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98자)

뼘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양현오

상인회는 토요일 오전 열 시에 사층 끝 회의실에서 열렸다⁠. 회의실이라고 해도 옛날 전자상가 시절 창고 하나를 비운 방이었고⁠, 접이의자 백여 개가 놓였다⁠. 의자는 모자랐다⁠. 늦게 온 주인들은 벽에 기대 섰고⁠, 뒤쪽 복도에는 진열창의 몸들이 눈을 감은 채 회의를 엿듣는 것처럼 서 있었다⁠.

상인회장이 앞에 섰다⁠. 양복 윗도리 차림이었다⁠.

“⁠경매 끊긴 지 나흘째야⁠. 물건 못 받아서 진열창 비운 집이 이제 마흔이고⁠. 회사는 회사 물건만 돌려주면 월요일에 다시 연다고 했어⁠.⁠” 상인회장은 맨 앞줄의 기탁을 보았다⁠. “⁠십칠 호가 사들인 허물 몸들⁠, 그거 회사로 돌려보내고 십칠 호 임대를 거둔다⁠. 반대할 사람 있으면 손 들어⁠.⁠”

기탁이 일어났다⁠. 허리를 다 펴지 못해 반쯤 일어난 자세였다⁠.

“⁠그 몸들 안에 사람이 있었소⁠. 내가 꺼냈어⁠. 지금은 빈 몸이야⁠. 빈 몸은 가져가⁠. 근데 다음 경매에서 오는 몸들 안에도 사람이 있어⁠. 그건 누가 꺼낼 거요⁠?⁠”

“⁠그건 회사 일이지⁠.⁠” 누군가 뒤에서 말했다⁠.

“⁠회사가 넣은 거야⁠.⁠”

“⁠그러니까 회사 일이라고⁠.⁠”

웃음이 몇 군데서 났다⁠. 웃는 사람들의 얼굴은 웃지 않았다⁠. 다들 지난 이 년 동안 잠꼬대 하는 몸을 오만 원씩 깎아 팔던 사람들이었다⁠.

꽝수가 손을 들었다⁠. 손을 든 것이 왼쪽 의체 팔이라 분홍 매니큐어가 회의실 형광등에 반짝였다⁠. 몇 사람이 이 손톱을 보고 웃었다⁠.

“⁠내가 이 상가에서 이십 년 땜질했어요⁠. 여기 계신 분들 진열창에 선 몸⁠, 절반은 내가 무릎 갈고 손목 갈았어⁠. 그거 고칠 때 몸이 가끔 움찔해⁠. 그때마다 내가 뭐라고 했냐면⁠, 아이고 얘가 간지럼을 타네⁠.⁠” 꽝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작아졌다⁠. “⁠간지럼이 아니었던 거야⁠.⁠”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상인회장이 넥타이도 없는 셔츠 깃을 한 번 만졌다⁠.

“⁠땜쟁이⁠, 네 얘기는 알겠는데 우리 애들 밥은 네가 먹여 줄래⁠?⁠”

꽝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을 내렸다⁠.

표결은 손을 드는 것으로 했다⁠. 반대에 든 손은 꽝수의 분홍 손톱 하나와 기탁의 네 손가락이었다⁠. 오십팔 호 주인은 찬성에도 반대에도 손을 들지 않았다⁠. 주인은 팔짱을 끼고 바닥만 보았다⁠.

오후 한 시⁠, 회수팀원 둘이 십칠 호의 허물 몸들을 실어 갔다⁠. 구 호와 삼십삼 호에서 기탁이 세 배를 주고 산 HM-7과 HM-5도 이 안에 있었다⁠. 둘 다 빈 몸이었다⁠. 상인회 사무장이 십칠 호 셔터에 상인회 자물쇠를 채웠다⁠. 「⁠연가 중고몸⁠」 간판 아래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기탁은 이 종이를 읽지 않았다⁠. 남은 것을 셌다⁠. 옮김틀 하나⁠, 번호 없는 몸에 든 사람 셋⁠, 땜방 간이침대 하나⁠, 통장에 남은 사십만 원⁠.

자물쇠가 채워지고 한 시간 뒤⁠, 오십팔 호 주인이 땜방 앞에 왔다⁠. 주인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간에 서서 봉투 하나를 꽝수에게 내밀었다⁠. 기탁에게 직접 주지 않았다⁠.

“⁠구로 초등학교 이월 십사일⁠.⁠” 주인이 말했다⁠. “⁠졸업식 지났어⁠. 올해 이월⁠. 도장공 딸이 그 학교였는지는 몰라⁠. 그 동네에 페인트칠하는 집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아직 하고⁠, 하나는 이 년 전에 문 닫았대⁠. 아빠가 부산 갔다고⁠.⁠”

꽝수가 봉투를 열었다⁠. 오만 원짜리가 마흔 장이었다⁠.

“⁠이게 뭐예요⁠?⁠”

“⁠회사가 준 두 배 값의 반⁠.⁠” 오십팔 호 주인은 기탁을 보지 않았다⁠. “⁠상인회에서는 손 안 든다고 했잖아⁠. 그건 지켰어⁠. 이건 손 든 거 아니야⁠.⁠”

오십팔 호 주인은 돌아서 갔다⁠. 기탁은 계산대가 없어서 봉투를 무릎 위에 놓고 셌다⁠. 사십만 원이 이백사십만 원이 되었다⁠. 세고 나서도 봉투를 오래 쥐고 있었다⁠.

*

해송의 차는 이십 년 된 소형차였다⁠. 엄마가 의체로 옮기고 나서 운전을 무서워해 해송에게 넘긴 차라고 했다⁠. 뒷좌석에는 경로 2형이 앉았고⁠, 기탁은 조수석에서 허리를 반쯤 눕혔다⁠.

차가 한강을 건너는 동안 할머니의 손은 쉬지 않았다⁠. 안전벨트 끝을 접고⁠, 펴고⁠, 다시 접었다⁠. 노을은 이 손을 보다가 포기하고 창밖을 보았다⁠.

“⁠관장한테 가서 뭐라고 할 거예요⁠?⁠”

“⁠몸 팔러 왔다고⁠.⁠” 기탁이 말했다⁠. “⁠맞춤도 구십 넘는 생몸 하나 있다고⁠. 그런 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면 문을 열어⁠.⁠”

“⁠그런 몸 있어요⁠?⁠”

“⁠없지⁠.⁠”

“⁠그럼 거짓말이잖아요⁠.⁠”

“⁠나 원래 그런 거 잘해⁠.⁠”

운전대를 잡은 해송이 백미러로 누나를 흘끗 보았다⁠. 할머니 몸이 창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이 몸은 오늘 새벽 다섯 시에 혼자 눈을 떴다⁠. 요양원 기상 시각이었다⁠. 노을은 깨자마자 땜방의 걸레를 다 개어 놓고 다시 누웠다고 했다⁠.

“⁠누나⁠.⁠”

“⁠왜⁠?⁠”

“⁠그 몸 좀 귀여워⁠.⁠”

“⁠차 세워⁠. 나 내려서 걸어갈래⁠.⁠”

“⁠할머니 걸음으로 청담동까지 가면 내일 아침이야⁠.⁠”

기탁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허리가 울려서 바로 멈췄다⁠. 해송이 이 웃음을 처음 듣는 얼굴로 백미러를 보았다⁠. 회수팀에서 이야기로만 듣던 창신동 거간은 웃는 사람이 아니었다⁠.

*

갤러리 「⁠겹⁠」은 청담동 골목 끝의 삼 층 건물이었다⁠. 벽이 전부 흰색이었고⁠, 일 층 전시장에는 사람의 등뼈 모양으로 구부린 쇠 조각들이 서 있었다⁠. 관장은 삼 층 응접실에서 이들을 맞았다⁠. 예순여덟 살이라고 했는데⁠, 소파에 앉은 몸은 서른쯤의 여자 생몸이었다⁠. 관장의 다섯 번째 몸이었다⁠.

“⁠맞춤도 구십 넘는 생몸이요⁠?⁠” 관장이 웃었다⁠. 젊은 목소리에 늙은 웃음이 실렸다⁠. “⁠그런 몸은 회장만 가져요⁠. 용산 사장님이 그런 걸 어디서 구해요⁠?⁠”

“⁠구해 오는 게 일이었소⁠.⁠”

“⁠알아요⁠. 거간 연 사장님⁠.⁠” 관장은 찻잔을 들었다⁠. “⁠회장이 술자리에서 사장님 얘기를 한 적 있어요⁠. 창신동을 혼자 다 비운 사람이라고⁠. 칭찬이었어요⁠.⁠”

기탁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뒤에 선 경로 2형의 손이 응접실 탁자 위 냅킨을 집어 네 번 접었다⁠. 관장의 눈이 이 손에 갔다가 돌아왔다⁠.

문가에 선 해송은 응접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창가의 긴 회색 소파⁠, 이 위에 걸린 등뼈 모양 쇠 조각⁠, 바닥의 흰 양탄자⁠. 해송의 눈이 소파에서 멈췄다⁠. 작년 유월⁠, 이 소파 앞에 들것을 내려놓았다⁠. 소파에 누운 젊은 여자 몸을 팀장과 둘이 들어 옮겼다⁠. 몸은 따뜻했고 숨을 쉬었다⁠. 들것 손잡이를 너무 세게 쥐어서 손바닥에 자국이 남았던 것을 기억했다⁠.

관장이 해송의 눈길을 따라 소파를 보았다⁠.

“⁠아⁠, 거기⁠. 그 몸이 빈집 될 때 거기 누워 있었어요⁠. 회수팀 막내가 들것 들던데⁠.⁠” 관장이 해송을 보았다⁠. “⁠혹시 그때 그 학생⁠?⁠”

해송은 대답하지 않았다⁠. 관장은 이 침묵이 대답이라는 걸 알고도 아무렇지 않게 찻잔을 기울였다⁠. 관장에게 이날은 렌트가 끊긴 날이었다⁠.

“⁠작년 봄에 빌려 입으신 몸 얘기를 듣고 싶소⁠.⁠” 기탁이 말했다⁠. “⁠스물아홉 여자 생몸⁠. 왼손 검지에 굳은살⁠.⁠”

관장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웃음이 조금 남았다⁠.

“⁠그 몸⁠. 사월부터 유월까지 입었어요⁠. 피부가 좋았고 잠을 잘 잤고⁠, 무릎이 하나도 안 아팠죠⁠. 근데 손이 문제였어요⁠.⁠” 관장은 제 손을 들어 보였다⁠. 지금 몸의 손이었다⁠. “⁠손님들이랑 저녁을 먹는데⁠, 내 손이 식탁 가장자리를 이렇게 재는 거예요⁠.⁠”

노을이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활짝 벌려 탁자 모서리에 댔다⁠. 뼘이었다⁠. 한 뼘⁠, 두 뼘⁠, 자벌레처럼 손이 탁자를 기어갔다⁠.

“⁠그리고 실도 없는데 이로 실을 끊는 시늉을 하고⁠. 제일 곤란했던 건 이거예요⁠. 손님 재킷 소매를 왼손 검지로 쓸어요⁠. 결을 거꾸로⁠, 그다음 바로⁠. 조각가 선생 재킷을 그렇게 쓸었다가 그분이 무슨 신호냐고 묻더라고요⁠. 내가 뭐라고 해요⁠? 이 몸 전 주인이 그랬나 보다고⁠?⁠” 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가난한 손버릇이 내 저녁 식탁에 나온 거죠⁠. 그래서 돌려줬어요⁠.⁠”

뒤에서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났다⁠.

“⁠그건 천 결 보는 거예요⁠.⁠”

관장이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가 냅킨을 쥔 채 서 있었다⁠.

“⁠미싱 앞에서요⁠. 결을 거꾸로 박으면 옷이 틀어져요⁠. 입으면 한쪽 어깨가 내려가요⁠. 그래서 박기 전에 검지로 쓸어 봐요⁠. 결이 손끝에 걸리는 쪽이 거꾸로예요⁠. 뼘으로 재는 건 줄자 찾다가 시간 버리지 말라고⁠. 이로 실 끊는 건⁠, 가위 쥐면 손이 멈추니까⁠.⁠”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떨리는데 말은 빨랐다⁠. “⁠우리 엄마가 가르쳐 준 거예요⁠. 열여섯 살 때 창신동 공장에서⁠. 엄마도 미싱 했어요⁠.⁠”

응접실이 조용해졌다⁠. 관장은 할머니를 오래 보았다⁠. 이 손에 접힌 냅킨이 네 번 반듯했다⁠.

“⁠이 할머니는 누구예요⁠?⁠”

“⁠우리 직원이오⁠.⁠” 기탁이 말했다⁠. “⁠봉제를 오래 해서⁠.⁠”

관장은 믿는 얼굴이 아니었다⁠.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관장은 다시 찻잔을 들었다⁠.

“⁠어차피 그 몸은 내 게 아니었어요⁠. 유월에 렌트 연장하겠다고 했더니 회장이 직접 왔어요⁠. 나를 내 예전 몸으로 잠깐 옮겨 놓고⁠, 빈 그 몸을 이 소파에 눕혀서 기계로 맞춤도를 재더라고요⁠. 회장이랑 그 몸이랑⁠. 구십팔이 나왔어요⁠. 나는 그런 숫자를 처음 봤어요⁠. 회장 얼굴이 그렇게 풀리는 것도 처음 봤고⁠.⁠” 관장은 차를 마셨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렌트는 그날로 끊겼어요⁠. 회장이 그러더군요⁠. 이건 제 일곱 번째 옷입니다⁠, 관장님⁠.⁠”

내내 냅킨을 접던 할머니의 손이 처음으로 멈췄다⁠.

“⁠그 몸 지금 어디 있소⁠?⁠” 기탁이 물었다⁠.

“⁠그걸 내가 알면 회장이 나를 가만둘까요⁠?⁠” 관장은 찻잔을 내려놓고 문 쪽을 보았다⁠. “⁠근데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연 사장님 이름 듣고 내가 연락해 놨어요⁠. 회장이 그 몸 얘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거든요⁠.⁠”

*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는 셋이었다⁠. 둘은 무거웠고 하나는 가벼웠다⁠.

응접실 문이 열렸다⁠. 경호원 둘이 먼저 들어와 양옆에 섰다⁠. 둘 다 HS형이었다⁠. 이 사이로 서른다섯쯤 된 남자가 들어왔다⁠. 흰 셔츠⁠, 회색 코트⁠, 광고 화면에서 웃던 이 얼굴이었다⁠. 그런데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있었다⁠. 남자는 걸으면서도 오른손 손톱으로 왼쪽 손목 안쪽을 문지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를⁠.

“⁠관장님⁠, 차 잘 마셨습니다⁠.⁠” 한명후가 말했다⁠. 광고 화면에서 듣던 이 느린 말씨였다⁠.

관장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서른 살 생몸이 예순여덟 살의 몸가짐으로 허리를 조금 숙였다⁠.

“⁠회장님⁠, 약속하신 거⁠.⁠”

“⁠다음 몸은 제가 골라 드리지요⁠. 관장님 손버릇에 맞는 걸로⁠.⁠” 한명후는 관장을 보지 않고 말했다⁠. “⁠이번엔 식탁을 재지 않는 손으로⁠.⁠”

관장의 얼굴이 굳었다가 웃었다⁠. 이 몸은 웃는 데는 잘 맞았다⁠. 노을이 이 자리를 마련한 값이 이것이었다⁠. 한명후는 이 값을 정확히 치렀고⁠, 이 이상은 한 마디도 주지 않았다⁠. 기탁 앞에 섰다⁠. 키는 기탁과 비슷했지만⁠, 허리를 다 편 몸이라 조금 더 높았다⁠.

“⁠연기탁 씨⁠. 거간 시절에 일 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창신동 일은 아직도 회사에서 이야기합니다⁠.⁠”

기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명후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한명후의 눈이 기탁의 어깨 너머로 갔다⁠. 문가에 선 해송에게⁠, 그리고 이 옆에서 냅킨을 쥔 채 멈춘 할머니에게⁠.

“⁠서해송 군은 휴가 중에 할머니를 모시고 다닐 사람이 아니지요⁠.⁠” 한명후는 손목 긁던 손을 멈추고 할머니를 내려다보았다⁠. 값을 매겨 보는 얼굴이었다⁠. “⁠그러면 이쪽이 서노을 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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