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61자)

하청

두 장의 유언장 · 노범우

저녁 여섯 시⁠, 장례식장 앞에 관광버스 한 대가 멈췄다⁠. 「⁠금목토건 협력업체 협의회⁠」라는 종이가 앞 유리에 붙어 있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줄줄이 내렸다⁠. 양복 바지 밑으로 안전화가 보였고⁠, 몇은 넥타이 대신 작업복 목깃을 양복 깃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철근⁠, 형틀⁠, 전기⁠, 설비⁠, 도장⁠, 조경⁠. 금목토건 현장에 들어가는 하청 업체 사장 열네 명이었다⁠.

맨 앞에서 내린 사람이 도윤구였다⁠. 예순셋⁠, 철근 업체 사장이자 하청 협의회장이었다⁠. 굵은 손가락으로 조의금 봉투 열네 개를 한꺼번에 쥐고 있었다⁠. 봉투 열네 개를 부의금 함에 한 장씩 넣는 데 일 분이 걸렸다⁠. 범곤이 돋보기를 쓰고 봉투를 받았다⁠.

절은 열네 명이 세 줄로 나눠서 했다⁠. 두 번째 줄의 형틀 사장이 절을 하다가 무릎이 안 펴져서 옆 사람 어깨를 짚고 일어났다⁠. 뒷줄에서 누가 “⁠형님 무릎은 형틀로 안 되겠네⁠” 하고 낮게 말했다가 도윤구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절이 끝나자 열네 명은 2층 접객실로 들어가 상 두 개를 붙였다⁠. 누군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화투 한 벌을 꺼냈다⁠. 조문객용 접객실에는 원래 화투가 있었는데 하청 사장들은 그걸 믿지 않았다⁠. 자기 화투를 들고 다녔다⁠.

“⁠점에 십 원⁠.⁠”

“⁠형님⁠, 오늘은 백 원 하입시더⁠. 회장님 가시는 날인데⁠.⁠”

“⁠백 원 하면 니 집 넘어간다⁠. 십 원⁠.⁠”

나는 접객실 문 옆에서 화투판을 보았다⁠. 점당 십 원짜리 판에서 열네 명이 눈에 핏발을 세웠다⁠. 도윤구는 판에 끼지 않고 상 끝에 앉아 소주잔을 돌렸다⁠. 나를 보고 잔을 내려놓았다⁠.

“⁠큰따님⁠. 이리 앉으이소⁠.⁠”

*

“⁠넉 달입니더⁠.⁠”

도윤구는 잔에 소주를 채우며 말했다⁠. 손톱 밑에 녹 냄새가 배어 있었다⁠.

“⁠1월부터 기성금이 안 나왔심더⁠. 기성금이 뭐냐 카면⁠, 공사한 만큼 달마다 받는 돈입니더⁠. 철근 묶은 만큼⁠, 거푸집 짠 만큼⁠. 회장님 살아 계실 때 약속하셨어요⁠. 산단 대출만 나오면 한 번에 다 푼다꼬⁠. 열네 개 업체⁠, 밑에 사람 백사십 명입니더⁠.⁠”

화투판에서 패를 내리치는 소리가 났다⁠. 「⁠똥⁠」을 먹은 설비 사장이 환호했다⁠.

“⁠태구 대표가 내일 아침 이사회에서 대표 되고⁠, 풍산 땅 담보 넘어가면 은행 돈 나오고⁠, 은행 돈 나오면 우리 돈 나옵니더⁠. 그런데 큰따님이 유언장 두 장을 품에 안고 계신다 카데요⁠.⁠”

“⁠네⁠.⁠”

“⁠태구 대표 유언장이 진짜입니더⁠. 내가 봤어요⁠.⁠”

“⁠뭘 보셨어요⁠?⁠”

“⁠2023년 9월 2일⁠, 창립 기념식 하던 날⁠. 저녁에 풍산 과수원 정자에서 뒤풀이를 했심더⁠. 회장님이 정자 평상에 앉아서 종이에 뭘 쓰시고⁠, 도장을 꾹 찍으셨어요⁠. 쓰고 나서 태구 대표한테 주시면서 회사는 니가 끌고 가라 카셨어요⁠. 내가 바로 옆에 있었심더⁠.⁠”

“⁠무슨 도장이었어요⁠?⁠”

“⁠상아 도장⁠. 金 자 귀퉁이 이 빠진 거⁠. 회장님이 사십 년 쓰신 거 모르는 사람 없심더⁠. 우리 계약서마다 그 도장이 찍혔으니까⁠.⁠”

도윤구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열네 명 가운데 몇이 화투패를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는요⁠? 어떤 종이였어요⁠?⁠”

“⁠흰 종이⁠.⁠”

“⁠줄 있는 거요⁠, 없는 거요⁠?⁠”

“⁠그런 거는 모르지예⁠. 정자에 불이 어두버서⁠.⁠”

“⁠어두운데 도장 귀퉁이 이 빠진 건 보셨어요⁠?⁠”

도윤구가 잔을 들다가 멈췄다⁠. 화투판의 소리가 한순간 줄었다⁠.

“⁠그 도장은 안 봐도 압니더⁠. 사십 년을 봤으니까⁠.⁠”

“⁠그날 회장님이 사장님 계약서에도 도장을 찍으셨어요⁠?⁠”

“⁠그날 갱신했지예⁠. 정자에서 같이⁠. 우리 회사 하도급 계약 삼 년짜리⁠.⁠”

“⁠그 계약서⁠, 지금 어디 있어요⁠?⁠”

“⁠현장 컨테이너 금고에⁠.⁠”

나는 일어났다⁠.

“⁠보여 주세요⁠.⁠”

*

풍산 산업단지 예정지는 과수원 아래 논을 메운 땅이었다⁠. 저녁 일곱 시 반⁠,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기 직전이라 하늘이 아직 밝았다⁠. 컨테이너 세 동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한 동은 사무실⁠, 두 동은 숙소였다⁠. 숙소 앞에 빨래가 널려 있었다⁠. 작업복 바지와 목장갑과 수건⁠.

도윤구가 앞장섰고⁠, 재묵이 따라왔다⁠. 드립백 상자 하나를 안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묵는 데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재묵의 말투가 오늘따라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숙소 컨테이너 문이 열려 있었다⁠. 이층 침대 여섯 개⁠, 바닥에 라면 상자가 벽처럼 쌓여 있었다⁠. 상자 하나에 매직으로 「⁠5월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침대 하나에 젊은 노동자가 누워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고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쉰 줄의 남자가 앉아 발톱을 깎고 있었다⁠. 도윤구를 보고 둘 다 일어났다⁠.

“⁠사장님⁠, 돈 나옵니까⁠?⁠”

“⁠내일 나온다⁠. 내일 아침 이사회만 넘어가면⁠.⁠”

“⁠지난달에도 내일이라 하셨잖아요⁠.⁠”

발톱을 깎던 남자가 웃으며 말했는데 웃음 끝이 떨렸다⁠. 남자는 손톱깎이를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은행 앱 화면이었다⁠. 「⁠입금 예정 없음⁠」 딸 대학 기숙사비가 이번 주까지라고 했다⁠.

재묵이 상자를 내려놓았다⁠. 컨테이너 구석에 전기 주전자가 있었다⁠. 재묵은 주전자에 물을 받아 끓이고⁠, 종이컵을 여섯 개 늘어놓고⁠, 드립백을 하나씩 걸었다⁠. 물을 붓는 손이 느리고 정확했다⁠. 가게를 두 번 접은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커피 냄새가 라면 냄새를 덮었다⁠.

“⁠이거 얼마예요⁠?⁠”

젊은 노동자가 물었다⁠. 재묵은 큐아르 코드 스티커를 손톱으로 긁어 떼어 내고 컵을 건넸다⁠.

“⁠돈 안 받아요⁠. 우리 아버지가 여러분 돈 안 줬다면서요⁠. 커피라도 드려야지⁠.⁠”

노동자들이 웃었다⁠. 발톱 깎던 남자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이거 비싼 맛이 난다고 했다⁠. 재묵은 에티오피아라고⁠, 꽃향이 난다고 설명하다가 목이 메어 말을 멈췄다⁠. 재묵은 고개를 돌려 주전자에 물을 다시 받았다⁠.

*

사무실 컨테이너의 금고는 녹색 철제 금고였다⁠. 도윤구가 다이얼을 돌려 열었다⁠. 서류철 맨 앞에 「⁠하도급 계약서 2023⁠. 9⁠. 2⁠.⁠」가 있었다⁠. 도윤구가 계약서 마지막 장을 펴서 책상 위에 놓았다⁠.

「⁠원도급자 금목토건 주식회사 대표이사 금판술⁠」 이름 옆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둥근 테두리 안에 「⁠金判述⁠」 석 자⁠. 테두리 왼쪽 위⁠, 金 자 머리 옆이 한 뼘의 십분의 일쯤 비어 있었다⁠. 테두리 선이 끊겨 이가 빠진 자리였다⁠. 인주가 빠진 자리에만 묻지 않았다⁠.

“⁠봐라⁠. 이 빠진 거⁠.⁠”

도윤구가 자랑하듯 손가락으로 짚었다⁠. 나는 핸드백에서 확대경을 꺼냈다⁠. 이 빠진 자리의 끝이 뾰족하지 않고 둥글게 닳아 있었다⁠. 사십 년 동안 인주를 묻히고 종이에 누르면서 깨진 모서리가 닳았다⁠. 흙에서 나온 토기 조각의 깨진 면이 오래되면 둥글어지는 것과 같았다⁠.

“⁠사진 찍어도 될까요⁠?⁠”

“⁠보는 거는 공짜고 찍는 것도 공짜입니더⁠. 근데 큰따님⁠.⁠”

나는 휴대전화로 도장을 가까이 세 장 찍었다⁠. 플래시를 끄고 한 장⁠, 켜고 한 장⁠, 확대경을 렌즈에 대고 한 장⁠. 도윤구는 내가 찍는 것을 보며 금고 문에 기대어 있었다⁠.

“⁠이걸로 태구 대표 편 들어 주는 거지예⁠?⁠”

“⁠진짜인 편을 들 거예요⁠.⁠”

“⁠진짜는 하나입니더⁠. 회장님이 회사는 태구가 끌고 간다 캤어요⁠. 내 귀로 들었심더⁠.⁠”

도윤구의 목소리가 컨테이너 철벽에 울렸다⁠. 숙소 컨테이너에서 재묵이 노동자들과 웃는 소리가 넘어왔다⁠.

“⁠사장님 귀로 들으신 건 저도 믿어요⁠. 기념식 마이크로 하신 말씀이니까 여든 명이 들었겠죠⁠. 제가 묻는 건 사장님 눈으로 보신 거예요⁠. 정자에서⁠, 어두운데⁠.⁠”

도윤구가 금고 문을 닫았다⁠. 다이얼이 저절로 돌아가며 딸깍거렸다⁠.

“⁠큰따님⁠, 내 하나만 말하께요⁠. 태구 대표가 지면 우리는 끝입니더⁠. 백사십 명이 넉 달 치를 못 받고⁠, 우리 열네 개 회사 중에 반은 이번 달에 문 닫습니더⁠. 큰따님 유언장 하나 가지고 법원 다니는 동안에⁠.⁠”

“⁠알아요⁠.⁠”

“⁠모르십니더⁠.⁠”

도윤구는 태구와 같은 말을 했다⁠. 모르실 거라는 말⁠. 이 사흘 동안 모두가 내게 모른다고 했다⁠.

*

돌아오는 길은 내가 운전했다⁠. 재묵은 조수석에서 빈 드립백 상자를 무릎에 얹고 창밖을 보았다⁠. 산단 예정지를 빠져나오는 농로 끝에 흰 관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문에 안동시 마크가 붙어 있었다⁠. 운전석은 비어 있었고⁠, 차 옆 논두렁에 새 입간판이 박혀 있었다⁠. 「⁠매매 완료 · 풍산 산업단지 인접 부지 · 문의 연락처⁠」 입간판의 페인트가 아직 번들거렸다⁠.

“⁠누나⁠, 저거 봤나⁠?⁠”

“⁠봤어⁠.⁠”

“⁠산단 된다고 소문나기 전에 누가 샀다는 거네⁠. 우리 연남동 가게도 저랬다⁠. 역 생긴다는 소문 듣고 들어갔더니 소문 낸 사람들은 벌써 다 사 놓고 나가더라⁠.⁠”

재묵이 상자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빈 상자가 북처럼 울렸다⁠.

“⁠아까 그 아저씨⁠, 딸 기숙사비⁠.⁠”

“⁠응⁠.⁠”

“⁠나는 사월에 형부 문자 받고 아버지한테 전화를 안 했다⁠. 회사가 태구 거면 나는 볼일 없다 싶어서⁠. 돈 얘기 말고 할 얘기가 없더라⁠.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설날이다⁠. 세배 돈 대신 원두 보낸다꼬⁠.⁠”

재묵이 창문을 내렸다⁠. 저녁 바람에 모내기 끝난 논의 물 냄새가 들어왔다⁠.

“⁠누나⁠, 나 각서 쓰면 그 아저씨들 돈 나오나⁠?⁠”

“⁠니 각서하고는 상관없어⁠. 이사회하고 풍산 땅이야⁠.⁠”

“⁠그럼 내 삼억은 그 아저씨들 돈하고 같은 데서 나오는 거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태구가 재묵에게 주겠다는 삼억이 어디서 나오는지 나는 몰랐다⁠. 은행 대출이 나오면 하청 대금보다 형제 입막음이 먼저일 수도 있었다⁠. 재묵은 내 침묵을 대답으로 들었다⁠. 안주머니의 약정서를 꺼내 한 번 펴 보고 도로 접었다⁠. 이번에는 접은 자리를 손톱으로 꾹꾹 눌렀다⁠.

“⁠누나는 어떻게 그렇게 모르는 걸 잘 참노⁠?⁠”

“⁠땅 파는 사람은 원래 그래⁠. 하루 종일 파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날이 더 많아⁠.⁠”

“⁠그럼 뭐 하러 파는데⁠?⁠”

“⁠안 나오는 것도 기록이니까⁠.⁠”

재묵이 피식 웃었다⁠. 시내로 들어서자 장례식장 간판의 하얀 불빛이 멀리 보였다⁠.

*

밤 아홉 시⁠, 빈소로 돌아오니 접객실 화투판은 끝나 있었다⁠. 형틀 사장이 이천삼백 원을 땄다고 했다⁠. 열네 명은 상을 정리하고 접객실 가운데에 둥글게 앉아 있었다⁠. 태구가 열네 명 가운데 서 있었다⁠. 도윤구가 태구 옆에 가서 섰다⁠.

“⁠대표님⁠, 큰따님한테 계약서 보여 드렸심더⁠.⁠”

태구가 나를 보았다⁠. 눈 밑이 검었다⁠.

“⁠보고 뭐라 카더노⁠?⁠”

“⁠진짜인 편을 든다 카시데요⁠.⁠”

도윤구는 열네 명을 한 번 둘러보고 나에게 몸을 돌렸다⁠.

“⁠큰따님⁠. 내일 아침 아홉 시 발인이지예⁠. 운구차가 풍산 선산으로 간다 카데요⁠. 장례식장에서 풍산 가는 길은 하나입니더⁠. 우리 협의회에 레미콘 차가 열한 대 있심더⁠.⁠”

“⁠사장님⁠.⁠”

“⁠태구 대표가 이사회에서 안 되면⁠, 그 길 우리가 막을 깁니더⁠. 회장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우리가 서 있을 깁니더⁠. 우리 돈 받으러⁠.⁠”

열네 명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화투패를 만지지 않았다⁠. 태구는 도윤구를 말리지 않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방금 찍은 도장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이 빠진 테두리가 손바닥만큼 커졌다⁠. 저고리 안의 두 봉투 가운데 하나에도 도장이 찍혀 있었다⁠. 아직 확대경으로 들여다보지 않은 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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