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61자)

붉은 끈 칼자루

폭군의 호위무사로 빙의했는데 폭군이 나만 본다 · 윤재하

배추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수라간에 채소를 대는 수레는 해 질 녘에 빈 광주리를 싣고 서문으로 나간다. 그 광주리 하나에 내가 들어갔다. 빈 광주리가 아니라 시든 배추 잎을 반쯤 채운 광주리였다. 진목이 그 위에 배추를 한 겹 더 덮었다. 배춧잎 사이로 흙냄새와 물러 터진 잎의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수레가 덜컹일 때마다 잎맥이 내 귓바퀴를 긁었다.

“폐하께서 궁 밖에 나가지 말라 하셨다.” 수레에 오르기 전에 진목이 말했다. “궁 밖은 금군 땅이라고.”

“알아.”

“알면서 나가?”

“소와가 없어졌잖아.” 나는 광주리 안에 쪼그려 앉았다. “네가 업어 키웠다며.”

진목은 대답 대신 배추를 내 머리 위에 덮었다. 조금 세게 덮었다. 나는 그게 대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교대 시간 전까지 돌아와. 침전 문 안쪽은 내가 선다. 들키면 너 대신 내가 맞는다.」

서문 수문장이 광주리를 창끝으로 한 번 쿡 찔렀다. 창날이 내 무릎에서 손가락 하나 떨어진 배추 속에 박혔다. 나는 숨을 멈췄다. 창끝이 빠져나갔다. 「배추가 다 시들었네.」 수문장이 말했다. 수레가 다시 움직였다.

원작에 이런 장면은 없었다. 원작의 호위무사 야율은 사흘째 아침에 죽었으니 배추 광주리에 들어갈 일도 없었다.

*

비단 거리는 서문에서 두 골목 안쪽이었다.

연화방이 있던 자리는 시커멓게 무너져 있었다. 기둥 셋이 숯이 되어 서 있었고, 그 사이로 타다 만 비단 필이 녹은 엿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탄 비단 냄새는 머리카락 탄 냄새와 비슷했다. 그 냄새가 골목에 아직 남아 있었다. 양옆 가게들은 멀쩡했다. 불이 이 가게 하나만 골라서 먹었다.

탄 자리 앞 국밥집 평상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삿갓을 눌러쓰고 그 끝자리에 앉아 국밥을 시켰다. 국물에서 돼지 뼈와 파 냄새가 났다. 궁에 들어온 뒤로 먹은 어떤 것보다 맛있었다. 나는 국밥을 먹으면서 귀를 열었다.

“황제가 사냥터에서 제 병사를 쐈대.” 짐꾼 차림의 사내가 말했다. “서산 아랫마을에서 몰이 나갔던 사람이 그러더라고. 열아홉인가 스물인가 먹은 애를.”

“에이, 금군이 먼저 쐈다던데.” 맞은편의 늙은 소금 장수가 말했다. “호위를 노렸다더라.”

“금군이 호위를 왜 쏴?”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나는 사관을 살렸다는 얘기 들었는데.” 국밥집 주인이 솥뚜껑을 닫으며 끼어들었다. “조회에서 사관을 때려죽이려다가, 호위 하나가 뭐라고 하니까 살려 줬다던데.”

“호위 말을 들어? 폭군이?”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소금 장수가 또 말했다.

짐꾼이 국밥 그릇을 내려놓았다. “살렸든 쐈든 나는 모르겠고, 쌀값이나 내렸으면 좋겠네. 진휼미가 다 어디로 갔는지, 봄에 줄 쌀을 여름 되도록 못 받았어.”

다들 입을 다물었다. 소금 장수가 혀를 찼다. 국밥집 주인이 솥 밑에 장작을 하나 더 넣었다. 장작이 타닥 소리를 냈다.

나는 국밥을 마저 먹었다. 원작은 백성이 폭군을 미워했다고 한 줄로 썼다. 여기 평상에 앉은 사람들은 폭군을 미워하는지 안 미워하는지 몰랐다. 그 사람이 사관을 살렸는지 병사를 쐈는지보다, 봄에 못 받은 쌀이 더 급했다. 원작 독자 한서준은 이 사람들 얼굴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

국밥집 주인이 그릇을 걷으면서 내 삿갓 밑을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아주 작게 말했다.

“야율이지? 소와 오라비.”

나는 숟가락을 놓쳤다.

“걔가 오라비 오면 저 뒤로 보내랬어.” 주인이 턱으로 골목 끝을 가리켰다. “쪽물 들이는 집. 지하.”

쪽물 들이는 집은 마당에 커다란 독이 열 개쯤 묻혀 있었다. 독마다 검푸른 물이 고여 있었고, 그 위에 거품이 떠 있었다. 쪽 잎을 삭힌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큼하고 쿰쿰하고, 오래 맡으면 머리가 띵해지는 냄새였다. 마당 구석에 땅으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반쯤 내려갔을 때 목에 칼이 닿았다.

옆에서 왔다. 소리가 없었다. 칼날이 아니라 칼등이었는데, 그래도 울대에 닿는 쇠는 쇠였다. 나는 속으로 셌다. 진목의 목검, 위소겸의 칼끝, 황제의 칼, 이제 이것. 이 세계에 와서 목에 칼이 들어온 게 네 번째다. 회사에서는 삼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야율이 혼자 왔다.”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났다. 낮고,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웃으면서 칼을 대는 목소리였다. “잔을 엎은 호위가 제 발로 왔네.”

계단 밑에서 누가 등잔을 들어 올렸다. 빛이 칼 쥔 사람의 얼굴을 비췄다.

서른 남짓, 볕에 탄 얼굴이었다. 왼쪽 눈썹을 가로질러 흰 흉터가 하나 있었다. 머리를 대충 묶었고, 상인 옷을 입었는데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서 팔뚝의 힘줄이 보였다. 칼자루에 붉은 끈이 감겨 있었다. 끈 끝이 해져서 실밥이 너풀거렸다.

나는 저 칼자루를 안다. 『붉은 달의 반역자』 1권 1화 첫 문장이 이랬다. 「백무현의 칼자루에는 늘 붉은 끈이 감겨 있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매고 온 댕기였다.」

실물이었다. 삼백십이 화 동안 응원한 사람이었다. 백무현이 무너진 성문 앞에서 죽는 마지막 화에 나는 댓글을 이렇게 달았다. 작가님, 무현이 살려 내세요. 그 사람이 지금 내 목에 칼을 대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그거였다.

백무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

“아, 아닙니다. 그냥, 반갑다고요.”

“칼 맞을 놈이 반가워?”

“칼 맞을 날이 날마다 와서 익숙합니다.”

계단 밑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여자 목소리였다. 등잔을 든 사람이 계단을 두 칸 올라왔다. 스물 초반, 눈이 크고 입매가 야무졌다. 앞치마에 쪽물이 검푸르게 얼룩져 있었다. 머리에 비녀가 없었다. 비녀 꽂을 자리에 나무 젓가락 하나가 꽂혀 있었다.

“오라버니 말투가 왜 그래?” 소와가 말했다. “어디서 머리를 맞았어?”

이 몸의 가슴이 또 먼저 반응했다. 숨이 한 번 걸렸다가 풀렸다. 나는 대답 대신 품에서 은비녀를 꺼냈다. 휜 나비 날개가 등잔 빛에 반짝였다. 소와의 얼굴이 굳었다.

“태후한테 있었어?”

“태후마마가 이걸 내밀면서 나한테 일을 시켰어.”

“그래서 내가 가게를 태웠지.” 소와가 계단에 걸터앉았다. “태후 사람들이 사흘째 가게 앞에 있었어. 아침마다 비단을 사는 척하면서 나를 봤어. 나흘째 되는 밤에 내가 기름을 부었어. 주인 할머니는 미리 시골 딸네 보냈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원작에서 이 사람은 이름도 안 나왔다. 그 사람이 혼자 가게를 태우고 사라졌다.

“수련이 죽었다.” 백무현이 칼을 거두지 않고 말했다. 웃음기가 사라졌다. “연회 날 밤에. 궁에서 바깥으로 소식을 내보내던 아이다. 소와 동무였고. 연회에서 잔을 엎은 놈이 너라더군. 그 아이가 왜 우물에 들어갔는지 말해라.”

칼등이 칼날로 돌아갔다. 날이 살갗에 닿았다. 그 차가움이 아까와 달랐다.

“잔에 독이 있었습니다. 태후가 넣었습니다.” 나는 똑바로 말했다. “제가 엎었고, 태후는 술 맡은 사람을 치웠습니다. 수련은 그래서 죽었습니다.”

“그럼 엎지 말았어야지.” 백무현의 목소리가 아주 조용해졌다. “폭군이 그 술을 마시면 폭군이 죽고, 수련은 살았다. 너는 폭군 목숨이랑 수련 목숨을 바꿨어.”

“그 술로는 안 죽습니다. 열흘 앓습니다. 그리고 칠석 밤에 태후가 보낸 자객 손에 죽습니다.”

“그럼 잘된 일이지.”

“안 잘됩니다.” 나는 칼날에 대고 말했다. 울대가 날에 긁혔다. “폭군이 죽으면 태후가 섭정을 계속합니다. 금군은 위소겸이 쥐고 있고, 위소겸은 쌀을 빼돌립니다. 몇 해 안에 북쪽 하란 기병이 국경을 넘습니다. 도성이 탑니다. 이 비단 거리도 다 탑니다. 그리고 당신은 무너진 성문 앞에서 죽어요.”

쪽물 독에서 거품 하나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백무현이 나를 봤다. 그러고는 웃었다. 크게, 소리를 내서. 웃으면서도 칼은 안 내렸다.

“점쟁이냐?”

“독자입니다.”

“뭐?”

“아닙니다.”

백무현이 웃음을 그쳤다. 칼날이 내 목에서 아주 조금 떨어졌다. 그가 나를 다시 봤다. 아까와 다른 눈이었다. 재는 눈이었다. 쓸 데가 있는지 재는 눈. 태후가 나를 처음 봤을 때와 같은 눈이었다. 원작 주인공이 그런 눈을 할 줄은 몰랐다. 원작은 백무현이 그런 눈을 할 때마다 「그는 사람을 꿰뚫어 보았다」라고 멋지게 썼다.

“칠석 밤에 태후가 폭군을 죽인다.” 백무현이 내 말을 한 번 정리했다. “확실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아서 대답이 되었다. 나는 방금 반란군 수장에게 칠석 밤을 넘겨주었다.

“소와, 같이 가자.” 나는 소와를 봤다. “궁에 데려가면 폐하가 지켜 주신다고 했어.”

“폭군이?” 소와가 코웃음을 쳤다. “오라버니, 진짜 머리 맞았구나.”

“소와.”

“오라버니는 폭군 문을 지켜. 나는 그 문을 열 사람 편이야.” 소와가 일어서서 백무현 옆에 섰다. 키가 그의 어깨에도 안 닿았는데, 서 있는 자리가 분명했다. “수련이 죽었어. 걔가 이 거리에 나올 때마다 나한테 연잎 사탕을 갖다줬어. 그게 다 궁 안 소식이었어. 나는 오늘부터 걔 대신 그 일을 해.”

나는 비녀를 내밀었다. 소와는 받지 않았다. 대신 머리에 꽂은 나무 젓가락을 매만졌다.

“그건 오라버니가 갖고 있어. 태후가 그거 내밀면서 또 뭘 시키면, 오라버니가 그 비녀 들고 와서 나한테 말해 줘.” 소와가 말했다. “오라버니가 누구 편인지는 그때 볼게.”

백무현이 칼을 칼집에 넣었다. 붉은 끈이 등잔 빛 속에서 한 번 흔들렸다.

“칠석에 태후가 폭군을 죽인다면, 우리는 그날 궁에 들어간다.” 그가 말했다. “태후 손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끝낸다. 그래야 그다음 판을 우리가 짠다. 그날 밤 침전 문 앞에 네가 서 있으면, 너도 벤다.”

*

배추 광주리는 돌아올 때도 차가웠다.

수라간 뒤뜰에 내린 건 해시가 지나서였다. 회랑을 따라 침전으로 가는 동안 등불이 하나도 안 켜져 있었다. 이상했다. 침전 앞뜰은 밤새 등불을 켜 두는 곳이었다. 매미도 울지 않았다. 내 발소리만 박석 위에서 울렸다.

침전 계단 아래, 진목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진목이 없었다.

대신 계단 맨 위에 사람 하나가 앉아 있었다. 등불이 없어서 얼굴은 안 보였다. 앉은 모양만 보였다. 무릎 위에 칼을 눕혔고, 한 손에 부채를 쥐고 있었다. 부채를 접었다 펴는 소리가 났다. 딱. 딱.

“어디 갔다 왔지?”

염휘의 목소리였다.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편전에서 대신들에게 쓰는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가 나한테 쓰이는 걸 처음 들었다.

어둠 속에서 쪽물 냄새가 내 옷에서 피어올랐다. 시큼하고 쿰쿰한 냄새. 궁에는 없는 냄새였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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