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611자)
밤에 말하는 몸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양현오
용산 옛 전자상가 사층 복도에는 몸들이 서 있었다. 가게 백이십 곳의 진열창마다 옷을 걸치지 않은 의체가 두세 구씩 눈을 감고 팔을 내린 채 형광등 빛을 받았고, 이 발치로 냉각수가 마르는 단내와 납땜 연기와 누가 점심에 데운 순대 냄새가 낮게 고였다. 2058년 십일월 십이일 화요일 오후 네 시였다.
십칠 호 「연가 중고몸」의 문을 밀고 들어온 손님은 여자형 의체였다. 키는 백육십팔쯤, 의체 기업 허물에서 나온 HM-7로, 이 상가에서 제일 싸게 도는 모델이었다. 손님은 계산대 앞에 서자마자 입을 열었고, 맑고 가는 여자 목소리에 대구 사투리가 실려 나왔다.
“사장님, 이거 무르러 왔심더.”
연기탁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마흔 살 기탁의 왼손이 계산기 위에 있었는데, 엄지가 첫 마디부터 없어서 나머지 네 손가락이 일을 나눠 했다. 이 손으로 손님의 몸 번호를 조회하고 나서야 얼굴을 들었다.
“삼 주 전에 삼백이십에 가져가셨네. 택배 하신다고.”
“야간조라예. 본몸은 사고로 날리고 돈이 없어 제일 싼 걸 샀지예.”
“무르는 건 일주일 안이요.”
“고장이라니까예.” 손님은 계산대에 두 손을 짚었다. HM-7의 손은 작고 손톱이 둥글었다. “자는 동안 이 몸이 혼자 말을 합니더. 마누라가 옆에서 다 들었어예. 목소리는 이 목소린데 말투가 딴 사람이라. 서울 여자 말투로, 또박또박.”
“뭐라고 하는데요?”
“돈 언제 들어오냐고. 부산 지사 맞느냐고.” 손님의 목소리가 한 단계 올라갔다. “마누라가 나보고 서울에 여자 생겼냐 캅니더. 내 입에서 여자가 나오는데 그게 내가 바람피운 깁니꺼?”
벽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십칠 호와 옆 가게 십팔 호 「땜방」 사이 벽에는 무릎 높이에 네모난 수리 구멍이 뚫려 있었고, 거기로 희끗한 머리 하나가 쑥 들어왔다. 육꽝수, 쉰다섯, 상가 사람들이 ‘땜쟁이’라 부르는 의체 수리공이었다. 꽝수는 순대 한 점을 이쑤시개에 꽂은 채였다.
“그거 목 스피커 접촉 불량이야. 자다가 전류가 튀면 전 주인 녹음이 새어 나와. 오만 원이면 내가 땜질해 줄게.”
“녹음이 대답도 합니꺼? 마누라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당신이야말로 누군데요’ 카더랍니더.”
꽝수가 순대를 씹다 멈췄다. 기탁은 계산기에서 손을 뗐다.
기탁은 이 년 동안 HM-7을 서른 구 넘게 팔았다. 상가에서는 이 모델이 잠꼬대를 한다는 말이 농담처럼 돌았고, 다들 싸구려 심 탓이라고 했다. 손님을 올려다보지 않고 내려다보았다. 몸이 작아서 계산대가 손님 가슴께에 왔다.
“무르는 건 안 되고, 바꿔 드리지. 남자형 HM-4, 경비 회사에서 나온 거. 키 백팔십. 차액 사십.”
“차액을 내가 내라꼬예?”
“키가 십이 센티 크잖소.”
흥정은 이십 분 걸렸다. 손님은 차액을 이십으로 깎았고 기탁은 냉각수 한 통을 끼워 주었다. 그사이 꽝수는 구멍에 턱을 걸친 채 두 사람 말끝마다 끼어들었다. 키가 크면 택배 상자를 높이 쌓을 수 있다는 둥, 대신 엘리베이터에서 머리를 박는다는 둥, 남자형으로 바꾸면 마누라 의심은 확실히 풀린다는 둥.
옮김틀은 창고 안쪽에 있었다. 침대 두 개를 나란히 붙인 것처럼 생긴 낡은 국산 틀이었고, 머리맡의 회색 상자에서 굵은 선 두 가닥이 나와 눕는 몸의 목덜미 단자로 들어갔다. 기탁은 손님을 HM-7째로 왼쪽에 눕히고 빈 HM-4를 오른쪽에 눕혔다. 상자 화면에 「40:00」이 떴다. 의식이 이 몸에서 저 몸으로 건너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그사이에는 아무도 틀에 손대지 않았다. 도중에 끊으면 반쯤 건너간 사람은 어느 쪽 몸에도 서지 못했다.
사십 분 뒤 오른쪽 침대에서 HM-4가 일어나 앉았다. 손님은 제 손등을 보고, 제 무릎을 보고, 첫마디를 냈다. 굵고 낮은 남자 목소리였다.
“아, 인자 좀 사람 같네예.”
말투는 그대로 대구였다. 기억과 말버릇은 의식을 따라 건너가고, 목소리와 키는 몸을 따른다. 손님은 일어서다가 창고 문틀에 이마를 박았다. 백육십팔에 익은 머리가 백팔십을 몰랐다. 손님은 이마를 감싸 쥐고 욕을 했는데, 욕도 대구 욕이었다.
배웅하러 복도로 나갔을 때 경비 제복을 입은 상가 순찰원이 지나갔다. HM-4의 오른손이 저절로 올라가 이마에 붙었다. 경례였다. 손님은 제 손을 올려다보았다.
“이거 와 이랍니꺼.”
“전 주인이 경비였소. 몸이 익힌 건 몸에 남아요. 손버릇, 걸음, 그런 거. 한 달쯤 가요.”
“아픈 것도 한 달 갑니꺼? 이마 말고 없는 데가 쑤시는데.”
“아픈 건 사람마다 다르고.”
손님은 경례하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아 내리고 걸어갔다. 순찰원이 이 뒷모습에 마주 경례를 했다.
복도 끝 대형 화면에서는 허물 광고가 돌았다. 서른다섯쯤 된 남자가 흰 셔츠를 입고 한강을 등진 채 웃었다. 허물 회장 한명후, 예순 살이었다. 지금 입은 몸이 한명후의 여섯 번째 몸이라고 신문들이 썼다. 화면 아래로 글씨가 흘렀다.
「몸은 옷입니다. 낡으면 갈아입으십시오.」
맞은편 가게 주인이 화면에 대고 혀를 찼다. 이 집 진열창에 선 몸 셋도 허물 처분 경매에서 받아 온 것이었다. 이 상가에 서 있는 몸의 절반이 그랬다.
*
기탁은 반품된 몸을 그냥 재고로 돌리지 않았다. 밤에 혼자 말하는 몸이라면 밤에 들어 봐야 했다. 셔터를 반쯤 내리고 창고 침대에 빈 HM-7을 눕힌 뒤, 이 옆 접이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꽝수는 열 시에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어 귀신 나오면 부르라고 하고는 제 가게 간이침대로 들어갔다. 코 고는 소리가 벽을 넘어왔다.
새벽 한 시 오십 분, 창고 냉장기가 한 번 덜컥 섰다가 다시 돌았다. 두 시 사 분에 HM-7의 눈꺼풀이 올라갔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팔도 다리도 누운 그대로였고, 눈알만 천장을 훑다가 형광등에 닿자 가늘어졌다. 열 손가락 끝이 시트를 긁었다. 그리고 입술이 벌어졌다.
“여기가… 부산이에요?”
목소리는 낮에 듣던 그 HM-7의 목소리였다. 말투가 달랐다. 끝이 또렷하고 빨랐다.
기탁은 컵라면을 내려놓았다.
“용산이요.”
“용산이요? 부산 지사로 간다고 했는데.” 눈알이 기탁을 찾아 옆으로 굴렀지만 초점이 맞지 않았다. HM-7은 눈이 흐린 모델이었다. “아저씨 누구세요? 몸이 안 움직여요. 손가락만, 손가락만 돼요.”
“뒷방에 있어서 그래요.”
기탁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의체 심에는 자리가 둘 있었다. 앞방에는 몸을 쓰는 사람이 앉고, 뒷방은 옮기는 사십 분 동안 잠깐 머무는 자리였다. 뒷방에 든 사람은 입과 눈꺼풀과 손가락밖에 빌리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이 년을 지냈다면 이것은 머문 것이 아니었다.
“이름이 뭐요?”
“서노을이요. 스물아홉. 시월 이십일에 구로 매입소에서 몸 팔았어요. 어제요. 일억 이천 받기로 했는데 그게 엄마 의체 값이라 오늘 들어와야 돼요. 아저씨 회사 사람이에요?”
“오늘이 며칠인지 아쇼?”
“이십일일이요.”
“2058년 십일월 십삼일이요.”
입술이 다물어졌다. 손가락 끝이 시트를 쥐었다가 놓았다. 노을은 구로 매입소 침대에 누웠던 일, 목덜미에 차가운 선이 닿던 일, 옆 침대에 비닐도 안 벗긴 새 HM-7이 누워 있던 일을 어제처럼 말했다. 그녀에게는 어제였다. 잠든 사람에게 밤이 없듯 그사이의 이 년이 없었다. 기억은 하나도 빠지지 않았고, 시간만 노을을 건너뛰어 지나갔다.
“거짓말하지 마요.”
기탁은 휴대폰 화면을 노을 눈앞에 들이댔다. 흐린 눈이 날짜를 읽는 데 한참 걸렸다.
기탁은 화면을 거두다가 손을 멈췄다. 낮에 기탁이 이 몸의 앞방을 비웠다. 앞방이 차 있을 때 뒷방이 깨면 이 신호는 앞방 신호에 묻혀 아무 데로도 가지 않는다. 앞방이 빈 채로 뒷방이 깨면 허물 본사로 경보가 간다. 상가 사람들이 HM-7 잠꼬대를 농담으로 넘길 수 있었던 까닭이 이것이었고, 기탁은 이 규칙을 이 년 전에 이미 알았다. 이때 이 몸들이 어디서 오는지 묻지 않았다.
“아저씨, 우리 엄마는요? 돈은요?”
“기다려 봐요.”
“뭘 기다려요?”
“누가 올 거요.”
기탁은 벽 구멍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넣어 꽝수의 간이침대 다리를 걷어찼다. 코 고는 소리가 끊기고, 한참 만에 부스스한 머리가 구멍으로 나왔다.
“귀신 나왔냐?”
“사람 나왔어.”
꽝수는 기탁의 어깨 너머로 침대를 보았다. 누운 HM-7의 눈이 뜨여 있었고, 입술이 움직였다. 아저씨 거기 누구 있어요, 하고. 꽝수의 얼굴에서 잠이 한 번에 빠졌다. 구멍에 걸린 채 성호를 긋다가, 교회도 성당도 안 다닌다는 걸 떠올렸는지 손을 도로 내렸다.
“뒷방이야? 진짜 사람이 들어 있었어? 그럼 내가 지난달에 땜질해 준 HM-7 두 구도…”
“그건 나중에 세고. 너희 가게에 번호 없는 몸 뭐 있어?”
“번호 없는 거?” 꽝수가 눈을 굴렸다. 허물 몸은 심에서 몸 번호를 흘렸고, 회사는 이 번호로 서울 어디서든 제 몸을 건물 단위로 찾았다. 번호가 없는 건 허물이 아닌 옛 국산 몸뿐이었다. “굴착 3형 하나. 공사장에서 나온 거. 키가 이 미터라 아무도 안 사 가. 무릎 관절은 내가 갈았고.”
“틀에 올릴 수 있지?”
“기탁아, 지금 무슨 생각을…”
“생각은 이미 했어. 선 넘겨 놓고 있어.”
*
세 시 십이 분에 셔터가 울렸다.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고르게 세 번.
반쯤 내린 셔터 아래로 구두 세 켤레가 보였다. 기탁은 창고 커튼을 치고 나가 셔터를 올렸다. 회색 작업복 셋이 서 있었다. 가운데 남자는 키가 백구십이 넘었고, 얼굴은 반듯한데 나이가 없었다. 허물이 회수팀에 입히는 회사 몸 HS-1이었다. 이 몸이 고개를 숙였다.
“선배. 오랜만입니다.”
강치훈이었다. 서른여덟, 허물 회수팀장. 이 년 전까지 기탁이 동네를 돌며 몸 팔 사람을 모으면 이 사람들을 태우고 구로까지 매입 차를 몰던 운전수였다. 당시에는 제 몸이었고, 지금은 아니었다.
“밤중에 웬일이야.”
“HM-7 한 구 회수하러 왔습니다. 오늘 오후에 반품받으셨죠.” 치훈은 손바닥만 한 검은 판을 들고 있었다. 회수팀 탐지기였다. “몸값은 선배가 손님한테 쳐 준 값에 오십 얹어 드리겠습니다. 삼백칠십.”
“그 몸이 그렇게 귀한가.”
“회사 물건입니다.”
“내가 돈 주고 산 거야. 중고는 산 사람 거고.”
“그래서 사러 왔습니다.”
기탁은 계산대에 기대섰다. 삼백칠십이면 남는 장사였다. 엄지 없는 손으로 계산대를 두 번 두드렸다.
“사백.”
“삼백칠십입니다.”
“사백이면 지금 내주지.”
치훈은 웃지 않았다. 뒤에 선 팀원 둘도 HS형이었고, 셋의 얼굴은 형제처럼 닮았다.
“선배, 값 부르시는 건 좋은데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몸 안에 든 사람은 오늘 밤 비웁니다. 회장님 지시입니다.”
창고 냉장기가 다시 덜컥 섰다.
“비우면 그 사람 죽는 거잖아.”
“그 사람은 이 년 전에 몸을 팔았습니다. 회사가 산 몸 안에 회사가 맡아 둔 사람이 든 겁니다.” 치훈의 목소리는 고르고 낮았다. “맡은 걸 회사가 정리하는 겁니다.”
“맡았다는 사람이 뒷방에 처박혀 있었어. 이 년을.”
“선배도 그 몸 파셨지요. 서른 구 넘게.”
기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셔터 안쪽으로 반걸음 물러서서 치훈의 눈길을 몸으로 가렸다.
“그 몸 저녁에 벌써 나갔어. 인천 손님. 늦었다.”
치훈은 기탁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탐지기를 들어 올렸다. 검은 판이 창고 쪽을 향하자 낮고 짧은 소리가 울렸다. 한 번, 다시 한 번. 소리가 점점 촘촘해졌다.
커튼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또박또박한 서울 말투였다.
“아저씨. 누구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