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36자)

사십 분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양현오

기탁은 셔터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창고 쪽에서 들린 목소리는 셋 다 들었고⁠, 셋 다 못 들은 얼굴을 했다⁠. 회수팀은 그런 데 익숙했다⁠.

“⁠팔지⁠.⁠” 기탁이 말했다⁠. “⁠대신 사백⁠.⁠”

“⁠삼백칠십입니다⁠.⁠”

“⁠뒷방 든 몸은 냉각수를 두 배로 먹어⁠. 그거 이 년 치 냉각수 값이 삼십이야⁠. 너희 회사가 맡겨 놓고 우리 상가가 먹여 살렸잖아⁠.⁠”

치훈은 탐지기를 내렸다⁠. 검은 판은 아직 창고 쪽에서 촘촘하게 울고 있었다⁠. 사람이 있다는 소리였고⁠, 이 사람은 손가락밖에 못 움직인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앞방이 빈 의체의 뒷방에 든 사람은 어디로도 걸어가지 못한다⁠. 회수팀장은 이걸 알았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았다⁠.

“⁠본사 승인 받겠습니다⁠. 삼백칠십 넘는 건 제 선에서 못 합니다⁠.⁠”

“⁠새벽 세 시에 누가 승인을 해 줘⁠?⁠”

“⁠회장님은 안 주무십니다⁠.⁠”

치훈이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보냈다⁠. 기탁은 계산대 밑 보온병을 꺼내 종이컵 셋에 보리차를 따랐다⁠. 팀원 둘은 받지 않았고 치훈은 받았다⁠. HS-1의 손이 종이컵을 감싸자 컵이 장난감처럼 작아졌다⁠.

창고 커튼 뒤⁠, 벽 아래 수리 구멍으로 꽝수가 기어 들어오고 있었다⁠. 쉰다섯 살 생몸의 배가 사십 센티 구멍에 걸렸다가 숨을 한 번 들이쉬자 빠졌다⁠. 분홍 매니큐어가 남은 꽝수의 왼쪽 의체 팔이 옮김틀의 굵은 선 한 가닥을 끌었고⁠, 선의 끝은 구멍 너머 땜방 바닥에 누운 굴착 3형의 목덜미에 이미 물려 있었다⁠. 꽝수는 HM-7의 목덜미 단자에 다른 끝을 꽂고 틀의 상자를 켰다⁠. 화면에 「⁠40⁠:00⁠」이 떴다⁠. 꽝수는 누운 몸의 귀에 대고 아주 작게 말했다⁠.

“⁠아가씨⁠, 지금부터 사십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마⁠. 이사 가는 거야⁠.⁠”

HM-7의 손가락 하나가 시트를 한 번 눌렀다⁠.

*

승인은 오지 않았다⁠. 기탁은 이것도 셈에 넣고 있었다⁠.

“⁠너 그 몸 언제 입었냐⁠?⁠”

“⁠이천오십사 년입니다⁠.⁠”

“⁠본몸은⁠?⁠”

“⁠송도에 맡겨 놨습니다⁠. 십 년 채우면 원가로 돌려준답니다⁠.⁠” 치훈은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 몸은 맛을 느꼈지만 치훈은 맛을 묻지 않았다⁠. “⁠선배는 아직 제 몸 입고 계시네요⁠. 허리는 좀 어떠십니까⁠?⁠”

“⁠네가 그때 차를 너무 험하게 몰아서 그래⁠.⁠”

“⁠선배가 사람을 너무 많이 태웠죠⁠. 정원 열둘에 열여섯⁠.⁠”

팀원 하나가 웃음을 참았다⁠. 기탁은 계산기를 끌어당겨 엄지 없는 손으로 두드렸다⁠. 이 년 치 냉각수⁠, 심 보정⁠, 반품 처리⁠, 셔터를 새벽에 연 값⁠. 숫자마다 이유를 붙였고⁠, 치훈은 숫자마다 깎았다⁠. 상가에서 십오 년 장사한 사람의 흥정과 회사에서 사 년 사람을 거둔 사람의 흥정이었다⁠. 삼십 분이 그렇게 갔다⁠.

삼십오 분째에 치훈이 탐지기를 들여다보았다⁠. 검은 판의 소리가 성글어져 있었다⁠. 한 번 울고 쉬고⁠, 한참 있다 또 울었다⁠.

치훈은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선배⁠. 시간 끄셨네요⁠.⁠”

치훈은 계산대를 돌아 커튼으로 걸었다⁠. 기탁이 이 앞을 막아섰다⁠. HS-1의 어깨가 기탁의 가슴에 닿았고⁠, 다음은 밀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기탁의 몸이 옆 진열대에 부딪혀 미끄러졌다⁠. 허리에서 무언가가 뜨겁게 끊어지는 소리가 기탁의 귀에만 들렸다⁠. 바닥에 반쯤 앉은 채로 말했다⁠.

“⁠뽑지 마⁠.⁠”

치훈이 커튼을 걷었다⁠. 옮김틀 위에 HM-7이 누워 있었고⁠, 이 목덜미에서 나간 선이 벽 구멍 너머로 사라져 있었다⁠. 구멍 앞에는 꽝수가 두 팔을 벌리고 엎드려 있었다⁠. 막는다는 몸짓인데 엎드려 있어서 절을 하는 것 같았다⁠. 상자 화면은 「⁠00⁠:58⁠」이었다⁠.

치훈은 선을 보았다⁠.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였다⁠.

“⁠뽑으면 네 손으로 죽이는 거다⁠.⁠” 기탁이 바닥에서 말했다⁠. “⁠회사 지시로 비우는 거 말고⁠, 네 손으로⁠. 건너가다 만 사람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못 서⁠. 너도 알잖아⁠.⁠”

치훈의 손이 선 위에서 멈췄다⁠. 회색 장갑 낀 손가락이 선에 닿을락 말락 했다⁠. 화면의 숫자가 줄었다⁠. 오십⁠, 사십⁠, 삼십⁠. 팀원 둘이 커튼 밖에서 팀장의 등을 보았다⁠. 아무도 이 손이 무엇을 할지 몰랐고⁠, 손의 주인도 그런 얼굴이었다⁠.

「⁠00⁠:00⁠」

벽 너머 땜방에서 무거운 것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이어 쇠가 쇠를 치는 소리⁠, 그리고 꽝수의 비명⁠. 탐지기는 조용해졌다⁠.

치훈은 손을 거두었다⁠. HM-7의 눈꺼풀을 엄지로 들어 올렸다가 놓았다⁠. 빈 몸이었다⁠. 휴대폰을 꺼내 기탁의 계좌로 삼백칠십을 보냈다⁠. 사백이 아니라 처음 부른 값 그대로였다⁠.

“⁠몸 번호 없는 몸으로 옮기셨군요⁠.⁠” 치훈은 HM-7을 운반대에 싣게 하면서 말했다⁠. “⁠상가에 그런 몸이 몇 개 안 남은 거 압니다⁠, 선배⁠.⁠”

*

강남 테헤란로 허물 본사 오십삼 층에는 아침이 일찍 왔다⁠. 동쪽 유리벽으로 들어온 빛이 다섯 시 사십 분에 회장실 바닥에 닿았다⁠.

한명후는 앉아 있었다⁠. 서른다섯 살 남자의 몸은 잠을 잘 잤어야 했지만 이 몸으로 석 달째 밤을 새웠다⁠. 오른손이 왼쪽 손목 안쪽을 긁고 있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세 번째 몸의 손목에 있던 흉터가 이 자리였고⁠, 몸을 세 번 더 갈아입은 뒤에도 이 자리를 긁었다⁠. 옮길 때마다 어긋남은 길어졌다⁠. 여섯 번 옮긴 사람에게 맞는 몸은 거의 없었다⁠.

치훈은 문 앞에 서서 보고했다⁠. HM-7 회수⁠, 뒷방 비어 있음⁠, 번호 없는 몸으로 이전된 것으로 보임⁠, 용산 십칠 호 연기탁⁠.

“⁠그 여자 이름이 뭐였지⁠?⁠”

“⁠서노을입니다⁠.⁠”

한명후가 손목 긁던 손을 멈췄다⁠. 이 이름을 한 번 소리 내 보았다⁠. 사람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물건의 번호를 외워 보는 소리였다⁠.

“⁠구십팔⁠.⁠”

치훈은 무슨 숫자인지 묻지 않았다⁠.

“⁠용산 처분 경매⁠, 오늘부터 끊어⁠.⁠” 한명후가 말했다⁠. 목소리는 느리고 정중했고 끝을 내리지 않았다⁠. “⁠상가 사람들은 우리 몸으로 먹고살지⁠. 일주일만 굶으면 번호 없는 몸이 어디 서 있는지 그 사람들이 먼저 알려 줄 거야⁠. 상가 사람들 눈이 몸 번호야⁠.⁠”

*

아침 일곱 시⁠, 땜방의 형광등 하나가 깨져 있었다⁠. 굴착 3형이 처음 일어설 때 머리로 받은 것이었다⁠.

서노을은 바닥에 앉아 있었다⁠. 앉아도 머리가 꽝수의 선 키보다 높았다⁠. 이 미터짜리 몸은 공사장에서 쓰던 것이라 어깨가 문짝만 했고⁠, 손가락 하나가 기탁의 손목만 했다⁠. 이 손을 펴 보았다가 쥐어 보았다⁠. 쥘 때마다 관절에서 유압이 쉭 빠지는 소리가 났다⁠.

“⁠목소리 왜 이래요⁠?⁠”

말이 땅 밑에서 올라왔다⁠. 굵고 낮은⁠, 공사장 반장 같은 소리였다⁠. 노을은 제 목소리에 놀라 입을 막았는데⁠, 막은 손이 너무 커서 얼굴의 반이 가려졌다⁠.

“⁠몸이 그래요⁠. 목소리는 몸을 따라가⁠.⁠” 기탁이 계산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말했다⁠. 허리를 펴지 못했다⁠.

꽝수가 순대 한 접시를 내밀었다⁠. 미안하다는 뜻이었다⁠. 구멍을 막느라 절하듯 엎드렸던 일도⁠, 깨진 형광등도 다 자기 탓이라 했다⁠. 노을이 접시를 받았다⁠. 사기 접시가 노을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소리도 없이 반으로 갈라졌다⁠.

“⁠아⁠.⁠”

“⁠괜찮아⁠, 괜찮아⁠. 그 접시 원래 금 가 있었어⁠.⁠” 꽝수가 순대를 바닥에서 주워 제 입에 넣었다⁠. “⁠그 몸이 원래 그래⁠. 삽을 쥐던 손이라 뭘 쥐면 끝까지 쥐어⁠. 한 달이면 아가씨 손이 몸을 이겨⁠.⁠”

노을은 손을 무릎에 내렸다⁠. 무릎에 내린 두 손이 저절로 무언가를 쥐는 모양이 되었다⁠. 삽자루 굵기였다⁠. 이 손을 한참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가게 안을 보았다⁠.

굴착 3형의 눈은 맑았다⁠. 형광등의 깨진 유리 조각 하나하나⁠, 진열창 너머 복도에 선 몸들의 감은 눈썹⁠, 꽝수 왼손 손톱의 벗겨진 분홍 매니큐어까지 다 보였다⁠. 이 년 만이 아니라 처음 같았다⁠. 노을은 아픈 곳이 없는 데가 아팠다⁠. 왼손 검지 끝이 가려웠다⁠. 미싱 앞에서 천을 밀던 이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있었는데⁠, 이 몸의 검지에는 굳은살이 없었다⁠. 없는 굳은살이 가려웠다⁠.

복도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났다⁠. 꽝수가 손짓으로 노을에게 가만있으라고 했고⁠, 노을은 가만있었다⁠. 이 미터짜리 몸이 가만있으니 그대로 재고처럼 보였다⁠.

땜방 문을 연 사람은 상가 상인회장이었다⁠. 예순 줄의 생몸에 털조끼를 입은 남자로⁠, 사층 임대를 쥐고 백이십 곳의 월세를 걷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휴대폰 화면을 기탁의 코앞에 내밀었다⁠. 허물이 상가 단체방에 보낸 글이었다⁠.

「⁠용산 처분 경매를 당분간 중단합니다⁠. 회사 물건의 회수에 협조해 주시는 대로 다시 열겠습니다⁠.⁠」

“⁠어젯밤에 회수팀이 네 가게 왔다며⁠.⁠” 상인회장이 말했다⁠. “⁠경매가 끊겼어⁠. 이 상가 몸 절반이 그 경매에서 와⁠. 다음 주 물건 기다리던 집이 서른이야⁠. 너 무슨 짓 했어⁠?⁠”

“⁠반품 하나 받았소⁠.⁠”

“⁠반품 하나에 경매를 끊어⁠?⁠”

상인회장의 눈이 땜방 안쪽으로 갔다⁠. 굴착 3형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상인회장은 이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꽝수가 이 앞을 가렸다⁠.

“⁠새로 들인 재고예요⁠, 회장님⁠. 공사장 거⁠. 무릎은 내가 갈았고⁠.⁠”

“⁠이걸 누가 사⁠?⁠”

“⁠키 큰 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이때 굴착 3형의 무릎 위 두 손이 저절로 삽자루를 쥐는 모양으로 오므라들었다⁠. 관절에서 유압이 쉭 빠졌다⁠. 상인회장이 한 걸음 물러났다⁠.

“⁠재고가 왜 움직여⁠?⁠”

“⁠유압이 새서 그래요⁠. 그러니까 내가 고치는 중이지⁠.⁠” 꽝수가 굴착 3형의 어깨를 철썩 때렸다⁠. 쇠 어깨가 울렸다⁠. “⁠봐⁠, 소리 나잖아⁠. 고장이야⁠, 고장⁠.⁠”

상인회장은 기탁을 한 번 더 보고 나갔다⁠. 나가면서 문 앞에서 돌아서지 않고 말했다⁠. 경매가 일주일 넘게 끊기면 상인회가 따로 모인다고⁠. 문이 닫히고 슬리퍼 소리가 멀어지자 노을이 숨을 내쉬었다⁠. 이 몸에도 숨 쉬는 시늉을 하는 팬이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꽝수의 정수리를 쓸었다⁠.

“⁠엄마 신장이 다 망가졌었어요⁠.⁠” 노을이 말했다⁠.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서울 말투로⁠. “⁠의식을 의체로 옮겨야 산다고 했어요⁠. 의체 값이 팔천⁠. 나는 창신동에서 미싱 돌렸고⁠, 동생은 군대 갓 나왔고⁠. 매입소가 일억 이천 준대서 갔어요⁠. 판 사람한테는 부산 지사에서 HM-7 새 걸로 하나 준다고 했고⁠. 그래서 판 거예요⁠. 몸 팔고 새 몸 받는 거⁠, 다들 하잖아요⁠.⁠”

“⁠다들 하지⁠.⁠”

“⁠우리 엄마 살았어요⁠?⁠”

“⁠그건 찾아봐야 알고⁠.⁠”

“⁠돈은요⁠? 들어갔어요⁠?⁠”

“⁠그것도⁠.⁠”

노을은 큰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이번에는 머리를 숙였는데 너무 늦게 숙여서 문틀 위쪽에 이마가 닿았다⁠. 쇠 이마가 쇠 문틀을 쳤다⁠. 아프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아팠다⁠. 통증 없는 의체는 2051년부터 금지였다⁠. 사람들이 아프지 않은 몸을 함부로 쓰다가 너무 많이 죽었다⁠.

“⁠내 몸 찾아 줘요⁠.⁠” 노을이 말했다⁠. “⁠내 원래 몸이요⁠. 돈 돌려주고 도로 살 거예요⁠.⁠”

“⁠생몸은 되팔면 열 배야⁠. 스물아홉 여자 생몸이면 지금 십오억은 불러⁠.⁠”

기탁이 계산기를 끌어당겼다⁠. 습관이었다⁠. 엄지 없는 왼손으로 숫자를 두드렸다⁠. 일억 이천과 십오억 사이를 네 손가락이 오갔다⁠.

노을은 이 손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으로 맑게 보이는 눈으로⁠, 계산기 위의 손을⁠, 첫 마디부터 없는 엄지를⁠.

“⁠그날 구로 가는 차에 날 태운 아저씨가 있었어요⁠.⁠” 공사장 반장 같은 목소리가 아주 천천히 말했다⁠. “⁠창신동 골목에서⁠, 몸 팔 사람 줄 세우던 아저씨⁠. 왼손 엄지가 반만 있었어요⁠.⁠”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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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갈피곰2026.10.26· 2화

    몸을 갈아입으면 원래 몸의 버릇은 남나요, 사라지나요?

    • 양현오작가2026.10.27

      조금씩 남아요. 손버릇이나 걸음 같은 건 몸에 붙어 있어서 판매상이 제일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