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49자) · 두 번째 모금

조정

두 시의 일기 · 유하람

C 등급 보고서가 나오고 나흘 동안 반 사장한테서 연락이 없었다. 닷새째 등기가 왔다. 사장님 앞으로. 새 임차인과의 계약은 거절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유는 건물주 직접 사용 검토 중. 사장님은 그 등기를 카운터에 올려놓고 행주로 덮지 않았다. 그냥 두었다. 손님들이 계산하면서 그 종이를 봤다. 사장님은 가리지 않았다.

“거짓말이네.”

구 영감님이 말했다. 신문을 넘기면서.

“반 사장이 저 가게를 직접 써? 커피를 내려? 두 번째 모금도 이제 배운 사람이?”

“거짓말은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나는 그 주 내내 법을 다시 읽었다.

“검토 중이라고만 했어요. 검토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끝까지 검토만 해도 돼요.”

“그럼 뭐여.”

“시간 끄는 거요. 팔월 삼십일일까지.”

사장님이 분쟁조정 신청서를 쓴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구청 옆 법률구조공단 건물 삼 층. 신청서 빈칸은 내가 읽어 드리고 사장님이 쓰셨다. 사장님 글씨는 크다. 신청 취지 칸이 모자라서 별지를 붙였다. 별지에 사장님은 이렇게 썼다. 새 사람이 이 가게를 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 조용하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한테 넘기게 해 주십시오.

조정 기일은 팔월 이십사일 월요일 오후 두 시로 잡혔다. 두 시. 사장님이 그 시각을 보고 웃었다. 그 시각에 가게를 비워야 한다는 게 열두 해 만에 처음이었다.

“가게는 누가 봐요.”

“제가 볼게요.”

아름 씨였다. 연차를 또 냈다고 했다. 사무소에 연차가 남아 있냐고 물었더니 소장님이 요즘 연차 쓴다는 말에 대꾸를 안 한다고 했다. 차 안에서 라테를 받아 마신 그날부터 그런다고.

“바리스타 해 본 적 있어요?”

“라테는 우유 먼저, 샷 나중. 그거 하나 알아요.”

그거 하나면 됐다. 아름 씨는 그 말을 하고 앞치마를 빌려 입었다. 사장님 앞치마는 아름 씨한테 짧았다. 두시에서 파는 것의 절반이 그거였다.

전날 저녁, 여섯 시 십오 분이 지난 두시에서 정후 씨와 나는 돈을 셌다. 딸기 스무디를 든 아이들 사이에서. 내 통장, 정후 씨 퇴직금, 번역 선인세 두 건, 정후 씨가 프리랜서로 받을 점검 일감 예상치. 정후 씨는 숫자를 세로로 쓰고 나는 가로로 썼다. 합이 같았다. 옆 탁자의 초등학생이 스무디 빨대를 문 채 우리 종이를 들여다봤다.

“이거 무슨 숙제예요?”

“가게 사는 숙제.”

“얼마 모자라요?”

정후 씨가 종이를 봤다. 나를 봤다.

“조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주머니에서 오백 원짜리 하나를 꺼내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친구들한테 돌아갔다. 우리는 그 오백 원을 한참 봤다. 정후 씨가 그걸 노트 사이에 끼웠다. 합에 오백 원이 더해졌다.

조정실 앞 복도에서 반 사장을 먼저 만났다. 그 사람 손에 빈 테이크아웃 컵이 들려 있었다. 두시 컵. 버리지 않고 들고 온 것이다. 그 사람이 내 시선을 알아채고 말했다. 아버지가 첫 모금에 쓰다고 하셨다고. 두 번째 모금에는 아무 말 안 하셨다고. 다 드셨다고.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기훈아, 하고 부르셨다고. 그 사람은 그 말을 하고 컵을 복도 쓰레기통 위에 올려놓았다가, 도로 집어 들었다.

조정실은 작은 회의실이었다. 긴 탁자 하나. 한쪽에 조정위원 셋. 변호사, 감정평가사, 은퇴한 판사라는 위원장. 맞은편에 신청인과 피신청인. 사장님과 반 사장이 한 탁자 양쪽 끝에 앉았다. 사장님 옆에 나와 정후 씨. 새 임차인 후보라는 자격으로. 반 사장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변호사를 안 데려왔다. 반팔 셔츠. 넥타이 없음.

위원장이 서류를 넘겼다. 은퇴한 판사의 손은 느렸다. 한 장씩 끝까지 읽고 넘겼다. 정밀안전진단 C 등급 보고서에서 오래 멈췄다. 첨부 자료. 임차인 제공 계측 기록. 이 년 치, 비공식. 삼 주 치, 공식. 위원장이 안경을 올리고 그 표를 봤다. 이백이십이, 이백이십이, 이백이십일.

“재건축은 안 하시는 걸로 봐도 됩니까?”

위원장이 반 사장에게 물었다.

“당장은요. C라서요. 보수 공사 하려고요.”

“그럼 새 임차인을 거절하시는 사유는 직접 사용 검토.”

“네.”

“어떤 용도로 검토하십니까?”

반 사장이 대답하지 못했다. 위원장이 기다렸다. 에어컨 소리. 두 시의 소리였다. 조정실도 두 시에는 조용했다.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정하지 않은 용도로 새 임차인을 거절하시면, 권리금 회수 방해로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올 수 있다는 건 아시죠.”

“압니다.”

“그걸 아시면서요.”

반 사장이 탁자 위에 두 손을 모았다. 그 사람 손은 이제 깨끗했다. 흙은 씻었다. 손톱 밑에 붉은 게 조금 남아 있었다. 그 뒷마당 흙이었다.

“위원장님, 제 사정 말씀드려도 됩니까?”

“하세요.”

“금리가 칠 퍼센트가 넘습니다. 새 임차인 월세 두 배를 받아도 이자에 모자랍니다. 재건축 시공사랑 가계약한 게 있어서 파기하면 위약금 삼천입니다. 제가 이 건물을 산 건 아버지가 지으신 거라서입니다. 부수고 아버지 이름 붙여서 새로 올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아버지가 바위 위에 앉혀 놓으셨더라고요.”

그 사람은 거기서 웃었다. 피곤한 웃음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그래서 지금 저는 부술 이유도 없고, 이자 낼 돈도 없고, 아버지 이름 붙일 데도 없습니다. 새 임차인을 받으면 이 상태로 오 년이 묶입니다. 그게 제 사정입니다. 저 사람들 사정이 딱한 건 압니다. 저도 딱합니다.”

조정실이 조용했다. 위원장이 사장님을 봤다. 사장님은 손목을 쥐고 있었다. 오늘은 흐렸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다.

“신청인 측 하실 말씀.”

사장님이 나를 봤다. 준비한 건 없었다. 사장님도 나도. 원문이 없었다. 나는 원문 없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 여름 전까지는.

나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검은색. 한결문구 A5. 이 년 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정후 씨가 옆에서 나를 봤다. 나는 그 사람 쪽을 보지 않고 노트를 폈다. 아무 데나.

“위원장님, 이건 제 일기예요. 이 년 동안 두시에서 쓴 거예요. 여기 한 사람이 육백구십사 번 나와요. 옆에 계신 분이요. 이분 노트에는 제가 칠백십이 번 나오고요. 사장님 공책에는 저희 둘이 같은 날 있었던 게 육백구십사 일이에요. 그 육백구십사 일 동안 저희는 말을 한 번 했어요. 우산 빌려줄 때.”

위원장이 안경을 벗었다.

“이게 조정이랑 무슨 상관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년 동안 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 조용한 데가 있어서, 말 한 번 안 하고도 서로를 칠백 번 적은 사람이 둘 생겼어요. 이번 달에는 그 두 시에 열아홉 명이 와요. 오늘은 스물여섯 명이래요. 아름 씨가 문자 보냈어요. 다들 아무 말도 안 하고 앉아 있대요.”

나는 반 사장을 봤다.

“반 사장님 아버님이 그 건물을 바위 위에 지으셨고요. 사장님 바깥양반이 그 바닥에 이십이 센티 턱을 올리셨어요. 한 분은 안 가라앉게, 한 분은 물이 안 들게요. 두 분은 서로 몰라요. 서로 모르고 한 일 위에 저희가 이 년 동안 앉아 있었어요.”

말이 막혔다. 다음 문장이 없었다. 나는 노트를 봤다. 펼친 장은 작년 가을이었다. 한 줄이 있었다.

10월 9일. 창가 오른쪽 사람이 얼음을 씹지 않고 기다렸다. 나도 기다려 봤다. 두 번째 모금 같은 맛이 났다.

나는 그 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읽고 나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잊었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반 사장님, 첫 모금만 드시고 계세요. 두 번째 모금 드셔 보세요. 오 년이요.”

반 사장이 나를 오래 봤다. 그러다 탁자 위의 내 노트를 봤다. 그 사람은 손을 뻗지 않았다. 남의 일기는 한 번 바뀐 걸로 충분했다.

위원장이 헛기침을 했다. 감정평가사 위원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변호사 위원이 반 사장 쪽으로 종이를 한 장 밀었다. 조정안 초안이었다. 조정위원들은 이런 방을 수백 번 봤을 것이다. 울고 소리치고 서류를 던지는 방. 일기를 읽는 방은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조정안은 네 줄이었다. 신규 임차인과 오 년 계약. 월세는 현재의 1.7배. 보수 공사비는 임대인이 부담하되 공사 기간 월세 면제. 권리금은 신청인과 신규 임차인이 따로 정함.

반 사장이 종이를 읽었다. 1.7. 그 사람은 볼펜을 들고 그 숫자에 동그라미를 쳤다가, 옆에 1.8이라고 썼다. 위원장이 사장님을 봤다. 사장님이 나를 봤다. 나는 정후 씨를 봤다. 정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을 끝낸 얼굴이었다. 우리 둘이 번역하고 재면서 벌 수 있는 돈으로, 1.8이면 빠듯했다. 빠듯하면 된다.

“권리금은요.”

위원장이 사장님에게 물었다. 사장님이 행주 대신 손수건을 접었다. 반으로, 또 반으로.

“잔 스물두 개 값이요. 그리고 탁자 아홉 개. 우리 양반이 짠 거. 그거 버리지 말고 쓴다는 조건으로. 돈은, 반 사장이 주기로 한 이사비의 반만 받을게요. 이천.”

“이사비는 제가 드리는 건데요.”

반 사장이 말했다.

“그러니까 반 사장이 반 내고, 저 둘이 반 내요. 반 사장은 위약금 내야 되니까 반만.”

조정실에서 처음으로 누가 웃었다. 위원장이었다. 은퇴한 판사가 소리 내어 웃다가 헛기침으로 덮었다.

반 사장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사장님, 하나만요. 가게 이름은 그대로 두시예요?”

“그건 새 사람들이 정해요.”

반 사장이 나를 봤다. 나는 정후 씨를 봤다. 정후 씨가 말했다.

“두시요. 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 조용한.”

반 사장이 조정안에 서명했다. 사장님이 서명했다. 이름 칸이 넉넉했다. 사장님 큰 글씨가 칸 안에 들어갔다.

조정실을 나섰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아름 씨가 사진을 보냈다. 두시 안. 탁자 아홉 개에 사람이 빼곡했다. 문 옆 할머니, 양복 아저씨, 유모차, 중학생, 구 영감님.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진 밑에 한 줄. 서른하나. 아무도 말 안 함. 라테는 열한 잔 망침. 한 시간 사이에 다섯이 늘어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산이 하나였다. 내 것. 접이식. 작년 팔월에 정후 씨한테 빌려줬던 그 우산. 나는 우산을 폈다. 정후 씨가 우산 밖에 서 있었다. 나는 우산을 그쪽으로 기울였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육백구십사 일 동안 우리가 나눈 말 두 마디를 우리는 한 번 더 했다. 이번에는 둘 다 우산 안에서.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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