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84자)

엄지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양현오

계산기 위의 손이 멈췄다⁠. 네 손가락이 숫자 칠 위에 얹힌 채였다⁠.

기탁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감추기에는 늦었고⁠, 감출 생각도 없는 얼굴이었다⁠. 계산기를 옆으로 밀고 엄지 없는 손을 계산대 위에 펴 놓았다⁠. 첫 마디부터 없는 자리가 반들반들했다⁠. 열여덟 살에 용산 하역장에서 지게차 포크에 낀 손이었다⁠.

“⁠나 맞아요⁠.⁠”

노을은 대답하지 않았다⁠. 굴착 3형의 오른손이 계산대 모서리를 잡았다⁠. 쥐려고 한 것이 아니라 짚으려 한 것이었는데⁠, 삽을 쥐던 손은 짚는 법을 몰랐다⁠. 합판이 손가락 모양대로 안으로 꺼졌다⁠. 나뭇조각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 기억나요⁠?⁠”

“⁠아니⁠.⁠”

“⁠창신동 쌍둥이 미싱집 골목⁠. 비 오는 날⁠. 우산 없다고 아저씨가 차 안에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했잖아요⁠.⁠”

“⁠그해에 마흔 명 넘게 태웠어⁠. 비 오는 날도 많았고⁠.⁠” 기탁은 손바닥을 계산대에 붙인 채 말했다⁠. “⁠한 사람에 삼백⁠. 동네 돌면서 형편 어려운 집 알아내고⁠, 매입소 가면 일억 넘게 준다고 말하고⁠, 그 차에 태우고⁠. 그게 일이었어요⁠.⁠”

“⁠그 돈 받고 미안하지 않았어요⁠?⁠”

“⁠그땐 다들 팔았으니까⁠. 팔면 새 몸 준다고 했고⁠, 나는 그 말을 의심 안 했어⁠.⁠” 기탁이 잠깐 말을 끊었다⁠. “⁠의심할 이유가 있었는데 안 했지⁠.⁠”

“⁠왜 그만뒀어요⁠?⁠”

“⁠매입 차가 동네를 너무 빨리 비웠어⁠. 태울 사람이 없더라고⁠. 그래서 이 가게 차렸지⁠. 허물이 처분하는 몸 받아다 파는 거⁠. 그 몸들이 어디서 오는지는 안 물었고⁠.⁠”

꽝수가 구멍 앞에 쪼그리고 앉아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이럴 때 무슨 말이든 하는 사람이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대도 집지 않았다⁠.

노을은 계산대에서 손을 떼었다⁠. 손자국이 깊게 남았다⁠.

“⁠사과는 됐어요⁠. 지금 들으면 안 믿을 거니까⁠.⁠” 굴착 3형의 낮은 목소리가 또박또박 말했다⁠. “⁠그 삼백⁠, 갚아요⁠. 내 몸 찾아서⁠.⁠”

“⁠찾으면⁠?⁠”

“⁠그때 사과 들을게요⁠.⁠”

기탁은 망가진 계산대 모서리를 엄지 없는 손으로 쓸어 보았다⁠. 수리비가 얼마일지 셈하는 손짓이었고⁠, 꽝수는 이 손을 보고서야 다시 순대를 집었다⁠.

*

오후 두 시⁠, 상인회는 결정을 내렸다⁠. 경매가 끊긴 지 하루 반이었다⁠. 다음 주 물건을 기다리던 집 서른이 회의실에 모였고⁠, 회의는 이십 분 만에 끝났다⁠. 회수팀의 재고 수색을 받아들인다⁠. 회사 물건이 나오면 회사에 판다⁠. 그러면 경매가 다시 열린다⁠.

치훈은 회수팀 넷을 데리고 왔다⁠. 상인회장이 앞장서 사층 복도를 걸었고⁠, 치훈은 이 반걸음 뒤에서 탐지기를 진열창마다 갖다 댔다⁠. 백이십 곳의 문이 열려 있었고 주인들이 문간에 서서 팔짱을 끼고 보았다⁠. 진열창 안의 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서 있었다⁠.

구 호 앞에서 검은 판이 울었다⁠. 약하고 느린⁠, 숨 같은 맥이었다⁠. 진열창 맨 오른쪽⁠, 손가락이 긴 HM-7이었다⁠.

구 호 주인이 입을 벌렸다⁠. “⁠저거 석 달째 안 팔리던 건데⁠.⁠”

삼십삼 호에서 또 울었다⁠. 여자형 HM-5였다⁠. 오십팔 호에서 세 번째로 울었다⁠. 이 집 주인은 진열창을 손바닥으로 쳤다⁠.

“⁠이게 사람이라고⁠? 내가 이걸 지난달에 두 번이나 팔았다가 무른 거 받았는데⁠?⁠”

“⁠잠꼬대 때문에 물러 왔죠⁠.⁠” 치훈이 말했다⁠. “⁠회사가 값을 두 배로 쳐 드리겠습니다⁠. 오늘 현금으로⁠.⁠”

복도가 조용해졌다⁠. 주인들이 계산하는 얼굴이 되었다⁠. 두 배면 석 달 장사였다⁠.

기탁이 땜방 앞에서 걸어 나왔다⁠. 허리를 반쯤 구부린 채였다⁠. 오늘 새벽 진열대에 부딪힌 데가 아직 뜨거웠다⁠.

“⁠세 배⁠.⁠”

치훈이 탐지기를 내렸다⁠. “⁠선배⁠.⁠”

“⁠구 호⁠, 내가 세 배 줄게⁠. 삼십삼 호도⁠.⁠” 기탁은 휴대폰을 꺼냈다⁠. 어젯밤 치훈이 보낸 삼백칠십에 가게 보증금 빼고 남은 돈을 다 합치면 둘까지였다⁠. 셋은 안 됐다⁠. “⁠오십팔 호도 사지⁠. 다음 달에⁠.⁠”

“⁠다음 달이 어딨어⁠?⁠” 오십팔 호 주인이 소리쳤다⁠. “⁠너 때문에 경매가 끊겼어⁠. 내가 너한테 팔면 상가가 한 달 더 굶어⁠.⁠”

구 호와 삼십삼 호 주인은 서로 눈을 맞추었다⁠. 세 배는 세 배였다⁠. 이들은 회사 대신 기탁의 계좌번호를 받았다⁠. 치훈은 이것을 막지 않았다⁠. 대신 상인회장을 돌아보았다⁠.

“⁠회장님⁠. 선배가 몸을 사는 만큼 회사 물건 회수가 늦어집니다⁠. 회수가 늦어지는 만큼 경매도 늦게 열립니다⁠.⁠”

상인회장이 기탁을 보았다⁠. 복도의 주인들이 다 기탁을 보았다⁠. 이 눈길들 사이로 오십팔 호의 HM-7이 운반대에 실려 나갔다⁠. 회수팀 둘이 이것을 엘리베이터로 밀었고⁠, 손가락이 긴 이 몸의 손 하나가 운반대 밖으로 늘어져 흔들렸다⁠.

치훈은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에 기탁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선배⁠, 상가가 선배를 미워하게 될 겁니다⁠. 그건 제가 한 게 아니라 선배가 한 겁니다⁠.⁠”

*

해 질 무렵⁠, 노을은 기탁의 휴대폰을 빌렸다⁠. 굴착 3형의 손가락은 화면보다 굵어서 번호 하나를 누르면 옆 번호 둘이 같이 눌렸다⁠. 꽝수가 대신 눌러 주었다⁠. 노을이 외우고 있던 엄마 번호였다⁠. 이 년 사이에 바뀌지 않았다⁠.

신호가 세 번 가고 누가 받았다⁠. 높고 매끈한 여자 목소리였다⁠. 노을이 모르는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노을은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공사장 반장 같은 제 목소리로 엄마를 부를 수가 없었다⁠. 휴대폰을 기탁에게 밀었고⁠, 기탁이 받았다⁠.

“⁠서노을 씨 어머님 되십니까⁠? 용산에서 의체 가게 하는 사람인데요⁠.⁠”

“⁠네⁠, 제가 노을이 엄마예요⁠. 무슨 일이세요⁠?⁠” 의체 목소리가 반가운 듯 빨라졌다⁠. “⁠노을이 부산에 있어요⁠. 회사 지사에서 일해요⁠. 달마다 영상 편지 와요⁠. 이번 달 것도 지난주에 왔고⁠. 우리 애 거기서 잘 있어요⁠.⁠”

기탁은 노을을 보았다⁠. 노을은 바닥만 보고 있었다⁠.

“⁠어머님 몸은 좀 어떠세요⁠?⁠”

“⁠이 몸이요⁠? 좋아요⁠. 신장 걱정 없고⁠, 무릎도 안 아프고⁠. 우리 딸이 해 준 몸이에요⁠.⁠” 목소리가 웃었다⁠. “⁠근데 누구시라고요⁠?⁠”

노을이 휴대폰을 도로 가져갔다⁠. 굵은 손가락이 화면에 닿았다⁠. 입을 화면 가까이 대고⁠, 굴착 3형의 낮은 목소리로⁠, 어릴 때부터 쓰던 말을 했다⁠.

“⁠엄마⁠, 밥은 먹고 다녀요⁠? 또 김치만 놓고 먹지 말고⁠.⁠”

저쪽이 조용해졌다⁠. 한참 숨소리만 들렸다⁠. 의체가 숨 쉬는 시늉을 하는 팬 소리였다⁠.

“⁠그 말⁠… 우리 노을이 말인데⁠.⁠”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리고 단단해졌다⁠. “⁠근데 당신 남자잖아요⁠. 이런 전화 몇 번 받았어요⁠. 딸 목소리 흉내 내서 돈 보내라는 거⁠. 한 번만 더 걸면 신고할 거예요⁠.⁠”

전화가 끊겼다⁠.

노을은 휴대폰을 계산대 위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부수지 않았다⁠. 아주 조심해서 내려놓느라 손이 떨렸고⁠, 굴착 3형의 유압이 떨림을 따라 쉭쉭 짧게 빠졌다⁠. 엄마는 살아 있었다⁠. 몸값은 들어갔다⁠. 그리고 부산에서 누군가 엄마의 이름으로 달마다 영상을 보내고 있었다⁠.

“⁠영상 편지는 회사가 만드는 거예요⁠.⁠” 기탁이 말했다⁠. “⁠판 사람 가족이 찾아오지 않게⁠.⁠”

“⁠알고 있었어요⁠?⁠”

“⁠들었어⁠. 그때도⁠.⁠”

노을은 대답하지 않았다⁠. 꽝수가 노을의 무릎에 순대 한 점을 올려놓았다⁠. 이번 것은 접시 없이 종이에 싼 것이었다⁠.

*

기탁의 창고에 남은 번호 없는 몸은 셋이었다⁠. 지하철역에서 쓰다 나온 안내 5형⁠, 키 백오십짜리 배달 1형⁠, 요양원에서 나온 할머니형 경로 2형⁠. 다 옛 국산이라 몸 번호가 없었다⁠. 허물 몸에 든 사람을 회사 눈에서 감추려면 이 사람을 이런 몸으로 옮겨야 했다⁠. 하나에 사십 분이었다⁠.

꽝수가 밤 아홉 시에 틀을 돌렸다⁠. 첫 번째는 구 호의 HM-7에서 배달 1형으로⁠.

배달 1형이 눈을 뜨자마자 한 말은 이랬다⁠.

“⁠제 폰 어딨어요⁠?⁠”

높고 가는 목소리였다⁠. 서른넷의 대리기사였고⁠, 2056년 여름에 빚 때문에 몸을 팔았다⁠. 대리기사는 백오십짜리 다리로 일어서서 제 키를 확인하고 기탁을 올려다보았다⁠.

“⁠나 원래 백팔십이에요⁠.⁠”

“⁠알아요⁠.⁠”

“⁠이게 무슨 몸이에요⁠? 배달용⁠? 오토바이도 못 타겠네⁠.⁠” 대리기사는 짧은 팔을 휘저었다⁠. 그러다 멈췄다⁠. “⁠잠깐만요⁠. 지금이 이천오십팔이라고요⁠? 그럼 그해 가을야구 누가 이겼어요⁠? 나 그거 결승 보다가 팔러 갔단 말이에요⁠.⁠”

꽝수가 휴대폰으로 같은 해 결승 결과를 찾아 보여 주었다⁠. 대리기사는 화면을 보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응원하던 팀이 졌다는 걸 알고는 욕을 했다⁠. 이 년 동안 뒷방에 갇혀 있던 사람이 처음 화를 낸 것이 야구였다⁠. 노을이 굴착 3형의 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웃음이 새는 것을 막으려는 손이었는데⁠, 막은 손 아래로 공사장 반장 같은 웃음소리가 쿨럭쿨럭 흘러나왔다⁠.

두 번째는 삼십삼 호의 HM-5에서 안내 5형으로⁠. 사십 분 뒤 안내 5형이 일어나 앉았다⁠. 이 몸의 오른손이 먼저 움직였다⁠. 손바닥을 펴서 창고 출구 쪽을 가리켰다⁠.

“⁠나가시는 곳은 왼쪽입니다⁠.⁠”

맑고 친절한 안내 방송 목소리였다⁠. 안내 5형은 제 입에서 나온 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같은 목소리로⁠, 전혀 다른 말투로 말했다⁠.

“⁠씨발⁠, 이게 무슨 몸이야⁠?⁠”

갈매였다⁠. 마흔넷⁠, 2057년 겨울까지 허물 구로 매입소의 옮김 기사⁠. 갈매는 일어서자마자 옮김틀 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려 보았다⁠. 오래된 틀이라 화면 모서리가 탔고 갈매는 이것을 알아보았다⁠.

“⁠이거 이천사십구년식이네⁠. 아직 돌아가⁠?⁠”

“⁠돌아가니까 당신이 여기 있지⁠.⁠” 꽝수가 말했다⁠.

“⁠기사였어요⁠?⁠” 기탁이 물었다⁠.

“⁠비우는 날 틀 옆에 서 있으라길래 안 선다고 했어⁠. 그다음은 잠들었고⁠, 눈 떠 보니 여기야⁠.⁠” 갈매의 오른손이 또 혼자 올라가 이번에는 화장실 쪽을 가리켰다⁠. 갈매는 왼손으로 이 손을 내리눌렀다⁠. “⁠내가 재운 사람들 옆에 나를 재웠겠지⁠.⁠”

노을이 몸을 숙였다⁠. 이번에는 제때 숙여서 형광등을 피했다⁠.

“⁠서노을이에요⁠. 2056년 시월 이십일⁠, 구로에서 팔았어요⁠.⁠”

갈매가 고개를 들었다⁠. 키 이 미터짜리 공사장 몸을⁠, 이 몸에서 나오는 서울 말투를⁠.

“⁠서노을⁠.⁠” 갈매는 이 이름을 천천히 굴렸다⁠. “⁠그날 내가 옮겼어⁠. 매입소 삼 번 틀⁠. 왼손 검지에 굳은살 있던 몸⁠.⁠”

노을의 손이 저절로 삽자루를 쥐었다⁠.

“⁠내 몸 어디 있어요⁠?⁠”

“⁠그 몸은 보관소에 오래 안 누워 있었어⁠. 이듬해 봄에 렌트로 나갔지⁠. 청담동 손님⁠. 기사들이 그 몸 보고 수군거렸거든⁠. 천에 하나 나오는 몸이라고⁠.⁠” 갈매는 짧게 끊어 말했다⁠. 안내 방송 목소리로 말하니 지하철 환승 안내 같았다⁠. “⁠근데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야⁠. 오늘 낮에 회수팀이 하나 가져갔다며⁠.⁠”

“⁠오십팔 호 거⁠.⁠” 기탁이 말했다⁠.

“⁠회수팀이 가져간 몸은 그날 밤 구로 지하에서 비워⁠. 열두 시⁠. 하루를 안 넘겨⁠.⁠” 갈매가 벽시계를 보았다⁠. 열한 시 오 분이었다⁠. “⁠그리고 비우는 손은 늘 막내야⁠. 회사 규칙이지⁠. 막내 손을 한번 더럽혀 놔야 회사를 못 나간다고⁠.⁠”

“⁠막내가 누군데요⁠?⁠”

“⁠내가 재워지기 전에 새로 들어온 애⁠. 몸값 받고 일자리까지 받은 집 아들⁠.⁠” 갈매의 오른손이 다시 올라가 이번에는 아무 데도 아닌 허공을 가리켰다⁠. “⁠서해송이라던데⁠.⁠”

굴착 3형의 두 손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 유압이 빠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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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빵2026.10.25· 3화

    3화 제목이 엄지인데 지문 때문인가요?

    • 양현오작가2026.10.27

      반쯤 맞히셨어요. 엄지는 몸이 바뀌어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확인하는 자리라서요.

엄지 ·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