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04자)
사흘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양현오
한명후는 소파에 앉지 않았다. 관장이 비켜 준 자리를 보기만 하고 창가에 섰다. 오후 햇빛이 한명후의 서른다섯 살 얼굴을 비췄는데, 눈 밑이 검었다. 석 달 동안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거래를 하나 하지요, 연기탁 씨.”
기탁은 서 있었다. 허리가 앉으라고 했지만 앉지 않았다.
“서노을 씨와 갈매 기사님을 회사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월요일에 용산 경매를 다시 엽니다. 상인회에는 제가 말하지요. 십칠 호도 돌아갑니다.” 한명후는 손목 안쪽을 한 번 긁었다. “그리고 연기탁 씨께 생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스물다섯, 남자, 허리 멀쩡한 걸로. 그 허리로 사층 계단을 몇 년 더 오르시겠습니까?”
“회장님은 그 몸을 입고.”
“그 몸은 제 일곱 번째 몸이 됩니다.” 한명후는 숨기지 않았다. 숨길 이유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서노을 씨는 판 사람이고 저는 산 사람입니다. 산 물건을 입는 걸 누가 막습니까?”
할머니가 한 걸음 나섰다. 백사십짜리 몸이라 한명후의 가슴께에 정수리가 왔다.
“판 건 맞아요.”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말했다. 말은 빨랐다. “근데 새 몸 준다고 했잖아요. 부산 가면 새 몸 준다고. 안 줬잖아요. 뒷방에 처박아 놓고 남한테 팔았잖아요. 약속 안 지킨 거래는 거래가 아니에요.”
한명후가 할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처음으로 한명후의 얼굴에 무언가가 지나갔다. 웃음 비슷한 것이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 약속은 지금 지키지요.” 한명후가 말했다. “원하시는 몸을 고르십시오. 의체든 생몸이든. 제 지금 몸이라도 드릴 수 있습니다. 서른다섯 남자 생몸, 시세 이억입니다. 판 값보다 훨씬 남는 장사지요.”
“내 몸 줘요.”
“그건 안 팝니다.”
“팔라는 게 아니라 돌려 달라고요.”
“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 겁니다.”
한명후의 오른손이 다시 왼쪽 손목으로 갔다. 한명후는 이번에는 이 손을 감추지 않았다. 손톱이 아무것도 없는 살을 긁었다.
“여기 흉터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 몸 때. 그 몸을 벗은 지 십이 년이 됐는데 아직 가렵습니다.” 한명후는 할머니에게 손목을 보여 주었다. 매끈했다. “옮길 때마다 어긋남이 길어져요. 여섯 번 갈아입으면 맞는 옷이 없습니다. 밤에 누우면 이 몸이 아니라 앞의 다섯 몸이 아파요. 서노을 씨 몸은 맞습니다. 구십팔. 그 몸에 들어가면 저는 다시 잡니다.”
“그게 내 몸 가져갈 이유예요?”
“이유가 아니라 값이지요. 저는 값을 압니다.”
할머니의 손이 움직였다. 몸버릇이었다. 한명후의 코트 가슴 주머니에 꽂힌 행커치프 끝을 집어 빼더니, 네 번 접어 모서리를 맞추고 도로 꽂았다. 경호원 둘이 반걸음 나섰다가 멈췄다. 한명후는 반듯해진 제 주머니를 내려다보았다.
“고맙습니다.”
“제가 한 거 아니에요. 이 몸이 한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몸이 하는 일은 몸이 하지요.” 한명후는 기탁에게로 눈을 돌렸다. “사흘 드리겠습니다. 수요일 자정까지. 그리고 해송 군.”
문가의 해송이 등을 폈다.
“휴가는 오늘로 끝입니다. 월요일부터 송도 보관소 야간 근무로 가십시오. 누님 몸이 있던 곳이니 한번 보시는 것도 좋겠지요.”
한명후는 관장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경호원들이 뒤를 따랐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셋이었다. 응접실 탁자 위에는 할머니가 접어 둔 냅킨 넷이 반듯하게 남았다.
*
일요일 아침, 땜방에는 사람이 다섯이었다. 기탁, 꽝수, 갈매, 대리기사, 그리고 할머니. 해송은 엄마 집에 가 있었다.
기탁은 간이침대에 걸터앉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계산대가 없어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 계산하죠.” 노을이 말했다.
기탁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스물다섯 생몸이면 시세 십억이야. 경매 다시 열리면 상가 마흔 집이 산다. 십칠 호도 돌아오고.” 기탁이 숫자를 하나 더 눌렀다. “대신 너하고 갈매 기사가 회사로 가. 회사 가면 뒷방이야. 그리고 비우기.”
“그래서 답이 뭔데요?”
“답은 아직 안 나왔어. 계산하는 중이라니까.” 기탁은 계산기를 덮었다. “계산은 해 봐야지. 안 해 보고 거절하면 그건 거절이 아니라 겁먹은 거야.”
노을은 기탁을 오래 보았다. 그러다가 할머니의 작은 손으로 계산기를 집어 제 무릎 위에 놓았다.
“이건 내가 갖고 있을게요.”
갈매가 벽에 기대 팔짱을 꼈다. 안내 5형의 오른손이 팔짱 사이에서 빠져나와 땜방 문을 가리키려는 것을 갈매가 다시 끼워 넣었다.
“송도 보관소 문은 몸 번호하고 출입증을 읽어. 회사 몸이나 직원이면 열리고, 그 밖의 몸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면 경보야. 연 사장님 얼굴은 이제 회사가 다 알고.” 갈매가 말했다. “그리고 회장이 사흘을 준 건, 그 사흘 동안 그 몸을 옮기려는 거야. 송도에 지금 있으면 수요일엔 없어.”
“회사 몸은 어디서 구해?” 꽝수가 물었다.
“구로 매입소 지하에 회수팀 예비 몸이 있어. HS-2. 팀원 몸이 다치면 갈아입히는 거.” 갈매가 기탁을 보았다. “해송이 그 사물함 비밀번호를 알아. 막내가 그 몸들 닦는 일을 하거든.”
“입을 사람은?”
방 안의 눈이 다 기탁에게 갔다. 대리기사는 백오십, 할머니는 백사십, 꽝수는 이미 왼팔이 남의 것이었고, 갈매는 회사가 얼굴을 아는 기사였다. 기탁은 계산기 없는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내 몸은?”
“여기 눕혀 놔.” 꽝수가 가슴을 쳤다. “내가 지킬게.”
*
같은 일요일 오후, 인천 연안부두 뒤 임대 아파트. 해송의 엄마는 부엌에서 사과를 깎고 있었다. 엄마가 입은 몸은 쉰 살쯤의 여자형 HM-6이었다. 이 년 전 누나의 몸값으로 산 몸이었다. 손이 매끄러워서 사과 껍질이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
“오늘 회사 팀장님이 다녀가셨어.” 엄마가 말했다. “키 큰 분. 과일 바구니 사 오셨더라. 너 휴가라고, 요즘 일이 힘들어서 걱정이라고. 착한 분이더라.”
해송은 식탁 위의 과일 바구니를 보았다. 리본이 반듯했다.
“뭐 물어보셨어요?”
“엄마 몸 정기 점검 언제냐고. 이번부터는 회사가 공짜로 봐 주겠대. 심도 새 걸로 갈아 주고. 네가 일 잘하면.” 엄마는 깎은 사과를 접시에 놓았다. “그리고 노을이 편지 왔어. 오늘 아침에.”
엄마가 벽의 화면을 켰다. 누나 얼굴이 나왔다. 부산 바다를 등지고 웃는 얼굴이었다. 목소리도 누나였다.
“엄마, 나 잘 있어. 동생아, 회사 말 잘 듣고. 팀장님 말씀 잘 들어. 너 하나 믿고 엄마 있는 거야.”
영상이 끝났다. 엄마는 이걸 처음부터 다시 틀었다. 해송은 화면 속 누나의 손을 보았다. 손은 화면 밖에 있었다. 이 년 동안 온 영상 스물네 편에서 누나의 손은 한 번도 화면에 나오지 않았다. 이것을 오늘 처음 셌다.
“엄마.”
“응?”
“엄마 몸, 허물에서 산 거죠.”
“그럼. 몸 번호도 있어. 길 잃어도 회사가 찾아 준대.” 엄마가 웃었다. 매끄러운 손이 사과 한 조각을 해송의 입에 넣어 주었다. “회사가 다 알아서 해 줘.”
해송은 사과를 씹었다. 맛이 나지 않았다.
*
월요일 밤 아홉 시, 해송이 땜차 짐칸에 회색 몸 하나를 싣고 왔다. 방수포를 걷자 스물다섯쯤의 남자 얼굴이 나왔다. 반듯하고 나이가 없는 얼굴, 치훈과 형제처럼 닮은 얼굴이었다.
기탁은 옮김틀 왼쪽에 누웠다. 태어나 마흔 해를 입은 몸이었다. 열여덟 살에 지게차 포크에 엄지를 잃었고, 매입 차 운전석 옆에서 허리를 버렸고, 이 손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꽝수가 이 목덜미에 선을 꽂고 상자를 켰다.
상자의 숫자가 다 줄자 오른쪽 침대에서 HS-2가 일어났다. 일어나는 데 일 초가 걸리지 않았다. 기탁은 그대로 서서 제 허리에 손을 댔다.
“안 아파.”
맑고 젊은 목소리였다. 기탁의 낮고 느린 말투가 이 목소리에 실려 나오니 꽝수가 배를 잡았다.
“형, 이제 나보다 서른 살 어려. 내가 형이라고 불러야 돼, 기탁아 해야 돼?”
“하던 대로 해.”
기탁은 왼손을 들어 보았다. 엄지가 있었다. 다섯 손가락이 다 있었다. 엄지를 굽혀 보았다가, 이 순간 얼굴을 찡그렸다. 없는 엄지가 아팠다. 첫 마디부터 없던 자리, 이십이 년 동안 아물어 있던 자리가 지금 막 잘린 것처럼 욱신거렸다. 어긋남이었다. 새 몸은 멀쩡한데 옛 몸의 상처가 따라와 아팠다.
기탁은 이 손으로 땜방 문을 열고 나가려다 멈췄다. 오른발이 저절로 나가서 문틀에 걸렸다. 문이 닫히지 않게 막는 발이었다. 회수팀이 남의 집 문을 열 때 쓰는 발이었다. 기탁의 오른손은 저절로 허리춤으로 가서 거기 없는 탐지기를 더듬었다.
“그 몸이 할 줄 아는 거야.” 갈매가 말했다. “문 막고, 탐지기 찾고. 오늘 밤엔 쓸모 있어.”
노을은 간이침대에 누운 기탁의 본몸을 보고 있었다. 숨은 쉬었다. 눈은 감겨 있었다. 엄지 없는 왼손이 배 위에 놓여 있었다. 빈집이었다. 할머니 손으로 이 손을 들어 시트 위에 바로 놓았다.
“아저씨 몸, 누가 지켜요?”
“내가 지킨다니까.” 꽝수가 말했다. “순대 사 놓고 밤새 볼 거야.”
*
송도 보관소는 매립지 끝에 있었다. 밤 열한 시, 바다에서 올라온 바람이 소금 냄새를 끌고 왔다. 건물은 창이 없는 낮고 긴 상자였다. 해송은 야간 근무 출입증을 목에 걸었고, 기탁은 HS-2의 반듯한 얼굴로 이 옆에 섰다. 할머니 몸은 운반대 위에 담요를 덮고 누웠다. 번호 없는 몸은 문이 사람으로 읽지 않았다. 회수해 온 짐이었다.
문이 HS-2의 몸 번호를 읽고 열렸다.
안은 서늘했다. 낮은 천장 아래로 침대가 끝도 없이 줄지어 있었다. 침대마다 사람이 누워 있었다. 젊은 남자, 젊은 여자, 스물, 서른. 다들 눈을 감았고, 다들 숨을 쉬었다. 수백 개의 가슴이 조금씩 다른 박자로 오르내렸다. 이 숨소리가 모여 낮은 파도 소리가 되었다. 의식이 빠진 생몸, 빈집이었다. 가난한 동네에서 매입 차를 타고 온 몸들이 여기서 다음 주인을 기다렸다.
운반대 위 담요가 조금 들렸다. 노을이 이 틈으로 줄지어 누운 얼굴들을 보았다.
기탁은 걸었다. 몸이 걷는 법을 알았다. 빠르고 소리가 없었다. 이 걸음이 싫었다. 침대 사이를 지나며 얼굴을 보았다. 매입 차에 태운 얼굴이 있을지도 몰랐다. 창신동 골목에서 줄 세운 얼굴이.
“서쪽 열네 번째 줄, 끝에서 셋째.” 해송이 속삭였다. “작년 유월에 내가 눕힌 자리예요.”
이 자리에 침대가 있었다. 시트는 반듯했다. 베개에 눌린 자국이 아직 있었다. 침대는 비어 있었다.
담요가 걷혔다. 할머니가 운반대에서 내려와 빈 침대 앞에 섰다. 베개의 눌린 자국을 작은 손으로 쓸었다. 결을 보는 손가락이었다.
“그 몸은 어제 본사로 올라갔어.”
침대 줄 끝에서 노인 하나가 손전등을 들고 다가왔다. 보관소 야간 관리인이었다. 생몸이었고 일흔은 되어 보였다. 관리인은 해송을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 옮김실로. 오십삼 층. 직접 차가 와서 실어 갔어. 이 줄에서 제일 비싼 몸이었으니까.” 관리인은 손전등으로 할머니를 비추었다. “근데 이분은 누구신가?”
대답하기 전에, 기탁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고르고 낮은 목소리였다.
“기탁 선배. 그 몸 잘 맞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