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254자)

검토하겠습니다

폭군의 호위무사로 빙의했는데 폭군이 나만 본다 · 윤재하

고 내관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깼다.

“폐하! 옥체를 어찌, 바닥에서, 어찌 이런!”

눈을 뜨니 천장이 아니라 침전 문의 빗장이 보였다. 나는 문 앞 바닥에 모로 누워 있었고, 내 몸 위에 비단 이불이 덮여 있었다. 금실로 구름이 수놓인 이불이었다. 이불에서 침향 냄새가 났다. 황제의 이불이었다.

그리고 내 머리맡에 황제가 앉아 있었다. 문에 등을 기대고, 내 칼을 무릎에 눕힌 채로. 그는 눈을 감고 있다가 고 내관의 비명에 한쪽 눈만 떴다.

“시끄럽다.”

“폐하께서 밤새 여기, 이 바닥에, 호위 놈은 폐하 이불을 덮고, 폐하께서는.” 고 내관이 말을 다 맺지 못하고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고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너, 너는.”

나는 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나 엎드렸다. 일어나는 동시에 엎드리는 동작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이마를 마룻바닥에 박으면서 머릿속으로 수습안을 짰다. 회사로 치면 회장님 차에서 회장님 무릎 베고 잔 신입 사원이었다. 수습안 같은 건 없었다.

“소인이 죽을죄를.”

“이미 죽을죄를 지었다.” 염휘가 칼을 내 앞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허리를 펴는 순간 그의 등에서 뚝 소리가 났다.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날짜는 아직이다.”

고 내관이 그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명을 내리실 때마다 저 말씀을 붙이시니, 이러다 날짜가 아예 안 오겠네.」

*

자경전은 서늘했다.

문지방을 넘자마자 땀이 식었다. 대청 네 귀퉁이에 놋대야가 놓여 있었고, 대야마다 얼음덩이가 반쯤 녹아 물 위에 떠 있었다. 한여름에 얼음이었다. 겨울에 강에서 떠다 빙고에 묻어 둔 얼음을 이 궁에서는 태후 방을 식히는 데 썼다. 얼음 녹는 물 냄새에 사향이 섞여 있었다. 콧속이 시렸다.

태후는 대청 안쪽 평상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위소겸이 서 있었다. 어젯밤 술에 젖었던 신발이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제 탕약은 맛있었느냐?”

태후의 첫마디였다. 나는 엎드린 채로 대답했다. “쓴맛이 있었습니다.”

“잠만 오는 약이었다. 네가 마실 줄 알았지.” 태후가 부채로 얼음 대야 쪽을 가리켰다. 바람이 얼음을 스치고 내 쪽으로 왔다. “황상은 남이 내민 것을 먼저 마시지 않는다. 늘 곁의 사람에게 먼저 먹인다. 시음 내관이 셋째로 바뀌었지. 그런데 네가 반 사발이나 마셨다고 들었다. 황상 곁의 사람이 황상 대신 쓰러진다면, 다음엔 그 사람을 어디에 세워야 할지 알 수 있지.”

등이 서늘했다. 얼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사람은 어젯밤 탕약 한 사발로 나를 쟀다. 내가 독이 있을지도 모르는 잔을 황제 대신 마시는 사람인지 아닌지.

“연회에서 넘어진 건 실수였느냐?”

“발이 꼬였습니다.”

“그래. 발이 꼬였겠지.” 태후가 웃었다. 그러고는 손짓을 했다. 방 상궁이 다가와 내 앞에 작은 비단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열어 보아라.”

주머니 안에 은비녀 하나가 들어 있었다. 끝에 나비가 하나 앉아 있는 모양이었고, 나비 한쪽 날개가 살짝 휘어 있었다. 누가 밟았다가 손으로 다시 편 것처럼, 휜 자리에 손톱 자국 같은 줄이 나 있었다.

손이 저절로 떨렸다. 이번에는 내 쪽이 아니었다. 이 몸이었다. 나는 비녀를 처음 봤는데 이 몸의 손가락은 그 휜 날개를 안다는 듯이 거기만 쓸었다. 손끝이 날개의 줄을 따라가는 동안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혔다. 이 몸의 주인이 언젠가 이 날개를 펴 준 적이 있었다. 그건 몸이 알았고 나는 몰랐다.

“비단 거리에서 일하는 아이더구나. 손이 야무지고 눈이 밝아.” 태후가 부채를 접었다. “칠석 밤, 침전 빗장을 걸지 마라. 그러면 그 아이는 그 비녀를 꽂고 시집을 간다.”

“빗장을 걸지 않으면 누가 들어옵니까?”

위소겸이 코웃음을 쳤다. “호위 주제에 묻는 것도 많다.”

“그건 네가 알 일이 아니다.” 태후가 말했다. “너는 문만 열어 두면 된다. 그 밤이 지나면 네 처형 날짜도 사라진다. 황상이 쥐고 있는 그 날짜 말이다.”

나는 비녀를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손이 떨려서 두 번 만에 넣었다. 그러고는, 정말로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삼 년 동안 메신저 창에 친 말이 입에서 먼저 나왔다.

“넵, 검토해 보겠습니다.”

얼음 대야에서 얼음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대청 안이 그 소리만큼 조용했다.

“검토?” 태후가 되물었다.

“잘 살펴서 생각해 보겠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할 것이 무엇이냐?”

“문을 언제 열어 둬야 할지, 몇 치를 열어 둬야 할지, 그런 것들이옵니다.” 나는 고개를 더 숙였다. 이마에 땀 대신 얼음물 김이 닿았다. “문이란 게 반만 열면 바람에 닫히고, 다 열면 안에서 보이니까요.”

태후가 한참 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웃었다. 처음으로 소리를 내서 웃었다.

“재미있는 아이다. 소겸아, 배웅해 드려라.”

위소겸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일으켜 세우면서 그는 내 손목을 쥐었다. 어제 오랏줄에 쓸린 자리였다. 그가 엄지로 거기를 눌렀다. 딱지가 터지는 느낌이 났다. 나는 소리를 안 냈다. 이 몸이 소리를 안 냈다.

“연회에서 내 신발을 적신 값은 칠석 밤에 받겠다.” 그가 귀에 대고 말했다. 입에서 술 냄새가 났다. 아침부터였다.

*

자경전에서 침전으로 가는 회랑 중간에 진목이 기둥에 기대 서 있었다. 나를 기다린 것 같았는데, 그는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내 손목을 잡아당겨 봤다. 딱지가 터진 자리에서 피가 배어 소맷부리가 검붉게 젖어 있었다.

“누가 그랬어?”

“신발 주인.”

진목이 혀를 찼다. 그가 자기 허리띠에 끼워 둔 무명 천을 꺼내 내 손목에 감았다. 감는 솜씨가 빨랐다. 두 바퀴 감고, 끝을 이로 찢어 반으로 가르고, 매듭을 지었다. 야율 손목에도 이렇게 감아 준 적이 많았을 손이었다. 무명에서 땀 냄새와 숯 냄새가 났다.

“진목. 소와 알지?”

그의 손이 매듭 위에서 멈췄다. “모를 리가 있어? 소와는 내가 업어서 키웠어. 너희 남매 고향에서 도성 올라올 때 걔가 열 살이었잖아. 열 살짜리가 네 갑옷 끈을 다 풀어 놔서 신병 첫날 너 혼났던 거 기억 안 나?”

기억이 날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비단 거리 「금화방」에 있지?” 내가 물었다. 아까 태후가 비단 거리라고 했다. 가게 이름은 찍은 것이었다.

“그 옆집이야. 「연화방」.” 진목이 나를 이상하게 봤다. “네가 녹봉 절반을 거기로 보내잖아. 매달 초하루마다. 근데 왜 물어?”

“태후마마가 그 애 비녀를 갖고 계셔.”

진목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매듭을 한 번 더 당겨 단단히 조였다. 내 손목이 욱신거렸다.

“나는 그 애 얼굴 아는 사람이야.” 진목이 말했다. “네가 그 애를 어떻게 하려는지 정하면, 말해.”

*

침전으로 돌아오니 염휘가 마루에 앉아 재상의 귀를 긁고 있었다. 늙은 개는 어젯밤보다 눈빛이 맑았다. 꼬리를 두 번 흔들었다. 염휘는 나를 보지 않았다.

“어마마마가 무엇을 주더냐?”

물어보는 말투가 아니었다. 이미 안다는 말투였다. 이 궁에서 내가 자경전에 다녀온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비녀를 꺼내 마루에 올려놓았다.

“제 누이를 쥐고 계십니다. 칠석 밤에 빗장을 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염휘가 비녀를 내려다봤다. 휜 날개를 봤다. 그의 손이 재상의 귀에서 멈췄다.

“방 상궁의 목을 친다. 오늘.”

“안 됩니다.”

그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나는 그 눈을 봤다. 원작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뿐」이라고 쓴 얼굴이 정말로 그것뿐인 얼굴이 되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얼굴이었다.

“다시 말해 봐라.”

“지금 방 상궁을 베시면 태후마마는 칠석 계획을 바꾸십니다. 그러면 칠석 밤에 누가, 어느 문으로, 몇이나 오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지금은 압니다. 빗장으로 옵니다.” 나는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리고 방 상궁이 죽으면 제 누이가 우물로 갑니다. 수련처럼요.”

“네 누이 하나와 내 목 중에 무엇이 더 무거우냐?”

“폐하 목이 더 무겁습니다.”

“그런데 왜 막느냐?”

“무거운 쪽을 지키려고 가벼운 쪽을 먼저 버리면, 다음엔 폐하 곁에 아무도 안 섭니다.” 말하면서 나는 수련의 손톱을 생각했다. “벌써 하나 버렸습니다. 제가 잔을 엎어서요.”

재상이 낑 하는 소리를 냈다. 염휘의 손이 개의 귀를 너무 세게 쥐고 있었다. 그가 손을 풀었다. 개 귀를 한 번 쓸어 주고는 마루에서 일어섰다. 내 앞으로 와서 섰다. 나보다 한 뼘쯤 컸다. 그가 그늘을 만들었다.

“너는 내 호위다. 명은 내가 내린다.”

“예.”

“그런데 너는 사흘째 내 명을 비틀고 있다. 죽으라면 날짜를 따지고, 마시라면 반 사발을 마시고, 베라면 베지 말라고 한다.”

“명이 틀리면 고치는 것도 일입니다. 결재 올라온 거 그대로 찍으시면 나중에 다 폐하 책임이 됩니다.”

“결재.” 그가 그 말을 입안에서 굴렸다. 그러고는 아주 낮게 물었다. “너는 내가 무엇을 쥐고 있는 줄 아느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원작은 폭군이 쥔 것을 다 적은 줄 알았다. 칼, 옥새, 나라.

“침전 호위대 서른 명이다.” 염휘가 말했다. “그게 전부다. 금군은 소겸이 쥐었고, 도성 수비대는 금군 아래 있다. 조정에서 칙령을 내리는 인장은 어마마마 허리에 달려 있다. 내 이름으로 나가는 명의 절반이 그 인장으로 나간다. 너희들이 폭군이라고 부르는 그 명들 말이다.”

“절반이요?”

“나머지 절반은 내가 했다.” 그는 숨기지 않았다. “형부 시랑을 내 손으로 벴다. 대신들 앞에서. 그자가 무엇을 했는지 말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베었다. 그것은 내가 한 일이다.”

나는 원작의 문장을 떠올렸다. 「황제는 형부 시랑의 목을 자기 손으로 쳤고, 피가 옥좌 계단을 적셨다.」 원작은 그 문장 하나로 끝났다. 시랑이 무엇을 했는지는 원작도 쓰지 않았다. 나는 원작이 쓰지 않은 것들이 이 궁에 얼마나 많은지 이제야 세기 시작했다.

염휘가 마루에 놓인 비녀를 집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휜 날개가 손바닥을 찔렀다.

“칠석까지 아흐레다.” 그가 말했다. “그날 밤, 빗장은 네가 열어라.”

“예?”

“어마마마가 무엇을 보내는지 내 눈으로 보겠다. 보고 나서 벤다. 네 누이는 그 전에 데려온다. 방법은 네가 찾아라.”

그는 마루를 내려가 침전 안으로 들어갔다. 재상이 일어나 그 뒤를 비척비척 따라갔다.

나는 비녀를 쥐고 마루 끝에 서 있었다. 태후는 빗장을 열라고 했다. 황제도 빗장을 열라고 했다. 한쪽은 칼을 들이려고, 한쪽은 칼을 끌어들이려고. 그리고 그 빗장 앞에는 내가 선다. 미끼는 하나인데 낚싯대가 둘이었다.

나는 속으로 원작 작가에게 댓글을 하나 더 달았다. 작가님, 엑스트라한테 이런 분량 주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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