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77자)

맞춤도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양현오

오십삼 층 옮김실은 세 면이 유리였다⁠. 자정이 지난 강남의 불빛이 바닥까지 들어와 흰 침대 셋을 비추었다⁠. 침대 머리맡마다 회색 상자가 붙어 있었는데⁠, 용산 땜방의 낡은 틀과 달리 상자 화면이 손바닥처럼 얇았다⁠.

치훈은 할머니 몸을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노을은 혼자 들어갔다⁠. 백사십짜리 몸이 유리벽에 비쳤다⁠. 허리가 조금 굽은 흰머리 할머니였다⁠.

왼쪽 침대에 기탁의 본몸이 누워 있었다⁠. 엄지 없는 왼손이 이번에는 침대 밖으로 떨어져 늘어져 있었다⁠. 노을은 이 손을 주워 시트 위에 올려 주었다⁠. 송도로 떠나기 전 땜방에서 한 그대로였다⁠.

가운데 침대에 노을이 누워 있었다⁠.

머리가 자라 있었다⁠. 이 년 전에는 어깨에 닿던 머리가 가슴께까지 내려와 있었고⁠, 누군가 끝을 반듯하게 다듬어 놓았다⁠. 손톱도 깎여 있었다⁠. 얼굴은 노을이 아침마다 거울에서 보던 얼굴이었는데⁠, 거울 속 얼굴은 좌우가 바뀌어 있으니까 이것이 처음 보는 제 얼굴이었다⁠. 왼쪽 눈썹 끝이 오른쪽보다 짧았다⁠. 노을은 이것을 몰랐다⁠.

노을은 침대 옆에 섰다⁠. 할머니 몸의 손이 시트 모서리를 저절로 접으려 했다⁠. 이 손을 멈추고 대신 제 본몸의 왼손을 들어 올렸다⁠. 따뜻했다⁠. 검지 끝을 엄지로 쓸었다⁠. 굳은살이 있었다⁠. 이 년 동안 미싱을 밟지 않아서 얇아졌지만 아직 있었다⁠. 이 몸이 열여섯 살부터 천을 밀던 자리였다⁠.

“⁠여기 있었네⁠.⁠” 할머니 목소리가 말했다⁠.

본몸은 대답하지 않았다⁠. 숨만 쉬었다⁠. 빈집이었다⁠.

문이 열렸다⁠. 한명후는 혼자 들어왔다⁠. 경호원들은 문밖에 남았다⁠. 노을의 맞은편⁠, 침대 반대쪽에 섰다⁠. 둘 사이에 노을의 몸이 누워 있었다⁠.

“⁠잘 보관했지요⁠.⁠” 한명후가 말했다⁠. “⁠머리는 제가 다듬게 했습니다⁠. 손톱도⁠.⁠”

“⁠왜요⁠?⁠”

“⁠제가 입을 몸이니까요⁠.⁠” 한명후는 손목 안쪽을 긁었다⁠. 셔츠 소매 끝이 이 자리만 해져 있었다⁠.

한명후는 오른쪽 빈 침대에 걸터앉았다가 그대로 누웠다⁠. 머리맡 상자에서 가는 선 하나를 뽑아 제 목덜미에 대고⁠, 다른 끝을 노을의 본몸 목덜미에 댔다⁠. 옮기는 선이 아니라 재는 선이었다⁠. 상자 화면에 숫자가 떠올랐다⁠. 칠십⁠, 팔십⁠, 구십⁠. 구십팔에서 멈췄다⁠.

노을은 이 숫자보다 한명후의 얼굴을 보았다⁠. 밤마다 깨어 있던 서른다섯 살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풀렸다⁠. 눈 밑의 검은 것이 그대로인데 이마가 펴졌다⁠. 손목을 긁던 손이 시트 위에 놓였다⁠. 아프지 않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 얼굴이 무서웠다⁠. 이 얼굴이 원하는 것이 제 몸이었다⁠.

노을은 할머니 손으로 본몸 목덜미의 선을 잡아 뽑았다⁠. 숫자가 꺼졌다⁠. 한명후의 이마가 도로 굳었다⁠.

“⁠뽑으셔도 됩니다⁠.⁠” 한명후는 누운 채로 말했다⁠. “⁠아직 아무것도 돌고 있지 않으니까요⁠. 재기만 한 겁니다⁠.⁠”

노을은 선을 쥔 채 본몸의 침대에 올라가 앉았다⁠. 백사십짜리 몸이 제 본몸의 다리 옆에 걸터앉았다⁠. 내려가지 않겠다는 몸짓이었다⁠.

한명후는 일어나 앉아 노을을 보았다⁠.

“⁠다섯 시까지 거기 앉아 계셔도 됩니다⁠. 그 자리가 제일 잘 보이지요⁠. 다섯 시에 저는 이 몸으로 건너가고⁠, 서노을 씨는 제가 지금 입은 몸으로 건너갑니다⁠. 갤러리에서 말씀드린 그 몸입니다⁠. 약속한 새 몸을 이제야 드리는 셈이지요⁠.⁠”

“⁠옷이면⁠, 왜 남의 걸 입어요⁠?⁠”

“⁠맞는 옷이 없으니까요⁠.⁠” 한명후는 노을 옆에 누운 몸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이 눈은 물건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오래 잠들지 못한 사람이 이부자리를 보는 눈이었다⁠. “⁠서노을 씨⁠, 몸을 판 사람들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몸이 필요했고요⁠. 저는 값을 치렀습니다⁠. 그 돈으로 서노을 씨 어머님은 신장 없이 사십니다⁠. 누가 손해를 봤습니까⁠?⁠”

“⁠송도 지하 스물셋이요⁠.⁠”

“⁠그건 비용입니다⁠.⁠”

“⁠구로 매입소 도장공이요⁠. 딸 졸업식 사진 보고 싶다던 사람⁠.⁠”

“⁠그것도 비용입니다⁠.⁠”

“⁠그럼 우리 송이는요⁠?⁠”

한명후가 노을을 보았다⁠.

“⁠우리 동생이요⁠. 회사가 우리 엄마한테 영상 편지 보내잖아요⁠. 내 얼굴로⁠.⁠” 노을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할머니 몸의 목이 이 빠르기를 따라오지 못해 말끝이 갈라졌다⁠. “⁠그 영상에서 내가 걔를 ‘⁠동생아⁠’라고 불러요⁠. 걔가 그게 이상하다고 일 년을 생각했대요⁠. 나는 걔를 그렇게 안 불러요⁠. 송아⁠, 하고 불러요⁠. 송아⁠. 회사가 그것도 몰랐으면서 내 얼굴을 써요⁠?⁠”

한명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을이 한 말을 한 번 입속으로 굴려 보는 것 같았다⁠. 손목을 긁던 손이 멈췄다⁠.

“⁠송아⁠.⁠” 한명후가 낮게 따라 했다⁠. “⁠알겠습니다⁠.⁠”

노을은 이때 한명후가 무엇을 알았다는 것인지 몰랐다⁠.

“⁠그 몸 안 팔아요⁠.⁠” 노을이 말했다⁠. “⁠지금 판 거 무를 거예요⁠. 약속 안 지켰으니까⁠.⁠”

“⁠서노을 씨⁠.⁠” 한명후의 말씨는 끝까지 공손했다⁠. “⁠판 물건에게 무를지 묻는 건 예의일 뿐입니다⁠. 다섯 시에 뵙겠습니다⁠.⁠”

한명후는 나가면서 문밖의 경호원에게 말했다⁠. 연기탁 씨 본몸을 용산으로 보내라고⁠. 약속은 약속이라고⁠.

*

새벽 한 시⁠, 치훈의 회색 차가 상가 지하 주차장으로 다시 들어왔다⁠. 뒷좌석에 들것이 실려 있었다⁠. 들것 위에 기탁의 본몸이 담요를 덮고 누워 있었다⁠.

기탁은 HS-2를 입고 기둥 옆에 서 있었다⁠. 치훈이 뒷문을 열었다⁠. 둘은 들것을 함께 들어 내렸다⁠. 제 몸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HS-2의 팔은 이 무게를 몰랐는데⁠, 기탁은 알았다⁠. 이 몸에 이십이 년 치 순대와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회장님은 약속을 지킵니다⁠.⁠” 치훈이 말했다⁠. “⁠약속 안에 든 것만⁠.⁠”

땜방의 옮김틀에서 사십 분이 흘렀다⁠. 이번에도 꽝수는 팔이 하나라 갈매가 선을 대신 꽂았다⁠. 상인회장과 송도에서 깨어난 일곱이 땜방 문 앞에 둘러섰다⁠. 대리기사가 사십 분 내내 숫자를 소리 내어 셌다⁠. 셀 필요가 없는데 셌다⁠. 누가 말려도 셌다⁠.

「⁠00⁠:00⁠」

왼쪽 침대의 몸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기탁이 눈을 떴다⁠. 먼저 허리가 아팠다⁠. 익숙한 데가 익숙하게 아팠다⁠. 일어나 앉아 왼손을 들었다⁠. 엄지가 없었다⁠. 그런데 손이 없는 엄지로 무언가를 쥐려 했다⁠. 사흘 동안 HS-2의 다섯 손가락에 익은 머리가 엄지를 찾았다⁠. 이번에는 있는 엄지가 아니라 없는 엄지가⁠, 거꾸로 어긋났다⁠.

“⁠형⁠, 어때⁠.⁠” 꽝수가 물었다⁠.

“⁠아파⁠.⁠” 기탁이 말했다⁠. 낮고 느린 제 목소리였다⁠. “⁠좋다⁠.⁠”

기탁은 오른쪽 침대에 누운 빈 HS-2를 보았다⁠. 회사 몸이었다⁠. 기탁은 이 얼굴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문틀을 막던 발⁠, 탐지기를 찾던 손⁠, 송도 지하에서 일곱을 메고 뛰던 등⁠. 이 몸이 할 줄 알던 일들이 이 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치훈은 주차장 기둥 옆에서 HS-2를 차에 싣고 나서도 떠나지 않았다⁠. 기탁이 허리를 짚고 계단을 내려오자 담배를 꺼냈다⁠. 회사 몸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기탁은 처음 보았다⁠.

“⁠그 몸도 피우냐⁠?⁠”

“⁠맛은 압니다⁠. 해롭지는 않고요⁠.⁠” 치훈은 불을 붙이지 않고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기만 했다⁠. “⁠제 본몸이 피우던 거라서요⁠. 이 손이 피울 줄은 모르는데⁠, 저는 압니다⁠.⁠”

둘은 한참 기둥에 기대 서 있었다⁠.

“⁠다섯 시입니다⁠.⁠” 치훈이 말했다⁠. “⁠회장님이 먼저 서노을 몸으로 들어가고⁠, 사십 분 뒤에 서노을 씨가 회장님 지금 몸으로 들어갑니다⁠. 틀 두 개로 차례대로⁠. 그다음 서른다섯 몸은 송도로 갑니다⁠. 거기 누워서 다음 주인을 기다리겠지요⁠. 서노을 씨가 그 안에 든 채로⁠. 회장님 말씀으로는 새 몸을 드리는 겁니다⁠.⁠”

“⁠그 몸에 앞방으로 들어가면 깨어 있을 거 아냐⁠?⁠”

“⁠송도에서는 다 재웁니다⁠. 생몸은 뒷방이 없으니까 약으로 재우지요⁠.⁠” 치훈은 담배를 내려다보았다⁠. “⁠선배⁠, 오십삼 층 문은 얼굴 셋으로만 열립니다⁠. 회장님⁠, 비서실장⁠, 회수팀장⁠.⁠”

기탁이 치훈을 보았다⁠.

“⁠어젯밤에 셌습니다⁠.⁠” 치훈이 말했다⁠. 고르고 낮은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본몸을 사 년 뒤에 되산다는 말을 믿고 제 손으로 비운 사람이요⁠. 백열둘입니다⁠. 송도 지하 스물셋까지 넣어서⁠. 사 년 남았다는 말 하나에 백열둘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얼굴로 문 열어 드리죠⁠. 대신 선배가 앞장서세요⁠. 저는 문 앞에 서 있겠습니다⁠. 회수팀은 문 막는 몸을 입었으니까요⁠.⁠”

*

새벽 한 시 반⁠, 땜방에서 작전 회의가 열렸다⁠. 회의라고 해도 꽝수가 순대 접시를 가운데 놓고 떠드는 것이었다⁠.

“⁠본사 로비 경비가 밤에 열둘이야⁠. 거기를 형이 지나가야 엘리베이터에 타잖아⁠. 근데 열둘이 다 형을 보고 있으면 안 되잖아⁠.⁠” 꽝수가 한 팔로 접시를 두드렸다⁠. “⁠그럼 다른 걸 보게 해야지⁠.⁠”

“⁠뭘⁠?⁠” 갈매가 물었다⁠.

“⁠반품⁠.⁠”

모두 꽝수를 보았다⁠.

“⁠이 상가가 허물 중고 몸을 몇 년을 팔았어⁠. 수천 구야⁠. 그 몸 산 사람들한테 다 연락해⁠. 오늘 새벽에 본사 가서 반품하면 회사가 전액 환불해 준다고⁠. 잠꼬대 하는 HM-7은 두 배로 쳐 준다고⁠.⁠” 꽝수가 웃었다⁠. “⁠거짓말이지⁠. 근데 새벽 네 시에 로비에 이백 명이 몰려와서 반품하겠다고 하면 경비 열둘이 누굴 보겠어⁠?⁠”

“⁠로비는 그렇다 치고⁠.⁠” 갈매가 순대를 집지 않고 말했다⁠. “⁠올라가서는⁠? 틀이 돌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건드려⁠. 회장이 서노을 몸으로 건너가는 사십 분 동안 선을 뽑으면⁠, 회장은 어느 몸에도 못 서⁠. 거기까지는 좋지⁠. 근데 반쯤 건너간 게 받던 몸 신경에 엉겨⁠. 서노을 몸도 같이 못 써⁠. 둘 다 죽어⁠.⁠”

“⁠그럼 돌기 전에 가야 돼⁠.⁠” 해송이 말했다⁠.

“⁠다섯 시 전에⁠.⁠” 기탁이 말했다⁠. “⁠네 시에 로비⁠, 네 시 반에 오십삼 층⁠.⁠”

해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을 하는 동안 휴대폰을 꺼내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새벽엔 문 열어 주지 말라고⁠. 회사 사람이 와도⁠. 엄마는 바로 답을 보냈다⁠. 왜⁠, 무슨 일 있어⁠, 팀장님이 오시면 어떡해⁠. 해송은 거기에 답하지 못했다⁠.

상인회장이 휴대폰을 꺼냈다⁠. 상가 단체방이었다⁠. 한참 화면을 보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굵어서 오타가 났다⁠. 오타를 고치지 않고 보냈다⁠.

삼 분 뒤에 기탁의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받자마자 대구 말이 쏟아져 나왔다⁠.

“⁠사장님⁠, 저 HM-4 바꿔 간 택배요⁠. 새벽에 본사 가서 반품하면 진짜 돈 줍니꺼⁠? 우리 마누라가 이 몸 경례하는 거 지겹다고 가 보라 캅니더⁠.⁠”

“⁠가 보쇼⁠.⁠” 기탁이 말했다⁠. “⁠네 시에⁠. 정문으로⁠.⁠”

“⁠가면 경례는 안 해도 됩니꺼⁠?⁠”

“⁠경비들 제복 입었으니까 할걸⁠.⁠”

전화 너머에서 욕이 들렸다⁠. 대구 욕이었다⁠. 땜방 안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다 같이 웃었다⁠. 진열 0형을 입은 사람은 얼굴이 없어서 웃는 소리만 났다⁠.

*

두 시 사십 분⁠, 땜방 문간에 서 있던 치훈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치훈은 화면을 보고 바로 받았다⁠. 땜방이 조용해져서 저쪽 말이 한 마디도 빠짐없이 새어 나왔다⁠.

“⁠강 팀장⁠.⁠” 서두르지 않는 말씨였다⁠. “⁠옮김을 세 시로 당깁니다⁠. 몸이 오늘 밤엔 기다려 주지 않네요⁠. 지금 올라오세요⁠. 문을 열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치훈은 손을 내리고 기탁을 보았다⁠.

벽시계의 분침이 사십에서 한 칸 넘어가고 있었다⁠. 반품 행렬은 네 시였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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