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95자)
왜 막았지
폭군의 호위무사로 빙의했는데 폭군이 나만 본다 · 윤재하
이튿날 알게 된 것이 있다. 황제의 개 이름은 「재상」이었다.
“재상, 이리 와.”
편전 한가운데서 염휘가 그렇게 부르자, 엎드려 있던 대신 넷 가운데 세 사람이 동시에 어깨를 움찔했다. 진짜 재상은 맨 앞에 엎드린 흰 수염 노인이었는데, 그 노인만 꼼짝하지 않았다. 몇 번 당해 본 사람의 침착함이었다. 그사이 황제의 발치에서 누렇고 털이 반쯤 빠진 늙은 사냥개가 일어나 꼬리를 두 번 흔들고 다시 누웠다. 누운 자리가 마침 호조 판서의 관복 자락 위였다.
나는 황제 등 뒤 기둥 옆에 서서 웃음을 참았다. 이를 꽉 물고 혀끝을 씹었다. 원작에 이런 개는 없었다. 아니, 있었을 수도 있다. 작가가 안 썼을 뿐이다. 원작은 폭군이 무엇을 죽였는지는 빼곡히 적었지만, 폭군이 무엇을 쓰다듬는지는 한 줄도 적지 않았다.
그날 하루 동안 나는 염휘 곁에 붙어 다녔다. 편전에서 상소를 듣는 동안, 점심 수라를 받는 동안, 연못가 그늘에서 부채질을 하는 동안. 그는 나를 거의 안 쳐다봤다. 그러다 아주 가끔, 내가 딴생각을 할 때마다 정확히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앞을 봤다. 회사 부장님이 모니터를 몰래 들여다보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무서웠다. 부장님은 적어도 다음 날 나를 처형하지는 않았다.
해 질 무렵에 그가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일 저녁에 죽는 기분이 어떠냐?”
“모레 아침입니다, 폐하.”
“그래?”
“사흘 뒤라고 하셨으니까요. 날짜는 정확해야 합니다.”
염휘가 나를 한참 봤다. “죽는 날을 따지는 놈은 처음 본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게 남는 장사라서요.”
그가 부채로 입을 가렸다. 부채 너머에서 숨이 한 번 짧게 빠져나가는 소리가 났다. 웃은 건지 기침한 건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
연회 날 아침, 나는 호위대 숙소 뒷마당에서 넘어지는 연습을 했다.
물을 가득 채운 놋대접을 쟁반에 얹고 마당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 열여덟 걸음째에 발을 걸었다. 안 걸렸다. 내 오른발이 왼발 뒤꿈치를 차려고 하면 이 몸의 왼발이 먼저 알고 반 치 비켜섰다. 세 번을 해도 그랬다. 네 번째에는 아예 무릎을 꺾으려고 했는데, 무릎이 꺾이는 동시에 허리가 저절로 낮아지면서 쟁반이 수평을 지켰다. 놋대접 물이 한 방울도 안 흘렀다. 야율이라는 사람은 십 년 동안 무엇을 들고 걸어도 안 넘어지는 법만 익혔던 모양이다.
“뭐 해?”
빨래 너는 장대 옆에 진목이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아주 오래 지켜본 얼굴이었다.
“넘어지는 연습.”
“그걸 왜 연습해?”
“잘 넘어지려고.”
진목은 한참 나를 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중얼거렸다. 「사흘 뒤에 죽는다니까 사람이 저렇게 되는구나.」 나는 다섯 번째로 발을 걸었다. 이번엔 대접이 기울었고, 물이 쟁반에 쏟아져 내 신발을 다 적셨다. 성공이었다. 젖은 버선이 발가락 사이에서 질척거렸다.
*
연회는 청량전에서 열렸다. 연못 한가운데로 뻗은 누각인데, 바닥 밑으로 물이 흘러서 한여름에도 발바닥이 서늘했다. 연잎이 연못을 빈틈없이 덮었고, 그 위로 분홍 연꽃이 고개를 내밀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연잎 뒷면의 흰빛이 한쪽으로 일제히 뒤집혔다. 그 바람 속에 기름 등잔의 그을음과 구운 고기 냄새, 대신들의 관복에 밴 향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상석에 황제가 앉고, 그보다 반 자 낮은 옆자리에 태후가 앉았다. 반 자라는 높이가 이 나라의 정치를 다 설명했다. 그 아래로 대신들이 양쪽으로 늘어앉았고, 누각 입구는 금군이 지켰다. 금군 맨 앞에 선 사내가 금빛 실로 테를 두른 갑옷을 입고 있었다. 서른 중반, 턱이 각지고 눈이 작았다. 원작에서 저 갑옷을 입는 사람은 하나뿐이다. 태후의 조카, 금군 통령 위소겸. 원작 2권에서 백무현 손에 왼팔이 잘리는 사람이다. 지금은 양팔이 다 멀쩡했다.
내 자리는 황제 등 뒤였다. 염휘는 술을 거의 안 마셨다. 잔을 들어 입에 대는 시늉만 하고 내려놓았다. 그 잔에는 시음 내관이 먼저 입을 댔다. 독은 그 잔에 오지 않는다. 나는 원작을 안다. 「연잎 향이 나는 술」은 연회가 반쯤 지나 태후가 손수 내리는 술이다.
반쯤 지났을 때 방 상궁이 내 옆으로 왔다.
“마마께서 황상께 드리는 하엽주다.”
쟁반 위에 잔이 하나 놓여 있었다. 청자였고, 안쪽 바닥에 연꽃이 한 송이 음각되어 있었다. 술은 맑은 연둣빛이었다. 연잎 향이 코끝까지 올라왔다. 원작에 적힌 그대로였다. 방 상궁이 쟁반을 내 손에 넘기며 아주 작게 말했다.
“시음은 없다. 마마께서 내리시는 술이니까.”
쟁반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손이 떨릴까 봐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였다. 이 몸은 떨지 않았다. 떨린 건 내 쪽이었다.
선택지는 셋이었다. 하나, 원작대로 올린다. 황제가 열흘 앓고, 칠석에 죽고, 나는 모레 아침 수레를 탄다는 약속을 믿는다. 원작에서 그 약속은 안 지켜졌다. 둘, 이 술에 독이 있다고 외친다. 태후가 옆에 앉아 있다. 증거는 원작 소설뿐이다. 그 소설을 읽은 사람은 이 나라에 나 하나다. 셋.
나는 셋째를 골랐다.
황제 앞까지 스무 걸음이었다. 열여덟 걸음째에 나는 내 오른발로 내 왼발 뒤꿈치를 걸었다. 몸은 넘어지는 법을 몰랐다. 야율의 몸은 넘어질 줄을 몰라서, 내가 억지로 무릎을 꺾어야 했다. 쟁반이 손을 떠났다. 청자 잔이 공중에서 반 바퀴 돌았고, 연둣빛 술이 활처럼 휘면서 날아가 바닥에, 그리고 바닥에서 튀어 금군 통령의 신발 위에 떨어졌다.
잔이 깨지는 소리가 누각 바닥 밑의 물소리를 덮었다.
“이놈이.”
위소겸이 칼을 뽑았다. 칼날이 등잔 불빛을 받아 내 눈을 찔렀다. 그가 젖은 신발을 한 번 털었다. 털면서 아주 잠깐 신발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사람은 그 술이 무엇인지 안다. 나는 그 얼굴을 봤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연회를 더럽혔습니다, 황상.” 태후의 목소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지금 베시지요. 어차피 모레면 죽을 아이입니다.”
“멈춰라.”
염휘가 일어나지 않고 말했다. 위소겸의 칼끝이 내 목에서 손가락 두 마디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그 순간 상석 밑에서 무언가가 어슬렁 기어 나왔다. 재상이었다. 늙은 개는 깨진 잔 쪽으로 코를 박더니 바닥에 고인 술을 핥았다.
“안 돼!”
나는 무릎으로 기어가 개의 목덜미를 잡았다. 늦었다. 재상은 서너 번 혀를 날름거렸고, 내 손아귀에서 몸을 한 번 떨었다. 그러고는 앞다리가 꺾였다. 개가 옆으로 쓰러지면서 입가로 거품이 흘렀다. 숨을 쉴 때마다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누각 안이 조용해졌다. 대신 하나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상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 하나가 끝까지 들렸다.
염휘가 일어났다. 계단을 내려와 내 옆에 무릎을 꿇었다. 황제가 무릎을 꿇었으니 누각 안의 모든 사람이 엎드려야 했고, 실제로 다들 엎드렸다. 태후만 앉아 있었다. 염휘는 재상의 머리를 자기 무릎 위로 끌어 올렸다. 금실로 수놓은 소매가 개 거품에 젖었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개의 목을 쓸어내렸다. 아주 천천히, 결을 따라서.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태후를 봤다.
“어마마마, 술이 상했습니다.”
태후는 얼굴빛 하나 안 바뀌었다. “그런 모양입니다. 술 맡은 아이가 무엇을 잘못 담갔겠지요.” 그가 손짓하자 방 상궁이 머리를 조아렸다. “술 맡은 아이를 엄히 다스리겠습니다. 황상께서는 놀라셨을 테니 들어가 쉬시지요.”
“그러겠습니다.” 염휘가 재상을 안아 들었다. 늙었어도 몸집이 큰 사냥개라 그의 팔이 한 번 휘청했다. 그가 나를 내려다봤다. “따라와라.”
나는 일어서면서 위소겸 쪽을 봤다. 그는 칼을 칼집에 넣고 있었다. 칼날이 칼집 입구에 두 번 걸렸다. 손이 떨려서였다.
*
재상은 밤새 토했다.
침전 바깥 마루에 짚을 깔고 그 위에 개를 눕혔다. 어의를 부르라는 명은 없었다. 대신 염휘가 직접 물을 떠 와 개 입에 흘려 넣었고, 토하면 짚을 갈았다. 고 내관이라는 늙은 내관이 세 번이나 와서 「폐하, 소인이 하겠습니다」 하고 매달렸는데, 염휘는 세 번 다 손을 내저었다. 네 번째에 고 내관은 포기하고 마루 끝에 앉아 졸았다. 졸면서도 「폐하, 옥체」 하고 잠꼬대를 했다.
나는 짚 더미를 날랐다. 쉰내와 토사물 냄새가 마루에 배었다. 짚 가시가 손바닥에 박혀 따끔거렸다. 이게 원작에서 사람 목을 열둘이나 벤 폭군이 사는 밤이었다.
축시, 새벽 두 시께가 되었을 때, 재상이 처음으로 물을 삼키고 토하지 않았다. 숨소리에서 쇳소리가 빠졌다. 염휘가 개의 귀 뒤를 손톱으로 살살 긁었다. 재상의 꼬리가 짚 위에서 한 번 쓸렸다.
“이 녀석은 열두 살이다.” 염휘가 말했다. “내가 황자 시절에 진 사냥에서 얻었다. 그때 다들 내가 질 거라고 했지. 이 녀석만 나보다 먼저 사슴을 찾았다. 그래서 재상이라고 불렀다.”
“진짜 재상님은 그 이름을 아십니까?”
“알지.” 염휘가 짚을 한 줌 쥐어 개 등에 덮었다. “그래서 내가 이 녀석을 부를 때마다 그 노인이 꿈쩍도 안 하는 거다.”
나는 웃음이 터질 뻔해서 입을 막았다. 염휘가 그걸 봤다. 그리고 그는 웃지 않고 물었다.
“왜 막았지?”
목소리가 낮았다. 낮에 편전에서 대신들한테 쓰던 목소리와 같았다. 마당의 매미가 다 잠든 시각이라 그 목소리가 마루 끝까지 굴러갔다.
“너는 모레 아침에 죽는다. 내가 그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너는 죽어. 어마마마가 네게 무엇을 약속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약속이 있었겠지. 너는 그 약속을 엎었다. 왜 막았지?”
나는 대답을 골랐다. 원작에서 폐하는 이 술을 마시고 열흘을 앓다가 칠석에 죽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망합니다. 제가 그 소설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모레 아침이 아니라 오늘 밤에 죽는다.
“제 근무 시간이라서요.”
“무엇?”
“제가 서 있는 동안 폐하께서 쓰러지시면 그건 제 책임입니다. 저는 제 책임으로 남는 일은 안 만들고 싶습니다. 죽는 날까지는 폐하 호위니까요.”
염휘가 나를 봤다. 등잔 하나가 마루 기둥에 걸려 있었고, 그 빛이 그의 얼굴 한쪽만 비췄다. 눈 밑의 푸른 그늘이 그 빛 속에서 더 짙어 보였다. 그는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다 아주 낮게 웃었다. 이번에는 분명히 웃음이었다. 소리가 거의 안 났는데, 어깨가 두 번 들썩였다.
“죽는 날까지는.” 그가 내 말을 따라 했다. “가서 자라.”
나는 일어나 마루를 내려섰다. 신을 꿰고 침전 마당을 가로지르는데, 머릿속에서 태후의 말이 다시 울렸다. 술 맡은 아이를 엄히 다스리겠습니다.
원작에 그 말은 없었다. 원작에서 황제는 그 술을 마셨고, 아무도 술을 탓하지 않았다. 원작에서 술 맡은 궁녀는 7권까지 살아 있었다. 수련이라는 이름이었다. 7권에서 수련은 북문 빗장을 몰래 풀어 백무현의 군대를 궁 안으로 들인다. 원작 독자들이 가장 많이 운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그때 연못 쪽에서 소리가 났다. 끼익, 하고 나무가 감기는 소리였다. 수라간 뒤편 우물의 도르래였다. 한밤중에 물을 길을 사람은 없다.
소리는 한 번 나고,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