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56자)
이모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양현오
진압 막대 끝에서 푸른 불이 튀었다. 회수팀원 하나가 이 끝을 굴착 3형의 오른팔에 갖다 댔다. 의체를 멈추게 하려고 만든 막대였다. 사람 몸이면 쓰러졌을 것이다. 공사장 몸은 쓰러지지 않고 팔 하나를 잃었다.
팔꿈치 아래 유압관이 터지면서 기름이 흰 타일에 뿌려졌다. 노을이 소리를 질렀다. 굵고 낮은 비명이 비우기실 타일을 울렸다. 법이 의체마다 통증을 달아 둔 까닭이 거기 있었다. 아프지 않으면 사람은 제 몸을 아끼지 않는다. 노을의 오른팔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방식으로 아팠다. 뼈가 아니라 쇠가 부러지는 아픔이었다.
그래도 왼손은 쥘 줄 알았다. 노을은 막대를 든 팀원의 손목을 쥐었고, 이 몸이 노을의 손 안에서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벽에 부딪혔다. 두 번째 팀원이 물러섰다.
“나가!” 기탁이 소리쳤다.
갈매의 오른손이 이미 비상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이 손을 내리지 않았다. 셋은 이 손이 가리키는 쪽으로 뛰었다. 노을은 무릎을 굽힌 채 계단을 올랐고, 부러진 팔이 계단 벽을 긁으며 기름 자국을 남겼다.
치훈은 쫓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흰 판을 주워 장갑으로 닦았다. 그리고 계단 쪽으로 한 걸음 내딛는 해송의 어깨를 잡았다.
“따라가지 마세요.”
해송은 멈췄다. 따라가지도 않았고, 잡는 손을 뿌리치지도 않았다. 계단 위에서 셔터가 한 번 더 찢어지는 소리가 났고, 땜차의 시동 소리가 멀어졌다.
*
새벽 다섯 시, 땜방 바닥에 기름이 고였다. 꽝수가 굴착 3형의 오른팔을 뜯어 놓고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유압관이 세 군데 터졌어. 부품이 공사장 거라 구하려면 일주일. 그리고 형, 이거 회수팀이 다 봤어. 이 미터짜리 공사장 몸이 그 애 이름 부르는 걸.”
“알아.”
“그럼 아침에 와.”
“알아.”
기탁은 창고 안쪽에서 마지막 번호 없는 몸을 꺼냈다. 요양원에서 쓰던 할머니 몸, 경로 2형이었다. 키는 백사십이었고 허리가 앞으로 조금 굽어 있었다. 흰 머리카락이 정수리에서 얇게 갈라졌다.
노을이 이것을 보았다.
“설마.”
“번호 없는 건 이거 하나 남았어요.”
“나 스물아홉이에요.”
“몸은 일흔둘쯤 될 거요.”
노을은 부러진 팔을 감싸 쥐고 한참 이 몸을 보았다. 그러고는 옮김틀 왼쪽 침대에 누웠다. 굴착 3형의 몸이 침대보다 길어서 발목 아래가 허공에 떴다. 꽝수가 선을 꽂자 상자가 사십 분을 세기 시작했다.
사십 분 뒤 경로 2형이 일어나 앉았다. 앉는 데 한참 걸렸다. 이 몸은 허리를 먼저 굽히고 무릎을 짚어야 일어날 줄 알았다. 일어나 앉은 할머니는 제 손을 보았다. 주름진 손등에 검버섯이 셋 있었다.
“아, 진짜.”
목소리가 가늘고 높았다. 바람 빠진 피리 같은 소리였다. 노을은 또 입을 막았다. 이번에는 손이 작아서 입만 겨우 가려졌다.
대리기사가 배달 1형으로 다가와 노을 옆에 섰다. 키가 같았다. 노을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엄숙하게 말했다.
“드디어 눈높이 맞는 사람이 생겼네요.”
“닥쳐요.”
할머니 목소리로 하는 닥쳐요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꽝수가 순대 접시를 들다 말고 웃음을 터뜨렸고, 갈매까지 안내 방송 목소리로 킥킥거렸다. 노을은 일어서려다 머리 위를 손으로 더듬었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이 미터에 익은 머리가 형광등을 찾았는데 형광등은 저 위에 있었다. 이 빈자리를 몇 번이고 손으로 짚어 보았다. 그리고 오른팔이 아팠다. 이 몸의 오른팔은 멀쩡했는데, 부러진 공사장 팔이 거기 있었던 것처럼 아팠다.
“어긋남이요.” 기탁이 말했다. “옮긴 몸에 전 몸 아픈 게 따라와. 이레쯤 가.”
노을은 대답하지 않고 무릎 위에 손을 내렸다. 그러자 두 손이 저절로 무언가를 했다. 바닥에 떨어진 걸레를 집어 네 번 접고, 모서리를 맞추고, 손바닥으로 눌러 폈다. 요양원에서 수건을 개던 손이었다. 다 갠 걸레가 무릎 위에 반듯했다.
“이건 또 뭐예요?”
“몸버릇.” 꽝수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 할머니가 평생 개던 거야. 아가씨가 이겨.”
*
아침 아홉 시, 회수팀이 왔다. 치훈과 팀원 셋, 그리고 상인회장이었다. 상인회장은 털조끼 대신 양복 윗도리를 걸치고 있었다. 상가가 회사에 협조하는 자리라는 차림이었다.
치훈은 땜방 바닥에 누운 굴착 3형부터 보았다. 오른팔이 뜯겨 있고 눈이 감겨 있었다. 탐지기를 대지 않았다. 번호 없는 몸이라 소용이 없었다. 손으로 이 몸의 눈꺼풀을 들어 보았다.
“빈 몸이네요.”
“우리 가게 재고야.” 꽝수가 말했다. “유압이 새서 고치는 중이라니까. 회장님도 그저께 보셨잖아.”
“이 몸이 어젯밤 구로 매입소 셔터를 찢었습니다. 회사 물건을 담았던 그릇이니 회사가 가져가겠습니다. 수리비는 드리지요.”
팀원들이 굴착 3형을 운반대에 실었다. 이 미터짜리 몸이 문을 빠져나가는 데 셋이 붙어야 했다.
치훈은 땜방 안쪽을 둘러보았다. 구석 의자에 앉아 있던 배달 1형이 치훈과 눈이 마주치자 벌떡 일어나 배달 왔습니다, 하고 외쳤다. 아무도 배달을 시키지 않았다. 대리기사는 다시 앉았다. 이 옆에는 안내 5형이 서 있었고, 이 앞 낮은 의자에 할머니 하나가 앉아 손수건을 개고 있었다. 개어 놓은 손수건이 벌써 일곱 장이었다.
치훈이 할머니 앞에 섰다. HS-1의 키가 백구십이 넘어서, 거의 허리를 반으로 접어야 할머니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이분은 누구십니까?”
“우리 이모.” 꽝수가 말했다. 망설임이 없었다. “요양원에서 모셔 왔어. 거기서 밥을 안 줘서.”
치훈은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손수건 여덟 장째의 모서리를 맞추고 있었다. 이 손은 쉬지 않았다. 쉬지 않는 손이 노을을 살렸다. 고개를 들고,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카야, 순대 좀 더 다오. 이 양반은 누구냐?”
꽝수가 순대를 갖다 바쳤다. 치훈은 허리를 편 채로 한참 이 할머니를 내려다보았다. 탐지기는 치훈의 손에서 조용했다. 번호 없는 몸, 앞방이 찬 몸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보는 것뿐이었다. 안내 5형으로 눈을 옮겼다.
“갈매 기사님. 다음엔 회사 몸으로 모시겠습니다.”
“나가시는 곳은 왼쪽입니다.” 안내 5형의 손이 문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갈매가 일부러 한 것이었다.
치훈은 나가기 전에 기탁 앞에 섰다. 기탁은 계산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허리가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해송 씨는 오늘부터 휴가입니다, 선배. 회사가 쉬게 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회사가 봅니다.” 치훈은 이 말을 하고 상인회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상인회에서 할 말이 있으시답니다.”
상인회장이 헛기침을 했다.
“토요일에 상인회가 모여. 십칠 호 임대 문제로. 네가 몸을 사들이는 동안 경매가 안 열려. 다들 굶고 있어. 미리 알려 두는 거야.”
*
오후 세 시, 기탁은 허리를 짚고 복도를 걸어 오십팔 호로 갔다. 오십팔 호 주인은 쉰 줄의 생몸이었고, 진열창의 빈자리를 행주로 닦고 있었다. 어제 회수팀이 운반대로 실어 간 HM-7이 서 있던 자리였다.
“뭐 하러 왔어? 또 세 배 부르러?”
“그 몸에 든 사람, 어젯밤에 비워졌소.”
행주가 멈췄다.
“구로 지하에서. 열두 시에. 내가 봤어.” 기탁은 진열창 유리에 기댔다. “도장공이래. 페인트칠하는 사람. 딸 초등학교 졸업식이 이월인데 지났느냐고 묻다가 갔어.”
오십팔 호 주인은 행주를 쥔 채 진열창 바닥만 보았다. 주인은 이 몸을 지난달에 두 번 팔았고 두 번 물러 받았다. 첫 번째 손님은 밤마다 몸이 누구를 찾는다고 했고, 두 번째 손님은 몸이 자꾸 손톱 밑을 들여다본다고 했다. 주인은 두 번 다 심이 낡아서 그렇다고 하고 오만 원씩 깎아 주었다.
“내가 두 배 받고 넘겼네.” 오십팔 호 주인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사람을.”
“나도 서른 구 넘게 팔았어.”
“그걸 위로라고 해?”
“위로 아니야. 셈이지.”
오십팔 호 주인이 행주를 진열창 바닥에 내던졌다. 주인은 한참 숨을 고르다가, 기탁이 돌아서려 할 때 말했다.
“토요일에 상인회 모이면 나는 네 편 안 들어. 경매 끊기면 우리 애 학원비가 없어.” 주인이 잠깐 멈췄다. “근데 그 사람 딸 졸업식 날짜, 알아봐 줄 수 있으면 알아봐. 구로 근처 초등학교 몇 개 안 돼.”
기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십팔 호의 빈 진열창에 행주가 구겨진 채 남았다.
*
밤 열한 시, 땜방 셔터가 낮게 두 번 울렸다. 대리기사가 배달 왔다고 소리치며 셔터를 반쯤 올렸다가, 거기 선 사람을 보고 도로 내리려 했다. 기탁이 이 손을 막았다.
해송이었다. 혼자였고 작업복이 아니라 후드 티를 입고 있었다. 손에 편의점 봉지를 들었는데, 봉지 안에 바나나우유 두 개가 들어 있었다.
“회사 폰.” 갈매가 셔터 앞을 막고 손을 내밀었다. 안내 방송 목소리라 표 검사하는 역무원 같았다.
“집에 두고 왔어요. 버스도 세 번 갈아탔어요.” 해송이 빈 주머니를 뒤집어 보였다. “팀장님이 휴가 가라고 할 때 눈이 이상했어요. 휴가가 아니라는 거 알아요.”
갈매는 이 주머니를 한참 보다가 비켜섰다. 기탁은 셔터를 끝까지 내렸다.
기탁은 땜방 안을 둘러보았다. 배달 1형, 안내 5형, 그리고 낮은 의자의 할머니. 기탁은 할머니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누나를 찾는 얼굴이 아니라 시험 보는 얼굴이었다.
“우리 집 냉장고 문에 붙어 있던 자석, 뭐였어요?”
“제주도 돌하르방. 코가 깨진 거. 네가 깼어.”
“내 군대 첫 휴가 때 누나가 한 말.”
“머리 꼴이 그게 뭐냐? 그리고 너 살 빠졌다. 그리고 엄마한테는 휴가 하루 늦게 나왔다고 해. 하루는 누나랑 놀자.”
해송의 입술이 떨렸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누나의 것이 아니었다. 손도 얼굴도 누나의 것이 아니었다. 말투만, 하는 말만 누나였다. 해송은 봉지에서 바나나우유를 꺼내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 쥐여 주었다. 할머니의 손이 저절로 이것을 손수건처럼 반듯하게 무릎 위에 세웠다.
“영상 편지가 와요.” 해송이 말했다. “달마다. 부산에서 누나가. 엄마는 그거 보면서 울고 웃고 해요. 근데 영상 속 누나가 나를 ‘동생아’라고 불러요. 누나는 나 그렇게 안 불렀잖아요.”
“송아.” 노을이 말했다. “송아, 하고 불렀지.”
해송은 고개를 숙였다. 한참 그대로 있었다. 바닥의 기름 자국 위로 형광등 빛이 번졌다.
“나 회사 들어가서 처음 한 회수 일이 작년 유월이었어요.” 해송은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청담동 갤러리 하는 할머니 집이었어요. 젊은 여자 생몸을 빈집으로 받아서 송도 보관소로 옮기는 일. 팀장님이 팔린 몸이라고, 원래 주인은 부산에서 새 몸으로 잘 산다고 했어요. 들것에 눕혀서 얼굴을 덮으려는데, 덮기 전에 봤어요.”
노을의 손이 바나나우유를 놓쳤다. 우유갑이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누나 얼굴이었어요. 왼손 검지에 굳은살 있는 거 보고 알았어요. 미싱 굳은살.” 해송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벌겠다. “근데 누나는 부산에 있다니까. 팔린 몸이니까. 그래서 들것 들었어요. 내가 누나 몸을 차에 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