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20자) · 맞으면 오른다

여섯째

아홉 대를 맞으면 천하제일 표사가 된다 · 구슬안

당신한테는 아직 못 한 말이 있습니다⁠.

이 글은 이 말을 하려고 적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 두면 언젠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적습니다⁠.

먼저 셈부터 적겠습니다⁠. 당신은 셈을 좋아하셨으니까⁠.

저는 지금 여섯째입니다⁠.

표사의 급은 아홉입니다⁠. 첫째부터 아홉째까지⁠.

오르는 법은 하나뿐입니다⁠.

맞으면 오릅니다⁠.

스승이 급소를 하나 짚어서 때리고⁠, 맞고 서 있으면 한 급 오릅니다⁠. 주저앉으면 안 오릅니다⁠. 다시 맞을 수는 있는데 같은 자리를 두 번 맞으면 이 자리는 영영 안 셉니다⁠.

첫째는 정강이입니다⁠. 열두 살에 맞습니다⁠.

둘째는 옆구리⁠. 셋째는 손등⁠. 넷째는 빗장뼈⁠. 다섯째는 명치⁠.

여섯째는 뒤통수 아래입니다⁠.

저는 이것을 열아홉에 맞았습니다⁠. 맞고 나서 사흘 동안 오른쪽 눈이 안 보였습니다⁠.

지금 스물넷입니다⁠.

다섯 해 동안 일곱째를 안 맞았습니다⁠.

건너말 표국에는 표사가 스물셋입니다⁠.

첫째 급이 아홉⁠, 둘째가 여섯⁠, 셋째가 넷⁠, 넷째가 둘⁠, 다섯째가 하나⁠, 여섯째가 하나⁠.

여섯째 하나가 접니다⁠.

일곱째부터는 건너말에 없습니다⁠.

윗물 표국에 일곱째가 둘 있고⁠, 아랫여울에 여덟째가 하나 있습니다⁠.

아홉째는 세 도시를 통틀어 하나입니다⁠.

이게 당신입니다⁠.

규칙은 이렇습니다⁠.

아홉째까지 오른 사람은 세 도시에 하나여야 합니다⁠.

왜 하나여야 하는지는 아무도 저한테 설명해 준 적이 없습니다⁠. 물어보면 다들 같은 말을 합니다⁠.

“⁠원래 그렇다⁠.⁠”

저는 이 말을 열두 해 동안 들었습니다⁠.

아홉째 자리가 어디인지는 다들 압니다⁠.

목입니다⁠.

정확히는 목 앞쪽⁠, 울대 아래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자리입니다⁠.

거기를 맞으면 말을 못 하게 됩니다⁠.

당신이 말을 안 하시는 게 아니라 못 하시는 거라는 걸 저는 열다섯에 알았습니다⁠.

그전에는 무서워서 안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지난겨울에 스승이 저를 불렀습니다⁠.

장부방입니다⁠. 궤짝이 여섯 놓여 있고 등잔이 하나 있습니다⁠. 겨울에는 뼈 끓이는 냄새가 벽을 타고 들어옵니다⁠.

“⁠유원아⁠.⁠”

“⁠예⁠.⁠”

“⁠일곱째 언제 맞을 거냐⁠?⁠”

저는 이 질문을 다섯 해 동안 받았습니다⁠.

“⁠…아직입니다⁠.⁠”

“⁠아직이 다섯 해다⁠.⁠”

“⁠압니다⁠.⁠”

스승이 붓을 놓았습니다⁠. 스승은 붓을 안 놓고 말하는 사람인데 이날은 놓았습니다⁠.

“⁠일곱째가 어디인지 아냐⁠?⁠”

“⁠압니다⁠.⁠”

“⁠말해 봐라⁠.⁠”

“⁠…턱 아래입니다⁠.⁠”

“⁠맞다⁠.⁠”

스승이 제 턱을 손끝으로 짚었습니다⁠. 짚기만 했는데 목뒤가 서늘했습니다⁠.

“⁠여기 맞으면 뭐가 안 되는지 아냐⁠?⁠”

“⁠…모릅니다⁠.⁠”

“⁠씹는 게 안 된다⁠.⁠”

저는 이 말에 손을 멈췄습니다⁠.

“⁠석 달쯤이다⁠. 석 달 동안 죽만 먹는다⁠.⁠”

“⁠…그다음은요⁠?⁠”

“⁠돌아온다⁠. 대개는⁠.⁠”

대개는⁠, 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을 이날 밤에 백 번쯤 곱씹었습니다⁠.

여덟째는 명치 아래입니다⁠. 맞으면 숨이 얕아진다고 합니다⁠. 아랫여울 여덟째가 사흘에 한 번씩 앉아서 숨을 고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홉째는 목입니다⁠.

그러니까 급이 오를수록 하나씩 잃습니다⁠.

여섯째에서 저는 오른쪽 눈이 조금 흐립니다⁠. 밤에 글씨가 두 겹으로 보입니다⁠.

일곱째에서 씹는 것을 잃고⁠, 여덟째에서 숨을 잃고⁠, 아홉째에서 말을 잃습니다⁠.

이걸 오른다고 합니다⁠.

저는 열두 해 동안 이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을 만나고 나서 이상해졌습니다⁠.

처음 뵌 것은 열다섯에 나루에서였습니다⁠.

이날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 강은 안 업니다⁠. 얼음만 떠내려옵니다⁠. 떠내려오다가 서로 부딪히면 사기그릇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당신이 배에서 내리셨습니다⁠.

짐이 없었습니다⁠. 아홉째 급 표사는 짐을 안 짐다는 것을 저는 이때 몰랐습니다⁠.

누가 저한테 말했습니다⁠.

“⁠인사드려라⁠. 아홉째시다⁠.⁠”

저는 인사를 했습니다⁠.

당신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이게 다였습니다⁠.

저는 이날 밤에 물었습니다⁠.

“⁠왜 말씀을 안 하십니까⁠?⁠”

“⁠못 하시는 거다⁠.⁠”

“⁠…왜요⁠?⁠”

“⁠아홉째니까⁠.⁠”

저는 이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이때 제가 여섯째였다면⁠, 아홉째까지 세 급이 남았다는 뜻이고⁠, 세 급 뒤에 저도 말을 못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때 저는 셋째였습니다⁠.

여섯 급 남아 있었습니다⁠.

여섯이면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셋입니다⁠.

작년 가을에 아랫여울 여덟째가 병으로 누웠습니다⁠.

누웠다는 말을 듣고 세 도시가 조용해졌습니다⁠.

아홉째가 하나여야 한다는 규칙에는 뒷말이 있습니다⁠.

이 하나가 죽으면 열 몇 살짜리를 하나 골라 채워 넣습니다⁠.

이것을 보임이라고 부릅니다⁠.

보임은 아홉 급을 차례로 안 올립니다⁠. 한꺼번에 올립니다⁠.

열 몇 살짜리를 앉혀 놓고 아홉 자리를 하루에 다 짚습니다⁠.

살아남으면 아홉째가 됩니다⁠.

살아남은 사람이 지금까지 몇인지 저는 압니다⁠.

하나입니다⁠.

당신입니다⁠.

당신 앞에 보임으로 앉았던 아이가 넷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넷은 이날 못 일어났습니다⁠.

당신은 일어나셨습니다⁠.

열셋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 얘기를 듣고 나서 당신 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옷깃 위로 조금 보입니다⁠.

자국이 있습니다⁠. 멍이 아니라 자국입니다⁠. 살이 눌려서 안 돌아온 자리입니다⁠.

손가락 두 마디쯤 되고⁠, 가운데가 조금 들어가 있습니다⁠.

열한 해 됐는데 아직 그대로입니다⁠.

겨울 그믐에 스승이 저를 또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붓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유원아⁠.⁠”

“⁠예⁠.⁠”

“⁠아랫여울 여덟째가 갔다⁠.⁠”

저는 이 말에 숨을 한 번 쉬었습니다⁠.

“⁠…언제요⁠?⁠”

“⁠어제 새벽이다⁠.⁠”

스승이 붓을 벼루에 눕히셨습니다⁠.

“⁠그러면 여덟째가 없다⁠.⁠”

“⁠…예⁠.⁠”

“⁠여덟째가 없으면 아홉째 다음이 일곱째다⁠.⁠”

“⁠…예⁠.⁠”

“⁠일곱째가 윗물에 둘이다⁠.⁠”

저는 이 셈을 알아들었습니다⁠.

알아들었는데 대답을 못 했습니다⁠.

“⁠유원아⁠.⁠”

“⁠예⁠.⁠”

“⁠네가 일곱째를 맞으면 셋이 된다⁠.⁠”

“⁠…예⁠.⁠”

“⁠셋이면 하나가 여덟째로 갈 수 있다⁠.⁠”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누가 갑니까⁠?⁠”

스승이 저를 보셨습니다⁠.

“⁠제일 먼저 맞은 사람이 간다⁠.⁠”

저는 이날 밤에 강가에 나갔습니다⁠.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열다섯에 처음 들었던 소리와 같은 소리입니다⁠.

저는 이 소리를 들으면서 셈을 했습니다⁠.

지금 여섯째입니다⁠.

일곱째를 맞으면 씹는 것을 석 달 잃습니다⁠.

여덟째를 맞으면 숨이 얕아집니다⁠.

아홉째를 맞으면 말을 잃습니다⁠.

그런데 아홉째는 하나여야 하고⁠, 이 하나가 당신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아홉째가 되려면 당신이 없어야 합니다⁠.

저는 이 셈을 하다가 강가에 앉았습니다⁠.

앉아서 오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당신한테 아직 못 한 말입니다⁠.

아홉째가 되고 싶다는 말이 아닙니다⁠.

당신이 없어야 제가 오른다는 것을⁠, 제가 셈으로 이미 해 봤다는 말입니다⁠.

한 번이 아닙니다⁠.

작년 가을부터 세었더니 서른한 번입니다⁠.

세지 말 걸 그랬습니다⁠.

셈을 하나 더 적겠습니다⁠.

이 표국에 스물셋이 있다고 적었는데⁠, 그건 급을 받은 사람만 센 것입니다⁠.

급을 못 받은 사람이 열하나 더 있습니다⁠.

첫째를 못 맞은 사람들입니다⁠.

열두 살에 정강이를 맞는데⁠, 맞고 주저앉으면 다시 맞을 수 있습니다⁠. 세 번까지입니다⁠. 세 번 다 주저앉으면 이후로는 안 맞힙니다⁠.

안 맞히면 표사가 아닙니다⁠. 짐을 지고 따라다니는 사람이 됩니다⁠.

이 열하나를 우리는 짐꾼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열두 해 동안 이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썼습니다⁠.

지난달에 짐꾼 하나가 저한테 물었습니다⁠.

“⁠유원 표사님⁠.⁠”

“⁠어⁠.⁠”

“⁠여섯째는 뭘 잃으셨습니까⁠?⁠”

저는 이 물음에 손을 멈췄습니다⁠.

“⁠…오른쪽 눈이 조금 흐리다⁠.⁠”

“⁠얼마나요⁠?⁠”

“⁠밤에 글씨가 두 겹으로 보인다⁠.⁠”

이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안 흐립니다⁠.⁠”

“⁠…그렇지⁠.⁠”

“⁠저는 아무것도 안 잃었습니다⁠.⁠”

저는 이 말에 아무 대꾸도 못 했습니다⁠.

이 사람이 짐을 지고 갔습니다⁠.

저는 이 등을 보면서 한 가지를 알았습니다⁠.

우리는 오르는 것을 세고⁠, 잃는 것은 안 셉니다⁠.

장부방 궤짝에 급 장부가 있습니다⁠. 누가 언제 몇째를 맞았는지 적혀 있습니다⁠.

잃은 것을 적는 장부는 없습니다⁠.

셈을 또 하나 적겠습니다⁠.

이 강에 표국 도시가 셋이라고 적었는데⁠, 넷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 아래로 더 내려가면 하나가 더 있다고 합니다⁠.

이름은 아랫여울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이름을 못 들었습니다⁠. 말해 준 사람이 말하다가 말았습니다⁠.

“⁠거기는 급이 아홉이 아니래⁠.⁠”

“⁠…몇입니까⁠?⁠”

“⁠모르지⁠.⁠”

“⁠누가 그럽니까⁠?⁠”

“⁠배 타는 사람들이 그러더라⁠.⁠”

저는 이날부터 나루에 자주 갔습니다⁠.

배 타는 사람들한테 물었습니다⁠.

넷 중 둘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그런 데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있소⁠. 근데 거기는 안 때리오⁠.⁠”

저는 이 말에 걸음을 멈췄습니다⁠.

“⁠…안 때리면 어떻게 오릅니까⁠?⁠”

이 사람이 삿대를 짚었습니다⁠.

“⁠모르오⁠. 나는 짐만 나르오⁠.⁠”

셈을 하나 더 적겠습니다⁠.

이 표국이 한 해에 나르는 짐이 몇 짐인지 저는 압니다⁠. 장부방에서 먹을 갈면서 봤습니다⁠.

작년에 사백열둘이었습니다⁠.

이 사백열두 짐을 스물셋이 나눠 집니다⁠.

하나에 열여덟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안 그렇습니다⁠.

급이 높으면 먼 데를 갑니다⁠. 먼 데는 한 번에 여러 날이 걸립니다⁠.

일곱째가 없는 건너말에서는 여섯째가 제일 먼 데를 갑니다⁠.

작년에 제가 마흔한 짐을 졌습니다⁠.

열여덟이 아니라 마흔하나입니다⁠.

두 배가 조금 넘습니다⁠.

저는 이것을 작년 그믐에 세어 보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하면 일곱째를 맞으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아서였습니다⁠.

일곱째를 맞으면 더 먼 데를 갑니다⁠.

오르면 짐이 늘어납니다⁠.

그런데도 다들 오르라고 합니다⁠.

저는 이 까닭을 열두 해 동안 몰랐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오르면 짐이 늘어나는데⁠, 이 늘어난 짐을 지려면 잃어야 합니다⁠.

눈을 잃고 이를 잃고 숨을 잃으면⁠, 그만큼 무거운 것을 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강해진다고 부릅니다⁠.

저는 이 말을 열두 해 동안 썼습니다⁠.

지금은 이 말을 안 씁니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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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도윤2026.10.09· 1화

    작가 한도윤입니다. 맞으면 오르고, 오를 때마다 하나씩 잃는 셈법으로 쓴 편지입니다. 1화를 읽고 아직 못 한 말이 떠오르셨다면, 그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을까요?

  • 다시읽기2026.09.27· 1화

    아홉 대를 맞으면 천하제일인데 왜 1화에서 벌써 여섯째예요?

    • 구슬안작가2026.09.28

      주인공이 이미 다섯 대를 맞은 채로 시작해요. 앞의 다섯 대에 무엇을 잃었는지는 뒤에서 하나씩 나옵니다.

여섯째 · 아홉 대를 맞으면 천하제일 표사가 된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