠한 팔은 저쪽 벽 밑에 혼자 누워 있었다⁠.

간이침대가 비어 있었다⁠.

시트에 눌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기탁의 본몸이 누웠던 자국이었다⁠. 엄지가 없고 허리가 나쁜 몸⁠, 기탁이 평생 입은 단 한 벌이 거기 없었다⁠.

냉장 창고 문이 열리고 갈매가 나왔다⁠. 뒤에 대리기사가 백오십짜리 몸을 웅크린 채 따라 나왔다⁠. 갈매의 오른손이 저절로 비상구를 가리켰다⁠. 이번에는 아무리 눌러도 이 손이 내려가지 않았다⁠.

“⁠나 냉장 창고 선반에 들어가 있었어요⁠.⁠” 대리기사가 말했다⁠. 높고 가는 목소리가 떨렸다⁠. “⁠이 몸이 작아서 들어가지더라고요⁠. 백팔십일 때는 아무 데도 못 숨었는데⁠.⁠” 대리기사는 선반 높이밖에 안 되는 제 키를 손바닥으로 재 보았다⁠. “⁠처음으로 이 몸이 좋았어요⁠. 그게 더 기분 나빠요⁠.⁠”

갈매가 대리기사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 안내 5형의 손이 이 머리를 출구 쪽으로 돌려놓으려 해서 갈매는 손을 거뒀다⁠.

“⁠회장이 직접 왔어⁠.⁠” 꽝수가 말했다⁠. 입술이 터져서 말이 뭉개졌다⁠. 꽝수는 처음으로 순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경호원 넷 데리고⁠. 내가 막았는데⁠, 막으니까 팔을 뜯더라⁠. 남의 팔이라 덜 아플 줄 알았는데 똑같이 아프대⁠. 법이 그래⁠.⁠” 꽝수는 웃으려다 말았다⁠. “⁠네 몸 업어 갔어⁠. 경호원이 아니라 회장이⁠. 자기 등에 직접⁠.⁠”

기탁은 빈 침대를 보았다⁠. 엄지가 있는 손이 침대 끝을 쥐었다⁠. 없는 엄지가 아팠다⁠.

“⁠회장이 너한테 전해 달래⁠.⁠” 꽝수가 침을 삼켰다⁠. “⁠몸 번호 달린 몸을 입으셨으면 어디 계신지 다 보입니다⁠. 빈집을 두고 가시면 안 되지요⁠.⁠”

할머니가 꽝수 옆에 무릎을 꿇었다⁠. 백사십짜리 몸이라 무릎 꿇은 키가 앉은 꽝수와 같았다⁠. 뜯긴 어깨의 전선을 한데 모아 손수건으로 감쌌다⁠. 송도 지하에서 놓지 못한 스물석 장 가운데 한 장이었다⁠.

기탁의 휴대폰이 울렸다⁠. HS-2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제 휴대폰이었다⁠. 화면에 번호만 떴다⁠. 기탁은 받았다⁠.

“⁠연기탁 씨⁠.⁠” 서두르는 법이 없는 목소리였다⁠. 뒤에서 무언가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빈집이 숨 쉬는 소리였다⁠. “⁠몸 바꾸자는 제안⁠, 이제 받으시겠습니까⁠?⁠”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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