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05자) · 보임으로 앉을 때 이름을 지운다

나는 이름을 잃었다

아직 하지 않은 말 · 한도윤

이월 열이틀에 저는 당신을 찾아갔습니다.

당신은 나루 위쪽 집에 사십니다. 방이 하나고 궤짝이 둘입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안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사람 소리가 아니라 나무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들어오라는 뜻입니다.

들어갔습니다.

당신은 앉아서 뭘 적고 계셨습니다.

“…유원입니다.”

당신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저는 앉았습니다. 앉아서 뭘 물어야 할지 몰라서 한참 있었습니다.

당신이 종이를 한 장 밀어 주셨습니다.

거기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왜 왔소

저는 그 글씨를 봤습니다. 획이 짧고 세로가 깁니다.

“…하란 님을 만났습니다.”

당신이 붓을 드셨습니다.

아랫여울 장부지기

“예.”

백서른둘 봤소

“봤습니다.”

당신이 붓을 놓으셨습니다.

저는 그다음 말을 준비했는데, 준비한 대로 안 나왔습니다.

“…열한 해 전에 한 줄 적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보셨습니다.

오래 보셨습니다.

그리고 궤짝을 여셨습니다.

둘 중 작은 궤짝입니다.

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셨습니다. 오래된 종이고 접힌 자리가 하얗게 일어나 있습니다.

저한테 주셨습니다.

폈습니다.

한 줄이었습니다.

나는 아홉째를 맞고 나서 이름을 잃었다.

저는 그 줄을 세 번 읽었습니다.

이름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말이 아니라 이름입니다.

“…이름이요?”

당신이 붓을 드셨습니다.

말은 잃은 게 아니오

못 하게 된 거요

잃은 건 이름이오

저는 그 세 줄을 읽고 손이 떨렸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당신이 한참 적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적으셨습니다.

보임으로 앉을 때 이름을 지운다

아홉째는 이름이 없다

나를 부르는 말이 아홉째뿐이오

저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열한 해 동안 저는 당신을 아홉째라고 불렀습니다.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물어볼 생각을 한 적도 없습니다.

“…스승님도 아십니까?”

당신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세 도시가 다 압니까?”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저만 몰랐습니까?”

당신이 붓을 드셨습니다.

묻는 사람이 없었소

저는 그 줄을 보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참 있다가 물었습니다.

“…원래 이름이 뭐였습니까?”

당신이 붓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나도 모르오

“…모르십니까?”

열셋에 지웠소

그때는 외우고 있었는데

스무 해 지나니까 없어졌소

저는 그 말을 받아 적으려다가 손을 멈췄습니다.

적으면 그것이 기록이 됩니다.

기록이 되면 남습니다.

그런데 당신 이름은 남는 게 아니라 없어진 것입니다.

없어진 것을 적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적을 칸이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만든 종이 석 장 어디에도 그 칸이 없습니다.

안 돌아온 것을 적는 칸에는 눈, 단맛, 숨을 적었습니다.

이름을 적는 칸은 없습니다.

저는 그날 밤에 넷째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줄을 둘 그었습니다.

누구 · 없어진 것

첫 줄에 적었습니다.

아홉째 · 이름

적고 나서 첫 칸을 봤습니다.

누구라고 적어야 하는데 적을 이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홉째라고 적었습니다.

아홉째라고 적으면 그 칸이 이름 칸이 아니라 급 칸이 됩니다.

저는 그 줄을 지웠습니다.

지우고 다시 적었습니다.

(이름 없음) · 이름

그것도 이상했습니다.

세 번 적었다가 세 번 지웠습니다.

네 번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루 위쪽 집에 사는 사람 · 이름

그 줄은 안 지웠습니다.

나오면서 저는 문턱에서 한 번 돌아봤습니다.

당신이 붓을 들고 계셨습니다.

무엇을 적으시는지는 안 보였습니다.

저는 그 뒤로 열흘 동안 세 번 더 갔습니다.

두 번째는 그냥 앉아 있다가 왔습니다. 아무것도 안 물었습니다.

당신이 종이를 한 장 미셨습니다.

오늘은 안 묻소

“…예.”

그럼 왜 왔소

저는 대답을 골랐습니다.

“…앉아 있으려고 왔습니다.”

당신이 붓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차를 내오셨습니다.

저는 그때 당신이 차를 내오시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세 번째는 물었습니다.

“열한 해 동안 몇 분이나 찾아오셨습니까?”

당신이 손가락을 폈습니다.

셋이었습니다.

“…셋이요?”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누구입니까?”

임 표사

아랫여울 장부지기

당신

저는 그 세 줄을 봤습니다.

스승과 하란과 저입니다.

열한 해 동안 셋입니다.

“…나머지는요?”

인사는 하오

앉지는 않소

저는 그 두 줄을 종이에 옮겨 적었습니다.

옮겨 적고 나서 넷째 종이를 폈습니다.

없어진 것을 적는 종이입니다. 한 줄뿐입니다.

저는 둘째 줄을 적었습니다.

나루 위쪽 집에 사는 사람 · 앉는 사람

적고 나서 그 옆에 수를 적었습니다.

셋

셋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남은 것입니다.

저는 그 칸 이름을 고쳐야 하나 하다가 안 고쳤습니다.

없어진 것을 적다 보면 남은 것도 같이 세어집니다.

네 번째로 갔을 때 당신이 먼저 종이를 미셨습니다.

일곱째 언제 맞소

저는 그 글씨를 보고 웃었습니다.

“…스승님도 그것만 물으십니다.”

다들 그것만 묻소

“예.”

나는 다른 걸 물으려고 했소

“…무엇을요?”

당신이 붓을 드셨습니다.

안 맞으면 뭘 할 거요

저는 그 물음을 처음 받았습니다.

열두 해 동안 아무도 안 물었습니다.

다들 언제 맞을 거냐고만 물었습니다.

저는 대답을 못 했습니다.

당신이 기다리셨습니다.

한 식경쯤 기다리셨습니다.

저는 끝내 대답을 못 하고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그 물음을 종이에 적었습니다.

둘째 종이입니다. 대답 안 한 것을 적는 종이인데, 여태 스승이 대답 안 하신 것만 적었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대답 못 한 것을 적었습니다.

안 맞으면 뭘 할 것인가 — 대답 못 함

이월 그믐에 서인이 여섯째를 맞았습니다.

마당에 스물셋이 다 나왔습니다.

서인이 가운데 앉았습니다. 위만 벗었습니다.

자국이 다섯 있었습니다. 정강이, 옆구리, 손등, 빗장뼈, 명치.

저는 제 몸에 여섯이 있다는 것을 그때 다시 생각했습니다.

스승이 나오셨습니다.

“맞겠느냐?”

“맞겠습니다.”

“무엇을 잃는지 아느냐?”

서인이 저를 봤습니다.

저를 보면서 대답했습니다.

“밤에 등을 두 개 켜게 됩니다.”

마당이 조용해졌습니다.

스승이 손을 멈추셨습니다.

“…누가 그러더냐?”

“아무도 안 그랬습니다.”

서인이 고개를 돌렸습니다.

“제가 봤습니다.”

스승이 한참 아무 말도 안 하셨습니다.

그리고 손을 드셨습니다.

저는 눈을 안 감았습니다.

윗물에서처럼 둔한 소리가 한 번 났습니다.

서인이 앞으로 숙였다가 다시 세웠습니다.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여섯째다.”

스승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아무 소리도 안 냈습니다.

윗물에서와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 손뼉을 쳤습니다.

한 번 쳤습니다.

마당이 저를 봤습니다.

저는 두 번째를 못 쳤습니다.

그날 밤에 서인이 제 방에 왔습니다.

오른쪽 눈을 손으로 가리고 있었습니다.

“…표사님.”

“어.”

“안 보입니다.”

“사흘이면 돌아오네.”

“…돌아옵니까?”

“나는 사흘이었네.”

서인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표사님.”

“어.”

“아까 왜 손뼉 치셨습니까?”

저는 그 물음에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모르겠네.”

“…”

“오른 건데 아무도 안 좋아해서.”

서인이 웃었습니다. 웃다가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아프네.”

“…아프지.”

“표사님.”

“어.”

“저 손뼉 소리 들었습니다.”

저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것만 들렸습니다.”

사흘 뒤에 서인 눈이 돌아왔습니다.

“보입니다.”

“…다행이네.”

“그런데 밤에는 두 겹입니다.”

저는 그 말에 종이를 폈습니다.

첫째 종이입니다. 이제 칸이 셋입니다.

이름 · 몇째 · 달라진 것 · 그래서 무엇을 하게 됐나

서인 줄을 적었습니다.

서인 · 여섯째 · 밤에 두 겹 · (아직)

아직이라고 적었습니다.

무엇을 하게 되는지는 아직 안 정해졌습니다.

“표사님.”

“어.”

“그 종이 저도 한 장 주십시오.”

저는 그 말에 손을 멈췄습니다.

“…무엇을 적으려고?”

“제 것을요.”

“…”

“표사님이 적어 주시는 것 말고 제가 적겠습니다.”

저는 종이를 한 장 줬습니다.

주면서 줄 긋는 법을 알려 줬습니다.

칸이 넷입니다.

서인이 제 줄을 옮겨 적었습니다.

옮겨 적고 나서 물었습니다.

“표사님 것도 적습니까?”

“…내 것?”

“표사님 달라진 것이요.”

저는 제 종이를 폈습니다.

유원 · 여섯째 · 오른쪽 눈 · 등을 두 개 켠다

서인이 그것을 옮겨 적었습니다.

옮겨 적고 나서 저를 봤습니다.

“표사님.”

“어.”

“이거 제가 적으니까 두 장이 됐습니다.”

저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렇네.”

“한 장이 없어져도 한 장이 남습니다.”

저는 그날 밤 그 말을 종이에 적었습니다.

베낀 것이 둘이면 하나가 없어져도 남는다

적고 나서 하란 생각을 했습니다.

하란은 세 해 동안 혼자 적었습니다.

백서른두 줄이 한 장뿐입니다.

저는 이튿날 아침에 배를 탔습니다.

배에서 저는 서인이 준 말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한 장이 없어져도 한 장이 남습니다.

저는 여태 혼자 적었습니다. 혼자 적으면 제가 그만두는 날 다 없어집니다.

하란도 혼자 적었습니다.

당신도 혼자 적으셨습니다. 열한 해 동안 한 줄입니다.

셋이 혼자 적었습니다.

셋이 적은 것을 합치면 백육십 줄이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합친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배에서 적었습니다.

혼자 적는 사람 셋 · 합친 적 없음

저는 그 한 줄 아래에 적었습니다.

합치면 몇인가 — 아직

아직이라고 적으면 나중에 고칠 수 있습니다.

배가 나루에 닿았습니다.

서인이 나와 있었습니다.

“표사님.”

“어.”

“한 장 더 베꼈습니다.”

서인이 종이를 보였습니다.

“…셋이네.”

“셋입니다.”

서인이 셋째 장을 펴 보였습니다.

제 것과 같은 칸이었습니다.

“…한 장 더 베끼면 넷이네.”

“베끼겠습니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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