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35자)

공증 예약

두 장의 유언장 · 노범우

새벽 한 시 오십오 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내렸다⁠. 진주 귀걸이는 뺐고⁠,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시내 여관에 방을 잡았다고 나간 지 다섯 시간 만이었다⁠.

“⁠여관 이불에서 담배 냄새가 나서 못 자겠다⁠. 요새도 방에서 담배 피우는 놈이 있더라⁠.⁠”

“⁠엄마⁠, 택시 타고 또 오셨어요⁠?⁠”

“⁠걸어왔다⁠. 십오 분이더라⁠. 오다가 김밥집이 불이 켜져 있어서⁠.⁠”

비닐봉지 안에 은박지로 싼 김밥이 여섯 줄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식당 상에 김밥을 한 줄씩 놓았다⁠. 재묵 앞에 한 줄⁠, 미송 앞에 한 줄⁠, 내 앞에 한 줄⁠. 휴게실 문을 열고 하소옥을 찾았는데 하소옥은 없었다⁠. 어머니는 남은 김밥을 들고 형틀 사장이 자는 접객실까지 가서 이마의 드립백을 치우고 김밥 한 줄을 가슴에 얹어 주었다⁠. 형틀 사장은 김밥을 안은 채 계속 코를 골았다⁠.

“⁠엄마⁠, 장례식장에 음식 많아요⁠.⁠”

“⁠장례식장 음식은 산 사람 먹으라고 하는 기 아이다⁠. 죽은 사람 체면 세우라고 하는 기지⁠. 김밥은 산 사람 먹는 기다⁠.⁠”

재묵이 김밥 은박지를 벗기다가 울컥했는지 고개를 숙이고 김밥을 통째로 입에 밀어 넣었다⁠. 미송이 등을 두드렸다⁠. 어머니는 내 맞은편에 앉아 내가 김밥을 먹는지 지켜보았다⁠. 나는 한 개를 집어 먹었다⁠. 단무지가 두꺼웠다⁠.

“⁠니 얼굴이 흙빛이다⁠.⁠”

“⁠밤새서 그래요⁠.⁠”

“⁠니가 밤새는 거 하루 이틀이가⁠. 땅 팔 때는 얼굴이 빛나더라⁠. 지금은 흙빛이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한참 보다가 김밥 꼬다리를 집어 먹었다⁠. 꼬다리는 어머니가 늘 먹는 자리였다⁠. 자식들 앞에는 가운데를⁠, 당신 입에는 꼬다리를⁠.

“⁠다 파거든 내한테도 말해라⁠. 내도 그 사람하고 사십 년 살았다⁠.⁠”

“⁠네⁠.⁠”

어머니는 휴게실 소파에서 눈을 좀 붙이겠다고 했다⁠. 하소옥이 쓰던 소파였다⁠. 어머니는 하소옥의 카디건이 소파 팔걸이에 걸쳐진 것을 보고 개어서 옆에 놓은 뒤 누웠다⁠.

*

장례식장 뒷마당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살았다⁠. 회색 줄무늬였고 왼쪽 귀 끝이 잘려 있었다⁠. 중성화를 한 길고양이라는 표시였다⁠. 새벽 두 시⁠, 하소옥이 뒷마당 수돗가 옆에 쪼그려 앉아 종이컵에 편육을 찢어 담아 고양이에게 내밀고 있었다⁠. 고양이는 편육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렸다⁠. 편육에 새우젓 냄새가 배어 있었다⁠.

나는 2층 복도 창으로 하소옥을 보다가⁠, 뒷마당 쪽문이 열리고 태구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태구는 하소옥에게 다가가 옆에 쪼그려 앉았다⁠.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나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쪽문 안쪽에 섰을 때 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고 앞 형광등 하나가 두 사람을 비췄다⁠.

“⁠옥동 금목맨션 3동⁠, 서른두 평입니다⁠. 회사 명의라 바로 넘겨 드릴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있고⁠, 병원 가깝고⁠. 현금 이억은 이사회 끝나고 은행 돈 나오면 바로 드립니다⁠.⁠”

“⁠…⁠…⁠.⁠”

“⁠아주머니 유언장⁠, 법원에 가면 몇 년 갑니다⁠. 저희 형제들이 무효 소송 내면 필적 감정에⁠, 증인에⁠, 재판에⁠. 그동안 아주머니는 과수원 집에서 혼자 사셔야 하고요⁠. 슬레이트 지붕에 겨울에 보일러 기름값만 한 달 사십만 원입니다⁠.⁠”

태구는 공손했다⁠. 회사 일로 땅 주인을 만날 때 쓰는 말투였다⁠. 서류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하소옥 앞에 내밀었다⁠. 「⁠유증 포기 확인서⁠」 하소옥은 종이를 받지 않고 고양이를 보았다⁠.

“⁠생각해 보세요⁠. 여섯 시 전까지만⁠.⁠”

태구가 일어나 쪽문으로 걸어왔다⁠. 문 안쪽의 나를 보고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지나가며 낮게 말했다⁠.

“⁠누나도 생각해 봐라⁠. 저 사람한테 뭐가 낫는지⁠.⁠”

*

하소옥은 종이컵의 편육을 수돗가에 쏟고 컵을 손에 쥔 채 일어났다⁠. 확인서는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나는 확인서를 주워 하소옥에게 건넸다⁠. 하소옥이 받아 들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엘리베이터 있대요⁠.⁠”

“⁠네⁠.⁠”

“⁠과수원 집은 계단이 세 칸이에요⁠. 아버님 휠체어 올리려고 제가 판자로 비탈을 만들었어요⁠. 비 오면 미끄러워요⁠.⁠”

하소옥이 확인서를 접었다⁠. 반으로⁠, 다시 반으로⁠.

“⁠큰따님⁠, 저 예순넷이에요⁠. 국숫집 접을 때 가게 보증금 빼서 아버님 병원비에 보탰어요⁠. 국민연금은 국숫집 하느라 띄엄띄엄 내서 한 달에 삼십만 원 나와요⁠. 과수원 집에서 혼자 늙으면⁠, 다음에 제 휠체어는 누가 밀어요⁠?⁠”

“⁠…⁠…⁠.⁠”

“⁠아파트면 엘리베이터 있잖아요⁠.⁠”

하소옥은 웃으면서 말했다⁠. 웃음이 얼굴에서 금방 내려왔다⁠. 나는 아무것도 권하지 못했다⁠. 태구가 내민 것은 진짜 아파트였고⁠, 하소옥이 걱정하는 휠체어도 진짜였다⁠. 하소옥 앞에 놓인 두 길이 모두 하소옥을 늙게 했다⁠. 한 길은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소옥 씨⁠, 하나만 여쭤볼게요⁠. 작업실 달력에 3월 19일 동그라미가 있었어요⁠. 열 시⁠. 마 씨가 그날 아버지가 양복 꺼내 놓으라고 하셨대요⁠. 시내 어디 가시려고 했어요⁠?⁠”

하소옥이 접은 확인서를 손바닥에 꾹 눌렀다⁠.

*

“⁠공증사무소요⁠.⁠”

하소옥이 말했다⁠. 뒷마당 수돗가 꼭지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3월 초에 아버님이 권 법무사님한테 전화하셨어요⁠. 손이 이래서 글씨로는 못 믿는다고⁠, 공증인 앞에서 말로 하고 싶다고⁠. 법무사님이 증인 둘 데리고 가라고 하셨대요⁠. 증인은 마 씨하고⁠, 아버님 바둑 친구 문방구 어르신⁠. 저는 안 된대요⁠. 받는 사람은 증인이 못 된대요⁠.⁠”

“⁠예약은 누가 하셨어요⁠?⁠”

“⁠제가 전화했어요⁠. 시내 법률사무소 공증 담당⁠. 19일 금요일 열 시⁠. 아버님이 공증인한테 말씀하시면 공증인이 받아 적어서 읽어 드리고⁠, 아버님이 맞다 하시면 서명하고⁠. 손이 불편하면 서명을 못 하시는 이유를 적고 대신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러면 나중에 법원 안 가도 되고⁠, 누가 와서 가짜라고 못 한다고⁠.⁠”

공정증서 유언이었다⁠. 증인 두 사람 앞에서 말로 하고 공증인이 문서로 남기는 유언⁠. 공증인이 본인 확인을 하고 증인이 지켜보니 손글씨를 따질 일이 없었다⁠. 검인도 필요 없었다⁠. 아버지는 왼손 글씨가 법원에서 흔들릴 것을 알았다⁠. 그래서 3월 16일 아침에 자필로 먼저 쓰고⁠, 사흘 뒤 공증인 앞에서 말로 한 번 더 못을 박으려 했다⁠.

“⁠16일 밤에 열이 나서 입원하셨잖아요⁠.⁠”

“⁠네⁠. 18일 오후에 공증사무소에서 확인 전화가 왔어요⁠. 아버님 휴대전화로요⁠. 그때 병실에 사위분이 와 계셨어요⁠. 은행 서류 들고⁠. 아버님이 주무시고 계셔서 사위분이 받으셨어요⁠.⁠”

하소옥은 18일 오후를 여러 번 떠올린 사람처럼 말했다⁠. 한 마디도 막히지 않았다⁠.

“⁠사위분이 그러셨어요⁠. 장인어른이 입원하셨고⁠, 가족들이 정리하기로 했으니 예약은 취소해 달라고⁠. 네⁠, 네⁠, 감사합니다⁠. 그러고 끊으셨어요⁠. 저한테는 공증 같은 건 가족이 알아서 한다고⁠, 아주머니는 신경 쓰지 마시라고⁠.⁠”

“⁠아버지는요⁠?⁠”

“⁠깨셔서 제가 말씀드렸어요⁠. 아버님이 한참 천장만 보시다가⁠, 퇴원하면 다시 잡아라 하셨어요⁠. 24일에 퇴원하셨는데 4월 3일에 다시 입원하셨어요⁠. 저는 병원에 공증인이 직접 와 주는 것도 된다고 해서 다시 전화했어요⁠. 사무소에서 가족분이 취소하셨는데 괜찮으시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가족이 아니라서⁠, 그만 말이 막혀서⁠,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어요⁠.⁠”

하소옥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그때 그냥 와 달라고 했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거예요⁠.⁠”

나는 하소옥의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수돗가 꼭지를 꽉 잠갔다⁠. 물방울이 멈췄다⁠.

범곤은 3월 18일에 아버지가 유언을 남기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공증인 앞에서⁠, 증인 둘을 세우고⁠, 누구도 뒤집지 못하게⁠. 범곤은 확인 전화를 받고 예약을 지웠다⁠. 그리고 4월 9일 밤에 태구와 병실을 지켰다⁠. 4월 10일 밤에 재묵에게 사진을 보냈고⁠, 4월에 솔잎 편지지와 연필을 샀다⁠.

흙으로 치면 층이 하나씩 차례로 쌓인 자리였다⁠. 누가 덮었는지⁠, 언제 덮었는지가 다 보였다⁠.

*

“⁠소옥 씨⁠, 이 확인서요⁠.⁠”

“⁠네⁠.⁠”

“⁠쓰셔도 돼요⁠. 소옥 씨가 고를 일이에요⁠. 저는 소옥 씨 휠체어를 밀어 드리겠다는 약속은 못 해요⁠. 대구에 사니까⁠.⁠”

하소옥이 접힌 확인서를 펴서 보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 「⁠유증 포기 확인서⁠」 글자가 선명했다⁠. 서명란이 비어 있었다⁠. 하소옥은 확인서를 오래 보다가 다시 접었다⁠. 이번에는 네 번 접어 손바닥만 하게 만들었다⁠.

“⁠아버님이 태구 씨 보지 말라고 하신 거요⁠.⁠”

“⁠네⁠.⁠”

“⁠태구 씨한테 땅 넘어가는 게 싫으셔서가 아니었어요⁠. 2월에 은행 서류 들고 왔을 때 아버님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저놈이 저 땅 잡히고 산단 하면 은행 빚이 삼백억이 넘는다고⁠. 시청 사람 말만 믿고 들어갔다가 고시가 엎어지면 회사가 통째로 넘어간다고⁠. 내가 사십 년 동안 그렇게 넘어간 회사를 열 개도 넘게 봤다고⁠. 막내가 그걸 하게 두면 안 된다고⁠.⁠”

하소옥은 손바닥만 해진 확인서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땅을 저한테 주신 건 제가 안 팔 사람이라서예요⁠. 저는 땅이 무서워서 못 팔아요⁠. 아버님이 그걸 아셨어요⁠.⁠”

“⁠그럼 엘리베이터는요⁠?⁠”

“⁠계단 세 칸이에요⁠. 제가 판자 하나 더 대면 돼요⁠.⁠”

하소옥이 웃었다⁠. 이번 웃음은 얼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고양이가 수돗가로 돌아와 하소옥의 발목에 머리를 비볐다⁠. 편육은 안 먹고 사람만 좋아하는 고양이였다⁠.

*

하소옥은 손가방을 열었다⁠. 「⁠아버님 아침⁠」 「⁠아버님 저녁⁠」 약통 밑에서 검은 휴대전화 하나를 꺼냈다⁠. 화면에 금이 하나 가 있었다⁠. 아버지가 왼손으로 떨어뜨려서 생긴 금이라고 했다⁠.

“⁠아버님 휴대전화예요⁠. 3월 16일 아침에 아버님이 찍으라 하셨어요⁠. 쓰시는 거 처음부터 끝까지⁠. 혹시 모르니까 찍어 두라고⁠. 제 휴대전화는 오래돼서 안 된다고⁠, 아버님 걸로요⁠.⁠”

“⁠영상이 이 안에 있어요⁠?⁠”

“⁠네⁠. 그런데 비밀번호를 몰라요⁠. 아버님이 손수 누르셨어요⁠. 화면 보고 누르시면 제가 고개를 돌렸어요⁠. 남의 비밀번호는 보는 거 아니라고 국숫집 할 때 배웠어요⁠.⁠”

하소옥이 휴대전화를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화면을 켜자 잠금 화면이 떴다⁠. 배경 사진은 풍산 과수원의 사과꽃이었다⁠. 숫자 여섯 자리를 넣으라는 칸이 떠 있었다⁠. 아래에 작은 글씨로 「⁠다섯 번 틀리면 일 분 동안 잠깁니다⁠」 화면 귀퉁이의 배터리는 십이 퍼센트였다⁠. 충전기는 과수원 집에 두고 왔다고 하소옥이 미안해했다⁠. 커피 가게를 하던 재묵의 가방에는 온갖 충전기가 다 있을 터였다⁠.

“⁠법원에 내도 되는 거예요⁠? 제가 찍은 건데⁠.⁠”

“⁠소옥 씨가 찍은 영상은 그 자체로 유언은 못 돼요⁠. 받는 사람이 증인이면 안 되니까⁠. 그래도 아버지가 그날 아침 직접 쓰셨다는 걸 보여 주는 증거는 돼요⁠. 마 씨 기록하고⁠, 연습장하고 같이⁠.⁠”

권 법무사에게서 들은 말을 나는 내 말처럼 했다⁠. 하소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2층 복도 창에 그림자 하나가 비쳤다⁠. 태구였다⁠. 창 너머에서 뒷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손바닥의 휴대전화를 보았는지⁠, 태구가 창에서 물러났다⁠. 나는 잠금 화면의 여섯 칸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는 평생 비밀번호를 무엇으로 했던가⁠. 쉰일곱 해를 딸로 살았는데 나는 아버지의 여섯 자리를 몰랐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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