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75자)

스포일러 없는 숲

폭군의 호위무사로 빙의했는데 폭군이 나만 본다 · 윤재하

곤장 맞은 지 사흘 된 엉덩이로 말을 타 본 사람은 안다. 말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안장이 상처를 아래에서 한 번씩 때린다. 도성에서 서산까지 말로 반나절이었다. 나는 그 반나절 동안 속으로 원작 작가, 태후, 금부 관원, 그리고 말에게 차례로 욕을 했다. 말이 제일 억울했을 것이다.

“너 앉은 모양이 왜 그래?” 옆에서 말을 몰던 진목이 물었다.

“안 앉았어. 떠 있는 거야.”

진목이 고개를 돌렸다. 어깨가 떨렸다. 그가 웃는 걸 처음 봤다.

중간 참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는데 고 내관이 무언가를 들고 왔다. 누비 방석이었다. 그가 그걸 내 안장 위에 얹고 끈으로 묶었다. 끈이 이상하게 많았다. 앞뒤로 세 갈래, 양옆으로 두 갈래, 매듭마다 두 번씩 돌려 감겨 있었다. 말이 머리를 흔들 때마다 방석이 출렁였다.

“폐하께서 묶으셨다.” 고 내관이 불퉁하게 말했다. “내가 하겠다니까 끝내 손수 하시겠다고. 나 원 참, 사십 년을 모셨는데 방석 끈 묶으시는 건 처음 봤다.”

나는 둔덕 쪽을 봤다. 염휘는 말 위에서 딴 데를 보고 있었다. 일부러 딴 데를 보는 사람의 목덜미였다. 방석에 앉으니 상처가 반만 아팠다. 나머지 반은 매듭이 엉덩이를 찔러서 아팠다.

서산 행궁은 산 중턱의 평평한 터에 지어져 있었다. 기와 대신 너와를 얹은 작은 전각 셋과, 그 앞에 친 천막 여남은 채가 다였다. 행궁 뒤로는 소나무 숲이 산등성이까지 빽빽하게 올라갔다. 도성보다 바람이 서늘했다. 송진 냄새가 짙었고, 그 사이로 말똥과 가죽 마구 냄새가 섞였다. 궁 안의 침향 냄새가 하나도 안 나니까 숨이 이상하게 깊어졌다.

여기는 원작에 없는 곳이었다. 원작에서 이 무렵 황제는 하엽주에 쓰러져 누워 있었고, 서산 행궁은 3권에 백무현이 하룻밤 숨는 곳으로 딱 한 번 나왔다. 지금 내가 선 이 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는 몰랐다. 스포일러 없는 구간에 진입했다. 원작 독자로서 처음 겪는 공포였다. 다음 장을 넘기면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인 줄 몰랐다.

*

몰이는 위소겸이 맡았다.

금군 쉰 명과 산 아래 마을에서 끌어온 몰이꾼 서른 명이 산등성이를 따라 반원을 그리며 짐승을 아래로 몰았다. 몰이꾼들은 징과 꽹과리를 두드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숲을 울리며 내려왔다. 황제는 행궁 앞 둔덕 위에 말을 세우고 활을 쥐고 있었다. 태후는 오지 않았다. 행궁 전각 안에서 쉬겠다고 했다.

위소겸이 말을 몰고 둔덕 아래로 와서 나를 손가락질했다.

“호위대에서 하나 몰이로 내라. 북쪽 골짜기에 멧돼지가 숨었다. 금군만 공을 세우면 호위대 체면이 서겠느냐?”

“호위대는 폐하 곁을 지킵니다.” 내가 말했다.

“호위대 서른 명이 다 붙어 있을 필요는 없지.” 위소겸이 품에서 종이를 꺼내 흔들었다. 붉은 인주 자국이 보였다. 섭정 인장이었다. “마마께서 오늘 사냥의 일은 내게 맡기셨다. 몰이에 누구를 보낼지도.”

“그럼 통령께서 직접 가시지요. 멧돼지도 금빛 갑옷을 보면 반가워할 겁니다.”

진목이 옆에서 헛기침을 했다. 위소겸의 작은 눈이 더 작아졌다. 그가 말 위에서 몸을 숙여 나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신발 값을 칠석까지 기다리려 했는데, 오늘 받을 수도 있겠구나.”

“영수증은 주십니까?”

“무엇?”

“아닙니다.”

나는 둔덕 위를 올려다봤다. 염휘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나는 속으로 빌었다. 여기서 황제가 호위 하나를 감싸면 태후는 사냥을 핑계로 또 다른 판을 짠다. 차라리 내가 골짜기로 가는 게 나았다. 이 판에서 무엇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무엇이 나오는지 보기라도 해야 했다.

“제가 갑니다.” 나는 말했다.

“나도 간다.” 진목이 말했다.

“한 명이라 했다.” 위소겸이 말했다.

“저는 반 명입니다.” 진목이 대답했다. “이놈 엉덩이가 반쯤 떨어져 나가서 둘이 합쳐야 한 명이 됩니다.”

금군 몇이 웃음을 터뜨렸다. 위소겸은 웃지 않았다. 하지만 막지도 않았다.

*

북쪽 골짜기는 해가 안 들었다. 소나무가 하늘을 덮어서 대낮인데도 저녁 같았다. 발밑에 쌓인 솔잎이 푹신해 발소리가 안 났다. 몰이꾼들의 징 소리가 산등성이 저편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했다. 골짜기 바닥에 개울이 흘렀고, 물이 돌 사이를 지나며 낮게 웅얼거렸다.

멧돼지는 없었다. 대신 진목이 걸음을 멈췄다. 그가 손바닥을 펴서 나를 막았다. 개울 건너 바위 위, 솔잎이 흐트러진 자리가 있었다. 누가 거기 엎드려 있다가 자리를 옮긴 흔적이었다. 솔잎 위에 짚신 바닥 자국이 겹쳐 찍혀 있었다.

“금군은 짚신 안 신어.” 진목이 속삭였다. “가죽신이야. 몰이꾼으로 꾸민 거다.”

그 순간 소리가 났다.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 내 머리가 그 소리를 알아듣기 전에 이 몸이 먼저 옆으로 굴렀다. 화살이 내가 서 있던 자리의 소나무에 박혔다. 깃이 부르르 떨었다. 두 번째 화살이 내 어깨 위를 지나 개울에 떨어졌다. 진목이 칼을 뽑으며 바위 쪽으로 뛰었다. 나도 뛰려는데 엉덩이가 안장 대신 이번엔 솔잎 위에서 비명을 질렀다.

바위 뒤 높은 데서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이 보였다. 셋째 화살은 정확히 내 가슴을 겨누고 있었다.

그때 골짜기 입구 쪽에서 다른 시위 소리가 났다. 더 굵고 더 짧았다. 바위 위의 궁수가 활을 쥔 채로 뒤로 넘어갔다. 그의 몸이 바위를 굴러 개울에 떨어졌다. 물이 튀었다.

골짜기 입구에 염휘가 말을 세우고 있었다. 활을 아직 다 내리지 않은 채였다. 그는 둔덕에서부터 혼자 말을 몰고 우리를 따라 내려왔다. 호위대 서른 명이 그 뒤를 허겁지겁 따라오는 소리가 났다. 말발굽과 갑옷 부딪히는 소리가 숲을 울렸다.

나는 개울로 내려가 떨어진 궁수를 뒤집었다. 화살이 목 옆에 박혀 있었다. 젊었다. 스물 남짓, 턱에 수염이 덜 났고, 짚신 위로 금군 바지가 보였다. 손에 쥔 활은 금군 활이었다. 그의 눈은 아직 떠 있었다. 개울물이 그의 뺨을 적시며 흘러내려 갔다. 그는 무엇을 위해 바위 위에 엎드려 있었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위에서 시켰고, 시키는 대로 했다.

“황상께서 금군을 쏘셨다!”

목소리가 골짜기를 울렸다. 위소겸이 금군 스무 명과 몰이꾼 열 몇 명을 이끌고 반대쪽 비탈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크게, 몰이꾼들 귀에 다 들리도록 외쳤다.

“사냥터에서 금군 병사를 쏘셨다! 다들 보았느냐!”

몰이꾼들이 걸음을 멈췄다. 징을 든 늙은 몰이꾼 하나가 개울 속의 시신을 보고, 말 위의 황제를 보고, 다시 시신을 봤다. 그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것을 나는 알았다. 원작을 읽으면서 백성이 폭군을 볼 때마다 짓던 표정이었다. 작가는 그 표정을 「진저리」라고 썼다.

염휘가 말에서 내렸다. 그는 위소겸에게 걸어갔다. 금군 스무 명이 무의식적으로 반 걸음 물러섰다. 위소겸만 서 있었다.

“그 활이 누구를 겨눴는지 네가 말해 볼 테냐?” 염휘가 말했다.

“사냥터에서는 화살이 길을 잃기도 합니다.” 위소겸이 고개를 숙였다. 숙이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병사가 멧돼지를 겨눴는데 호위가 그 앞에 섰겠지요. 그걸 황상께서 오해하시고.”

“멧돼지는 없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호위는 입 다물어라.”

“짚신 신고 금군 활 든 멧돼지도 있습니까?”

진목이 내 옆에서 아주 작게 「야, 그만」 했다. 위소겸이 나를 봤다. 처음으로 비웃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비웃는 얼굴보다 무서웠다.

염휘가 시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오래 봤다. 그러고는 몰이꾼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금군이다. 짚신을 신고 바위 위에 엎드려 내 호위를 쐈다. 그래서 내가 쐈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믿든 말든 너희 마음이다. 이 아이를 산 아래로 내려 장례를 치러 줘라. 값은 내가 낸다.”

몰이꾼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도 황제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다들 땅을 봤다. 그 땅에 시신이 있었다.

나는 그날 깨달았다. 원작은 이런 장면을 하나도 안 적었다. 그러고 나서 「백성은 폭군을 미워했다」라고 한 줄로 적었다. 그 한 줄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오늘 산 아래로 내려갈 몰이꾼 열 몇 명이 마을에 가서 무엇이라고 말할지, 나는 이제 안다. 황제가 사냥터에서 제 병사를 쐈다. 거기까지만 말할 것이다.

*

밤에 행궁 천막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앉을 수가 없어서였다.

황제 천막은 크지 않았다. 바닥에 짐승 가죽이 깔렸고, 기둥에 등잔 하나가 걸렸다. 천막 천을 통해 바깥 모닥불 빛이 일렁였다. 송진 타는 냄새가 천막 안까지 스며들었다. 밖에서 진목과 호위대가 천막을 빙 둘러 지키고 있었다. 오늘 밤은 금군을 천막 근처에 한 명도 못 오게 했다.

염휘는 낮에 쓴 활을 무릎에 놓고 시위를 손가락으로 튕기고 있었다. 퉁, 퉁. 낮은 소리가 났다.

“스무 살쯤이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 병사요.”

“알아.”

“아무것도 몰랐을 겁니다. 시키니까 쏜 거예요.”

“그것도 안다.” 그가 시위를 손바닥으로 눌러 소리를 죽였다. “그래도 쐈다. 네 가슴을 겨누고 있었으니까. 다시 그 자리에 서면 또 쏠 거다.”

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원작 독자로서 나는 이 사람을 폭군이라고 불렀다. 지금 이 사람은 나 때문에 사람을 죽였고, 그걸 숨기지 않았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무서운지 나는 정하지 못했다.

“처음 본 날부터 생각했다.” 염휘가 활을 옆에 내려놓았다. “왜 네가 나를 봤는지.”

“버릇이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버릇이면 다른 사람도 봤어야지. 너는 어마마마를 볼 때는 땅을 봤다. 소겸을 볼 때는 신발을 봤다. 나를 볼 때만 얼굴을 봤다.” 그가 무릎걸음으로 내 앞까지 왔다. 등잔 빛이 그의 얼굴 반쪽을 가렸다. “이 궁에서 아무도 나를 안 본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 모른다. 며칠째 너를 보면서 배우고 있다.”

“진도가 빠르십니다.”

“그래?”

“네. 회사로 치면 입사 일주일 만에.”

그 뒤는 말하지 못했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 위에 닿았다. 서툴렀다. 복숭아를 깎던 손처럼, 실을 감던 손처럼 서툴렀다. 너무 세게 닿았다가, 놀란 듯이 떨어졌다가, 다시 천천히 닿았다. 송진 냄새와 활시위의 삼 냄새, 그리고 그 밑에 침향이 아주 옅게 남아 있었다. 그의 손이 내 뒷목을 감쌌다. 손바닥에 활 쥐던 굳은살이 있었다.

머릿속에서 원작 독자 한서준이 비명을 질렀다. 나 백무현 응원했는데. 삼백십이 화 내내. 이 사람 원작 최종 보스였는데.

그런데 나는 떨어지지 않았다.

“폐하.”

천막 밖에서 진목의 목소리가 났다. 다급했다. 염휘가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의 숨이 고르지 않았다.

“도성에서 전갈입니다. 비단 거리에 불이 났습니다. 야율 누이가 일하는 가게입니다.” 진목이 숨을 한 번 고르는 소리가 천 너머로 들렸다. “가게는 다 탔고, 소와가 없습니다. 시신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나는 품속을 더듬었다. 은비녀가 거기 있었다. 휜 나비 날개가 손바닥을 찔렀다. 이 몸의 손가락이 또 그 날개를 쓸고 있었다.

6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