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07자)
사관의 붓
폭군의 호위무사로 빙의했는데 폭군이 나만 본다 · 윤재하
정전 바닥은 검은 벽돌이었다. 벽돌 하나가 내 신발 두 짝을 합친 것만큼 컸고, 수백 년 동안 대신들이 엎드렸다 일어난 자리마다 반들반들 닳아 있었다. 아침 햇살이 열린 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그 닳은 자리만 골라 비췄다. 빛이 닿은 벽돌은 물에 젖은 것처럼 번들거렸다.
옥좌 뒤에는 발이 드리워져 있었다. 가는 대오리를 엮은 발 너머로 사람 그림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태후였다. 황제가 아직 어리거나 약할 때 웃전이 발을 치고 그 뒤에 앉아 정사를 함께 듣는 일을 이 나라에서는 수렴청정이라고 불렀다. 염휘는 스물여덟이었다. 발은 걷히지 않았다.
나는 옥좌 오른편 기둥 옆에 섰다. 진목은 왼편 기둥이었다. 양쪽 줄로 늘어선 대신은 쉰 명쯤 되었다. 관복에서 풀 먹인 냄새가 났다. 매미 소리가 정전 안까지는 안 들어왔다. 대신 누군가 소매 안에서 부채를 몰래 흔드는 소리가 났다. 사락, 사락.
그날 조회가 무엇인지 나는 알았다. 원작 1권 9화. 독자들이 「폭군 각성 회차」라고 부르던 화다. 「사관 윤보는 곤장 마흔 대를 다 맞기 전에 숨이 끊어졌다. 그가 적은 문장은 ‘상이 취하여 호조 참판을 매질하였다’였다.」 그 뒤로 도성 선비들이 들고일어났고, 그 선비들 가운데 절반이 나중에 백무현 편에 섰다. 원작에서 반란군이 명분을 얻은 날이었다.
나는 그 날에 칼을 차고 서 있었다.
“신 예조 판서, 황공하오나 아뢸 것이 있사옵니다.”
줄 앞쪽에서 늙은 대신 하나가 나섰다. 태후 쪽 사람이었다. 원작에서 이 사람은 3권에 태후 편에서 이름이 한 번 더 나오고, 4권에 목이 걸린다. 그가 소매에서 종이를 꺼냈다.
“사관 윤보가 쓴 초고이옵니다. 폐하의 성덕을 더럽히는 문장이 있어, 차마 묻어 둘 수 없었사옵니다.”
정전이 술렁였다. 사관이 쓰는 초고는 임금도 못 본다. 그날그날의 일을 적어 궤에 넣어 두고, 임금이 죽은 뒤에야 연다. 그게 이 나라의 법이었고, 원작도 그 법을 몇 번이나 적어 두었다. 그 궤를 연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발 뒤에 앉아 있었다.
예조 판서가 종이를 펴 읽었다. “상이 취하여 호조 참판을 매질하였다.”
염휘가 웃었다. 소리 없이 입꼬리만 올라갔다. 원작대로라면 지금 그는 말한다.
“사관을 끌어내라. 곤장 마흔.”
말했다.
정전 뒤쪽 문으로 금부 관원들이 들어왔다. 사관석에서 젊은 관원 하나가 일어났다. 서른이 안 돼 보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는데 손에 쥔 붓은 내려놓지 않았다. 붓 끝에서 먹이 한 방울 떨어져 그의 관복 앞자락에 번졌다. 그 사람이 윤보였다. 원작에서 이름과 마지막 문장만 남은 사람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걸 바꾸면 반란군이 명분을 잃는다. 백무현이 일어나는 날이 늦어진다. 원작 주인공이 손해를 본다. 나는 백무현을 응원했다. 삼백십이 화 내내.
그리고 나는 수련의 손톱을 생각했다.
다리가 먼저 나갔다. 기둥 옆에서 대신들 줄 사이로 세 걸음. 등 뒤에서 진목이 이를 갈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율, 이 미친.」 나머지는 못 들었다.
“폐하, 아뢸 것이 있사옵니다.”
정전이 얼어붙었다. 호위가 조회에서 입을 여는 일은 없다. 그건 이 나라 법이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의 숨이 아는 일이었다. 대신 쉰 명이 한꺼번에 숨을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소리가 실제로 들린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염휘가 옥좌에서 일어났다. 계단을 내려왔다. 허리에 찬 칼을 뽑으면서 내려왔다. 칼집에서 칼날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길었다. 그가 내 앞에 섰고, 칼끝이 내 울대 밑에 닿았다. 쇠가 차가웠다. 이틀 전 진목의 목검과는 다른 차가움이었다.
“너도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계산입니다.” 칼끝이 숨 쉴 때마다 살갗을 눌렀다. 나는 숨을 짧게 쉬었다. “사관을 죽이시면 그 문장이 맞는 문장이 됩니다. 매질하신 건 맞으니까요. 그런데 그 문장에는 까닭이 빠져 있습니다. 사관을 살려 두시고, 까닭까지 적게 하십시오.”
“까닭.”
“호조 참판이 지난봄 진휼미를 빼돌려 판 일이요.”
원작 5권에 한 줄 있었다. 반란군이 금군 창고를 털었더니 거기서 호조 도장이 찍힌 진휼미 자루가 나왔다는 문장이었다.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 줘야 할 쌀이었다. 원작은 그 쌀이 어떻게 금군 창고까지 갔는지 적지 않았다. 나는 그 문장 하나에 내 목을 걸었다.
염휘의 눈이 아주 조금 커졌다. 그는 칼을 거두지 않고 고개만 돌렸다. 대신들 줄 중간에 엎드린 사람 하나를 봤다. 어깨가 둥글고 목이 짧은 사내였다. 그 사내의 등이 떨리고 있었다.
“호조 참판.”
“신, 신은.”
“쌀을 누구에게 팔았느냐?”
참판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눈이 정전 안쪽, 옥좌 뒤의 발 쪽으로 한 번 갔다가 금방 내려왔다. 그 한 번을 정전 안의 모두가 봤다.
발 뒤에서 태후의 목소리가 났다. 여전히 웃는 목소리였다.
“황상께서 호위의 말을 들으시는군요.”
정전 공기가 한 번 더 내려앉았다. 염휘가 칼을 내렸다. 칼끝이 내 울대에서 떨어지면서 살갗을 아주 얕게 긁었다. 피가 한 방울 맺혔다가 목을 타고 흘렀다. 간지러웠다.
“사관.” 염휘가 윤보를 봤다. “방금 일까지 다 적어라. 참판이 누구를 봤는지도.”
윤보가 붓을 쥔 채로 엎드렸다. 그의 어깨가 들썩였다. 울고 있었다.
“그리고.” 염휘가 나를 내려다봤다. “호위가 조회에서 입을 연 죄. 곤장 스무 대.”
비튼 장면 셋째. 값은 엉덩이로 치른다.
*
곤장은 정전 뜰에서 맞았다.
형틀에 엎드리자 나무판에서 송진 냄새와 오래된 땀 냄새가 올라왔다. 금부 관원이 곤장을 들었다. 넓적한 노 같은 나무였다. 첫 대가 떨어지는 순간 나는 회사원 한서준이 평생 몰랐던 소리를 냈다. 이 몸은 참았는데 내 입은 못 참았다. 둘째 대부터는 이 몸이 이겼다. 이를 물었고, 형틀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움켜쥐었다. 열 대째에 형틀 모서리의 나뭇결이 손톱 밑으로 파고들었다. 열다섯 대째부터는 숫자를 세는 관원의 목소리만 들렸다.
스무 대를 다 맞고 일어나려는데 다리가 안 펴졌다. 진목이 와서 내 팔을 자기 어깨에 걸쳤다.
“미쳤어.” 그가 말했다.
“알아.”
“진짜 미쳤어. 조회에서. 대신들 사이로.” 그가 나를 거의 끌다시피 걸었다. 그러다 아주 작게 덧붙였다. “사관이 살았어. 야율이었으면 그런 짓 못 했어.”
“칭찬이야?”
“아니.”
*
해 질 무렵, 호위대 숙소 마루에 엎드려 있는데 누가 문간에 와서 섰다. 아침에 먹물 떨어진 관복을 그대로 입은 윤보였다. 그는 문지방을 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허리를 깊게 숙였다. 손에 든 것은 붓도 종이도 아니고, 기름종이에 싼 무언가였다.
“약과요. 집에서 어머니가 싸 준 겁니다.” 그가 꾸러미를 마루 끝에 내려놓았다. 꿀과 참기름 냄새가 종이를 뚫고 나왔다. “오늘 일을 다 적었습니다. 참판이 발 쪽을 본 것까지요.”
“잘하셨습니다.”
“호위 야율이 조회에서 입을 열었다는 것도 적었습니다.”
“제 이름도요?”
“예. 이름이 사초에 오르는 호위는 이 나라에서 처음일 겁니다.” 윤보가 아주 조금 웃었다. 아침에 하얗게 질렸던 얼굴에 겨우 핏기가 돌아와 있었다. “곤장 스무 대를 맞았다는 것도 적었습니다. 그건 빼 달라고 하셔도 못 뺍니다.”
“빼 주시면 안 됩니까? 모양이 좀 빠지는데요.”
“안 됩니다. 사관은 그런 걸 빼면 안 됩니다.” 그가 다시 허리를 숙였다. “그 덕에 오늘 저녁에 어머니 얼굴을 봅니다.”
그가 돌아갔다. 나는 엎드린 채로 약과 꾸러미를 끌어당겼다. 원작에서 이 사람은 오늘 밤 형틀 위에서 죽었다. 원작에서 이 약과는 누구 입에도 안 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약과 하나를 입에 넣었다. 너무 달아서 이가 시렸다.
*
밤에 염휘가 고약 단지를 들고 침전 문 안쪽으로 왔다.
나는 문 옆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서 있을 수가 없어서 엎드린 채로 호위를 섰다. 고 내관은 이걸 보고 「이게 무슨 호위냐? 이건 문 앞에 깔아 놓은 거적이다」 하고 혀를 찼다. 맞는 말이었다.
“바지 내려라.”
“예?”
“고약이다.”
“폐하, 그건 어의가.”
“어의는 어마마마 사람이다.” 염휘가 단지 뚜껑을 열었다. 검고 끈적한 것에서 송진과 쑥 냄새가 확 퍼졌다. “내 사람은 침전에 서른 명뿐이라고 말했지. 그 서른 중에 고약을 바를 줄 아는 놈은 없다.”
“폐하는 아십니까?”
“모른다.”
모르는 사람의 손이 내 등과 그 아래로 고약을 발랐다. 바른다기보다 얹었다. 한 숟갈 얹고,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모자란 것 같다며 또 한 숟갈 얹었다. 상처에 닿을 때마다 나는 바닥에 이마를 박고 신음을 삼켰다. 고약이 허리를 넘어 등 한가운데까지 올라왔다. 거기는 안 맞은 자리였다.
“폐하, 거기는 멀쩡합니다.”
“미리 발라 둔다.”
“미리요?”
“너는 또 맞을 거다.” 그가 고약 묻은 손을 내려다봤다. “조회에서 입을 여는 놈이 한 번으로 끝나겠느냐?”
웃으면 엉덩이가 울려서 웃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바닥에 얼굴을 묻고 어깨만 떨었다. 염휘가 그걸 보고 고약 단지를 내려놓았다. 손을 수건에 닦았다. 닦고 나서 품에서 그 낡은 부채를 꺼내 내 얼굴 앞에 부쳐 주었다. 바람이 미지근했다. 금 간 부채 살에 감긴 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부채, 오래된 거지요?”
“어머니가 만들었다.” 그는 부채질을 멈추지 않았다. “침방 나인이었다. 바느질하는 궁녀. 선황의 눈에 한 번 들었고, 나를 낳았고, 내가 아홉 살 때 죽었다. 그 뒤로 나는 자경전에서 컸다.”
자경전. 얼음 대야가 놓인 그 대청에서 아홉 살짜리가 컸다. 나는 그 서늘한 공기를 떠올렸다.
“살이 부러진 건 열두 살 때다. 어마마마가 이 부채를 아궁이에 넣으라고 했다. 황자가 나인의 물건을 쥐고 다니면 안 된다고. 내가 안 내놓았더니 소겸이 빼앗아 밟았다.” 그가 금 간 살의 실을 손톱으로 건드렸다. “실은 내가 감았다. 어머니한테 바느질을 배운 적이 없어서, 이렇게밖에 못 감았다.”
실은 엉망이었다.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돌려 감아서 혹처럼 부풀어 있었다. 복숭아를 깎던 손과 같은 손이 감은 매듭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원작은 이 부채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원작의 폭군은 부채를 든 적이 없었다. 원작 작가가 이걸 몰랐던 건지, 알고도 안 쓴 건지 나는 모른다. 다만 오늘 밤 그 부채 바람이 내 얼굴에 닿고 있었다.
문밖에서 고 내관이 기침을 했다. 일부러 하는 기침이었다.
“폐하, 자경전에서 전갈입니다. 사흘 뒤 서산에서 사냥을 여신답니다. 요즘 폐하 기운이 없어 보이신다고, 바람을 쐬시게 하겠다고요.”
염휘의 부채가 멈췄다.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원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넘겼다. 1권부터 12권까지. 서산 사냥은 없었다. 원작에서 이 무렵 황제는 하엽주를 마시고 열흘째 누워 있었다. 누워 있는 황제를 사냥에 데려갈 사람은 없다.
내가 잔을 엎었기 때문에 황제가 서 있다. 황제가 서 있기 때문에 태후가 사냥을 열었다. 원작에 없는 장면이 원작에 없는 장면을 낳고 있었다. 거기서부터는 나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