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20자) · 없으면 옆에 적으면 되오

백서른두 줄

아직 하지 않은 말 · 한도윤

이월 열흘에 아랫여울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표사가 아니었습니다. 장부를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름이 하란이고 스물 몇입니다.

저보다 어린데 장부방을 봅니다.

“건너말 장부방이 여기요?”

“예.”

“임 표사 계시오?”

“스승님은 나가셨습니다.”

하란이 마루에 앉았습니다.

“그럼 기다리겠소.”

저는 물을 내왔습니다.

“여쭤도 됩니까?”

“하시오.”

“아랫여울 여덟째가 갔다고 들었습니다.”

“갔소.”

“이레 누워 계셨다고요.”

하란이 잔을 놓았습니다.

“…그것도 아오?”

“장부에 적혀 있었습니다.”

“회복 안 됨이라고 적혀 있소?”

“예. 숨이라고 한 글자 더 있습니다.”

하란이 저를 봤습니다.

“그 한 글자 내가 적었소.”

저는 그 말에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떻게 적으셨습니까?”

“무슨 말이오?”

“장부에 그 칸이 없습니다.”

하란이 웃었습니다.

“없으면 옆에 적으면 되오.”

“…그래도 됩니까?”

“안 된다는 말은 없소.”

저는 그 말을 세 번 들은 것 같았습니다.

없는 것과 안 되는 것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하란 님.”

“말하시오.”

“저도 적고 있습니다.”

저는 종이 셋을 꺼냈습니다.

하란이 그것을 받아서 읽었습니다.

첫 장은 안 돌아온 것입니다. 세 줄인데 셋째 줄이 비었습니다.

둘째 장은 스승이 대답 안 하신 것입니다. 세 줄입니다.

셋째 장은 멈춘 사람입니다. 열 줄입니다.

하란이 셋을 다 읽고 나서 오래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언제부터 적었소?”

“지난달부터입니다.”

“한 달에 열여섯 줄이오.”

“…세셨습니까?”

“장부 보는 사람이오.”

하란이 종이를 돌려줬습니다.

“유원 표사.”

“예.”

“이거 아랫여울에서도 적고 있소.”

저는 그 말에 숨을 한 번 쉬었습니다.

“…누가요?”

“내가.”

“…언제부터요?”

“세 해 됐소.”

저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몇 줄입니까?”

하란이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습니다.

두껍습니다. 접은 것이 아니라 꿰맨 것입니다.

“백서른둘이오.”

저는 그것을 받았습니다.

받으면서 손이 떨렸습니다.

“…봐도 됩니까?”

“보시오.”

폈습니다.

첫 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안 돌아온 것

칸이 셋입니다. 이름, 몇째, 무엇.

제가 그은 것과 같습니다.

저는 그 장을 손가락으로 짚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무엇을.”

“이 칸을요.”

하란이 물을 마셨습니다.

“내가 생각한 게 아니오.”

“…그럼요?”

“열한 해 전에 누가 적어 둔 걸 봤소.”

저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누구입니까?”

하란이 잔을 놓았습니다.

“아홉째요.”

저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당신입니다.

“말을 못 하시니까 적으셨소.”

하란이 종이를 도로 받았습니다.

“열셋에 아홉을 한꺼번에 맞고 나서, 그 뒤로 적으셨다고 하오.”

“…뭘 적으셨습니까?”

“당신이 잃은 것을 적으셨소.”

저는 그 말을 받아 적고 싶었는데 손이 안 움직였습니다.

“몇 줄이었습니까?”

하란이 저를 봤습니다.

“한 줄이오.”

“…한 줄이요?”

“한 줄이오.”

“뭐라고 적혀 있었습니까?”

하란이 일어섰습니다.

“그건 내가 말할 게 아니오.”

“…”

“당신한테 직접 여쭤보시오.”

저는 그 말에 웃음이 났습니다.

웃음이 난 이유는 우스워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말을 못 하십니다.

하란이 간 뒤에 저는 마루에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백서른둘이라는 수가 머릿속에서 안 없어졌습니다.

세 해에 백서른둘이면 한 해에 마흔넷입니다.

한 달에 넷 조금 안 됩니다.

저는 한 달에 열여섯 줄 적었습니다.

하란보다 빠릅니다.

빠른 이유는 제가 부지런해서가 아닙니다.

처음 적기 시작하면 적을 것이 많습니다. 여태 안 적은 것이 쌓여 있으니까요.

하란은 세 해째라 새로 생기는 것만 적습니다.

저는 그 셈을 하고 나서 한 가지를 알았습니다.

제가 적을 것이 언젠가 줄어듭니다.

줄어들면 한 달에 넷쯤이 됩니다.

그때가 되면 이 일이 지루해집니다.

지루해지면 안 적게 됩니다.

저는 그것을 넷째 줄에 적었습니다.

언젠가 안 적게 될 것이다 — 그때 누가 적나

적고 나서 그 줄을 지웠습니다.

지우고 다시 적었습니다.

그때 누구한테 넘길 것인가

이튿날 아침에 스승께 하란 얘기를 했습니다.

“스승님.”

“어.”

“아랫여울 장부지기가 세 해째 적고 있습니다.”

스승이 붓을 놓으셨습니다.

“…무엇을.”

“안 돌아온 것을요.”

스승이 한참 아무 말도 안 하셨습니다.

“…몇 줄이냐?”

“백서른둘입니다.”

스승이 붓을 다시 드셨습니다.

드셨는데 안 쓰셨습니다.

“유원아.”

“예.”

“나는 그걸 안 적었다.”

“…압니다.”

“열두 해 동안 장부방을 보면서 안 적었다.”

“…”

“왜 안 적었는지 아냐.”

저는 모른다고 하려다가 말았습니다.

“…적으면 세게 되니까요.”

스승이 저를 보셨습니다.

“그래.”

“세면요?”

“세면 바꿔야 한다.”

스승이 붓을 놓으셨습니다.

“바꾸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유원아.”

“예.”

“너는 여섯째다.”

“…예.”

“여섯째도 못 바꾼다.”

“…압니다.”

“아는데 왜 적냐?”

저는 그 물음에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한참 있다가 말했습니다.

“…적어 두면 나중에 누가 셀 수 있습니다.”

스승이 붓을 드셨습니다.

이번에는 쓰셨습니다.

무엇을 쓰셨는지는 못 봤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저는 다섯째를 찾아갔습니다.

마당에서 댓가지를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유원 표사님.”

“어.”

“무슨 일이십니까?”

저는 대답을 골랐습니다.

“…스승님께 들었네.”

다섯째가 손을 멈췄습니다.

“…예.”

“왜 맞겠다고 했나?”

다섯째가 댓가지를 내려놓았습니다.

“짐이 많아서요.”

저는 그 말을 알아들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마흔하나를 졌습니다.

그러면 다섯째는 서른몇을 졌을 것입니다.

“…여섯째가 되면 줄어드나?”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그럼.”

“나눌 사람이 생깁니다.”

저는 그 말에 손이 멈췄습니다.

여섯째가 둘이 되면 먼 데를 둘이 나눠 갑니다.

저는 다섯 해 동안 혼자 갔습니다.

혼자 가는 것이 여섯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네가 맞으면 눈이 흐려지네.”

“압니다.”

“밤에 글씨가 두 겹으로 보이네.”

“…압니다.”

“어떻게 아나?”

다섯째가 저를 봤습니다.

“표사님이 밤에 장부 보실 때 등을 두 개 켜시잖습니까?”

저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못 했습니다.

다섯 해 동안 저는 등을 두 개 켰습니다.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보고 있었나?”

“다 봅니다.”

다섯째가 댓가지를 다시 들었습니다.

“표사님이 뭘 잃으셨는지 다들 압니다. 안 적혀 있어도 압니다.”

저는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맞겠다고?”

“예.”

“…왜?”

다섯째가 손을 멈췄습니다.

“표사님 혼자 다섯 해 가셨으니까요.”

저는 그날 밤 종이를 폈습니다.

첫째 종이에 줄을 하나 더 적었습니다.

유원 · 여섯째 · 밤에 등 두 개

여태 저는 오른쪽 눈이 흐리다고만 적었습니다.

등을 두 개 켠다는 것은 안 적었습니다.

흐린 것은 잃은 것이고, 등을 두 개 켜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잃고 나서 무엇을 하게 되는지를 적는 칸이 없습니다.

저는 칸을 하나 더 그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게 됐나

첫 줄에 적었습니다.

등을 두 개 켠다

사흘 뒤에 스승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유원아.”

“예.”

“서인이 날을 잡자고 한다.”

저는 그 말에 숨을 한 번 쉬었습니다.

“…언제요?”

“이월 그믐이다.”

“…보름 남았습니다.”

“그렇다.”

스승이 붓을 놓으셨습니다. 여섯 번째입니다.

“유원아.”

“예.”

“그날 네가 있어야 한다.”

“…왜요?”

“여섯째가 여섯째 맞는 걸 봐야 한다.”

“…그런 법이 있습니까?”

스승이 장부를 펴셨습니다.

“법은 아니다. 여태 그렇게 했다.”

“…”

“나도 내 위가 맞는 걸 봤다.”

저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누구를요?”

“일곱째를 맞는 여섯째를 봤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스승이 장부를 덮으셨습니다.

“여덟째를 맞고 갔다.”

저는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랫여울 여덟째입니까?”

“그렇다.”

저는 지난달에 그 사람 줄을 봤습니다.

여덟째 · 맞음 · 이레 · 회복 안 됨 · 숨

그 사람이 스승의 위였습니다.

“…스승님.”

“어.”

“그 사람 이름이 뭡니까?”

스승이 저를 보셨습니다.

오래 보셨습니다.

“…목이다.”

저는 그 이름을 듣고 손이 멈췄습니다.

윗물에서 여덟째를 맞은 사람 이름도 목입니다.

“…같은 이름입니까?”

“같은 이름이다.”

“…흔한 이름입니까?”

스승이 붓을 드셨습니다.

“아니다.”

“…그럼요?”

“여덟째를 맞으면 목이라고 부른다.”

저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못 했습니다.

“…이름이 아닙니까?”

“이름이 아니다.”

스승이 붓끝을 벼루에 눕히셨습니다.

“여덟째는 숨을 잃으니까 목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원래 이름은요?”

“안 부른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아홉째는 이름을 지우고, 여덟째는 안 부릅니까?”

“그렇다.”

“일곱째는요?”

스승이 저를 보셨습니다.

“일곱째는 부른다.”

“…스승님을요?”

“임도경이라고 부른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앉았습니다.

“…그러면 일곱째까지는 이름이 있습니까?”

“있다.”

“여덟째부터 없습니까?”

스승이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저는 그 대답 안 하신 것을 둘째 종이에 적었습니다.

여섯 줄이 됐습니다.

저는 그 여섯 줄을 다시 읽었습니다.

여섯 줄 가운데 다섯이 물음입니다.

대답은 하나뿐입니다.

물음이 다섯이고 대답이 하나면, 이 종이는 아직 종이가 아닙니다.

스승께서 종이는 다 채워야 종이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도 여쭙지 못했습니다.

다 채우면 무엇이 되는지를요.

스승께서 그때 창을 보셨습니다.

창 밖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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