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26자) · 오른 것인데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둔한 소리가 한 번
아홉 대를 맞으면 천하제일 표사가 된다 · 구슬안
정월 스무날에 윗물에서 기별이 왔습니다.
일곱째 급 둘 중 하나가 여덟째를 맞겠다고 했다는 기별입니다.
서란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하나였습니다.
이름이 목이고 서른둘입니다.
맞는 날이 이월 초하루로 잡혔습니다.
저는 이 기별을 듣고 스승께 갔습니다.
“스승님.”
“어.”
“가 봐도 됩니까?”
“맞는 것을 보러 가겠다고?”
“예.”
스승이 붓을 놓으셨습니다.
“왜?”
저는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무엇을.”
“무엇을 잃는지를요.”
스승이 한참 저를 보셨습니다.
“가라.”
배로 반나절입니다.
윗물은 건너말보다 큽니다. 표국이 둘이고 객사가 넷입니다. 국수집이 골목마다 있습니다.
맞는 자리는 표국 마당이었습니다.
사람이 서른쯤 와 있었습니다.
목이 마당 가운데 앉아 있었습니다. 옷을 위만 벗었습니다.
저는 이 사람 몸을 봤습니다.
자국이 일곱이었습니다.
정강이, 옆구리, 손등, 빗장뼈, 명치, 뒤통수 아래, 턱 아래.
일곱이 다 있었습니다.
멍이 아니라 자국입니다. 살이 눌려서 안 돌아온 자리입니다.
저는 제 몸을 생각했습니다.
여섯 있습니다.
윗물 표국주가 나왔습니다. 예순쯤 되고 손이 굽었습니다.
“맞겠느냐?”
“맞겠습니다.”
“무엇을 잃는지 아느냐?”
“…숨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표국주가 목 앞에 섰습니다.
“한 번 더 묻는다. 맞겠느냐?”
“맞겠습니다.”
표국주가 손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때 눈을 안 감았습니다.
감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소리는 크지 않았습니다.
북 치는 소리 같은 것도 아니고, 뼈 부러지는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둔한 소리가 한 번 났습니다.
목이 앞으로 숙였다가 다시 세웠습니다.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마당이 조용했습니다.
표국주가 말했습니다.
“여덟째다.”
사람들이 아무 소리도 안 냈습니다. 박수도 안 치고 말도 안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상했습니다.
오른 것인데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목이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일어서다가 다시 앉았습니다.
숨을 쉬는데 소리가 났습니다.
들이쉬는 소리가 났습니다. 사람이 숨 쉬는 소리가 마당 끝까지 들렸습니다.
저는 이 소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숨이 얕아진다는 말이 이 뜻이었습니다.
얕아지면 자주 쉬어야 하고, 자주 쉬면 소리가 납니다.
이날 저녁에 저는 목을 찾아갔습니다.
객사 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건너말 여섯째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말은 할 수 있었습니다.
“예.”
“왜 왔소?”
“…보러 왔습니다.”
목이 웃었습니다. 웃으면서 숨을 한 번 쉬었습니다.
“봤소?”
“봤습니다.”
“어땠소.”
저는 이 물음에 거짓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목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도 무서웠소.”
“…왜 맞으셨습니까?”
목이 천장을 봤습니다.
“여덟째가 비었으니까.”
“비면 채워야 합니까?”
“채워야 하오.”
“…왜요?”
목이 저를 봤습니다.
“그건 나도 모르오.”
저는 이 말에 종이를 꺼내려다가 그만뒀습니다.
“하나 여쭤도 됩니까?”
“하시오.”
“무엇이 안 돌아올 것 같으십니까?”
목이 숨을 한 번 쉬었습니다.
“…아직 모르오.”
“언제 아십니까?”
“석 달쯤 지나면 알겠지.”
저는 이 말을 받아 적었습니다.
적는 것을 목이 봤습니다.
“뭘 적소?”
“…안 돌아온 것을 적습니다.”
목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종이를 보였습니다.
세 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세 번째 줄은 비어 있습니다.
목이 이것을 읽었습니다.
“…이걸 왜 적소?”
“장부에 적을 칸이 없어서요.”
목이 종이를 돌려줬습니다.
“석 달 뒤에 나도 적어 주시오.”
저는 이 말에 손이 떨렸습니다.
떨린 이유는 적을 사람이 하나 늘어서가 아닙니다.
적어 달라고 한 사람이 처음이라서입니다.
돌아오는 배에서 저는 셈을 했습니다.
목이 여덟째가 됐습니다.
그러면 여덟째가 하나 생겼습니다.
일곱째가 윗물에 하나 남았습니다. 서란입니다.
건너말에 일곱째가 없습니다.
제가 일곱째를 맞으면 둘이 됩니다.
둘이면 하나가 여덟째로 갈 수 있는데, 여덟째는 이제 목이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일곱째를 맞아도 여덟째로 안 갑니다.
저는 이 셈을 세 번 했습니다.
세 번 다 같았습니다.
일곱째를 지금 맞으면, 씹는 것을 석 달 잃고 거기서 멈춥니다.
멈추면 저는 일곱째에서 몇 해를 보내게 됩니다.
서란이 여섯 해입니다.
저는 다섯 해입니다.
합치면 열한 해입니다.
열한 해 동안 두 사람이 안 올랐습니다.
저는 이 수를 적었습니다.
적고 나서 한 가지를 알았습니다.
급이 안 오르는 것은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올라갈 자리가 없어서입니다.
여덟째가 하나뿐이고 아홉째가 하나뿐이니까, 일곱째 둘은 갈 데가 없습니다.
그러면 아랫여울 여덟째가 죽었을 때 왜 셋이 술렁였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자리가 하나 비었습니다.
비면 하나가 오릅니다.
하나가 오르면 이 아래가 하나 오릅니다.
죽어야 오릅니다.
저는 이 말을 종이에 적다가 손을 멈췄습니다.
적으면 제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 됩니다.
서른한 번 셈한 것과 같은 일입니다.
저는 이 줄을 적었습니다.
적고 나서 종이를 접었습니다.
목을 만나고 나서 저는 윗물에서 하루를 더 묵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서란을 찾아갔습니다.
“또 왔소?”
“…예.”
“어제 그거 봤소?”
“봤습니다.”
서란이 마루에 앉았습니다.
“어땠소.”
저는 이번에는 거짓말을 안 했습니다.
“…오른 것인데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서란이 웃었습니다.
“좋아할 게 뭐가 있소?”
“…오른 겁니다.”
“오르면 자리가 하나 줄어드오.”
저는 이 말에 손을 멈췄습니다.
“…줄어요?”
“일곱째가 둘이었는데 하나가 됐소.”
서란이 자기를 가리켰습니다.
“나 혼자 남았소.”
“…그게 나쁩니까?”
“나쁘오.”
서란이 손을 폈습니다.
“일곱째가 둘일 때는 짐을 나눠 졌소. 하나면 다 지오.”
저는 이 말을 받아 적었습니다.
“그러면 오르면 남은 사람이 힘들어집니까?”
“그렇소.”
“…그럼 아무도 안 오르려고 하겠습니다.”
서란이 저를 봤습니다.
“그래서 여섯째가 다섯 해요.”
저는 이 말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제가요?”
“당신만이 아니오.”
서란이 마당을 봤습니다.
“다섯에 하나가 멈춰 있다는 것도 세어 보셨소?”
“…세어 봤습니다.”
“왜 멈추는지도 세어 보셨소?”
저는 이 물음에 대답을 못 했습니다.
멈춘 사람 열을 세었는데, 왜 멈췄는지는 안 물었습니다.
“…안 세었습니다.”
“그럼 그것부터 세시오.”
저는 돌아오는 배에서 세 번째 종이를 폈습니다.
멈춘 사람 열 줄입니다.
칸을 하나 더 그었습니다.
왜 멈췄나
열 줄 중에 제 줄에만 적었습니다.
유원 · 여섯째 · 다섯 해 · 무서워서
적고 나서 이 넉 자를 한참 봤습니다.
다섯 해 동안 저는 이 넉 자를 입 밖에 낸 적이 없습니다.
적으니까 넉 자밖에 안 됐습니다.
돌아온 이튿날 저는 스승께 서란 얘기를 했습니다.
“스승님.”
“어.”
“오르면 자리가 하나 줄어든다고 들었습니다.”
스승이 붓을 놓으셨습니다.
“…누가 그러더냐?”
“윗물 일곱째요.”
“서란이구나.”
“예.”
스승이 장부를 펴셨습니다.
“유원아, 이 표국에 짐이 작년에 몇이었냐?”
“사백열둘입니다.”
“네가 몇을 졌냐?”
“마흔하나입니다.”
스승이 붓끝으로 장부를 짚으셨습니다.
“일곱째가 있으면 네가 몇을 지겠냐?”
저는 이 셈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스물몇쯤이겠습니다.”
“그렇다.”
스승이 장부를 덮으셨습니다.
“그런데 일곱째가 되면 네가 마흔몇을 진다.”
“…예.”
“그러면 여섯째가 스물몇을 진다.”
“…예.”
“그 여섯째는 누구냐?”
저는 이 물음에 손을 멈췄습니다.
여섯째는 지금 저뿐입니다.
제가 일곱째가 되면 여섯째가 없습니다.
“…없습니다.”
“그러면 다섯째가 올라와야 한다.”
“…예.”
“다섯째가 올라오려면 여섯째 자리를 맞아야 한다.”
저는 이 셈이 어디로 가는지 알았습니다.
“…제가 오르면 다섯째가 맞습니다.”
“그렇다.”
스승이 붓을 드셨습니다.
“그 다섯째가 뒤통수 아래를 맞는다.”
“…눈을 잃습니다.”
“그렇다.”
저는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유원아.”
“예.”
“네가 안 오르면 그 사람은 안 맞는다.”
저는 이 말을 다섯 해 동안 아무도 안 해 줬다는 것을 이때 알았습니다.
다들 언제 맞을 거냐고만 물었습니다.
안 맞으면 누가 안 맞는지는 아무도 안 말했습니다.
“…스승님은 아셨습니까?”
“알았다.”
“…왜 말씀 안 하셨습니까?”
스승이 붓을 놓으셨습니다.
“말하면 네가 영영 안 오를까 봐.”
저는 이 말에 아무 대꾸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유원아.”
“예.”
“다섯째가 어제 나한테 왔다.”
“…무슨 일로요?”
“여섯째를 맞겠다고 하더라.”
저는 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저는 이날 밤에 다섯째 이름을 적었습니다.
이름이 서인입니다. 스물여덟입니다.
적고 나서 다섯째 종이를 폈습니다.
이름을 물어본 사람을 적는 종이입니다. 재문 한 줄이 있었습니다.
둘째 줄에 서인을 적었습니다.
적고 나서 손을 멈췄습니다.
서인은 다섯째 급입니다. 급이 있는 사람입니다.
급이 있는 사람 이름은 장부에 있습니다. 제가 안 물어도 압니다.
그런데 저는 여태 이 사람을 다섯째라고만 불렀습니다.
장부에 적혀 있는데도 안 불렀습니다.
저는 이 줄을 이렇게 고쳤습니다.
서인 · 다섯째 · 이름이 장부에 있는데 안 불렀음
고치고 나서 셋째 줄을 적었습니다.
임지형 · 스승 · 이름을 안 부름
넷째 줄을 적으려다가 멈췄습니다.
넷째 줄은 당신입니다.
당신은 이름이 없습니다.
저는 이 줄을 비워 뒀습니다.
저는 이 빈 줄을 닷새 동안 비워 뒀습니다.
닷새째에 한 자를 적었습니다.
당
적다가 말았습니다.
당신이라고 적으면 그건 부르는 말이 아니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는 이 한 자를 지웠습니다.
지운 자리가 남았습니다.
지운 자리는 안 없어집니다.
먹으로 적은 것은 지워도 종이가 눌린 자국이 남습니다.
저는 이 자국을 손끝으로 만져 봤습니다.
한 자입니다.
한 자를 적고 지운 자국이 종이에 남았습니다.
이것도 적어 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