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42자)
구로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양현오
꽝수의 일 톤 수리 트럭은 상가 사람들 사이에서 「땜차」로 통했다. 짐칸에는 늘 남의 팔다리가 실려 있었고, 오늘 밤에는 이 미터짜리 사람이 방수포를 덮고 누워 있었다.
떠나기 전에 대리기사가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키 백오십짜리 배달 1형으로 땜차 운전석에 앉아 보더니, 발이 페달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내려왔다. 제 짧은 다리를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대리기사가 운전을 못 하면 뭘 해요?”
“가게나 봐.” 기탁이 말했다. “누가 셔터 두드리면 열지 말고, 열어야 하면 배달 왔다고 해.”
“이 몸이면 그 말은 믿겠네요.”
밤 열한 시 이십 분, 땜차는 한강대교를 건너 남쪽으로 달렸다. 꽝수는 운전대를 잡자마자 말을 시작해서 멈추지 않았다. 제 왼팔 의체는 원래 부천 미용실 원장 것이었다는 둥, 그래서 이 손이 가끔 남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든다는 둥, 매니큐어는 지우려 해도 이 원장이 무슨 약을 썼는지 안 지워진다는 둥. 조수석의 갈매는 듣지 않았다. 갈매의 오른손이 창밖을 향해 펴져 있었다. 안내 5형이 지하철역에서 십 년 동안 익힌 손이라,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손바닥이 저절로 한쪽을 가리켰다.
“거기 아니야.” 갈매가 말했다. 맑은 안내 방송 목소리였다. “손 말고 내 말 들어. 다음에서 오른쪽.”
“손은 왼쪽 가리키는데?”
“손은 출구를 가리키는 거야. 우리는 들어가는 거고.”
가운데 앉은 기탁은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앞만 보았다. 꽝수가 백미러로 기탁을 흘끗 보았다.
“형, 해송이라는 애가 진짜 판을 누를까?”
“누르라고 거기 앉혀 놓은 거야.”
짐칸 방수포 아래서 쇠 무릎이 짐칸 바닥을 한 번 긁었다.
*
구로 매입소는 공단 끝의 사 층짜리 회색 건물이었다. 정문 위에 허물의 이름이 작게 붙어 있었고, 건물 옆 화물 셔터 앞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자정 직전에 셔터 앞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갈매가 알고 있었다. 이 시각에 이들은 다 지하에 있었다.
셔터는 바닥 걸쇠로 잠겨 있었다. 노을이 방수포를 걷고 내려와 셔터 아래 틈에 손가락을 넣었다. 생각은 했고 들어 올리는 법은 몸이 알았다. 굴착 3형의 허리가 저절로 낮아지고 무릎이 굽었다. 공사장에서 철판을 들던 자세였다. 걸쇠가 튕겨 나가는 소리가 한 번 났고, 셔터가 어깨 높이까지 올라갔다.
안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났다. 일 층은 넓은 방 하나였고, 침대 열둘이 두 줄로 놓여 있었다. 침대마다 머리맡에 옮김틀 상자가 붙어 있었다. 노을은 셔터 아래로 몸을 접어 들어오다가 이 방을 보고 멈췄다. 왼쪽 줄 세 번째 침대였다. 이 년 전 누웠던 자리였고, 그녀에게는 이틀 전이었다.
이 침대에 지금 사람이 누워 있었다.
스물두엇 된 남자였다. 운동화를 신은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이 옆 침대에는 아직 상자에서 꺼낸 비닐도 다 벗기지 않은 새 HM-7이 누워 있었다. 두 몸의 목덜미에서 나온 선이 머리맡 상자로 모였다. 화면에 「31:12」가 떠 있었다. 숫자가 줄고 있었다.
방 저쪽 끝 간이 책상에서 남자 하나가 일어났다. 점퍼 차림에 생몸, 서른쯤이었다. 남자는 셔터 쪽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보고 놀라기보다 반가운 얼굴을 했다. 기탁을 알아본 것이었다.
“연 선배 아니세요? 창신동 연 선배.” 남자는 지폐 뭉치를 점퍼 안주머니에 밀어 넣으며 다가왔다. “다시 하시게요? 요즘 시세 많이 올랐어요. 한 사람에 오백이에요. 이 친구는 할머니 요양원비래요. 착하죠.”
새 거간이었다. 이 년 전 기탁이 서던 자리에 선 사람이었다. 기탁은 이 사람을 보지 않고 화면의 숫자를 보았다. 이십구 분 남짓. 끊으면 저 청년은 어느 몸에도 서지 못했다.
노을이 침대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었다. 그래도 눈높이가 누운 청년보다 한참 높았다. 굵은 손가락을 청년의 이마 위로 가져갔다가 닿기 전에 멈췄다. 이 손은 무엇이든 쥐면 끝까지 쥐었다.
“부산 지사에서 새 몸 준다고 했죠.” 노을이 잠든 사람에게 말했다. 낮은 목소리로. “안 줘요.”
청년은 듣지 못했다. 화면의 숫자만 줄었다.
“아이고, 공사장 형님은 왜 이래요?” 새 거간이 웃었다. “다 동의하고 누운 거예요. 동의서에 손도장까지 찍었어요.”
기탁이 돌아섰다. 엄지 없는 왼손이 새 거간의 점퍼 깃을 쥐었다. 네 손가락만으로도 쥐는 데는 모자라지 않았다. 새 거간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이 친구 누구한테 데려왔어? 회수팀이야, 기사야?”
“그, 그냥 기사님이요. 이 층에 계세요.”
“올라가서 오늘 밤 끝날 때까지 내려오지 마.”
기탁은 깃을 놓았다. 새 거간은 이 층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기탁은 아무것도 고치지 못했다. 청년은 사십 분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새 HM-7의 앞방이 아니라 뒷방으로 건너가는 중이었고, 이 몸은 앞방을 비운 채 용산 어느 진열창에 설 것이었다. 이날 밤 기탁이 한 일은 이 숫자를 한 번 더 본 것뿐이었다.
“삼 번 틀.” 갈매가 말했다. “내가 너 옮긴 자리.”
노을은 대답 없이 일어났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좁았다. 기탁이 앞장서고 갈매가 뒤를 따랐다. 노을은 맨 뒤였다. 계단 천장이 낮아서 무릎을 굽힌 채 한 칸씩 내려가야 했다.
*
비우기실은 작았다. 벽은 흰 타일이었고 가운데 금속 탁자 하나가 있었다. 탁자 위에 오십팔 호에서 실려 온 HM-7이 누워 있었다. 손가락이 긴 이 몸의 앞방은 비어 있었고, 그래서 뒷방이 깨어 있었다. 눈꺼풀이 열려 있었고 입술이 움직였다.
“딸 졸업식이 이월인데요. 초등학교요. 지났어요? 지났으면 사진이라도…”
탁자 옆에 젊은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스물넷, 마른 생몸에 회수팀 작업복이 커서 소매를 두 번 접어 입었다. 서해송이었다. 해송의 오른손에는 손바닥만 한 흰 판이 들려 있었다. 이 판을 누운 몸의 목덜미 심에 대고 누르면 뒷방이 비었다. 이것이 비우기의 전부였다. 판을 쥔 손이 떨려서 판 끝이 형광등 빛을 잘게 튕겼다.
뒤에 치훈이 서 있었다.
“해송 씨. 하세요.”
“팀장님, 이 사람 말을 하는데요.”
“말은 다 합니다. 앞방이 비면.”
문이 열렸다. 치훈은 돌아보지 않았다. 발소리로 누군지 알았다.
“선배. 여기까지 오셨네요.”
“얼마면 돼?” 기탁이 말했다. 계단을 내려오느라 숨이 찼다. “내가 가게 판다. 보증금까지 다 넣으면 일억은 돼. 그 몸 나한테 팔아.”
“회수된 회사 물건은 값이 없습니다.”
“값이 없는 게 어딨어? 네가 어젯밤에 삼백칠십 줬잖아.”
“그건 회수하기 전이었습니다.” 치훈은 그제야 돌아섰다. HS-1의 반듯한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회수하면 회사 안입니다. 회사 안에서 회사 물건을 파는 사람은 없습니다. 선배도 매입 차 안에 사람 태우고 나서는 내리게 안 하셨지요.”
기탁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 차는 출발하면 서지 않았다. 그렇게 몰게 했다.
갈매가 기탁의 어깨 너머로 탁자를 보았다. 안내 5형의 오른손이 저절로 올라가 비상구를 가리켰다. 갈매는 이 손을 내리지 않았다. 이 방에서 나가는 길을 가리키는 손이었다.
“팀장.” 갈매가 말했다. 맑은 안내 방송 목소리로. “나 알아? 작년 겨울에 이 방에서 틀 옆에 안 서겠다고 한 기사.”
치훈은 안내 5형을 한참 보았다.
“갈매 기사님.”
“그 애 손 좀 봐. 그 손으로 누르게 하지 마. 그 애 평생 그 손으로 밥 먹어.”
해송이 판을 든 채 갈매를 보았다. 그리고 탁자 위의 HM-7을 보았다. 누운 몸의 입술이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 누구 있어요? 목소리가 여럿이네. 나 내보내 주러 왔어요? 나 도장공이에요. 페인트칠해요. 손 보면 알아요. 손톱 밑에 페인트…”
HM-7의 손톱 밑은 깨끗했다. 페인트가 묻어 있던 것은 해송의 본몸 손이었다. 이 손은 지금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다.
“해송 씨.” 치훈이 말했다.
해송의 손가락이 판 위에서 하얗게 질렸다. 누르지 못했다. 판 끝이 목덜미 심 위 일 센티에서 떨었다.
치훈이 한 걸음 다가가 이 손에서 판을 가져갔다. 빼앗는 손짓이 아니었다.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 주는 손짓이었다. 판을 목덜미에 대고 눌렀다.
“…졸업식 사진이라도 있으면…”
입술이 거기서 멈췄다. 말이 끝나지 않은 모양 그대로. 시트를 두드리던 긴 손가락들이 하나씩 차례로 멈추었고, 눈꺼풀은 열린 채 내려오지 않았다. 형광등 소리만 남았다.
치훈은 판을 해송의 손에 도로 쥐여 주었다.
“다음엔 해송 씨가 합니다.”
해송은 판을 받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받으려고 한 적이 없는데 손이 쥐고 있었다. 벽 쪽으로 돌아서서 헛구역질을 두 번 했다. 나오는 것은 없었다. 저녁을 거른 생몸이었다.
“네가 했어.” 기탁이 말했다. “방금 네 손으로.”
“제 손이 아니라 회사 손입니다, 선배.” 치훈은 장갑을 고쳐 꼈다. HS-1의 손가락이 하나씩 장갑 끝에 맞춰 들어갔다. “이 몸도 회사 것이고요. 회사 몸이 회사 판을 눌렀습니다. 그렇게 남습니다. 선배가 태운 사람들도 선배가 판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판 걸로 남았지요.”
갈매의 비상구를 가리키던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 기탁은 탁자로 가서 열린 눈꺼풀을 엄지 없는 손으로 덮었다. 두 번 덮어야 감겼다. 도장공의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오십팔 호 주인은 이 몸을 두 번 팔았다가 두 번 물러 받았고, 이때마다 잠꼬대가 시끄럽다는 말만 들었다. 갈매가 탁자로 다가가 시트 위에 구부러져 멈춘 긴 손가락들을 하나씩 펴서 가지런히 놓았다. 기사 시절 옮김이 끝난 빈 몸에 해 주던 일이라고, 갈매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안내 방송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빈 몸이 아니었다.
*
계단 그늘에 서 있던 것이 움직였다. 천장이 낮아 무릎을 굽히고 있던 이 미터짜리 몸이 문틀을 지나 비우기실로 들어왔다. 머리가 형광등에 닿을 듯했다. 회수팀원 둘이 반사적으로 허리춤의 진압 막대를 잡았다.
노을은 이들을 보지 않았다. 해송을 보았다. 이 년 동안 어깨가 조금 넓어지고, 얼굴이 마르고, 턱에 수염 자국이 생긴 동생을. 판을 쥔 손이 아직 떨리고 있었다.
“해송아.”
땅 밑에서 올라오는 목소리였다. 해송은 이 목소리를 몰랐다. 판을 가슴께로 당기며 뒷걸음질 쳤다.
“누구세요?”
“엄마 처음 투석 받던 날.” 노을이 말했다. 굵고 낮은 목소리로, 빠르고 또박또박한 서울 말투로. “병원 매점에서 네가 바나나우유 두 개 샀잖아. 하나는 네가 먹고, 하나는 내 가방에 몰래 넣었잖아. 내가 그거 몰랐는 줄 알지. 집에 가서 가방 열었더니 다 터져 있었어. 내 미싱 가위까지 다 끈적했어.”
해송의 손에서 판이 미끄러졌다. 흰 판이 타일 바닥에 떨어져 한 번 튀었다.
해송은 이 미터짜리 공사장 몸을 올려다보았다. 쇠 어깨, 굵은 손가락, 낮은 문틀에 맞춰 굽힌 무릎. 이 어디에도 누나는 없었다. 말투만 있었다.
“…누나?”
치훈이 떨어진 판을 주워 들었다. 노을을 보았고, 기탁을 보았고, 다시 노을을 보았다.
“저 몸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