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451자)

일곱 번째 몸

몸을 갈아입는 시대, 나는 중고 몸 판매상이다 · 양현오

아침 아홉 시⁠, 상가 단체방에 허물의 글이 올라왔다⁠. 상인회장이 이것을 소리 내어 읽었다⁠. 땜방 바닥에 앉은 사람들이 다 들었다⁠.

「⁠용산 처분 경매를 내일 오전 열 시에 다시 엽니다⁠. 그동안 협조해 주신 상인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첫 물건은 특별 물건으로⁠, 회사 회수팀장이 입던 HS-1입니다⁠.⁠」

땜방이 조용해졌다⁠. 갈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회수팀 몸은 회사가 안 팔아⁠. 다친 팀원한테 갈아입히고⁠, 못 쓰게 되면 녹여⁠. 시장에 내놓은 적이 없어⁠.⁠” 안내 5형의 손바닥이 땜방 문 쪽으로 펴졌다⁠. 갈매는 이번에는 이 손을 그대로 두었다⁠. “⁠판다는 건⁠, 안에 사람이 들었다는 얘기야⁠.⁠”

“⁠치훈이⁠?⁠” 꽝수가 말했다⁠.

“⁠앞방에 들어 있으면 경매에 못 내놓지⁠. 걸어 나가니까⁠.⁠”

해송이 휴대폰을 쥔 채 일어섰다⁠. 열세 번째로 건 전화도 꺼져 있었다⁠.

“⁠뒷방에⁠.⁠” 해송이 말했다⁠. “⁠팀장님을 자기 몸 뒷방에 넣은 거예요⁠.⁠”

상인회장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일 경매가 열리면 상가 사람들이 이 몸을 놓고 값을 부를 것이었다⁠. 회사는 이걸 알고 내놓았다⁠. 용산 상가가 회수팀장을 사 가서 진열창에 세우든⁠, 그냥 지나치든⁠, 둘 다 회사가 보고 싶은 그림이었다⁠.

“⁠찾아 보라는 거네⁠.⁠” 상인회장이 말했다⁠. “⁠우리가 사람 든 몸을 사 갈지 안 사 갈지⁠.⁠”

“⁠살 거요⁠.⁠” 기탁이 말했다⁠.

“⁠돈은⁠?⁠”

“⁠그건 내일 셈하고⁠.⁠” 기탁은 무릎 위의 계산기를 덮었다⁠. “⁠오늘 밤에 할 게 있어⁠.⁠”

꽝수가 전기 테이프를 이로 끊었다⁠. 벽 밑에 혼자 누워 있던 분홍 매니큐어의 의체 팔을 주워 와서 뜯긴 어깨에 대고 테이프를 감고 있었다⁠. 전선은 이어지지 않았다⁠. 팔은 매달리기만 했다⁠.

“⁠형⁠, 나 오늘 양팔이야⁠.⁠” 꽝수가 말했다⁠. “⁠하나는 장식이지만⁠.⁠”

할머니 몸이 일어나서 이 테이프 끝을 반듯하게 눌러 붙여 주었다⁠. 손이 저절로 한 일이었다⁠. 노을은 이 손을 보고 처음으로 짜증 내지 않았다⁠.

*

오후 네 시⁠, 해송의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쉰 살 HM-6의 매끄러운 목소리가 땜방 안까지 새어 나왔다⁠.

“⁠송아⁠, 노을이가 오늘 서울 온대⁠! 영상 왔어⁠. 오늘 밤 회사 큰 행사에 나온대⁠. 엄마도 오래⁠. 회사에서 차 보내 준대⁠.⁠”

해송은 휴대폰을 귀에서 떼었다가 다시 댔다⁠.

“⁠엄마⁠, 가지 마요⁠.⁠”

“⁠왜⁠? 이 년 만에 얼굴 보는데⁠.⁠”

“⁠그거 누나 아니에요⁠.⁠”

“⁠얘가 무슨 소리야⁠? 영상에서 너를 송아라고 불렀잖아⁠. 이번엔 손도 나왔어⁠. 그 손 엄마가 알아⁠. 엄마가 가르친 손이야⁠.⁠” 엄마가 웃었다⁠. “⁠차 왔다⁠. 끊는다⁠. 너도 와⁠.⁠”

전화가 끊겼다⁠. 해송은 다시 걸었다⁠. 엄마는 받지 않았다⁠. 휴대폰을 쥔 손을 내려다보다가 낮은 의자의 할머니를 보았다⁠.

노을은 이 통화를 다 들었다⁠. 노을의 손이 무릎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 몸의 손이 쉬는 것을 땜방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엄마가 내 손을 알아본대⁠.⁠” 할머니가 말했다⁠. “⁠그 사람이 내 손으로 엄마한테 손 흔들겠네⁠.⁠”

*

허물관은 본사 일 층 뒤쪽의 강당이었다⁠. 사백 석⁠, 붉은 의자⁠, 앞쪽에 높은 무대⁠. 저녁 일곱 시 반부터 사람들이 들어왔다⁠. 앞자리는 초대받은 손님들이었다⁠. 다들 젊은 생몸을 입었고⁠, 다들 몸값을 아는 얼굴이었다⁠. 뒤로 기자들이 카메라를 세웠다⁠.

뒷자리 입구에서는 몸 번호를 읽었다⁠. 허물 고객이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고 공지에 적혀 있었다⁠. 회사의 새 몸을 보여 주는 자리였고⁠, 손님은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서 문은 HM-7과 HM-4와 HM-5를 다 들여보냈다⁠. 오늘 새벽 로비에서 반품을 외치던 몸들이었다⁠. 택배 기사는 입구 경비에게 경례를 하고 들어갔다⁠.

해송은 입구에서 이름을 말했다⁠. 경비가 화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초대 명단이 아니라 회장 비서실이 직접 넣은 이름이었다⁠. 할머니 한 분과 보호자 한 사람이 같이 간다고 했고⁠, 경비는 할머니를 보더니 그냥 들여보냈다⁠. 보호자의 얼굴을 보고는 화면을 한 번 더 내렸다가⁠, 거기서 무언가를 찾아내고 비켜섰다⁠. 이 얼굴도 비서실이 넣어 둔 것이었다⁠. 보호자는 엄지 없는 손으로 허리를 짚고 걸었다⁠.

셋은 뒷자리 통로 끝에 섰다⁠. 앉지 않았다⁠.

*

여덟 시 정각에 불이 꺼졌다⁠.

무대 뒤 큰 화면에 얼굴 여섯이 차례로 떴다⁠. 마흔의 남자⁠, 서른둘의 남자⁠, 손목에 흉터가 있는 서른다섯⁠, 스물여덟의 남자⁠, 서른의 남자⁠. 한명후가 입었던 몸들이었다⁠. 첫 번째가 태어나 입은 몸이었다⁠. 화면 아래로 연도가 흘렀다⁠. 그리고 여섯 번째⁠, 광고 화면에서 웃던 서른다섯 살의 얼굴⁠.

무대 왼쪽에서 들것 하나가 밀려 나왔다⁠. 이 위에 이 서른다섯 살이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숨을 쉬고⁠. 빈집이었다⁠. 객석에서 탄성이 났다⁠.

들것 뒤로 운반대 하나가 더 밀려 나와 무대 가장자리에 섰다⁠. 운반대에 회색 몸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백구십이 넘는 키⁠, 반듯하고 나이 없는 얼굴⁠. 눈을 감고 팔을 내린 HS-1이었다⁠. 이 옆에 「⁠내일 용산 특별 물건⁠」이라는 작은 화면이 붙어 있었다⁠.

해송이 통로 끝에서 한 걸음 나섰다⁠. 기탁이 해송의 팔을 잡았다⁠. HS-1의 오른발이 운반대 바닥에서 조금 앞으로 나와 있었다⁠. 문틀을 막을 때의 이 발이었다⁠. 앞방이 빈 몸에서도 이 발은 이 자리에 있었다⁠.

무대 오른쪽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스물아홉 살 여자였다⁠. 흰 블라우스⁠, 끝을 반듯하게 다듬은 긴 머리⁠, 한쪽 눈썹이 조금 짧은 얼굴⁠. 걸음이 조금 서툴렀다⁠. 무대 바닥을 딛는 발이 키를 재듯 조심스러웠다⁠. 어긋남이 막 시작된 몸이었다⁠. 그런데 얼굴은 아프지 않았다⁠. 이마가 펴져 있었다⁠.

뒷자리 통로 끝에서 할머니 몸이 기탁의 소매를 쥐었다⁠.

여자는 연단 앞에 섰다⁠. 마이크를 조금 내렸다⁠. 그리고 말했다⁠.

“⁠몸은 옷입니다⁠.⁠”

목소리는 노을의 목소리였다⁠. 이 년 전 창신동 미싱 공장에서 웃고 떠들던 목소리⁠. 그런데 말이 느렸다⁠. 정중했다⁠. 끝을 내리지 않았다⁠.

“⁠저는 여섯 벌을 입었습니다⁠. 어제까지 입던 옷은 저기 누워 있지요⁠. 내일 용산 경매에 내놓습니다⁠. 좋은 옷입니다⁠. 누군가 오래 입으실 겁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났다⁠. “⁠그리고 오늘 일곱 번째 옷을 입었습니다⁠. 맞춤도 구십팔⁠. 저는 어젯밤 석 달 만에 잤습니다⁠.⁠”

박수가 나왔다⁠. 앞자리부터 뒤로 번졌다⁠. 뒷자리의 HM-7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맨 앞줄 끝에서 누가 일어섰다⁠. 해송의 엄마가 입은 HM-6이었다⁠. 손수건을 쥐고 있었다⁠. 젊은 생몸들 사이에서 이 몸만 중고였다⁠.

“⁠노을아⁠!⁠”

강당이 웃음 반 술렁임 반으로 흔들렸다⁠. 연단의 여자가 그쪽을 보았다⁠. 잠깐⁠, 아주 잠깐 무엇을 셈하는 얼굴이 되었다가⁠, 웃었다⁠. 노을의 얼굴로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왼손을 들어 흔들었다⁠.

“⁠엄마⁠.⁠”

노을의 목소리⁠, 노을이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말씨였다⁠. HM-6이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옆자리의 손님이 이 등을 두드려 주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이 장면을 찍었다⁠. 내일 아침 화면마다 걸릴 그림이었다⁠. 판 딸과 산 회장이 하나가 되어 어머니에게 손을 흔드는 그림⁠.

뒷자리 통로 끝에서 할머니 몸이 무릎을 꺾었다⁠. 기탁이 이 팔을 붙잡았다⁠. 노을은 주저앉지 않으려고 기탁의 소매를 쥐었다⁠. 손톱이 들릴 만큼 쥐었다⁠.

“⁠오늘은 옷 이야기만 하려는 게 아닙니다⁠. 옷을 판 분들 이야기입니다⁠.⁠” 한명후는 연단 양옆을 손으로 짚었다⁠. “⁠몸을 판 분들의 의식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법은 그걸 정해 두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새 몸을 드려야 한다고만 적었지요⁠. 새 몸은 비쌉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주 국회에 개정안을 냅니다⁠. 몸을 판 분들의 의식은 회사가 안전하게 맡아 보관한다⁠. 깨우지 않고⁠, 아프지 않게⁠. 그분들 가족께는 달마다 소식을 보내 드리고⁠.⁠”

객석 뒤쪽이 웅성거렸다⁠. 상인회장이 일어서려다 사무장에게 붙잡혔다⁠.

연단 위에서 여자의 왼손이 움직였다⁠. 한명후는 이 손을 보지 않았다⁠. 말을 하고 있었다⁠. 손은 혼자 움직였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이 활짝 벌어져 연단 모서리에 닿았다⁠. 한 뼘⁠, 두 뼘⁠. 손이 연단 가장자리를 한 뼘씩 건너갔다⁠. 맨 앞줄에서 엄마가 이 손을 보며 손수건을 입에 댔다⁠. 이 뼘을 딸에게 가르친 사람이 엄마였다⁠.

통로 끝에서 해송이 숨을 들이쉬었다⁠.

“⁠누나 손이야⁠.⁠”

“⁠알아⁠.⁠” 노을이 말했다⁠. 할머니 목소리가 떨렸다⁠. “⁠내 손이 저 사람 말을 들어⁠. 저 사람은 내 손이 뭘 하는지도 몰라⁠.⁠”

연단 위의 손이 뼘질을 멈추고 입으로 올라갔다⁠. 앞니가 실도 없는 허공을 한 번 끊었다⁠. 한명후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앞자리 손님들은 이것을 새 몸의 귀여운 버릇으로 보고 웃었다⁠.

*

기탁이 통로로 걸어 나갔다⁠.

허리를 다 펴지 못한 걸음이었다⁠. 엄지 없는 왼손이 허리를 짚었다⁠. 붉은 의자들 사이로 기탁이 지나가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무대 아래에서 경호원 넷이 움직였다⁠. HS형이었다⁠.

경호원들이 통로로 들어서려는 순간 뒷자리에서 사람들이 일어났다⁠. HM-7⁠, HM-4⁠, HM-5⁠, 용산 상가에서 사 간 중고 몸들이 통로에 나와 섰다⁠. 택배 기사가 맨 앞에 섰다⁠. 경비 제복이 아니라 경호원 정장이라 기사의 오른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기사는 이것이 마음에 드는 얼굴이었다⁠.

“⁠반품⁠.⁠” 택배 기사가 말했다⁠.

“⁠반품⁠.⁠” 뒤에서 누가 따라 했다⁠. 여자형 HM-7에서 남자 목소리가 났다⁠.

“⁠반품⁠.⁠” 상인회장이 사무장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나 말했다⁠. 털조끼에 새벽에 찍힌 발자국이 아직 있었다⁠.

반품⁠, 반품⁠. 통로가 중고 몸으로 막혔다⁠. 경호원들이 이 사이에서 멈췄다⁠. 몸 번호 달린 회사 고객들을 회사 경호원이 밀칠 수는 없었다⁠. 이 사이로 기탁이 무대 앞까지 걸어갔다⁠.

무대 계단은 다섯 칸이었다⁠. 기탁은 한 칸씩 올랐다⁠. 세 번째 칸에서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기탁은 멈추지 않았다⁠. 객석의 카메라들이 기탁을 따라 돌았다⁠.

연단 앞의 여자가 기탁을 보았다⁠. 노을의 눈으로⁠. 이 눈에는 노을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이 눈 뒤에서 기탁을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겁먹지 않았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기탁은 이 앞에 섰다⁠. 둘 사이에 연단 하나 너비도 남지 않았다⁠. 들것 위의 서른다섯 살이 이 옆에서 숨을 쉬었다⁠.

“⁠연기탁 씨⁠.⁠” 노을의 입이 말했다⁠. 노을의 목소리⁠, 한명후의 말⁠. 마이크가 이 소리를 강당 끝까지 실어 날랐다⁠. “⁠잘 오셨습니다⁠. 거간 일⁠, 다시 하시겠습니까⁠? 법이 바뀌면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번엔 한 사람에 삼천 드리지요⁠.⁠”

객석이 조용해졌다⁠.

기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얼굴을 보았다⁠. 이 년 전 비 오는 창신동 골목에서 우산 없다고 차에 먼저 태운 얼굴을⁠, 당시에는 보지 않았던 이 얼굴을⁠, 처음으로 똑바로 보았다⁠.

그사이 여자의 왼손이 또 혼자 움직였다⁠. 손이 올라와 기탁의 재킷 소매에 닿았다⁠. 검지가 소매의 결을 거꾸로 한 번 쓸고⁠, 바로 한 번 쓸었다⁠. 한명후는 이것을 몰랐다⁠. 웃으며 기탁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탁은 이 손을 내려다보았다⁠. 엄지 없는 왼손을 들어⁠, 소매 위의 이 손 위에 얹었다⁠.

“⁠반품받으러 왔소⁠.⁠” 기탁이 말했다⁠. “⁠그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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