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77자)
침전 문 안쪽
폭군의 호위무사로 빙의했는데 폭군이 나만 본다 · 윤재하
묘시였다. 휴대폰이 있었다면 화면에 새벽 다섯 시 몇 분이라고 찍혔을 시각이다.
수라간 뒤편 우물가에 사람이 열 남짓 모여 있었다. 다들 소리를 안 냈다. 궁녀 둘이 서로 손을 잡고 서 있었고, 그중 하나가 자꾸 발뒤꿈치를 들었다 놓았다. 우물 둘레의 돌에는 밤사이 맺힌 이슬이 마르지 않아 젖은 이끼 냄새가 났다. 그 냄새에 물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두레박 줄에 묶여 올라온 사람이 우물 옆 돌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연둣빛 저고리가 물을 먹어 검게 보였다. 얼굴은 누가 벌써 수건으로 덮어 놓았고, 수건 밖으로 나온 손만 보였다. 손톱 끝이 연한 초록으로 물들어 있었다. 연잎을 짓이겨 술을 담그는 사람의 손이었다.
“수련이야.”
옆에서 진목이 말했다. 그가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는지 몰랐다. 그는 시신을 보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밤에 물 길으러 나왔다가 빠졌대. 방 상궁이 그렇게 말했어.”
밤에 물 길을 사람은 없다. 나는 어젯밤 그 도르래 소리를 들었다. 한 번 감기고 그쳤다. 사람 하나를 끌어 올릴 때 나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내려보낼 때 줄이 풀리는 소리였다.
원작에서 수련은 7권까지 산다. 7권에서 북문 빗장을 풀고, 백무현의 군대가 들어오는 것을 성벽 위에서 보다가, 화살을 맞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 장면 댓글이 사천 개였다. 나도 하나 달았다. 수련아 너 진짜 고생했다.
그 수련이 지금 7권이 아니라 1권에서, 내가 엎은 잔 때문에 죽어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수건 밖으로 나온 손을 봤다. 만지지 못했다. 이름을 부르려고 했는데 입이 안 열렸다. 내가 아는 수련은 문장 속의 수련이었고, 여기 누운 사람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덮은 수건 한 귀퉁이가 바람에 들썩였다. 나는 그걸 손으로 눌러 주었다. 내가 한 건 그것뿐이었다.
*
진시, 아침 여덟 시쯤. 죄인을 다루는 금부 관원 넷이 호위대 숙소로 왔다.
“죄인 야율. 오늘 사시에 저잣거리에서 형을 집행한다.”
나는 손목에 오랏줄을 받았다. 삼베 줄이 거칠어서 살갗이 바로 쓸렸다. 관원 하나가 줄 끝을 잡고 앞장섰고, 나머지 셋이 내 양옆과 뒤를 막았다. 숙소 마당을 지나는데 호위대 동료들이 처마 밑에 줄줄이 서서 나를 봤다. 아무도 말을 안 했다. 진목만 처마 기둥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자기 팔뚝을 탁탁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어젯밤 그 웃음은 뭐였지? 「죽는 날까지는」을 따라 하던 그 목소리는? 나는 원작을 비틀었다. 황제는 독을 안 마셨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사시에 죽는다. 원작은 이 한 줄만큼은 끝까지 지키려는 모양이었다.
단봉문 밖에 수레가 서 있었다. 죄인을 태우는 수레는 바닥에 나무 우리가 얹혀 있었고, 우리 바닥에 앞서 탄 사람들이 흘린 것들이 검게 말라붙어 있었다. 관원이 나를 그 위로 밀어 올렸다. 우리 문이 닫히고 빗장이 걸렸다. 수레가 덜컹 움직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울 뻔했다. 이 몸은 안 울었는데, 나는 울 뻔했다. 지하철 막차에서 졸다가 남의 몸으로 깨어나 사흘을 살고, 개 토사물 치우다가 죽는 인생이라니. 퇴사 사유로도 이상하다.
수레가 단봉문 앞 큰길로 꺾어 들려는 참이었다.
“멈춰라! 거기 멈춰!”
뒤에서 목소리가 쫓아왔다. 갈라지고, 숨이 차고, 끝이 꺾이는 목소리였다. 나는 우리 틈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 내관이 관복 자락을 두 손으로 걷어 쥐고 뛰어오고 있었다. 예순은 넘어 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뛰는 걸 처음 봤다. 모자가 벗겨질 것 같아 한 손을 머리에 얹었다가, 자락이 발에 감기자 다시 내렸다가, 결국 모자가 벗겨져 길바닥에 굴렀다. 그는 모자를 줍지 않았다.
“어명이다!” 고 내관이 수레 바퀴를 붙들었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면서 소매에서 종이를 꺼냈다. “죄인 야율의 형은 미룬다. 날짜는 짐이 정한다. 오늘부터 침전 문 안쪽에 세워라.”
관원들이 서로 얼굴을 봤다. 그중 하나가 종이를 받아 끝에 찍힌 도장을 들여다봤다. 섭정 인장이 아니라 황제의 옥새였다.
“이 늙은이가 아침부터 무슨 꼴이냐?” 고 내관이 우리 빗장을 직접 뽑으면서 나를 노려봤다. “폐하께서 눈을 뜨시자마자 너부터 찾으셨다. 처형장에 갔다고 아뢰었더니 수라상을 엎으셨어. 그 수라를 누가 차렸는 줄 아느냐? 내가 차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음부터는 끌려가기 전에 말을 해라.”
“끌려가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합니까?”
“그러니까 끌려가지를 말란 말이다!”
고 내관이 길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 탁탁 털었다. 나는 수레에서 내려오면서, 오랏줄이 풀린 손목을 문질렀다. 쓸린 자리가 쓰라렸다. 날짜는 짐이 정한다. 처형이 없어진 게 아니었다. 처형 날짜를 황제가 쥐었다. 회사로 치면 해고 통지를 받았는데 날짜 칸이 비어 있는 상태였다. 그 칸은 사장 서랍에 들어갔다.
*
미시, 오후 두 시께. 볕이 가장 무거운 시각이었다.
호위대 마당 한가운데서 진목이 목검 두 자루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당 흙이 볕에 말라 하얗게 들떠 있었고, 처마 밑에는 비번인 호위무사 여남은 명이 쪼그려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누가 참외를 깎고 있었다. 단내가 마당까지 왔다.
“침전 문 안쪽에 서려면 대련을 한 판 해야 해.” 진목이 목검 한 자루를 던졌다. “규칙이야.”
“그런 규칙이 있었어?”
“지금 생겼어.”
내가 이틀 전에 한 말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처마 밑에서 누가 킥 웃었다.
진목이 먼저 들어왔다. 나는 목검을 오른손으로 쥐었다. 머리는 피하라고 했는데 몸이 먼저 움직였다. 목검이 진목의 첫 칼을 비스듬히 받아 흘렸고, 발이 반 걸음 옆으로 빠졌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손목이 혼자 돌았고 어깨가 혼자 내려앉았다. 이 몸이 십 년 동안 한 일을 내 머리는 하나도 몰랐다. 나는 내 몸이 싸우는 걸 구경했다. 속으로 계속 비명을 질렀다. 와 이거 왜 돼? 저 칼 오는 거 보여? 나는 안 보이는데?
세 합째에 진목이 내 오른손을 쳤다. 목검이 손을 떠나 흙바닥에 굴렀다. 그가 들어와 목검 끝을 내 목 밑에 댔다. 마른 나뭇결이 울대뼈에 닿았다.
“야율은 왼손잡이야.” 진목이 낮게 말했다. 처마 밑까지는 안 들리는 목소리였다. “십 년 동안 오른손으로 칼 잡는 걸 한 번도 못 봤어. 그리고 야율은 수련을 좋아했어. 한 번도 말은 못 했지만, 다들 알았어. 그런데 너는 오늘 아침 그 애 시신 앞에서 이름 한 번을 못 불렀어.”
목검 끝이 조금 더 들어왔다. 숨을 삼키자 울대가 나뭇결에 긁혔다.
“너는 야율이 아니야. 너 누구야?”
거짓말을 고르려고 했다. 그런데 「수련을 좋아했어」라는 말이 귀에 남아서 혀가 안 움직였다. 이 몸의 주인은 오늘 아침 좋아하던 사람의 시신 앞에 서 있었다. 이 몸의 주인 대신 내가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손 한 번 못 잡아 봤을 손을, 나는 수건 귀퉁이를 누르는 데 썼다.
“나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 나는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나는 알아. 폐하가 칠석에 죽으면 너도 이 궁을 떠나. 그리고 다시는 이 궁에 칼을 들고 안 돌아와. 반대편에 서서 돌아와.”
진목의 눈썹이 움직였다.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나는 폐하를 칠석까지 살려야 해. 너도 같이 살려고.”
진목은 목검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 나를 오래 봤다. 처마 밑에서 참외 깎던 사람이 칼질을 멈추고 이쪽을 넘겨다봤다.
“지켜볼 거야.” 진목이 목검을 내렸다. “야율 몸에 들어간 게 귀신이든 뭐든.”
*
해시, 밤 열 시께. 나는 침전 문 안쪽에 섰다.
문 안쪽 호위는 한 사람만 선다. 문을 등지고 서서, 황제가 자는 휘장 쪽을 본다. 빗장은 안에서 건다. 나무 빗장은 내 팔뚝만큼 굵었고 손에 닿는 자리가 반들반들했다. 안에서 맡는 침향은 밖에서 맡을 때보다 훨씬 진했다. 그 밑에 쓴 약초 냄새가 깔려 있었는데, 가까이서 맡으니 잠을 부르는 약재였다. 이 사람은 그 냄새를 맡고도 잠을 못 잤다.
휘장 너머에서 염휘가 돌아누웠다. 또 돌아누웠다. 한참 뒤 휘장이 걷히고 그가 나왔다. 손에 복숭아 하나와 작은 칼을 들고 있었다.
“먹어라.”
그가 내 앞에 서서 복숭아를 깎기 시작했다. 칼질이 이상했다. 껍질을 벗기는 게 아니라 살을 덩어리째 썰어 냈다. 즙이 그의 손목을 타고 소매 속으로 흘렀다.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때 그의 손에 남은 것은 씨와, 씨에 붙은 살 조금이었다. 썰어 낸 살은 다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가 씨를 내밀었다.
“폐하.” 나는 정말 진지하게 말했다. “이건 씨입니다.”
“안다.”
“살은 바닥에 있습니다.”
“그것도 안다.” 그가 씨를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즙이 끈적했고 단내가 확 퍼졌다. “누구한테 깎아 줘 본 적이 없다. 다음엔 나을 거다.”
다음이 있다는 말을 그는 아무렇지 않게 했다. 날짜 칸이 비어 있는 해고 통지서가 서랍 속에서 한 줄 더 밀려 들어갔다. 나는 씨에 붙은 살을 이로 긁어 먹었다. 달았다. 바닥에 떨어진 것들보다 씨에 붙은 쪽이 더 달았다.
그때 문밖에서 기척이 났다.
“폐하, 자경전에서 탕약을 보내셨습니다.” 방 상궁의 목소리였다. “잠 못 드시는 폐하를 위해 마마께서 손수 달이셨답니다.”
나는 빗장에 손을 얹었다. “폐하 주무십니다.”
“네가 무엇이기에 마마의 정성을 문밖에 세우느냐?” 문 너머에서 방 상궁의 목소리가 한 치 낮아졌다. “빗장을 열어라.”
“들여라.”
등 뒤에서 염휘가 말했다. 나는 돌아봤다. 그가 손에 묻은 복숭아즙을 소매에 닦고 있었다. 나는 빗장을 풀었다. 방 상궁이 들어와 탕약 사발을 상에 올려놓고,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갔다. 물러가면서 나를 봤다. 수련의 손톱 같은 색이 그 눈에는 없었다. 아무 색도 없었다.
빗장을 다시 걸었다. 염휘가 사발을 들어 내 앞에 내밀었다.
“네가 먼저 마셔라.”
시험이었다. 독이 있으면 내가 죽는다. 독이 없으면 황제가 나를 믿는다. 아니면 둘 다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사발을 받았다. 검은 탕약에서 감초와 대추 냄새가 났고, 그 밑에 무언가 단 풀냄새가 있었다. 나는 한 모금이 아니라 반 사발을 마셨다. 혀가 얼얼했다.
죽지는 않았다. 대신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무릎이 녹았다. 잠을 부르는 약이었다. 아주 센.
나는 빗장 옆에 주저앉았다. 칼집이 바닥에 부딪혀 둔한 소리를 냈다. 정신이 꺼지기 직전, 염휘가 내 허리에서 칼을 뽑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칼을 무릎에 눕히고 내 옆, 문 앞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황제가 호위를 호위하고 있었다. 원작 어디에도 없는 장면이었다. 그걸 생각하면서 나는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