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94자)
반품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양현오
상인회장은 단체방에 다시 썼다. 「네 시 아니고 지금. 세 시. 정문.」 오타는 이번에도 고치지 않았다. 다음 상인회장은 휴대폰을 귀에 대고 복도를 걸으며 전화를 돌렸다. 상가 백이십 곳의 주인 가운데 육십여 명이 이 시각에 깨어 있었다. 경매가 끊긴 열흘 동안 잠을 못 잔 사람들이었다.
치훈의 차는 두 시 오십 분에 상가를 떠났다. 운전석에 치훈, 조수석에 기탁, 뒷좌석에 해송과 갈매. 꽝수는 한 팔로 땜차 운전대를 잡고 상인들을 실었다. 짐칸에 진열 0형과 택시 1형이 서 있었다. 얼굴 없는 머리가 바람을 갈랐다.
차 안은 조용했다. 한남대교를 건널 때 치훈이 한 번 입을 열었다.
“세 시에 시작하면 세 시 사십 분에 회장님이 서노을 몸에서 눈을 뜹니다. 그다음 틀이 서노을 씨를 회장님 지금 몸으로 옮기고요. 그게 네 시 이십 분입니다.”
“그럼 세 시 사십 분 전에 서노을 씨를 빼면.” 갈매가 말했다.
“빼도 회장님은 서노을 몸에 들어갑니다.” 치훈이 말했다. “그건 이미 돌고 있을 테니까요.”
기탁은 창밖을 보았다. 엄지 없는 손이 무릎 위에서 무언가를 셈하는 모양으로 움직였다. 셈이 나오지 않았다.
*
새벽 세 시 오 분, 허물 본사 일 층 로비. 높은 천장 아래 흰 대리석 바닥이 넓었고, 정문 안쪽에 경비 열둘이 서 있었다. 이 앞으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른이었다. 세 시 십 분에는 여든이 되었다.
다들 허물 중고 몸을 입고 있었다. 용산 상가에서 사 간 몸들이었다. 여자형 HM-7을 입은 남자들, 남자형 HM-4를 입은 여자들, 키가 안 맞아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 이 사이에 상가 주인들이 생몸으로 섞여 있었다. 맨 앞에 털조끼 차림의 상인회장이 섰다.
“반품하러 왔습니다.” 상인회장이 말했다. “회사 물건, 회사가 도로 가져가시라고.”
경비 반장이 무전기를 들었다. 상인회장이 무전기에 대고 말하기 전에 뒤쪽에서 누가 소리쳤다.
“잠꼬대 하는 거 두 배라 캤지예?”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았다. 사람들 사이로 HM-4 하나가 걸어 나왔다. 택배 기사였다. 기사는 경비 제복을 보자마자 오른손을 이마에 붙였다. 경례였다. 경비 셋이 얼떨결에 마주 경례했다. 택배 기사는 경례한 채로 제 손을 노려보았다.
“아, 이거 진짜.”
웃음이 로비에 퍼졌다. 경비들이 이 웃음에 정신이 팔린 사이 정문이 다시 열렸다. 땜차가 정문 계단 바로 앞에 섰고, 짐칸에서 진열 0형이 내렸다. 얼굴 없는 달걀 머리가 로비 조명을 받아 반들거렸다. 경비 하나가 이 머리를 보고 뒷걸음질 쳤다.
“이건 또 뭐야?”
“반품.” 진열 0형이 말했다. 송도에서 깨어난 사람의 목소리였다. 표정은 없었다. 표정이 없어서 더 무서웠다. “나도 이 회사가 팔았어. 나를.”
대리기사는 배달 1형의 짧은 다리로 경비들 다리 사이를 빠져나가며 환불 창구가 어디냐고 소리쳤다. 키가 작아서 경비들은 어디서 소리치는지 한참 찾았다. 세 시 십오 분, 로비의 사람은 이백을 넘었다. 경비 열둘이 정문 쪽으로 몰렸다. 무전이 엇갈렸다. 아무도 로비 안쪽의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를 보지 않았다.
치훈이 이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 문 옆 얇은 화면이 치훈의 얼굴을 읽었다. HS-1의 반듯한 얼굴, 회수팀장의 얼굴. 문이 열렸다. 기탁과 해송과 갈매가 치훈을 따라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로비 저쪽에서 상인회장이 이쪽을 보았다. 털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
세 시 이십 분, 오십삼 층.
옮김실의 유리벽 너머로 강남이 아직 어두웠다. 침대 셋 가운데 둘에 선이 이어져 있었다. 오른쪽 침대에 서른다섯 살 한명후가 눈을 감고 누워 있었고, 가운데 침대에 노을의 본몸이 누워 있었다. 두 목덜미를 이은 선이 얇은 상자 하나에 물려 있었다. 화면의 「19:40」이 일 초씩 깎여 나갔다.
왼쪽 침대에 할머니가 묶여 있었다. 손목과 발목에 띠가 감겨 있었다. 두 번째 틀이 이 머리맡에서 꺼진 채 기다렸다. 고개만 들 수 있었다.
침대 사이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쉰쯤의 생몸, 회색 정장, 손에 태블릿을 든 사람이었다. 비서실장이었다. 뒤에 HS형 경호원 둘이 서 있었다.
“강 팀장.” 비서실장이 말했다. “문만 열라고 했는데 손님을 데려왔네요.”
“손님 아닙니다.” 치훈이 말했다. “반품입니다.”
기탁은 가운데 침대로 걸었다. 경호원 하나가 막아섰다. 치훈이 이 경호원의 팔을 잡았다. 같은 공장에서 나온 두 몸이 서로를 붙들었다. 어느 쪽도 밀리지 않았다.
기탁은 상자 앞에 섰다. 화면이 「18:51」이었다. 선 두 가닥이 기탁의 손 닿는 데 있었다. 노을의 본몸은 숨을 쉬었다. 이 옆의 한명후도 숨을 쉬었다. 둘 사이에서 무언가가 건너가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
“끊어요.”
왼쪽 침대의 할머니 몸에서 목소리가 났다. 노을이 묶인 채 고개를 들고 있었다.
“끊어요. 지금.”
“끊으면 반쯤 건너간 게 네 몸 신경에 엉겨.” 갈매가 말했다. 안내 방송 목소리가 떨렸다. “회장도 못 서고, 네 몸도 못 써. 네 몸이 빈집도 아니게 돼.”
“알아요.” 노을이 말했다. “그 사람이 내 몸 입고 웃는 거 보느니 그게 나아요. 끊어요, 아저씨. 그 삼백, 이걸로 갚아요.”
기탁의 손이 선 위에 갔다. 엄지 없는 왼손이었다. 이 손이 선을 쥐었다. 엄지 대신 손가락 넷이 선을 감았다. 화면이 「17:30」이 되었다.
비서실장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연기탁 씨, 그거 당기면 살인입니다. 두 사람이에요. 회장님하고, 그 여자 몸하고.”
“알아.”
기탁은 선을 쥔 채 노을의 본몸을 내려다보았다. 왼손 검지 끝의 굳은살, 왼쪽 눈썹 끝이 짧은 얼굴, 누군가 반듯하게 다듬어 놓은 머리끝. 이 몸은 아무것도 몰랐다. 천 결을 쓸던 손만 이불 위에 놓여 있었다.
기탁은 손을 폈다. 선이 이 손에서 빠져나가 상자 옆에 늘어졌다.
“네 몸이야.” 기탁이 왼쪽 침대를 보지 않고 말했다. “네 몸 죽이는 값은 내가 못 치러.”
“아저씨!”
기탁은 왼쪽 침대로 가서 노을의 손목 띠를 풀었다. 띠가 질겨서 손톱이 들렸다. 해송이 달려와 발목 띠를 풀었다. 그사이 비서실장이 문 쪽으로 소리쳤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여럿 올라왔다. 경호원 넷이 더 들이닥쳤다.
치훈이 문 앞으로 갔다. 붙들고 있던 경호원을 놓고, 문틀에 오른발을 걸었다. 송도에서 기탁이 입었던 몸도 하던 이 발이었다. 오늘은 이 발이 문이 열리지 않게 막았다. HS-1의 등이 문짝 전체를 가렸다.
“비상계단!” 치훈이 말했다. “선배, 가요!”
갈매는 벌써 비상구 쪽으로 손바닥을 펴 들고 있었다. 기탁은 할머니 몸을 안아 들었다. 가벼웠다. 사십 킬로도 안 되는 몸이었다. 이 몸이 기탁의 품에서 몸부림쳤다.
“내 몸! 내 몸 저기 있잖아요!”
“알아.”
“아저씨가 안 끊으면 저 사람이 내 몸 입어요!”
“알아.”
기탁은 비상계단 문을 어깨로 밀었다. 허리에서 무언가가 다시 뜨겁게 끊어졌다. 멈추지 않았다. 문이 닫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치훈이 문 앞에서 경호원 셋에게 붙들려 무릎을 꿇고 있었다. 뒤로 상자 화면이 보였다. 「09:12」
*
비상계단은 좁고 하얬다. 한 층 내려갈 때마다 벽에 붉은 숫자가 바뀌었다. 오십이에서 해송이 앞질러 계단참의 철문을 열었다. 회수팀 출입증이 문 옆 화면에 닿자 초록불이 켜졌다. 이 너머에 화물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이거 회수팀이 몸 실어 나르는 거예요.” 해송이 말했다. “오십삼 층에서 지하 주차장까지 안 서고 가요.”
엘리베이터 안에는 들것 셋이 벽에 기대 세워져 있었다. 바닥에 긁힌 자국이 많았다. 갈매가 이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빈집 싣는 데야. 나도 여기 몇 번 탔어. 실려 내려가는 쪽으로.”
문이 닫혔다. 숫자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탁의 품에서 할머니 몸이 계속 버둥거렸다. 작은 주먹이 기탁의 가슴을 쳤다. 아프지 않은 주먹이었는데, 이 주먹이 칠 때마다 허리가 울렸다.
“내려 줘요.”
“안 돼.”
“다시 올라갈 거예요.”
“올라가면 넌 서른다섯 남자 몸에 들어가서 송도에 눕혀져. 약 먹고. 다음 주인 기다리면서.”
“그래도 내 몸 옆이잖아요!”
기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숫자가 사십을 지나 삼십으로 내려갔다. 할머니 주먹이 점점 느려지다 멈췄다. 노을은 기탁의 어깨에 이마를 댔다. 요양원 할머니가 평생 무엇을 기댔는지 몰라도, 이 몸은 기대는 법을 알았다.
“아저씨 허리.” 할머니가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다.
“알아.”
“나 내려 주면 걸을 수 있어요.”
“너 걸음이면 아침이야.”
해송이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 웃음 같은 소리를 냈다가 그쳤다. 숫자가 지하 이 층에서 멈추고 문이 열렸다. 주차장 기둥 사이에 땜차가 서 있었다. 꽝수가 한 팔로 운전석 창을 내리고 소리쳤다.
“팀장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꽝수는 더 묻지 않고 짐칸 문을 열었다.
*
아침 일곱 시, 땜방. 아무도 잠을 자지 않았다.
로비의 반품 손님들은 네 시에 경비들에게 밀려 나왔다. 몇몇이 넘어져 무릎을 다쳤고 택배 기사는 경비들과 열한 번 경례를 주고받았다. 환불은 아무도 받지 못했다. 상인회장은 털조끼에 발자국이 찍힌 채 돌아와 땜방 바닥에 앉았다. 처남이 입은 택시 1형의 손을 다시 잡았다.
치훈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해송이 열두 번 걸었다.
노을은 낮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이 무릎 위에서 손수건을 개지 않았다. 손수건이 없었다. 기탁을 보지 않았다. 기탁도 노을을 보지 않았다. 허리를 짚고 계산대 없는 무릎에 계산기를 올려놓은 채 숫자를 누르지 않았다.
복도 끝 대형 화면이 일곱 시 정각에 바뀌었다. 허물 광고가 아니라 공지였다.
「허물 한명후 회장, 오늘 밤 여덟 시 본사 허물관에서 일곱 번째 몸을 공개합니다.」
꽝수가 순대 접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순대를 집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해송의 휴대폰이 울렸다. 치훈이 아니었다. 영상 편지였다. 엄마에게 오던 것이 아니라 해송에게 직접 온 것이었다. 해송은 이것을 열었다.
화면 속 누나 뒤에는 부산 바다가 없었다. 흰 방이었다. 유리벽 너머로 아침 강남이 보였다. 누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가슴께까지 내려온 머리, 한쪽만 짧은 눈썹. 이번에는 손이 화면 안에 있었다. 왼손이 무릎 위에 놓여 있었고, 검지 끝이 엄지로 천천히 쓸렸다. 엄마가 열여섯 살 딸에게 가르친 손짓이었다.
누나 목소리가 말했다. 이 년 만에 듣는, 영상에서 만든 것이 아닌 진짜 누나 목소리였다. 그런데 말이 느렸다. 한 마디 한 마디를 재어 보고 내놓는 것처럼.
“송아. 오늘 밤 와. 누나가 기다릴게.”
영상이 끝났다. 해송은 화면을 보며 숨을 쉬지 않았다.
“누나가… 나를 송아라고 불러.”
땜방 안의 눈이 다 낮은 의자로 갔다. 할머니 몸이 일어났다. 백사십짜리 몸이 허리를 굽히고 해송의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화면에 멈춘 제 얼굴이 있었다.
“그거.”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말했다. “내가 그 사람한테 가르쳐 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